성적보다 직무 능력 본다
  • 정우택 (언론인·전 헤럴드경제 국장) ()
  • 승인 2007.07.16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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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 방식 달라진 회사 많아…필기 시험 줄어들고 합숙 면접 늘어

 
얼마 전 기업은행 기흥연수원 운동장. 젊은이들이 10명씩 조를 짜 줄넘기를 하고 있었다. 즐거움보다 긴장감이 감돌았다. 정해진 시간에 실수 없이 많이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이날 경기가 평생의 운명을 좌우할 입사 시험이었다. 연수원 입소 응시자는 3백70명.
운동을 마친 이들은 강의실에서 조별로 집단 토론을 벌였다. ‘실버 세대를 위한 상품’ 등 주어진 주제에 대해 답을 만들어가는 자리였다. 토론을 통해 주제에 맞는 실행 방안이나 전략을 만들기 위해서다. 열띤 토론이 끝나자 곧바로 논술 시험이 이어졌다. 금융이나 경제에 대해 자료 없이 글을 써내야 한다. 1박2일간의 합숙 훈련을 마치고 버스에 오른 그들. 하지만 모두 합격 통보를 받는 것은 아니다. 뛰고 달리며 흘린 땀과 토론 결과, 논술 성적은 모두 점수로 환산되어 최종 선발 자료로 쓰인다. 본사 임원들이 면접을 하고 합격자를 가린다.
박태상 중소기업은행 인사팀 과장은 “어렵고 다양한 과정을 거쳐야 인재를 뽑을 수 있다”라며 “합숙 면접은 다른 기업에도 확산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교육을 마친 지원자들이 다른 사람들 모습을 통해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계기가 되고, 세상을 보는 시야도 넓어졌다며 만족해한다고 전했다. 이윤근 총무팀장도 “일류 대학을 나왔다고 성격이 좋고, 업무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요구하는 사람은 학벌이 좋은 것보다 잠재력이 있고 업무 적성이 맞는 사람이다”라며 필요한 사람을 뽑으려면 합숙 평가가 제격이라고 덧붙였다.
인성ㆍ적성 검사, 영어 회화 평가 강화
 

기업의 인재 채용 방식이 바뀌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필기 시험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한 지식보다 종합적인 업무 능력과 사고력이 강조되면서 시험의 역할과 중요성이 줄어들고 있다. 행정 기관이나 한국전력 같은 공기업 등에서 필기시험을 보는 정도이다. 그 대신 인격과 직무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인·적성 검사가 도입되고 있다. 인·적성 검사는 응시자가 ‘지식’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것이 아니다. 일을 얼마나 잘해낼 수 있는지 ‘능력’을 평가한다. 삼성화재의 경우 시험 성적보다 화재보험회사에 들어와 얼마나 영업을 잘할 수 있을지를 평가한다. 외모에서 풍기는 됨됨이부터 상대방을 설득하고 조직을 관리하며 마케팅을 잘할 수 있는지 역량을 살피는 것이다.
정재훈 인크루트 홍보팀 대리는 “공부 잘하는 사람이 일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취지에서 필기시험이 사라지고 있다. 학벌·학점·토익 등의 비중도 줄어들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취업 준비생들은 이런 흐름을 빨리 파악해 취업 전쟁에 뛰어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필기시험이 없는 대신 서류 심사, 인·적성 검사, 면접 전형 등 3단계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서류는 제한된 지면 안에서 자신을 최대한 잘 소개할 수 있어야 한다. 인·적성 검사는 업무 적성이나 인간성을 보는 것으로 학원을 다닌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면접은 이색 면접이 주류를 이룬다.
지난 3월 취업 포털 사이트 잡코리아가 100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채용 제도 변화를 조사했다. 여기서 응답자의 15%가 채용 방식을 바꿀 계획이라고 답했다. 면접 강화(81.8%), 영어 인터뷰 도입 또는 강화(27.3%), 인·적성 검사 도입 및 강화(18.2%), 토익·토플 점수 완화 또는 폐지(18.2%), 나이 제한 폐지(9.15)가 변화의 주된 내용이었다. 100대 기업의 70.4%가 ‘역량 면접’에 비중을 둔다는 얘기다. 78.9%가 대졸 신입 사원을 뽑을 때 인·적성 검사를 하고 60.6%가 영어 면접을 보고 있다. 한자 시험을 치르는 곳도 12.7%였다. 10곳 중 8개 회사(85.9%)는 나이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기업들은 FTA(자유무역협정) 타결로 우리 기업들의 국제 활동 무대가 넓어짐에 따라 영어 평가를 강화하고 있다. 인크루트가 대기업 1백30곳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33%가 영어 평가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 방법으로 94%가 영어 회화 능력 검증을 들었다. 유학생과 현지 채용 인원이 늘어날 전망이다.
지원자의 역량을 평가하는 방법은 회사마다 다르다. 한미약품은 일을 시켜보고 뽑는다. 구직자가 2~3일간 해당 팀장과 영업 현장을 돌면서 면접을 본다. 고객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실무 지식도 익히게 한다. 팀장은 지원자가 얼마나 성실한지, 대인 관계는 좋은지, 일에 열정이 있는지를 조목조목 평가한다. 한미약품은 이 과정에서 여러 명의 팀장이 병원, 약국 등을 다니며 응시자를 평가하는 방법을 쓴다. 평가 공정성과 객관성을 높인다는 뜻에서다.
 
토론·발표·스트레스 대처 등 ‘각사 각색’ 면접
현대자동차는 지원자 5~6명을 한 조로 편성해 한·미 FTA, 스크린쿼터 축소 문제와 같은 시사 문제를 주고 토론을 벌이게 한다. 면접관도 같은 수인 5~6명이 배치되어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는지, 상대방 의견을 잘 듣는지를 채점한다. 자기 주장을 제대로 말하면서 상대방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을 뽑겠다는 것이다. 포스코의 경우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발표력을 본다. 주제를 주고 1시간 동안 이에 대한 파워포인트 그래픽을 만들고, 약 10분 동안 발표하게 한다. 포스코에 입사하려면 주어진 주제에 대한 이해와 지식도 있어야 하지만 파워포인트를 다루고, 이를 발표하는 실력까지 갖추어야 한다.
CJ는 역량 평가가 힘들기로 유명하다. 응시자 1명에 2명의 면접관이 붙어 1시간 이상 질문을 던진다. 자신의 모든 것을 숨김없이 말하는 것이 좋다. 좋은 점만 말했다가는 꼬리가 잡힌다. 면접관 2명이 이것저것 물어보면 감출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을 터이다.
이같이 힘든 과정을 통해 응시자를 테스트하는 곳도 있지만 딱 떨어지는 답이 없는 질문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이른바 이색 면접이다. 스트레스 면접은 말 그대로 응시자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당황하게 만든다. “적성에 맞지 않을 것 같은데 왜 왔느냐?”라는 식의 질문이다. 시험을 보러 온 사람에게 적성에 맞지 않을 텐데 왜 왔느냐고 물으면 누구든지 황당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얼굴색이 바뀐다든지, 당황해하지 말아야 한다. 당혹스러운 모습을 감추고 여유 있게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고 싶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운동과 등산을 통해 사람을 평가하기도 한다. 함께 뛰고 산에 오르면서 팀워크와 주변 사람들 간의 유대 관계를 보는 것이 목적이다. 잘 어울리는 인상을 심어주어야 한다. 혼자만 빨리 간다든지, 개인기를 자랑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을 열심히 도와주는 모습이 감독관에게 감동을 준다. 리더십도 보여야 한다. 또 하나 술자리 면접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한다든지, 옆 사람과 시비를 벌이고, 한번 한 말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술을 먹어도 처신에 흐트러짐이 없다’라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 밖에 태평양은 음악을 들려준 뒤 감상문을 쓰도록 했다. SKC&C는 저녁 식사를 곁들인 장기 자랑을 통해 평가한 일이 있다. 또 한솔포럼은 난센스 퀴즈를 통해 창의력과 순발력을 테스트한 일이 있다. 이런 시험의 경향을 파악해 적절히 대처하는 것이 취업의 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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