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신권력자 ‘프리틴’세대
  • 명운화 (소설가) ()
  • 승인 2007.08.13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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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와 청소년 사이 연령층, 대중문화 쥐락펴락…스타 발굴·지원도 앞장

 
시사회와 충무로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심형래 감독의 신작 영화 <디워>가 흥행몰이에 성공하고 있다. 영화 및 대중문화 관계자들이 <디워>의 흥행 성공 요인을 분석하느라 분주한 가운데 <디워> 흥행 성공의 배경에 ‘프리틴(preteen)’ 세대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낀 세대인 프리틴이 가족을 동원해 영화를 보게 만드는 ‘빅 마우스’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리틴에 대해 아메리칸 헤리티지 사전 2000년판은 9세에서 12세 사이의 어린이, 전 청소년기(preadolescent)라고 해석하고 있으며, 웹스터 사전 1997년판은 10세에서 13세 사이의 소년 소녀를 지칭한다고 풀이했다. 연령대 범위는 다소 다르게 규정되지만 영어권에서 프리틴은 이렇게 일상 용어로 정착했을 만큼 ‘어린이(children)’도 ‘청소년(adole-scents)’도 아닌 중간 지대의 나이, 그런 정체성을 갖고 있는 세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2~3년 전에도 프리틴은 무시할 수 없는 소비 세력으로 등장해 주목된 적이 있었다. 특히 LG경제연구소는 집중적으로 프리틴 세대를 분석해 <리틀 파워 프리틴을 잡아라>라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지금도 소비 주체로서 프리틴 세대의 역할은 상당하다. 하지만 지금은 소비 주체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의 주체 세력으로서 프리틴 세대가 급부상하고 있다. 이처럼 프리틴이 대중문화의 새로운 세력으로 자리 잡은 데는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시대라는 시대적 배경이 작용했다.
프리틴은 언어와 글을 먼저 익히기 전에 컴퓨터와 친숙해진 세대이다. 20~30대처럼 성장한 뒤 인터넷을 배운 세대와는 달리 프리틴은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인터넷을 접했다. 언어와 걸음마를 배우기 이전에 인터넷을 배운 것이다. 이 때문에 그들은 태생적으로 어느 세대보다도 인터넷과 친한 디지털 세대라고 할 수 있다.

게임 업체들, 방학 맞은 프리틴 잡기 전쟁
프리틴 세대가 인터넷에서 처음 접한 것은 게임이다. 게임은 지금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고 게임의 주 고객은 대부분 10대, 그 중에서도 프리틴 세대들이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 각 게임 업체들은 프리틴 세대를 자사의 게임 유저로 끌어들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여름방학은 게임계의 최대 수요층이라고 할 수 있는 10대들의 접속량이 급격히 늘어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여름방학은 게임 시장의 최대 성수기이다. 이때 게임 유저를 유치하지 못하면 1년 내내 고전할 수밖에 없다”라고 게임 업계 관계자가 말했다.
대다수 온라임 게임의 업데이트와 신작 발표도 여름방학 때 이루어진다. 수년간 개발해온 대작 MMORPG(다중접속 역할수행 게임) 비공개 테스트 일정이 공개되는가 하면 각종 이벤트가 열린다. NHN은 물론 네오위즈, 한빛소프트 등 게임 업체들이 새로운 게임을 선보이며 대대적 마케팅에 들어가는 것도 이 때이다. 올 여름 네오위즈는 10대를 끌어오기 위해 캐주얼 게임을 전면에 내세우고 대대적인 마케팅 행사에 돌입했다. ‘메이플스토리’와 ‘카트라이더’같은 캐주얼 인기 게임을 제작한 넥슨은 방학 때 동시 접속 20만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8월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넥슨의 ‘카트라이더’, 네오위즈게임즈의 ‘스페셜포스’ 등이 상용 서비스 3년 만에 누적 매출 1천억원대라는 신기록을 세우며 온라인 캐주얼 게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수 보아의 등장은 프리틴 세대에게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같은 나이 또래가 스타가 되어 혜성처럼 브라운관에 등장하자 ‘스타 되기’ 열풍이 전국을 휩쓸었고, 그 열기는 지금까지 식지 않고 있다. 프리틴 세대들의 스타 되기 열망은 곧 스타에 대한 과도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는 사이, 그들은 어느덧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스타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권력자가 되어버렸다.
인터넷은 시청자와 연출자의 쌍방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했다. 네티즌이라고 불리는 시청자들의 간섭이 잇따르면서 연출자들은 시청자의 의견을 무시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네티즌들의 의견이 오락 프로그램 또는 드라마의 내용 흐름은 물론 출연진의 행동 범위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때문에 각종 방송 프로그램 제작진과 출연진은 네티즌들의 반응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네티즌 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그룹이 프리틴 세대이다.

스타 안티 그룹 만드는 데도 가장 적극적

 
여기에서 더 나아가 프리틴 세대들은 자신들 사이에서 스스로 스타를 발굴해내기도 했다. 이른바 인터넷 얼짱 스타 출신이 그렇다. 박한별·구혜선 등이 바로 프리틴 세대들이 발굴해낸 스타라고 할 수 있다. 프리틴 세대는 스스로 팬클럽을 만들기도 하고 또 안티 클럽을 만들어 비호감 스타에 대해 대항하는 세력을 조장하는 데 가장 적극적인 세대이기도 하다.
프리틴 세대는 ‘501’이나 ‘동방신기’ 같은 그룹이 탄생하는 데 영향력을 미치는가 하면 절대적인 후원과 지지를 보내기도 했다. 최근 등장하는 그룹 ‘빅뱅’ 또한 프리틴 세대의 절대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활동하고 있다. 연예기획사들은 일찌감치 프리틴들의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깨닫고 있었다. 프리틴을 의식하고 만든 그룹 멤버들은 하나같이 프리틴들이 선호하는 외모를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초등정책 자문위원인 최기환 교사는 프리틴들이 대중문화에 끼치는 영향력에 대해 “프리틴들이 무조건 기성 스타들을 숭배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 자신이 스타를 만들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예전에는 TV·신문 등 올드 미디어들이 관행에 따라 스타를 만들어냈다고 한다면 지금은 프리틴들이 인터넷이라는 뉴미디어를 통해 스타의 운명을 결정한다. 또한 누구나 스타가 될 수 있다는 자신들만의 문화를 만들어낸 최초의 세대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프리틴 세대들은 주로 맞벌이 부모 밑에서 성장했으며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편이다. 맞벌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부모의 사랑으로부터 소외된 프리틴들의 허전함을 부모들은 아낌없는 물적 지원을 통해 보상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프리틴 세대는 신체의 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정서적으로 이성에 눈을 뜨는 시기이다. 또한 학습이나 외모 등에 목표치를 갖기 시작하면서 타인에게 열등감을 갖거나 좌절을 느끼는 시기이기도 하다. 프리틴 문제 전문가인 데브라 디종은 이런 심적 갈등이나 혼돈을 나타내는 프리틴의 말로 △꺼져버려(Just go away!)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아(Nobody likes me) △난 잘하는 게 아무 것도 없어(I’m not good at anything) △죽고 싶어(I want to die)를 꼽았다.
디종은 이런 태도를 보이는 프리틴에게 부모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가르쳐주고 확신시켜야 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존중’과 ‘자기애’라고 강조한다. 자기를 귀하게 여기는 자세를 갖는 것이 이 시기에 닥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프리틴 스스로 해결해나갈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아낌없는 투자를 한다. 하지만 어느 시대보다도 부모 자식 간 이해의 장벽이 높기도 하다. 세대 간 이해의 문제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각자의 기준과 위치를 고집하다 보면 의사 소통은 쉽지 않다. 서로 눈높이를 맞춘다면 세대 간의 차이는 물론 서로가 갖고 있는 문화 차이를 극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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