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휩쓰는 ‘도박 낚시’ 열풍
  • 노진섭 기자 ()
  • 승인 2007.08.2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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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에 경품 걸고 현장에서 환전…“낚시터판 <바다 이야기>”

 

전국 곳곳의 낚시터에서 사행성 도박이 판을 치고 있다. 지난 2월 ‘제2의 바다이야기’ 로 눈총을 받았던 실내낚시터에 대한 경찰의 대대적인 단속이 벌어졌다. 하지만 불과 6개월이 지난 요즘 단속망이 허술해진 틈을 타 실내에서 불던 도박 열풍은 실외낚시터로 번져나가고 있다. 
낚시터에서는 수백만원어치의 경품을 내걸고 버젓이 현금을 주고받는가 하면 경품 당첨을 조작해가며 낚시꾼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사기 행위도 벌어지고 있다. 택시운전사가 대낮에 낚시터를 찾아 경품 낚시를 즐기고, 인근 주민들이 호기심에 낚싯대를 잡았다가 수백만원이 털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낚시터는 더 이상 여가를 즐기는 곳이 아니다. 돈 놓고 돈을 먹는 투전판으로 변질되어가고 있다.
지난 8월14일 오후 9시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ㅂ낚시터. 취재진과 동행한 낚시꾼 중 한 명이 금반지 꼬리표가 달린 물고기를 잡았다. 그 꼬리표를 관리소 직원에게 주고 그 자리에서 현금으로 받았다. 금반지 꼬리표를 반납하고 받은 돈은 3만5천원. 최근 금 1.8g(반돈)에 해당하는 약 3만7천원에서 할인(속칭 와리깡)을 한 금액이다. 이 낚시꾼은 3시간 만에 낚시터 입장료 1만5천원을 제하고도 2만원을 벌었다. 낚시꾼 민 아무개씨(32)는 “낚시도 하고 운이 좋으면 돈도 벌 수 있기 때문에 경품 낚시터를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경품 낚시터에서 한 달에 수백만원을 챙기는 사람도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비가 오락가락했던 이날 이 낚시터 주차장에는 차들이 가득했다. 이 낚시터는 1주일 내내 경품 이벤트가 열리기 때문에 평일에도 수십명의 낚시꾼이 몰려든다. 주말에는 주차할 공간은 물론이고 낚시할 자리도 없어 몇시간씩 차례를 기다려야 할 정도라고 한다. 이날 경품은 1.8g짜리 금반지 20개. 약 75만원 상당이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에는 특별 경품 이벤트가 열린다. 금으로 만든 이른바 ‘행운의 황금열쇠’가 추가 경품으로 나온다. 낚시터 관리소에는 금 18.7g(5돈), 11.2g(3돈), 7.5g(2돈)짜리 황금열쇠를 경품으로 내놓았다는 안내문까지 붙어 있다. 1백50만원 상당이다. 이 낚시터는 한 달 동안 2천4백만원어치 경품을 내걸고 낚시꾼들을 유혹하고 있다.

 
사행성 도박이 이루어지는 낚시터에서 경품 이벤트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복표’방식과 ‘최대어’방식이다. 복표 방식은 물고기에 달린 꼬리표(속칭 딱지)에 따라 경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경품마다 숫자를 붙인다. 그 숫자가 적힌 꼬리표를 물고기 꼬리나 지느러미에 달아 낚시터에 풀어놓는다. 예를 들어 황금열쇠 18.7g짜리 경품이 1번이라면 1번 꼬리표가 달린 물고기를 잡은 낚시꾼이 그 경품을 받는다.
최대어 방식은 말 그대로 가장 큰 물고기를 잡은 낚시꾼에게 경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일부 낚시터는 이 두 가지 방식을 모두 활용해 낚시꾼을 유혹하기도 한다. 꼬리표가 달린 물고기를 잡지 못하면 큰 물고기를 잡아 경품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는 것이다. 경품이 아니라 아예 현금을 준다는 안내문을 붙인 낚시터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ㅎ낚시터에는 ‘1등 70만원, 2등 30만원, 3등 10만원’이라는 안내문을 걸어놓았다.
석 달 동안 5백만원 이상 날린 피해자도
경기도 하남시의 ㅂ낚시터 관리소 벽에는 경품을 받은 사람들의 휴대전화 번호가 빼곡히 적혀 있다. 누가, 언제, 어떤 경품을 받았는지를 소상히 전하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우선 속임수 없이 경품을 나눠준다고 홍보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당신도 경품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라며 낚시꾼들을 유혹하는 묵언의 메시지이다.
만일 그날 준비 한 경품 10개 중 2개가 주인을 찾지 못했을 경우는 더욱 좋은 유혹거리가 된다. 경품이 다음날로 넘어가 누적되기 때문이다.
 무허가, 불법 낚시터들의 경품과 현금 공세에 현혹되어 이벤트에 참가하는 낚시꾼 10명 가운데 보통 8명 정도는 돈을 잃고 2명 정도가 돈을 챙겨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다수 낚시터에서 꼬리표가 달린 물고기를 적게 풀어 잡을 확률을 낮춰놓거나 교묘히 물고기에게 스트레스를 줘 떡밥을 물지 않도록 하는 등 갖가지 수법을 쓰기 때문이다. 
최대어 방식을 택한 낚시터는 ‘몇 센티미터 이상의 붕어만 인정한다’라는 단서를 붙인다. 일단 특정 길이를 넘겨야 하므로 이보다 작은 물고기는 아무리 많이 잡아도 소용이 없다. 또 잉어나 향어는 경품 대상에서 제외된다. 경기도 과천시에 있는 ㅅ낚시터 주인은 “그런 낚시터에는 잉어와 향어가 붕어보다 훨씬 많다. 무엇보다 손맛이 좋아야 낚시꾼들이 다시 찾기 때문이다. 대신 경품을 잡을 수 있는 확률은 매우 낮다“라고 말했다.
또 복표 방식을 택한 낚시터는 꼬리표를 단 물고기가 잘 잡히지 않도록 ‘손’을 쓴다.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ㄷ낚시터 주인은 “꼬리표를 달 때 손으로 물고기를 세게 잡는다. 그러면 물고기가 스트레스를 받아 밥을 먹지 않고 잘 움직이지도 않는다. 또 수온을 차갑게 해서 물고기가 잘 활동하지 못하도록 하기도 한다. 꼬리표를 물고기 꼬리나 지느러미에 달 때 잘 떨어지도록 달기도 한다. 잘 떨어지므로 낚시꾼이 설사 그 물고기를 잡았다 하더라도 수면으로 끌려 올라오는 도중에 심한 몸부림 때문에 꼬리표가 쉽게 떨어진다”라고 말했다. 더구나 ‘00마리 물고기에 꼬리표가 붙어 있다’는 식의 낚시터 이벤트 안내는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 낚시꾼 ㅇ씨(41)는 “수많은 낚시터에 다녀봤지만 몇 마리에 꼬리표가 붙어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 낚시터의 말을 믿는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허가낚시터 단체 한국낚시업중앙회 권순국 회장은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경품을 내건 낚시터가 도박장 수준을 넘어 이제는 사기라는 비난까지 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 낚시터 주변에서는 피해를 입었다고 호소하는 낚시꾼들을 적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택시운전사 김 아무개씨(53)는 “경품 낚시에 맛을 들였다가 최근 3개월 동안 5백만원 이상을 날렸다. 택시 영업을 중단하고 3~4시간씩 낚시에 빠져 있다 보면 10만원 이상 잃는 것은 다반사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벌이 없이 집에서 돈을 타다가 탕진하는 바람에 부인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별거중이라고 했다.
 낚시 경력 10년째인 박 아무개씨(42)는 “주말과 휴일에는 물론 평일에도 퇴근 후 경품 낚시터를 찾고 있다. 마약에 빠진 것처럼 낚시를 하면서 한 달 평균 2백만원을 잃었다”라고 말했다.
 
경품 총액, 최고 2천만원까지
대다수 낚시터는 보통 주말과 휴일 주 2회 경품 이벤트를 하지만 최근에는 평일에도 경품을 걸어 사행 행위를 조장하고 있다. 1주일 내내 경품 이벤트를 벌이는 것이다.
경품 총액은 낚시터에 따라 최소 3백만원에서 2천만원까지 다양하다. 종류도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가전제품에서부터 금반지, 쌀, 고급 낚싯대 등까지 가지각색이다. 심지어 에쿠스 같은 고급 승용차나 다이아몬드를 경품으로 내건 낚시터도 있다고 한다. 경품 이벤트 내용은 낚시꾼들에게 휴대전화 문자로 전달된다. 다이아몬드를 경품으로 걸었다는 낚시터로부터 받은 문자메시지를 취재진에게 보여준 낚시꾼 ㄴ씨(41)는 “말이 경품이지 모든 거래는 사실상 돈으로 한다”라고 말했다.
지난 8월13일 경기도 용인의 ㅇ낚시터는 20만원짜리 꼬리표를 단 물고기 다섯 마리를 풀어놓고 경품 이벤트를 시작했다. 낚시터측은 “한 사람에게 1백만원을 몰아주자”라며 “꼬리표가 달린 물고기를 먼저 잡는 사람에게 1백만원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30여 명의 낚시꾼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낚싯대를 던졌다. 이 중 맨 먼저 꼬리표 물고기를 잡은 사람에게 1백만원이 주어졌다.
낚시터가 물고기를 잡는 곳이 아니라 도박장으로 퇴색되면서 잡은 물고기를 가져가지 못하게 하는 곳도 있다. 속칭 ‘손맛터’라고 불리는 이런 낚시터에서는 낚시꾼이 물고기를 잡는 순간 낚싯대로 전해지는 손맛만 느끼고, 잡은 물고기는 도로 놓아주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 있다. 손맛터의 입장료는 보통 12시간에 2만5천~3만원하는 일반 낚시터보다 1만원 정도 싸다. 그러나 경품 이벤트가 시작되면 낚시꾼들은 경품 이벤트 참가비를 따로 내야 한다.
지난 8월15일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ㅌ낚시터. 오전·오후로 나누어 각각 1시간30분씩 모두 3시간 동안 40cm 이상의 물고기를 잡으면 현금으로 20만원을 주는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이 행사에 참가하려면 매 시간마다 참가비 5만원을 추가로 낸다. 한 사람이 세 시간 낚시를 할 경우 15만원을 내는 셈이다. 100명만 참가해도 1천5백만원이 낚시터 수입으로 잡힌다.
 낚시터는 허가 낚시터와 무허가 낚시터로 나뉜다. 경품 이벤트 등 사행성을 조장하는 낚시터는 대부분 무허가이다. 양어장으로 신고한 후 낚시터로 둔갑시켜 운영하는 곳이다. 낚시터를 운영하려면 개발부담금 등 세금을 내야 하고 제반 시설도 갖춰야 한다. 무허가 낚시터는 또 도심지와 가까운 그린벨트 등 개발제한구역에 주로 분포되어 있어 낚시꾼들의 접근이 용이하다.
한국낚시연합 김동현 회장은 “양어장을 낚시터로 둔갑시켜 영업을 하는 곳이 적지 않다. 여기에 실내낚시터까지 합하면 전국의 무허가 낚시터는 1천여 곳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낚시업중앙회에 따르면 무허가 낚시터는 6백여 곳. 이 중 절반 정도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전병수 중앙회 사무국장은 “경기도 고양시의 경우 54개 낚시터가 있는데 이 중에 단 한 곳만 빼고 모두 무허가 낚시터이다. 낚시터로 허가받으려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까지 세금을 내야 하지만 무허가 낚시터는 탈세까지 하며 영업하고 있다. 음식점과 휴게실 등으로 신고하고 낚시터를 운영하는 전국의 실내낚시터 3백여 곳은 모두 무허가 낚시터이다. 이런 실내낚시터까지 합하면 전국 낚시터의 3곳 중 2곳은 무허가에다 사행성까지 조장하는 불법 낚시터인 셈이다”라고 말했다.

 

 
"허가 낚시터 매출, 10문의 1로 줄었다"

 사행성을 조장하는 무허가 낚시터로 인해 낚시꾼도 피해를 보고 있지만 세금을 꼬박꼬박 내면서 건전하게 영업하는 허가 낚시터도 피해를 보고 있다. 경품을 걸지 않기 때문에 낚시꾼들의 발길이 끊어졌다. 한국낚시업중앙회 권순국 회장은 “무허가 낚시터 때문에 전국 6백여 개 허가 낚시터의 매출이 2~3년 전에 비해 10분의 1로 줄었다. 이 때문에 허가 낚시터들까지 경품을 걸어야 할 판이라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경품은 사행성을 조장하는 명백한 불법이다. 최소한 허가 낚시터가 무허가 낚시터 때문에 피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를 위해 시청 등을 쫓아다녔지만 단속의 손길은 여기까지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경찰서 생활질서계 소속 경찰관은 “양어장을 낚시터로 둔갑시켜 영업하는 행위도 불법이다. 게다가 경품까지 내걸고 하는 것은 사행행위등규제및처벌특례법에 따라 처벌할 수 있다. 지난 2월 상급 기관으로부터 무허가 낚시터 단속 지시를 받았다. 그러나 관내 다른 신고 건을 처리하느라 무허가 낚시터 단속을 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 “꼬리표가 달린 물고기를 증거물로 확보해야 하므로 단속에 어려움이 있다”라고 털어놓았다. 
 

 
낚시꾼들은 무엇보다 건전한 낚시 문화가 퇴색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낚시 동호회 ‘입큰붕어’ 회원 ㄱ씨(35)는 “건전하게 낚시를 즐기던 사람들도 점차 경품 맛에 길들여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경품을 내걸고 사행성을 조장하는 낚시터들은 일시적으로는 돈을 벌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낚시 문화를 해치게 된다”라고 말했다.  

‘상금 걸고 낚시 대회’는 유죄

상금을 걸고 낚시 대회를 열었다면 도박죄가 성립할까. 지난 3월 법원은 상금을 걸고 낚시 대회를 개최한 행위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는 첫 판결을 내렸다. 대구지법 형사 12단독 김연학 판사는 3월19일 상금을 걸고 낚시 대회를 연 혐의로 기소된 심아무개씨(50)에 대해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영리를 목적으로 낚시 대회를 열었고 실력보다는 단지 운에 따라 상금이 나눠진 만큼 도박 행위로 볼 수 있다”라고 밝혔다. 다만 “대회 참가가 도박 행위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여부는 기소된 사안이 아니므로 판단을 유보한다”라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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