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정책, 유신 시절로 돌아가는가
  • 반도헌 기자 ()
  • 승인 2007.09.03 15:1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부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에 반발 이어져…‘박정희 정권 언론 통제’ 답습 우려

 
정부의 취재 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에 언론계는 물론 정계·법조계·학계 등에서 거센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전국 신문·방송의 책임자들이 기자실 통폐합 조치의 강행을 성토하는 모임을 가졌는가 하면 각 정부 부처의 출입기자단도 이에 불응하겠다는 성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여기에 국회 차원의 반대 움직임이 잇따르고, 변호사, 교수 등 지식인 집단에서도 취재 지원 기준안의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 지금 같은 추세라면 과거 언론윤리위원회법 파동이나 조선동아투위사건, 언론노조운동 같은 언론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차원의 투쟁이 대대적으로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국회와 지식인 집단도 ‘철회’ 한목소리
노무현 대통령이 펼쳐온 언론과의 전쟁은  ‘취재 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이하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의 추진으로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노대통령은 보수 언론은 물론 진보 언론 그리고 신문·방송 가리지 않고 한국 언론 전체와 전선을 이루어 대척하고 있다. 그가 왜  임기 말인 데다 지지율까지 보잘것없는데 이런 무리수를 쓰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다만 위헌 시비와 반발 논리로 정국이 시끄러워진 탓에 항상 그의 주변을 떠도는 레임덕에 대한 우려는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과연 노무현 정권이 출범 초부터 외쳤던 언론 개혁과 작금의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을 같은 연장선장에서 볼 수 있는 것일까. 언론학자들은 “언론계의 현실을 전혀 감안하지 않고 졸속으로 밀어붙이는 절차상의 하자 때문에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라고 강조한다. 더구나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 자유를 총리 훈령으로 제한함으로써 위헌의 요소가 강한 만큼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고 한다. 이들은 임기 말 정권의 이러한 일방 통행 조처는 개혁이 아니라 자체의 잘못된 언론관과 통치 정략의 발로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정부가 지난 5월22일 발표한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은 각 중앙 정부 부처의 브리핑룸과 기사송고실을 정부중앙청사, 과천청사, 대전청사 등 3곳으로 통폐합하고 전자브리핑 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각종 언론단체와 기자단이 이에 반발하는 것은 당연했다. 취재를 제한해 결과적으로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하는 결과를 빚기 때문이다.
언론 단체와 기자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청와대는 6월17일 ‘언론인과의 대화’라는 주제로 주요 언론 단체(한국기자협회,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인터넷신문협회-한국인터넷기자협회연대회의) 대표와 토론회를 가졌고 이는 KBS를 통해 생중계되었다. 토론 후 수차례 협의 끝에 공무원의 취재 회피 방지를 위한 총리 훈령을 제정하고, 경찰·검찰 기자실을 개방형으로 전환하되 현행대로 유지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공동보도문을 마련했다. 하지만 기자협회가 반대하면서 공동보도문 발표는 무산되었다.
결국 청와대가 언론과의 합의 없이 통합 브리핑룸에 대한 공사를 강행하면서 청와대와 언론 간의 대립은 일촉즉발의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외교부를 시작으로 각 부처의 출입 기자들은 청와대의 조처에 반발하며 각각 항의 성명을 발표했다. 정치권의 반발도 거셌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차기 대선에서 집권에 성공할 경우 기자실을 원상 회복시키고 국정홍보처를 폐지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여당인 대통합민주신당에서도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에 대한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지난 8월28일 민주신당의 김효석 원내대표는 기자실 통폐합 조처를 몰아붙이면 예비비 추가 사용에 대한 중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을 추진하면서 기자협회와 상의할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

 
언론과 정치권 이외에도 지난 8월27일 대한변호사협회(이하 변협)와 국제언론인협회(IPI)가 반대 성명을 냈다. 변협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은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을 우려한다”라는 내용의 결의문을 발표했고, 국제언론인협회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언론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할 것을 우려한다’라는 공개 서한을 보내면서 ‘취재 봉쇄’를 철회하지 않으면 한국을 감시 대상국으로 재지정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으로 촉발된 최근 정부와 언론 관계는 제3공화국 시절 ‘언론윤리위원회법’의 제정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언론과 대립했던 때와 너무나 흡사하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당시 모든 기자실에서 기자들을 내쫓고, 보도와 취재를 제한하는 조처를 내리면서 언론의 권리보다 책임을 강조하는 언론윤리위원회법을 발표했다.
이 법은 1964년 6·3학생운동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이를 지지한 언론들에 불만을 가진 박정희 대통령이 언론 통제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6·3학생운동은 굴욕적인 한·일회담과 권위적인 통치에 항거해 학생과 시민이 시위에 나선 사건이다. 시위가 거세지자 박정희 정권은 6월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시위에 가담한 학생·언론인·교수 등을 무더기로 구속했다. 이 과정에서 언론은 학생과 시민의 편에 섰다. 또한 4월7일 신문의 날에는 언론인들이 “신문의 독립은 자유 사회의 생명이며 신문의 독립 없이 민주주의는 성립되지 않는다”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박정권의 ‘언론윤리위원회법’ 사태와 닮아
이런 언론의 움직임은 국가의 발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박정희의 이념과 배치되는 것이었다. 박정희는 모든 언론은 국가 이익과 국가의 목표에 이바지해야 하며 이럴 경우 국가가 무한히 발전할 수 있다는 언론관을 가지고 있었다.
6·3학생운동에 대한 조처로 학생 시위와 언론을 규제하는 학원보장법과 언론윤리위원회법을 입안해 8월2일 국회에서 여당 단독으로 처리했다.
언론 단체들은 이에 즉각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기자들은 언론 자유 투쟁을 위한 단결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8월17일 신문·통신·방송 등 19개 언론사들의 기자들이 참여한 한국기자협회를 결성했다. 기자들이 단결하자 박정희 정권은 언론사 사주들을 협박하고 회유했다. 그 결과 동아일보·조선일보 등 4개 사를 제외한 언론사들은 언론사 사주로 이루어진 언론윤리위원회법 투쟁위원회에서 탈퇴했다. 탈퇴하지 않은 4개 사에 대한 탄압은 더욱 심해졌지만, 언론탄압에 대한 반발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전국의 양심 단체들이 언론의 편을 들어주었고, 국제신문인협회(IPI)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언론윤리위원회법의 재고를 요청하는 전문을 보내기도 했다.
결국 이 사태는 9월8일 언론계 대표들과 박정희 대통령이 유성에서 회담을 갖고 언론윤리위원회법을 유보하는 쪽으로 합의하면서 일단락되었다.
언론윤리위원회법은 제1조에 ‘신문·방송 등 언론의 자율적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 언론윤리위원회와 언론윤리심의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윤리위와 심의회를 두고 언론윤리 요강을 제정해 보도 내용을 심사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언론윤리 요강에는 국가의 안전 보장에 관한 사항, 국가 원수의 명예 존중에 관한 사항, 신문·방송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사항, 보도 논평의 공정성 보장에 관한 사항 등 총 9개 사항을 반드시 포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윤리위 구성은 언론인, 교육인, 종교인, 변호사, 경제인 등 총 9명으로 이루어지도록 했다.
언론윤리 요강 필수 사항에 국가의 안전 보장과 국가 원수의 명예 존중에 관한 내용이 첫 번째로 들어가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법에는 국가 발전이 언론 자유에 우선한다는 박정희의 언론관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대통령 개인의 언론관 관철시키는 것은 ‘탄압’

 
또 언론의 자율적 규제를 내세우고는 있지만 언론 통제를 위한 독소 조항을 가지고 있다. 제19조를 보면 심의회의 판정에 불복할 경우 발행인, 편집인, 방송국의 장에게 7년 이하의 징역형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말 그대로 말 안 듣는 언론사에는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겠다는 경고에 가까운 조항이다.
이처럼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으로 촉발된 이번 파동과 1964년의 언론윤리위원회법 사태의 진행 과정을 보면  닮은 부분이 많다.
두 경우 모두 발표되자마자 언론과 기자단의 즉각적인 반발에 부딪쳤다. 국제언론인협회가 반대 성명을 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1964년에는 언론사 사주들로 구성된 언론윤리위원회법 투쟁위원회와 이 사건을 계기로 기자들이 단합해 새롭게 발족한 한국기자협회를 중심으로 투쟁이 이루어졌다. 이번 사태의 경우 정부 방침에 반발하는 단체의 스펙트럼이 더욱 다양하다. 언론 단체와 학계는 물론이고, 변호사 협회, 각종 시민 단체 등이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정치권에서도 철저히 외면당하며 심지어는 여당인 대통합민주신당의 동의조차 구하지 못하고 있다.
노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 모두 자신만의 뚜렷한 언론관을 가지고 있고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무리한 시도를 했다는 점도 유사하다.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과 언론윤리위원회법은 모두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할 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언론윤리위원회법이 판정권과 처벌권을 갖고 있는 심의기구를 만들어서 강압적이고 직접적인 언론 통제를 실현하고자 했다면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은 정부의 정보 제공 창구를 단일화해 기자들의 접근권을 제한하는 방식을 취한다.
언론윤리위원회법은 유보되어 결국 사문화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언론사 사주의 항복을 받아낸 박 전 대통령의 승리로 평가받는다. 이 법의 폐지를 둘러싸고 벌어진 투쟁 과정에서 신문사가 정부의 음성적인 회유에 굴복한 형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통제와 지원이라는 당근과 채찍을 사용해서 언론을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결과적으로 언론윤리위원회법 사태는 한국 언론의 퇴보를 가져왔다.
노대통령은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에 언론계를 넘어서 각계각층이 반발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언론이 하나가 되어 투쟁하고 여당인 민주신당을 비롯한 정치권에서도 모두 반대를 하는 것은 한국 사회는 아직 국가 투명성이 낮고 정보 접근이 폐쇄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서 추진되는 이번 방안은 악용될 소지가 크다. 마냥 소모전으로 치닫는 언론과의 전쟁을 거두어들어야 할 필요성은 그래서 절실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