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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랜드’ 가는 길 시끌벅적 뒤죽박죽

지자체들 유치전 ‘과열’…정부는 뒤늦게야 “일정 연기”

왕성상 전문기자 ㅣ 승인 2007.09.03(Mon) 16: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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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자원부가 추진하고 있는 로봇랜드 사업에 각 지자체들이 사활을 건 경쟁을 하고 있다. 코엑스에서 열린 로봇 전시회(왼쪽). 20여 가지의 표정 변화가 가능한 로봇(오른쪽).

 
 
‘로봇랜드를 잡아라!’ 정부가 추진하는 로봇테마 파크를 끌어들이기 위한 지방자치단체들의 경쟁이 뜨겁다. 올 하반기 지자체의 최대 이슈로 사활을 걸다시피 하며 뛰고 있다. 지역 경제 활성화, 고용 창출, 첨단 산업 육성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이다.
산업자원부가 주관하는 이 사업은 2012년까지 첨단 로봇을 테마로 한 100만㎡ 크기의 복합 테마 공원을 만드는 대형 프로젝트이다. 추정 사업비는 약 3천억원. 로봇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공생을 통한 새 문화 공간으로 상설 전시관, 전용 경기장, 로봇 체험관 등의 시설이 들어선다. 우주 공학 분야의 미국 케네디 우주센터, 장난감 블록 선풍을 일으킨 덴마크의 레고랜드 같은 미래형 테마 파크로 로봇 분야로서는 세계 최초이다. 이는 세계 5위의 로봇 생산국으로서 선진국에서도 개발 초기 단계인 지능형 로봇을 중점 육성해 2013년에는 세계 3대 로봇 기술 강국이 되겠다는 청사진에서 비롯되었다.
로봇랜드 유치전에 뛰어든 지자체는 강원·광주·경기·경남·경북·대구·대전·부산·인천·전남 등 10곳.
유치 활동과 계획안을 보면 저마다 거창하다. ‘1가구 1로봇 갖기 운동’을 펼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유치 결의 대회를 열어 정부를 압박하는 지역도 있다. 또 금융권과 자금 조달 협약까지 맺고 특수 목적 회사를 세우는 등 무차별적 경쟁도 펼치고 있다. 일부 단체는 사업자로 선정된 것처럼 홍보에 열을 올리고 정계·재계·언론계 등의 연줄을 이용한 로비전도 펼치고 있다. 심지어는 로봇랜드 부지를 수십만 평 제시하거나 사업비를 8백억원에서 많게는 1조3천억원까지 투자하겠다는 곳까지 있어 눈길을 끈다. 향우회, 동창회와 재경 지역 출향 인사를 통한 줄잡기에 나서는 곳도 있다. 한마디로 점입가경이다.
경기도의 경우 지난 7월19일 고양시와 접전을 벌인 안산시를 예비 사업자로 정하고 피 말리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8월14일 로봇랜드 유치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한국수자원공사와 안산시 초지동 시화호 북쪽 간석지(33만2천㎡)의 로봇랜드 부지 조성 사업 양해 각서를 맺었다. 사업비는 약 1천3백억원, 사업 기간은 2008년 말까지이다. 이어 8월17일에는 안산시 로봇랜드 유치 범시민추진위원회가 ‘1가구 1로봇 갖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시작했다. 추진위는 로봇랜드 유치를 기원하는 범시민 서명 운동을 벌여 1주일 만에 24만명의 참여를 끌어내기도 했다.
대전시는 첨단산업진흥재단 로봇사업단을 두어 유치전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 대전은 충청권의 중심지로 최근 충남·북과 함께 ‘충청권 경제 협의체’를 발족하고 로봇랜드 유치를 성공시키기로 했다. 또 연고 기업을 통한 유치 압박 작전도 펼치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 8월23일 로봇랜드 대전 유치를 기원하는 범시민 서명 운동을 벌여 2만5천명의 지지를 받았다. 8월1일부터 충남·북 신한금융그룹 직원들이 3주일 만에 얻어낸 성과이다. 서명자 명단은 대전시에 전달되었다. 한라공조도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공장 라인의 99% 이상이 로봇화된 회사답게 로봇 대회를 운영 또는 후원해오고 있다.
인천시는 2012년까지 경제자유구역 청라지구에 로봇랜드를 세운다는 계획 아래 7천8백66억원의 투자 예산을 잡아놓고 있다. 올봄부터 유치전을 벌여왔던 인천시는 ‘지능형 로봇 산업 발전협의회’를 구성해 유치에 ‘올인’ 하고 있다. 프레젠테이션 시연회, ‘2009년 세계 로봇축구 대회’ ‘대한민국 로봇 대전’ 등 유리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행사 개최에 힘쓰는 가운데 인천시의회도 동참을 선언했다.

정부 계획 넘어서는 ‘거품 사업안’ 속출

   
 
ⓒ연합뉴스
 

대전시 엑스포과학공원에서 열린 로봇랜드 대전 유치 기원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경상남도 역시 유치전에 적극적이다. 실무 추진 지자체는 마산시. 구산해양관광단지에 7천억원을 들여 로봇킹덤·에코로봇파크·로봇아일랜드 등을 만들기로 하고 전방위 작전에 들어갔다. 지역 국회의원은 물론 서울 및 수도권 유력 인사들에게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 유치전에 총대를 맨 황철곤 마산시장은 최근 서신을 통해 “주변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지원과 정보 제공을 요청한다”라고 강조했다. 경남도는 미래산업과를 중심으로 유치전에 온힘을 쏟고 있다. 전국 최고 수준의 로봇 부품 공급 업체들을 포함해 2백50개 관련 기업과 4만5천여 전문 종사자들을 내세우며 유치를 자신하고 있다. 특히 창원공단을 비롯해 로봇과 연결되는 조선·항공·자동차 산업체들이 고루 있다는 점도 빼놓지 않고 있다.
그밖에 강원·광주·경북·대구·부산·전남도 나름으로 차별화 전략을 짜며 포석에 여념이 없다. 전담팀 구성과 인력 동원은 기본이고 산자부·청와대·국회 등 로봇랜드 유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관·단체에 줄을 대고 있다. 다른 경쟁 지자체의 로봇랜드 조성 정보 수집은 첩보전을 방불케 한다.
이처럼 유치전이 과열되면서 생겨난 부작용들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정부와 지자체가 동상이몽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지자체들이 낸 사업안이 정부 계획 선을 넘어서고 지나친 의욕 제시로 실현성에 의문이 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자부 구상은 로봇 전시관과 전용 경기장·체험·유통 시설 정도이다. 또 유치 지역에 지원될 돈도 5백억원 선에 머문다. 그럼에도 지자체들은 지원액의 1.5~26배에 이르는 사업비를 쓰겠다고 해 앞뒤가 너무 맞지 않는다. 산자부 관계자는 “로봇랜드 크기를 과천 서울랜드 규모보다 크게 잡은 곳이 있을 만큼 지자체의 환상은 도를 넘었다”라고 꼬집었다.
사태가 이렇게 돌아가자 정부는 급기야 사업자 선정을 오는 10월로 늦추었다. 공정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이다. 산자부는 지난 4월30일 예비 사업자 선정 공고 이후 7월25일 접수 → 8월22일 사업 계획 발표회→8월 말 예비 사업자 선정 순으로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연기하게 된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지자체들의 지나친 유치 경쟁의 열기를 식히면서 잡음을 막아보자는 뜻이다. 로봇랜드를 평가하는 사람들이 지자체 사업에 많이 관여되어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지난 3월부터 일정대로 밀고 왔던 지자체들도 허탈해 하지만 정부 또한 연기에 따른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학계 관계자는 “지방마다 로봇랜드 유치로 자치단체장이나 해당 지역 출신 정치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지자체들이 로봇랜드에 대규모 민자·외자를 끌어들여 테마 파크나 로봇 산업 단지를 만들겠다고 밝히는 등 정부 안을 뛰어넘는 무리한 내용들을 제출했다”라고 말했다.
선정 확률이 10%인데도 지자체들이 왜 이처럼 무리수를 두는 것일까. 로봇랜드를 유치하면 로봇 산업과 시설이 몰려 엄청난 이득이 생길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는 잘못된 시각이다. 정부는 로봇 산업의 특성과 연계한 지역 협력 체제를 꾀한다는 방침이어서 로봇랜드 유치 지자체에만 관련된 모든 산업을 몰아주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지자체의 이해 부족은 곧 주무 부처의 설명 부족에서 비롯된다. 더욱이 과열 현상이 수개월 나타났음에도 8월 하순에야 ‘선정 연기’라는 미봉책을 내놓은 것도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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