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뿐인 인생 틀려도 신나게!
  • 김범석 (JES 기자) ()
  • 승인 2007.09.03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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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인생>

 
희망은 때에 따라 사람을 속이지만 용기는 사람을 거듭나게 한다. 이준익 감독의 음악 영화 3부작 중 두 번째로 내놓은 <즐거운 인생>(영화사 아침)은 거짓 희망 대신 용기를 갖고 살아가는, 코너에 몰린 네 남자의 ‘자아 찾기’ 영화이다. 급한 일과 중요한 일 사이에서 번번이 길을 잃는 현대인에게는 행복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내비게이션 같은 영화이다.
경제난과 가족 해체 위기에 직면한 주인공을 한데 엮어주는 공통분모는 바로 밴드. 교사 아내에게 용돈을 받아쓰는 백수 주인공을 비롯해, 남루한 삶을 살던 네 주인공은 음악을 통해 심장 박동 수가 빨라지고, 그래도 인생은 살아볼 만하다고 외친다. 냉혹한 세상은 현실대로 그리면서 인간에 대해서는 늘 따스한 온기를 견지하는 이준익 감독의 영화는, 그래서 축 처진 우리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위로를 건넨다.

냉혹한 현실 이겨내는 유쾌한 반란
구조 조정 한파로 은행에서 쫓겨난 기영(정진영)은 설명은 안 되어 있지만 정규 대학을 학점 관리까지 제법 했을 엘리트 출신이다. 그러나 회사에서 잘린 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별반 없다. 가족들 눈치 보며 내기 바둑 두는 것이 고작. 퇴직금까지 주식으로 왕창 날린 ‘잉여 인간’ 신세이다. 교사인 아내에게 하루에 만원씩 받아쓰며 늦잠형 인간이 돼 갈 무렵, 그룹사운드 보컬이었던 대학 동창의 부음 소식이 날아든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활화산’ 멤버들은 모두 수동태 같은 존재가 된 지 오래이다. 한때 혈기왕성했을 그들이지만 가족과 미래를 위해 자신과 오늘을 저당잡힌 채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아지고’ 있다. 성욱(김윤석)은 두 아들 과외비 때문에 밤낮으로 오토바이 택배와 대리운전을 뛰고, 기러기 아빠 혁수(김상호)는 “교수가 타던 차”라며 적당히 거짓말을 섞어 중고차를 팔면서 캐나다에 간 아내와 아들에게 송금하는 재미로 산다.

 
조금만 비굴하면 인생이 편해진다고 했지만 더 이상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에 신물이 난 이들은 “못해먹겠다. 우리 밴드하자”라며 의기투합하게 된다. 여기에 죽은 친구의 아들 현준(장근석)이 아버지에 이어 보컬로 합류하며 홍대 클럽까지 진출하게 된다. 생업과 취미가 뒤죽박죽되었지만 활화산은 다시 뜨거운 마그마를 뿜어내며 유쾌한 반란을 만끽한다. 외피만 보면 <즐거운 인생>은 돈 되는 일에 ‘역주행’하는, 철없는 네 남자의 밴드 이야기이다. 연습실에 감금당하다시피하며 각자 맡은 악기를 배웠다는 네 배우의 리얼한 연주 솜씨를 감상하는 것은 덤이다. <한동안 뜸했었지> <불놀이야> 같은 노래의 합주 장면을 보고 있으면 괜히 발에 박자가 실릴 만큼 신명 나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다.
하지만 <즐거운 인생>의 진짜 미덕은 한번뿐인 인생을 돈과 명예, 지위 쌓기에 허비하지 말자는 감독의 메아리에 있다.
영화를 본 뒤 귓가를 맴도는 대사가 많은 것도 <즐거운 인생>의 재미이다. 특히 활화산이 홍대 클럽에 데뷔하는 날, 무대를 먼저 장식하고 내려온 ‘트랜스픽션’의 한 멤버가 내뱉는 “틀려도 괜찮아. 아무도 몰라”도 그 중 하나이다. 그렇다. 틀리면 좀 어떤가. ‘완벽한 인생’보다 ‘즐거운 인생’이 더 낫지 않을까.
욕설이 안 나와 전체 관람가이며, 9월1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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