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에 꽂힌 운명 끝까지 가는 사랑
  • JES 김범석 기자 ()
  • 승인 2007.09.15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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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감독: 곽경택/ 주연: 주진모·박시연·김민준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준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도 평생. 과연 그것이 가능한 일이기나 할까. <친구>를 흥행시켰던 곽경택 감독이 이 화두를 들고 가을 관객의 마음을 훔친다. 자신의 일곱 번째 영화 <사랑>을 통해서이다.
단순 명료한 제목만큼 <사랑>은 러닝타임 내내 곁눈질하지 않고 쉼없이 달린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된 두 남녀가 갈등을 거쳐 어떻게 사랑을 완성하는지에만 관심을 보인다. 마치 완벽한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자질구레한 애착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 같은 정직한 연출이 돋보인다. 여기에 배우들의 열연이 더해져 알맞게 숙성한 와인 빛을 띤 영화가 빚어졌다.
가끔 <친구>가 겹쳐지는 지점이 있고 외양은 투박한 그릇에 담겼지만, <사랑>은 미세한 감정 변화와 떨림을 놓치지 않고 포착해 감정 이입을 돕는다.
<사랑>에는 하나같이 비운의 인물들이 나온다. 불우한 가정에서 자란 유도부 유망주 채인호(주진모)와 밀수 업자 아버지와 동반 자살한 어머니, 오빠를 둔 미주(박시연). 이런 인위적인 고아 캐릭터는 <친구> <챔피언> <태풍> 등을 연출한 곽경택 감독이 가장 애용하는 장치이다. 비극에서 잉태된 카타르시스를 최고조로 끌어올릴 수 있는 설정이기 때문이다.
인호는 전학 간 초등학교에서 미주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미주 때문에 뜻하지 않게 주먹질을 하게 되고, 생일에 유일하게 초대받은 인호. 그러나 공교롭게 그날 미주 집에는 빚쟁이들이 들이닥치고 미주는 자신이 그린 그림을 남기고 허겁지겁 사라져버린다. 두 사람이 재회한 것은 인호가 경부고 유도 선수가 되었을 때. 첫눈에 서로를 알아보고 가족을 잃은 미주에게 인호는 다짐하듯 “평생 지켜주겠다”라고 약속한다. 하지만 미주 때문에 살인 미수범이 된 인호는 철창에 갇히면서 또 한번 이별을 경험하게 된다.

<친구>의 장동건 넘어선 주진모 연기 돋보여
7년 후. 자신을 돌봐주는 회장의 경호원이 된 인호와 회장의 세컨드가 되어 운명적으로 다시 만난 두 사람. 이제 이들은 더 이상 뒷걸음질치지 않고 서로를 향한 진심을 확인하게 되지만 그들 앞에는 예상보다 험난한 난관이 드리워져 있다.
주진모·박시연의 연기는 노련한 감독의 연출 덕에 빛을 발한다. 특히 주진모는 <친구>의 장동건을 넘어섰다는 평을 들어도 손색없는 호연을 펼쳤다. 세상에 내동댕이쳐진 야수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헌신하는 캐릭터가 튀지 않도록 완급을 조절한 솜씨가 인상적이다. 자신이 모시는 회장의 세컨드가 된 미주를 보고 “지랄 같네, 사람 인연”이라며 혼자 울먹이는 주진모는 지금까지 보여준 연기 중 단연 으뜸이었다.
 박시연도 한 남자를 연모하지만 결코 곁에 둘 수 없는, 비극적인 인물을 잘 소화해냈다. 기대 이상의 열연은 김민준도 보여주었다. 그는 인호와 미주를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악역으로 나와 과거 자신의 연기 패턴과 단절했다. <타짜>의 아귀 김윤석에 버금가는 몰입이었다. 올해의 악역상이 있다면 수상이 유력할 정도의 열연이었다.
비장미를 담아내지 못한 결말과 의미 전달이 잘 안 되는 몇몇 사투리 대사가 흠이지만 <사랑>은 올해 나온 멜로 영화 중 손꼽힐 만한 수작임에는 틀림없다. 9월2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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