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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간 콩글리시 미국에서 생고생

한국어·영어 오남용 도 넘어서…외래어 표기법 실종

로스앤젤레스·진창욱 편집위원 ㅣ 승인 2007.10.08(Mon) 18:5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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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교민들이 영어를 한글로 제각각 표기하면서 혼란이 극에 달하고 있다. 위는 뉴욕 맨해튼의 한인 타운.
한글학자들이 바쁘게 되었다. 한국에서 쓰는 한글 외에 세계 각국의 교포들 사이에 변칙적으로 쓰여 따로 챙겨야 할 한글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또 해외에서 날이 갈수록 풀어내기 어려울 만큼 엉클어지고 있는 한글도 바로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의 한국인 유학생들은 새로 이름 붙인 한글을 쓰고 있다. 이른바 콩글리시이다. 한국어를 섞어 쓰는 영어이다.
지금까지 ‘콩글리시’ 하면  영어에 능숙하지 못한 한국인들이 쓰는 이상한 영어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억양은 물론 단어와 문법에서 전혀 매끄럽지 못해 콩글리시라고 지적받으면 낯을 붉히며 부끄러워 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한국에서 한국식으로 만든 영어 조어를 콩글리시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스포츠에서 ‘파이팅’이라고 하거나  컴퓨터에서 ‘채팅’이라고 하는 말은 한국 사람만이 알아듣는, 영어에서 변종된 한국어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따라 미국에 이주해 UCLA에서 공부하고 있는 유새라양은 “한국 유학생들이 사용하는 영어를 들으면 외국어인지 영어인지 알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영어와 한국어가 반반씩 뒤섞인 영어를 듣다보면 처음에는 어리둥절해지지만 자신도 어느새 쉽게 대화에 낄 수 있다”라고 말한다. 어려운 영어 단어나 숫자 등 영어 식으로 말하기 어려운 말은 한국어로 하고 어순은 영어 식으로 하는 형태이다.
경우에 따라 어순은 달라진다. 한인 2세나 한국어가 서툰 1.5세의 경우에는 영어식 어순을 쓰지만 유학생들의 모임에서는 한국어식 어순에 영어 단어가 끼어드는 식이다.
유학생 급증하면서 더 심각해져
UCLA 인류학과의 박계영 교수는 “콩글리시의 의미가 바뀌고 있다”라고 말했다. 콩글리시는 이제 어색한 영어가 아니라 한국어가 섞인 영어라는 설명이다. 콩글리시를 말하면서 예전처럼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도 커다란 변화이다. 또 최근 미국 유학생이 급증하면서 콩글리시 사용자도 증가하고 있어 단순하게 피전 잉글리시(외국인이 사용하는 서툰 영어)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을 정도이다.
이같은 양방향 콩글리시는 미국의 한인 언론에서도 이미 오래 전부터 관례처럼 사용되고 있다. 본사가 서울인 한국 신문들이 미주 법인 형식으로 미국에 진출해 로스앤젤레스에서 발행하고 있는 한인 신문들의 경우도 토박이 교포 신문에 비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정이 비슷하다. 기사 중에 영어를 한글 발음으로 표기하는 데서 나아가  기사 군데군데에 아예 영어를 그대로 쓰는 경우도 있다.
특히 신문 게재 광고의 경우 광고 문안의 절반 이상이 영어로 되어 있는 경우도 전체 광고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한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발행되는 중국계 신문보다 그 혼합 정도가 눈에 띄게 현저하다.
특히 지명을 많이 사용하는 부동산 광고의 경우 주소는 영어로 표기되는 경우가 많고  비즈니스 용어도 한글로 씌어져 있지만 발음은 영어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 대부분이다. 미주 한인 신문은 영어 발음 표기보다 한글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순수 한글신문이기는 이미 포기했다. 즉 읽는 콩글리시의 다른 사례인 셈이다.
그러나 한인 사회의 한국어식 영어나 영어식 한국어는 유학생 사회의 콩글리시나 미주 한인 언론의 콩글리시가  모두 두 손 들 정도로 극심하고 혼란스럽다.
유학생이나 미주 한인 언론의 콩글리시는 의사 소통에 문제가 없을 만큼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어 새로운 미주 교포 언론용 한글 문법을 따로 마련해야 할 정도로 자리를 잡았지만 한인 교포 사회의 콩글리시는 갈래를 잡을 수 없을 만큼 엉클어져 있어 문법으로 정리할 수 없는 상태이다.
언어 연수차 로스앤젤레스에 체류 중인 딸 오윤경양을 보러 온 어머니 김 아무개씨는  버몬트가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버몬트가를 북쪽에서 남쪽으로 자동차로 이동하면서 주소를 찾던  김씨는 한 블록을 지날 때마다 동네 이름이 바뀌는 통에 길을 잃어버렸다고 착각했다. 처음 본 한인가게 상호가 ‘벌몬’으로 되어 있었는데 다음 블록에서는 ‘벌먼’으로 바뀌었고 그 다음에는 ‘버몬’으로 쓰여 있었다. 김씨는 길이 바뀌고 블록이 바뀌면서 이웃 동네가 서로 비슷한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것으로 여기고 길을 잘못 든 줄 알았다. 로스앤젤레스 한인 사회에서 버몬트의 다른 한글 표기는 모두 다섯 가지이다.
로스앤젤레스 동부에 위치한 롤런드하이츠는 한인 사회의 서로 다른 한글 표기가 무려 12가지나 된다. 한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지역 38군데의 한글 표기가 모두 1백40가지나 된다는 사실은 한인 사회의 지명 표기가 문법적 일관성이나 규칙성을 완전히 상실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한국 정부가 외국어의 한글 표기를 규정한 외래어 표기법이 미주 한인 사회에서 적용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명뿐만 아니라 사람 이름도 각양각색이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영어 이름 리처드의 경우 리처드, 리차드, 릿처드 등 여러 가지로 쓰이고 있다.  찰스를 ‘촬스’라고 고집하는 사람도 있다.
한인촌 지역 38군데 한글 표기만 140가지
뉴욕 주립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은퇴해 로스앤젤레스 남쪽 어바인에 정착한 민병휘 박사(정치학)는 한인들이 어바인을 모두 얼바인으로 말하는 데 아연했다. 미국에서 40여 년을 산 자신의 귀로는 결코 얼바인으로 들리지 않는데 한인들이 얼바인으로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자주 만나는 한인에게 왜 얼바인이라고 하느냐고 묻자 대답은 ‘어’ 다음에 ‘r’자가 있어서 ‘ㄹ’ 발음을 한다는 것이다.
민교수는 그렇다면 전 미국 대통령 카터는 왜 칼터라고 부르지 않고, 주차를 의미하는 파킹은 왜 팔킹으로 하지 않느냐고  되물었지만 대답은 역시 ‘얼바인’이라는 것이었다. 얼바인은 한인 사회에서 어바인과 함께 공공연히 병행 사용되는 표기이다.
로스앤젤레스 한인 타운의 상호 간판 수는 약 4천개에 달한다. 이들 중 다수가 영어식 지명이나 인명을 사용하면서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지 않아  인터넷 검색에서 원천적으로 제외되는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표기법의 혼란은 이제 한인 사회에서 비즈니스의 장애가 되고 있을 정도이다.
주 로스앤젤레스 총영사관에서 근무했던 한 외교관은 한인사회에 만연한 표기법의 혼란을 “한글이 미국과 한국의 법 적용 사각 지대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한국의 법률이나 외래어 표기법 같은 규정이 미국의 한인 사회에서 강제력을 발휘할 수 없는 반면 미국 정부도 한인 사회가 한글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어 한국이나 미국 어느 쪽으로부터도 통제나 지도를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김종률 주 로스앤젤레스 문화원 원장은 “외래어 표기법은 한국에서 한글을 사용하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것이어서 이를 해외 동포 사회에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한인 사회의 언어 문제는 한인 교포 언론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김원장은 자신이 부임한  후 지난 1년 반 동안  “한인 사회의 올바른 한글 사용을 위한 한국 정부 차원의 활동을 한 기억이 없다. 내년도 한국 정부 사업으로 로스앤젤레스 내 2개 한인 신문들과 이 문제를 헙조하는 방안을 찾아보겠다”라고 말했다.
주 로스앤젤레스 총영사관은 로스앤젤레스 교육관을 운영하면서 한글을 깨우치지 못한 한인 2세나 미국인을 상대로 한글 보급 교육을 계속하고 있으나 한인들의 한글 바로 쓰기 운동은 전혀 손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으로 이민간 한국어와 한글은 고아 신세나 다름없다. 버려지다시피 한 미주의 한글에 한글 학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되었다. 또 한인 유학생 사이에 확산되고 있는 새로운 콩글리시가 언어학적으로 바람직한지 여부에도 학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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