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영화 두 색깔’ 맛이 확 다르네
  • 김종철 (익스트림무비 편집장) ()
  • 승인 2007.10.22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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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다시 만든 ‘감독판’ 인기…<블레이드 러너> <시네마 천국> 등 명작 수두룩

 
지난 9월1일 제64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파이널 컷>이 처음 공개되었다. SF 영화 역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정평이 나 있는 만큼, 수많은 영화 팬들이 지대한 관심을 표시했다. 이날 공개 현장에는 리들리 스콧 감독과 룻거 하우어, 에드워드 제임스 올모스, 다릴 한나 등 주요 출연진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빛의 속도처럼 빠르게 진행하는 트렌드 시대를 살아가는 현재, 25년 전에 만든 구닥다리 SF 영화 <블레이드 러너>가 여전히 영화제의 화제가 되는 것은 어떤 연유에서인가? 영화광들이 가장 선호하는‘디렉터스 컷’이기 때문이다. 이날 공개된 <블레이드 러너:파이널 컷>에 대해 리들리 스콧 감독은 “1982년 개봉 당시 내가 목표로 했던 것은 ‘필립 말로우’가 등장하는 필름 느와르 영화였다. 하지만 개봉 전에 가진 시사회에서 평이 좋지 않아, 스튜디오가 원하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음울한 엔딩을 해피엔딩으로 바꾸었고, 주연 배우인 해리슨 포드의 영웅성을 부각시켜야만 했다”라며 지난날을 회고했다. 덧붙여 “이번 파이널 컷이야말로 진정한 감독판”이라며 작품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피력했다. 오는 12월 국내 DVD 타이틀로도 발매될 예정인 <블레이드 러너:파이널 컷>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자신감처럼 그 자신이 가장 원했던 진정한 감독판의 의미를 실현한 버전이다.
그런데 같은 영화를 두고 왜 극장판과 감독판이 별도로 나오게 되었을까? 영화는 흔히 감독의 예술로 불린다. 누구나 알고 있는 영화에 대한 상식이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막대한 제작비와 홍보비가 투입되는 냉혹한 영화 비즈니스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완성도도 좋지만 흥행 성공이 그 무엇보다 우선시된다. 결국 한 편의 영화를 가지고 제작사와 감독 간에 의견 충돌과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윤 추구가 최대의 목적인 제작사와 아이를 낳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영화를 만드는 연출자의 견해 차이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결국 극장에서 관객과 만나게 되는 최종적인 결과물이 종종 감독의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개봉되는 경우가 많다. 감독판의 탄생은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다.
여기에는 홈비디오 시장의 성장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영화 관객이 만나는 대부분의 감독판은 비디오와 LD, 그리고 DVD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감독 스스로가 원래 의도했던 대로 영화를 재편집해서 내놓기도 하고, 혹은 감독판에 대한 영화 팬들의 선호도를 교묘하게 이용해 돈을 벌기 위해 감독판이 악용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극장 수익을 압도하는 DVD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에 힘입어 더 많은 감독판들이 쏟아져나왔고, 영화 제작 초기 단계부터 감독판을 감안한 촬영이 이루어질 만큼 좀더 유연한 선택이 가능해졌다.
최근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 가운데 <나비효과>가 대표적이다. 이 영화는 엔딩이 주는 느낌이 버전별로 완전히 정반대인데, 제작사가 원한 해피엔딩과 감독이 원래 의도했던 어두운 엔딩이 같이 공개되어 이목을 끌기도 했다. 감독판 탄생의 또 다른 배경으로는 흥행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등급을 맞추기 위해 개봉 당시에는 타협을 했다가, 훗날 비디오나 LD, DVD로 다시 내면서 원래의 버전으로 복귀를 하는 경우도 있다. 감독판의 이면에는 적지 않은 상업성이 개입되고 있지만, 영화 관객 입장에서는 감독판이 주는 유혹을 떨쳐 버리기가 쉽지 않다. 이유야 어떻게 되었든 감독판이야말로 원래 영화가 의도했던 바를 가장 충실하게 담았기 때문이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적은 예산으로 다시 한번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고, 감독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타협으로 만신창이가 된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다. 관객은 오리지널에 충실한 영화를 보면서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원래의 의미를 읽을 수가 있다. 감독판의 매력은 영화가 만들어지고 홈비디오 시장이 존재하는 한 계속될 것이다. 영화 역사에서 논란의 대상이었던 대표적인 감독들과 그들의 오랜 염원이 현실로 이루어진 주옥같은 감독판의 세계로 떠나보자.

 

 

최초 개봉 버전과 감독판 느낌 차이 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손꼽히는 <시네마 천국>. 극장가에서는 드물게 1시간의 분량이 추가 편집된 ‘감독판’이 재개봉되면서 영화 팬들의 이목을 끌었다. <시네마 천국>의 감독판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에피소드가 추가되었고, 감독판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일반인들에게도 꽤 화제가 되었다. 개봉 후 이전 극장 버전이 더 좋다거나, 훨씬 풍성해진 드라마로 영화에 대한 감동과 여운이 한층 더 강해졌다는 의견들이 분분했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감독판은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과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가 대표적이며, 테리 길리엄의 <브라질>도 빠질 수 없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는 감독판을 통해서 불멸의 걸작으로 올라선 대표적인 경우이다. 역시 개봉 당시 제작사와의 갈등과 의견 충돌이 많았던 만큼, 최초 개봉 버전과 감독판이 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블레이드 러너>의 최초 감독판은 1992년 팬들의 열성적인 요구에 의해서 재개봉되었고 영화에 대한 평가까지 달라졌다. 그러나 이 역시도 리들리 스콧 감독이 원하는 완벽한 감독판은 아니었다고. 결국 그는 <블레이드 러너:파이널 컷>을 마무리하기 위해 몇몇 장면들의 재촬영까지 강행하면서 최종 버전으로 완성을 보았다. 이를 위해 극중 레플리컨트 ‘조라’를 연기했던 조안나 캐시디는 당시 입었던 의상을 그대로 입고 재촬영에 임했다는 사연을 자신의 공식 사이트를 통해 발표해 화제를 뿌렸다. <블레이드 러너>의 극장 버전과 감독판의 차이는 대단히 흥미롭다. 우선 일반적인 감독판과 달리 이 경우 오히려 영화의 러닝타임이 줄어들면서 몰입도를 높였다. 감독판에서 변화가 된 것은 데커드(해리슨 포드)의 내레이션과 극장 개봉 당시의 해피엔딩(엔딩에서 두 사람은 도망치고 해리슨 포드의 내레이션이 깔린다)을 들어내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또 데커드의 꿈에 나오는 유니콘의 등장, 그리고 감독판을 통해 데커드(해리슨 포드)가 레플리컨트(복제 인간)일 수 있다는 암시를 줌으로써 강렬한 임팩트를 남기며 팬들의 열광적인 토론의 장을 마련했다. 1992년에 공개된 감독판에 대해서 리들리 스콧은 공식적으로 ‘진정한 감독판’이 아님을 강조했고, 이번 <블레이드 러너:파이널 컷>을 통해 숙원을 풀었다. 평소 완벽주의자로 알려져 있는 리들리 스콧은 <킹덤 오브 헤븐>으로 다시 한번 감독판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어정쩡한 드라마로 실망감을 준 극장판에서 <킹덤 오브 헤븐> 감독판은 50여 분이 추가된 1백94분의 대작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본 편에 추가된 장면들은 영화의 느낌을 완벽하게 변화시켰다. 특히 올랜도 블롬이 연기한 발리안 캐릭터에 관한 많은 설명과 그의 심리적 상태와 변화들을 세심하게 다루면서 풍부한 드라마를 획득했다. <킹덤 오브 헤븐-감독판>은 최근 몇 년 사이 나온 모든 감독판들을 압도하는 성과물로 찬사를 이끌어냈다. 리들리 스콧과 같은 명성 있는 감독이 아니면 해낼 수 없는 모험이기도 하다.
<블레이드 러너>와 함께 SF 영화의 걸작으로 널리 사랑받는 <브라질>도 감독판으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작품이다. 정보가 통제된 20세기의 어느 국가를 배경으로 디스토피아적인 사회를 그려낸 묵직한 영화였지만, 극장 개봉에서는 테리 길리엄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물로 관객과 만남을 가졌다. 테리 길리엄의 오리지널 버전은 절망적인 결말이지만, 제작사에서 ‘지나치게 길고 영화가 어둡다’는 이유로 대중들의 기호에 맞추기 위해서 제멋대로 편집을 하고 심지어 테리에게 마지막 장면을 삭제하라는 요구를 했다. 결국 <브라질>의 극장 버전은 샘과 질이 시골로 도망치고 그곳에서 정착한다는 낯 간지러운 결말로 테리 길리엄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원래 <브라질>의 러닝타임은 1백42분이었고, 제작사인 유니버설의 간섭으로 나온 것이 94분이었으니 영화가 어떨지는 굳이 보지 않더라도 만신창이가 된 모습이 짐작이 될 정도이다. 물론 테리 길리엄도 호락호락 당하지만은 않았다. 그는 1백42분짜리 <브라질>을 LA비평가협회로 보냈고, 그 결과 그해 최고의 영화로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브라질-감독판>은 크라이테리언 LD와 더불어 DVD로 발매되어 감독판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증명했다.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역작 <지옥의 묵시록>의 제작 과정은 그 자체가 하나의 치열한 전쟁으로 유명하다. <지옥의 묵시록>의 경우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디렉터스 컷’이 아닌 원래로 돌아간다는 의미로 ‘리덕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감독이 의도한 대로 영화를 구성한다는 측면에서 디렉터스 컷과 동일하기 때문에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는 영화의 재구성에서 감독판으로 받아들여진다. 2000년 봄부터 시작해 20년을 묵혀놓은 창고에서 필름까지 끄집어내면서 대대적인 재편집을 거치고, 새롭게 추가된 49분의 추가 장면으로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는 탄생했다. 코폴라 감독의 광기에 가까운 집착으로 만들어진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는 많은 시간 공을 들인 만큼 영화에 대한 느낌을 변화시켰다. 대체적으로 리덕스는 오리지널에서 관객을 짓누르는 듯한 무게와 광기가 강했던 것을 좀더 유연하게 풀어놓았다. 윌라드(마틴 신) 대령이 초계정을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에서 많은 장면들이 추가되었고, 이를 통해 그동안 소극적이던 윌라드 대령의 성격이 적극적으로 변화되었다. 전반적으로 리덕스는 유머와 여유가 생겨났고, 가장 큰 성과물로는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던 3개의 시퀀스를 복원한 것이다. <플레이보이> 모델들이 나오는 헬리콥터 장면이 영화를 지나치게 늘어지게 한다는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코폴라 감독의 의지에 부합하는 프랑스 고무 농원에서의 장례식과 만찬 장면, 그리고 말론 브랜도의 추가 장면들은 눈길을 끈다.
감독판 논란 가운데 최근 가장 이슈가 된 것으로는 26년 만에 복원이 된 리차드 도너 감독의 <수퍼맨 2>가 으뜸이다. <수퍼맨 얼티밋에디션> DVD 타이틀에 수록된 이 감독판의 복원은 그 과정이 한 편의 영화처럼 드라마틱한 수준이다. 원래 1편과 2편을 동시에 촬영·제작했던 리차드 도너의     <수퍼맨>은 1편이 완성되기 전에 이미 2편의 75% 분량의 촬영이 진행된 상태였다. 그러나 제작사와 감독의 의견 충돌은 심각할 정도의 수준이었고, 결정적으로 수퍼맨의 아버지 조엘을 연기한 말론 브랜도의 지나친 수익 요구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제작사에서는 리차드 도너의 의견을 묵살하고 말론 브랜도의 출연 분량을 삭제하고 결국 그를 강판시켰다. 뒤를 이어 리차드 레스터가 메가폰을 잡아 리차드 도너가 찍어 놓은 것과 새롭게 찍은 장면들을 재구성해 <수퍼맨 2>를 내놓았다. 새롭게 부활한 리차드 도너의 감독판은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 말론 브랜도의 비중이 커졌고, 그에 따라서 이야기 또한 변화했다. 엔딩 장면에서 백악관 뚜껑을 덮고 성조기를 꽂는 장면을 들어냈다. 흥미로운 대목은 지난해 개봉된 브라이언 싱어의 <수퍼맨 리턴즈>와의 연계성이다. 수퍼맨의 아들이 초인적 능력을 가지게 된 결정적 증거가 리차드 도너의 감독판에서 소개된다. 또한 초인적 능력을 상실한 후 다시금 수퍼맨의 능력을 되찾는 과정이 수록되었다. 리차드 레스터의 <수퍼맨 2>는 그에 대한 아무런 설명 없이 대충 넘어갔지만, 감독판은 팬들이 가지고 있던 의문을 완전하게 풀어주었다.

한국 영화 감독에게는 희망 사항

 그러면 한국에서 감독판은 현재 어디까지 와 있을까? 감독판은 외국 유명 감독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비교하기에는 쑥스러울 정도로 적은 수이지만, 국내에서도 DVD 시장이 형성되면서 간혹 감독판의 이름으로 발매되는 영화들이 있다. 허나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외국에서 감독판이 활성화될 수 있었던 것은 시쳇말로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감독 혼자서 감독판을 내고 싶다고 해도 그것을 소화할 수 있는 시장이 없으면 제작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감독판이라고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지만     <분홍신>의 경우 국내에서 좋은 사례로 남을 만한 시도이다. 이 작품은 극장 개봉에서 15세 등급을 맞추느라 잔혹한 장면의 일부를 삭제하고 개봉했었다. 그리고 DVD로 발매할 때 극장 버전과 함께 편집 과정에서 날아갔던 잔혹 장면들을 복원했고 전혀 다른 엔딩 장면으로 주목을 받았다. 특히 공포 영화 팬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은 경우이다. 외국의 경우 장르 영화에서는 흔해 빠진 일이지만, 한국 영화로서는 굉장히 이례적이다. 더욱이 말만 18세 버전이 아닌, 상당한 수위의 고어 장면(어린 아이가 지하철에 치여서 죽고, 발목을 절단하는 장면 등)들이 여과 없이 수록되어 극장 버전과의 확실한 차별화를 꾀했다. 충무로에서 만들어지는 영화의 상당수가 트렌드를 반영한 기획 영화들이기 때문에 애초 감독판이 나올 만한 여지도 없다. 감독판이 무조건 좋은 결과만 보여주지는 않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에 한해서 단 한 컷이라도 새로운 것을 보고 싶은 것이 한결같은 영화광의 마음이다. 고전도 좋고 최신 영화도 좋다. 한국 영화의 진정한 감독판 탄생을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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