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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무대 위에서 외치다

국내외 인기 작품 뮤지컬화 바람…“원작 이상의 감동 줘야 성공”

조용신 (공연 칼럼니스트 설앤컴퍼니 프로덕션 매니? ㅣ 승인 2007.10.29(Mon) 14:3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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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프라 윈프리가 동명의 영화를 각색 및 제작해 유명한 뮤지컬 <컬러 퍼플>.  
 
지난 10월21일 CJ문화재단이 주최한 ‘2007 CJ 뮤지컬 쇼케이스’에서 동명 영화를 각색한 <삼거리극장>(작사 전계수, 작곡 김동기)이 우수 작품상을 받았다. 상금은 2천만원. 이로써 지난해 11월 개봉되어 마니아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던   <삼거리극장>의 뮤지컬화 작업이 본격 시작되었다. <삼거리극장>은 개봉 당시부터 폐쇄된 극장 내부에서 밤마다 벌어지는 유령들의 잔치라는 설정 때문에 한국 영화 중 뮤지컬로 무대에 올려질 가능성이 가장 클 것으로 점쳐졌었다. 영화 자체가 뮤지컬 형식을 빌려 배우들이 춤추고 노래하며 이야기를 이끄는 형식이었다. 영화의 뮤지컬화 작업은 현대 대중 영화의 본류인 할리우드에서 시작되었다.
   
  위는 ‘2007 CJ 뮤지컬 쇼케이스’에서 우수 작품상을 받은 <삼거리극장>.  
 

허스키하고 감미로운 목소리를 가진 중년 팝 가수 닐 다이아몬드가 무명 작곡가로 열연하는 <재즈 싱어>(1980)라는 영화가 있다. 여기서 닐 다이아몬드는 흑인 밴드 멤버들과 어울리는 젊은 백인 유태인 역을 맡았는데 보수적인 유태인 전통을 고수하는 그의 아버지는 이러한 아들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사실 이 영화는 1927년 알 졸슨 주연의 같은 제목 영화의 리메이크 판이다. 원작에서 알 졸슨은 백인이면서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당시 흑인들의 장기 자랑 쇼 ‘민스트럴’을 연기하는 배우로 등장하고 그 아버지와의 갈등을 일으키는데 그 배경을 현대로 바꾼 것이다.

영화와 뮤지컬의 ‘계약 동거’ 역사
할리우드 영화 역사에서 최초의 유성 영화로 기록된 <재즈 싱어>는 최초의 뮤지컬 영화이기도 하다. 그동안 무대 뮤지컬과 영화는, 때로는 원작을 공유하고 때로는 상대방으로부터 새로운 버전을 만들어내는 등의 원만한 동거를 이루며 현재까지 이어져왔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전성기였던 1940~60년대만 해도 흥행에 성공한 거의 대다수의 무대 뮤지컬들은 몇 년 후 고스란히 영화로 만들어졌다. ‘영화 뮤지컬’은 ‘무대 뮤지컬’의 완결편의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극장보다는 영화관을 더 자주 가게 되면서 영화는 양적으로도 무대 뮤지컬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는 영화를 뮤지컬로 만들거나 뮤지컬을 영화로 만드는 시도가 번번이 실패하며 두 장르가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법. 198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이번에는 뮤지컬 제작자들이 이미 대중문화의 왕좌에 등극해 있는 영화를 무대 뮤지컬로 적극 각색하기 시작했다. 이는 비슷한 시기, 영국에서 출발해 전세계를 상대로 뮤지컬 열풍을 일으킨 이른바 ‘빅 4’(<오페라의 유령> <캣츠> <미스 사이공> <레미제라블>)와 같은 장기 흥행작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이었다. 장기 흥행작 몇 편이 주요 극장을 오랫동안 점유하고 있으면 다른 작곡가들과 제작자들의 처지에서는 신작 발표의 기회는 줄어들고 흥행에 대한 부담은 커지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이왕이면 이미 유명세를 확보한 영화를 원작으로 뮤지컬을 제작하는 것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빅 4’는 공통적으로 서사적인 구조에 인간의 존재에 대한 철학적인 물음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반면 좀더 가벼운 소재를 다룬 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은 코미디를 선호하는 고정 관객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대표작으로서는 <버드케이지>라는 제목으로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되기도 했던 프랑스·이탈리아 합작 영화 <새장 속의 광인들>(La Cage aux Folles). 1983년에 동명의 뮤지컬로 만들어져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또 비키 바움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그레타 가르보, 존 베리모어(배우 드류 베리모어의 할아버지), 조안 크로포드 등 명배우들이 출연했던 MGM 사의 동명 히트 영화를 다시 뮤지컬 버전으로 만든  <그랜드 호텔>(1989) 역시 1천회가 넘는 장기 흥행을 이루어냈다.

   
  디즈니 사는 자신이 판권을 가지고 있는 <메리 포핀스>(사진)를 무대에 올려 흥행에 성공했다.  
21세기 초입에는 영화를 뮤지컬로 각색하는 프로젝트가 업계의 절대적인 화두로 떠올랐다. 1999년 <토요일 밤의 열기>와 2000년 <풀 몬티>를 시작으로 전개되던 흐름은 1968년도 영화 <프로듀서스>를 뮤지컬로 각색한 뮤지컬     <프로듀서스>(2001)의 대성공으로 붐을 이루기 시작했다. 이어 <헤어스프레이> <완벽한 신여성 밀리> <스패멀럿> 등이 모두 토니상 작품상을 받음으로써 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이 21세기 초입의 주류로 떠올랐다. 이 밖에도 <더럽고 비열한 사기꾼들> <드라우지 샤프론> 등 2001년부터 2006년까지 토니상을 석권하거나 흥행에 성공한 작품들 모두 영화가 원작이다.
올 시즌에도 이미 <금발이 너무해>와 <재너두>,   <영 프랑켄슈타인>이 영화에서 뮤지컬로 옷을 바꿔 입고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려졌다. 
이런 상황은 뉴욕의 브로드웨이와 함께 뮤지컬 무대를 양분하는 런던 웨스트엔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뮤지컬 <반지의 제왕>이 개막해 관객을 끌어모으고 있으며 매튜 본의 유려한 안무와 연출로 만들어진 <빌리 엘리어트>와 <메리 포핀스>, <더티 댄싱>도 이미 최신 흥행 작품 목록에 올라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대기 중인    <캐치 미 이프 유 캔> <크라이 베이비>까지 합하면 앞으로도 할리우드의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길어올리는 작업은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내에서도 영화를 뮤지컬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일부 영화 제작사는 직접 뮤지컬 시장에 뛰어들고 있기도 하다. 영화 <친구> <말아톤>으로 유명한 시네라인-투가 로맨틱 뮤지컬 코미디 <폴 인 러브>를 제작했고, CJ엔터테인먼트 역시 공연사업부를 통해 과거 삼성영상사업단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인연을 바탕으로 제작사 설앤컴퍼니, 오디뮤지컬컴퍼니, 뮤지컬해븐 등에 투자를 하고 있다.

<라디오 스타> <미녀는 괴로워>도 대기 중
이제 산업화 단계에 진입한 우리나라의 뮤지컬 시장도 영화나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콘텐츠의 적극적인 확장을 통해 장르를 넘나들며 백년 넘는 뮤지컬의 본고장 브로드웨이의 수순을 매우 빠르게 밟아가고 있다. 마니아 관객들을 양산한 <삼거리극장>은 CJ문화재단이 주최한 ‘CJ 뮤지컬 쇼케이스’ 공모 부문에서 우수작으로 선정되어 향후 무대화에 유리한 고지를 올랐으며, 영화사와의 협력 속에서 <달콤, 살벌한 연인> <미녀는 괴로워> <라디오 스타> 등이 영화사와 뮤지컬 제작사의 협력 관계 속에서 이미 뮤지컬 대본·작곡·주연 배우 캐스팅 등의 핵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중 가장 이르게 무대에 올라갈 작품으로 점쳐지는 것은 <라디오 스타>. 김다현·정성화 등이 캐스팅되었고 음악은 기존 히트곡 중에 골라서 채워 내년 시즌에 무대에 올려진다. <미녀는 괴로워>는 브로드웨이 작곡가를 영입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무대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르면 2009년께 무대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 세 편 중 가장 먼저 영화 개봉이 이루어졌던 <달콤, 살벌한 연인>은 대본 작업이 늦어지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오고 있다.
<삼거리극장>의 경우 원작 영화의 전계수 감독이 무대화 작업에 의욕을 갖고 참여하고 있는 데다 극 흐름에 맞춘 오리지널 넘버들이 이미 영화 속에 포진하고 있기에 제작자만 나서면 곧바로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하나의 소스를 영화, 뮤지컬, 다시 영화 등으로 다양하게 이용하는 이른바 ‘원 소스 멀티 유스’는 원작을 사랑하는 팬들의 환영을 받기도 하지만 완성도가 떨어질 때는 그만큼 관객들의 실망감도 클 수밖에 없다. 익숙한 작품이 처음 다가가기는 좋겠지만 비싼 지갑을 여는 관객들은 그만큼 새로운 스토리와 감동을 원한다는 사실은 창작자와 제작자들 모두 염두에 두어야 할 사안이다.
영화를 무대로 옮기려는 시도가 늘어갈수록 칼자루를 쥐고 있는 쪽은 다름 아닌 그 영화의 판권을 가지고 있는 영화사들이다. 브로드웨이에서도 무대 뮤지컬의 시장 규모가 점점 커지자 거대 엔터테인먼트 자본인 영화사에서 직접 뮤지컬 시장을 넘보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먼저 뛰어들어 가장 크게 성공을 거둔 것이 바로 가족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틈새 시장을 파고든 디즈니이다. 디즈니는 1990년대 초 <미녀와 야수>로 성공한 이후 <라이온 킹> <메리 포핀스>로 연타석 홈런을 날렸다. 디즈니에게 제2의 전성 시대를 열어준 만화영화 <인어공주>를 무대로 옮긴 뮤지컬 <인어공주>, 투어 공연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하이 스쿨 뮤지컬>등 올겨울도 디즈니는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하며 20년 넘게 뮤지컬 강자 자리를 굳힐 것으로 보인다. 연예계의 큰 손 오프라 윈프리가 직접 제작한     <컬러 퍼플> 역시 우피 골드버그가 주연해 수많은 관객의 심금을 울렸던 동명의 영화를 각색한 것이다. 이 작품은 흑인 뮤지컬 특유의 한의 정서를 담은 신파적인 플롯을 따르면서도 가창력 있는 배우들이 주도해 흥행과 평단 모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모든 사례가 성공적이기만 할까?
팀 버튼 감독의 영화를 각색한 메튜 본의 <가위손>은 우리나라에서 지난해 7월 하순에 내한공연을 가진 바 있는데, 평면적인 드라마 진행으로 인해 실패작으로 남았다. 2006년 브로드웨이에서는 1980년대를 회고하는 영화인    <웨딩 싱어>를 각색한 동명의 뮤지컬이 개막되었지만 결과는 약간 실망스럽다.

<대장금> <공길전> 등은 실패 사례로 꼽혀

   
   <레스타트>(위)는 영화의 뮤지컬화가 실패한 경우에 속한다.  
같은 시기에 개막한 <레스타트> 역시 톰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로 잘 알려진 작품이지만 그저 원작을 요악하기만 한 단조롭고 안이한 대본과 퇴보적인 연출로 인해 실패했다. 디즈니의 네 번째 브로드웨이 진출작인 <타잔>은 엘튼 존과 함께 자웅을 겨루는 필 콜린스가 작곡했음에도 <타잔>이라는 작품 자체가 아프리카 밀림을 배경으로 하는 점에서는 <라이온 킹>과 <아이다>가 만난 듯한 연출과 무대 장식을 보여주어 평단의 외면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영화는 아니지만 유명 TV 드라마 <대장금>, 만화 원작을 뮤지컬로 각색한 <달려라 하니>, 원작은 연극이지만 영화 <왕의 남자>의 성공에 고무되어 제작된 <공길전> 등은 대부분 흥행 가도에서 좌초했다.
얼핏 보기에 온 국민에게 알려진 좋은 컨텐츠를 재활용하는 것이야말로 굉장히 효율적인 제작 방식으로 보인다. 이는 제작사의 처지에서 볼 때 홍보비도 덜 들고 창작 시간도 덜 든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결과는 ‘관객은 냉정하다’는 진리를 보여주었다. 관객들은 아무리 원작이 좋아도 원작 자체의 힘만을 믿고서 비싼 돈을 내고 공연을 보러 가지 않는다. 관객들은 항상 ‘원작’을 뛰어넘을 것을 요구한다. 그것이 기꺼이 지갑을 여는 관객의 권리이다. 누구라도 이미 나와 히트한 기존 가수들의 노래나 영화, 뮤지컬 영화를 기반으로 작품을 좀더 쉽게 만들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의 관객들은 새로운 스토리와 새로운 음악에 대한 탐험을 원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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