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철의 ‘X파일’, 계란일까, 바위일까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07.11.03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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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9월 검찰과 재계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한 평검사가 갑자기 사표를 던지고 삼성그룹에 입사했던 것. 당시로서는 현직 검사가 재벌 기업에 들어간 전례가 없던 터였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이 지난 지금. 그 주인공이었던 김용철 변호사(49)가 엄청난 메가톤급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김변호사가 지난 10월29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하 사제단)을 통해 ‘삼성 비자금’의 실체라며 자신 명의의 50억원 입금 계좌를 폭로하고 나서자 삼성그룹은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재계 주변에서는 “지난 2003년 안대희 중수부장의 대선자금 수사나, 2005년 안기부 X파일 사건 때에도 삼성이 지금과 같은 긴박한 분위기는 아니었다”라고 입을 모은다. 삼성뿐만 아니라 정치권과 검찰 할 것 없이 모든 이들의 눈과 귀가 김변호사에 쏠린 모습이다. 특수부 검사 출신의 김변호사가 삼성을 대상으로 ‘전쟁’을 선포하고 나섰을 때에는 ‘배수의 진’을 쳤으리라는 것이 중론이고 보면, 단계적으로 추가 폭로할 시나리오를 갖고 있을 것이라는 추론이 쉽게 나오기 때문이다.
이미 김변호사가 10월5일 자신이 소속된 법무법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이런 사태는 어느 정도 예견되었다는 것이 주변의 전언이다. 김변호사는 법인이 삼성의 압력으로 자신을 해고시키려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삼성측도 상황을 감지하고 긴박하게 움직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결국 김변호사는 모든 것을 폭로하는 쪽을 선택했다. 사제단측은 “김변호사가 10월18일께 우리를 찾아와서 모든 사실을 양심 고백했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일주일여에 걸쳐 ‘김용철 X파일’이 다듬어졌고, 시나리오가 정해졌다. 
그 첫 단계로 10월29일 김변호사측은 자신 명의의 비자금 통장 계좌부터 공개했다. 어떤 시시비비에 휘말릴 것도 없는 아주 명확한 사실 내용부터 공개하고 나선 것이 그만큼 신중을 기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삼성으로서도 통장의 실체에 대해서는 시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김변호사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비자금과 관련해) 많은 사례가 있다. 더 자세히는 나중에 말하자”라고 여지를 남겨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추가 폭로 계획에 대해서도 “천천히 말하자”라고 답했다.

김변호사가 작성한 로비 리스트 규모, 안기부 X파일보다 커

일단 비자금 실체를 공개한 김변호사측은 그 다음 단계별로 각각 비자금의 조성 방법과 용도, 그리고 전달 대상이 누구인지 밝히는 식으로 차차 폭로의 범위를 넓혀갈 것이라는 전망을 낳고 있다. 실제 사제단측은 11월5일의 2차 기자회견에서 삼성그룹의 대외 로비 지침을 담은 내부 문건을 공개했다. 여기에는 비자금 조성 방법도 포함되었다.

 
이처럼 비자금의 실제적 증거에 이어 비자금의 용도와 조성 방법까지 공개된다면, 그 다음 단계는 비자금 사용처, 즉 로비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는 대목이다. 실제 김변호사가 직접 작성한 ‘로비 리스트’가 있음이 여러 경로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측은 “확인한 결과, 안기부 X파일 때 거론된 전·현직 검사보다 훨씬 많은 규모의 법조 인사들이 리스트에 올라 있다고 한다”라고 밝혔다. 노의원측은 “여기에는 검사뿐만 아니라 판사·변호사도 포함되어 있다. 그 수도 수십 명까지 이른다. 검사장급도 있고 부장판사와 대법관도 있다고 한다”라고 밝혔다.
김변호사가 검찰 출신이다 보니 직접 자기 손으로 작성해서 관리한 로비 리스트는 대부분 법조인에 국한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회와 정부는 물론 언론사도 로비 대상에서 절대 자유러울 수 있다는 의견이 많다. 
로비 리스트의 실명 공개는 그 진위 여부를 떠나 엄청난 파장을 몰고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지난 안기부 X파일 사건 때 현직 검사로 실명 거론된 김상희 전 법무부 차관과 홍석조 전 광주고검장이 그 직후 곧바로 옷을 벗은 바 있다. 그래서일까. 사제단측도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한 적은 없다”라며 신중한 모습이다. 상황을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이 로비 리스트가 ‘김용철 X파일’의 마지막 히든카드 역할을 하게 될까. 그렇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10월29일 사제단의 1차 기자회견에서 김인국 신부는 “벌써부터 삼성이 김변호사를 모함하고 있다. 김변호사는 사제단에 양심선언문을 작성했다. 삼성과 검찰의 태도를 지켜보면서 이 양심선언문의 공개 여부를 결정하겠다”라고 언급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삼성을 향한 상당히 위협적인 공개 경고인 셈이다.
이에 대해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6하 원칙에 따라서, 비자금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조성했는지를 하나하나 차례로 밝혀 나간다고 치자. 결국 남는 것은 무엇인가. 제일 중요한 ‘누가’만 남는다. 누가 총체적으로 그런 지시를 했는지가 가장 꼭지가 될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그렇다면 결국 마지막 단계는 비자금의 모든 총체적 책임자로 김변호사가 과연 누구를 지목할 것인지에 쏠릴 수도 있는 셈이다.
이미 그는 인터뷰에서 삼성의 후계자로 지목되고 있는 이재용 전무(이건희 회장의 장남)에 대해서는 “삼성그룹의 차기 총수가 될 사람이 국법 질서에 대한 느낌이 없다”라고 날을 세우고 나섰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모습이다. 삼성그룹의 심장부인 구조조정본부의 핵심 간부였던 김변호사는 이회장과도 지근거리에 있었다. “이건희 회장을 신격화하는 사내 분위기는 참기 힘들었다”라고 속내의 일단을 비친 김변호사의 그 다음 목소리가 과연 X파일에 담겨 있을까. 삼성에서 가장 우려하는 최악의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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