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조원 게임’ 뒤 은밀한 현금 도박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7.11.19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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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게임머니 5백60조원을 하루 밤새 잃었다. 환전하면 80만 원 정도 될 것이다. 총 얼마나 잃었는지 모르겠다. 수천조원은 족히 될 것이다.”
한게임에서 세븐 포커를 즐겨치는 양 아무개씨(31)의 말이다. 한게임에서 포커를 즐기던 양씨는 “한게임 내에 실제 돈으로 치는 포커가 있다”라는 친구의 말을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친구가 보여준 곳은 한게임 세븐 포커 게임의 ‘실감베팅 경기장’이라는 채널. 레벨이 신(神)이어야 게임이 가능한 곳이었다. 양씨의 당시 게임머니는 약 5조원. 1조원이면 신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실감베팅 경기장에서 게임을 할 수 있었다.
그곳은 다른 채널과 달랐다. 수백조원의 게임머니를 들고 포커를 치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속칭 ‘학교 간다’라는, 판돈이 1조원인 곳도 있었다. 양씨의 돈은 곧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다시 실감베팅장에 들어가기 위해 양씨는 ‘수혈’을 받았다. ‘수혈’이란 다른 사람에게 게임머니를 받는 것이다. 공짜일 리 없다. 한게임 머니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불법 환전상은 인터넷에 수없이 많다. 환전상은 한게임 머니를 일정한 액수에 따라 매입하기도 하고 판매하기도 한다. 양씨는 그중 한 곳에서 1백조원을 12만원에 구입했다.

사이트에 주문서 내면 1백조원을 12만원에 매입

구입 방법은 간단하다. 사이트에 있는 구매 양식에 이름, 입금자 이름, 연락처, 은행 계좌, 그리고 수혈 받을 아이디를 입력한 뒤 주문서를 전송하면 된다. 그러면 게임머니 환전상이 전화를 해서 들어올 채널과 비밀번호가 있는 방을 알려준다. 환전상은 일방적으로 져주며 불과 2~3분 만에 양씨에게 1백조원을 채워주었다.
양씨와 같은 사람이 늘면서 게임 포털의 웹보드 게임(고스톱, 포커와 같은 게임)이 사행성 논란에 휩쓸리고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웹보드 게임에서 돈을 잃어봐야 몇 푼 되겠느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웹보드 게임은 게임머니라는 가상의 화폐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게임머니가 현실의 화폐와 교환이 이루어질 경우, 즉 환금성을 가지게 된다면 여흥의 단계를 넘어서 도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정 게임산업 진흥법’은 이러한 웹보드 게임의 사행성을 방지하기 위해 올해 5월16일부터 시행되었다. 게임머니의 현금 거래 서비스가 전면 중단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전까지는 ‘아이템베이’ 등 유명 아이템 거래소에서 게임머니가 일정한 액수의 돈으로 거래되었지만 이제는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단속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불법 환전 사이트는 기승을 부리고 있다. 네이버에서 ‘한게임머니’라는 검색어를 입력하면 환전할 수 있는 곳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거래 방법은 간단하다. 시세대로 주문서를 넣고 입금하면 게임머니를 받을 수 있다. 반대로 게임머니를 환전상에게 판매할 수도 있다. 매입 가격보다는 조금 낮은 선에서 거래가 이루어진다.
환전상은 대포폰을 사용하고 여러 개의 대포통장을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6월13일 인천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한게임 등의 회원들로부터 포커머니를 현금으로 매입한 후 재차 이를 판매해 35억원 상당의 부당 매출을 올린 혐의로 6개 업체에서 17명을 단속하고 8개 사이트를 적발했다.

 
하지만 이후 지속적인 단속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한 지방경찰청 관계자는 “당시는 법령 시행 이후 벌인 테마 단속이었다. 그 이후에는 아직 단속을 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당시 적발되었던 환전 사이트들은 국내에 서버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단속이 이루어지자 해외로 서버를 옮기고 있다. 서버는 주로 타이완에 두고 있으며 미국에 서버를 둔 사이트도 생겨났다.

“포털 게임, 사행성 게임물 규제로 반사이익”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김영선 팀장은 “서버가 해외에 있다면 국내법을 적용하기가 어렵다”라고 말했다. 사이트를 폐쇄해달라고 요청할 곳이 없기 때문에 접속 차단의 방법 등을 사용하지만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지난해 바다이야기 파문 이후 사행성 도박에 대한 규제책이 잇달아 발표되었을 때 게임 포털 업체들은 환영하는 뜻을 나타냈다. 지난해 9월13일 게임 업체들의 모임인 (사)한국게임산업협회는 웹보드 게임 게임머니 거래 관련 사이트를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혐의로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신고 조치했다. 환영의 뜻을 적극적인 행동으로 표현한 셈이다.
하지만 당시 한 포털 게임 업체의 관계자는 “소나기는 일단 피하자는 심정이다. 물론 공익적인 입장에서는 거래를 근절해야 하지만 그런 거래가 있어야 게임이 활성화되기 때문에 회사 수익에 보탬이 된다”라고 말하며 고민스러운 입장을 토로했다.
증권가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게임 업체가 받을 영향에 대해서는 서로 상반된 견해가 있었다. 게임머니의 현금 거래가 중단되면 온라인 성인 PC방의 영업이 힘들어지면서 게임 포털이 수혜를 누릴 수 있다는 긍정론과 반대로 현금 거래가 중단되면 게임에 참여하는 동기가 떨어지기 때문에 악재로 작용한다는 부정론이 함께 나왔다.

 
예상대로 사행성 게임물 규제가 강해지자 갈 곳 잃은 도박꾼들 중 상당수가 포털 게임으로 몰렸다. 게임 포털에게는 호재였다. 하지만 게임 포털에서는 현금 거래, 즉 환금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에 따라 환전상에 대한 도박 행위자들의 수요가 생기면서 불법 환전상들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쉽게 많은 밑천을 확보해 게임을 할 수 있게 되면서 게임 포털의 웹보드 게임은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다.
게임 포털 업계 1위를 고수하고 있는 한게임의 연간 매출액을 보면 그 연관성을 짐작할 수 있다. NHN의 게임 매출이 급격히 증가한 시기는 지난해 4분기부터이다. 지난해 1~3분기에 3백억원 안팎의 매출을 기록하다가 4분기에 3백95억원, 그리고 올해 1~2분기에는 5백억원대로 매출 신장을 보였다.
게임 업계의 매출이 전체적으로 침체되고 있는 시점에 급성장한 한게임을 두고 게임 업계에서는 “바다이야기 사태의 반사 이익이다”라는 말이 오고갔다. 한게임의 매출이 급증한 시기가 바다이야기가 한창 철퇴를 맞던 지난해 하반기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회원들이 몰리면서 게임 포털 내에서도 이들을 견인할 장치가 필요했다. 한게임의 경우 실감베팅장이 올해 6월21일 문을 열었다. 실감베팅 경기장에서는 풀베팅이 가능하고 1조원 이상을 들고 있어야 게임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시드머니(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내는 판돈)도 원래는 2천억원, 5천억원이었지만 지난 10월부터 1조원 시드머니 방이 추가로 개설되었다.
게다가 회원이 가질 수 있는 게임머니의 최대 보유 한도는 6백조원이지만 ‘W-Plus’라는 월정액 4만원 회원이 되면 보유한도가 2천조원으로 확대된다. 이런 장치들로 인해 회원들이 좀더 큰 판에서 게임을 할 수 있고 유통되는 돈도 커지면서 한게임의 웹보드 게임은 사행성 시비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다.

NHN 게임 매출, 지난해보다 1백19%나 증가

게다가 한게임 내에서도 아이템을 사서 우회적인 방법으로 게임머니를 구할 수 있다. 아바타를 사면 엔돌핀이나 게임머니를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가격이 1만원인 아바타를 사면 엔돌핀 1백알을 얻을 수 있는데 이것은 포커머니 6조1천8백억원과 교환할 수 있다. 포커머니 5조원이 포함된 아바타를 1만원에 구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전체적으로 게임의 판이 커지면서 수혈을 받는 사람도 있지만 아바타를 통해 게임머니를 구매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한게임 매출이 증가하고 있는 이유이다.

 
한게임의 호황은 실적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NHN은 지난 11월8일 3분기(7월~9월) 실적 발표에서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특히 게임 부문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게임 매출은 6백50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28%를 차지한다. 전년 동기 대비 1백19%나 증가한 것이다.
하지만 관련 정보가 자세히 공개되지 않아 <시사저널>은 전체 게임머니 통화량과 실감베팅 경기장의 이용자 수, 그리고 게임 매출액에서 웹보드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에 관한 자료를 요청했지만 NHN측에서는 “재무에 해당하는 사항이라 알려주기 곤란하다”라고 답변했다. 다만 “정확한 수치는 알려줄 수 없지만 웹보드 게임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라고 밝혔다.
NHN측에서는 사행성 논란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NHN 홍보실의 관계자는 “게임머니의 유통이 커져서 조정한 것이다. 오히려 한도가 높아지면 거래 금액이 떨어지는 효과도 나타난다”라고 밝혔다. 사행성 이슈와는 무관하게 사람들은 여흥 수단으로 이용하며 NHN 쪽에서도 그런 방향으로 조절하고 있다는 해명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접속해보면 사행성과 무관하다고 간단히 결론짓기는 어려워 보인다. 지난 11월14일 밤 10시, 한게임 실감베팅장이 설치되어 있는 ‘세븐 포커’와 ‘바둑이’ 게임의 실감베팅 경기장에 접속해 살펴본 결과 많은 채널이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세븐 포커’의 경우 방 4개 중 2개가 꽉 찼고 ‘바둑이’의 경우 8개 채널 중 7개 채널이 만원이었다. 한 채널당 정원은 3백명이므로 3천명에 가까운 사람이 실감베팅을 즐기고 있었다.

포커 게임에 빠져 한 학기 등록금 모두 날리기도

게임을 하고 있는 방에 들어가 보니 대다수 사람들이 적게는 수십조에서 많게는 1천조원이 넘는 게임머니를 가지고 포커나 바둑이를 즐기고 있었다. 확인된 최고 게임머니 보유액은 1천4백54조. 불법 환전상에서 시세대로 환전한다면 대략 1백20만원의 현찰과 교환할 수 있다. 게임 포털에서 카드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적게는 수만원에서 많게는 1백만원 이상의 현찰을 들고 게임을 하는 셈이다. 한 번의 게임에 걸린 최다 판돈은 2백95조원 환전하면 대략 40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실제로 한게임에서 돈을 잃었다는 사람들의 푸념은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에이스 풀하우스가 나와서 2백조원을 질렀는데 상대방이 4포커가 떠서 날렸다” “하루에 3백조원을 딸 때까지 계속 앉아 있게 된다”라는 글은 애교에 불과하다.
취재 중 만난 전 아무개씨는 “지난해 말 군에서 제대한 후 한게임 포커에 빠져 복학을 위한 등록금 4백만원을 게임머니와 교환했다가 결국 다 탕진해버렸다”라고 말했다. 그는 “원래 도박은 자금이 넉넉한 사람이 유리한 게임이니까 게임머니를 충분히 가지고 있으면 돈을 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게임머니를 벌면 환전해서 용돈이라도 만지려고 했다”라며 자신의 실수를 안타까워했다.
정부에서도 이런 문제점을 일찍부터 인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올 3월 게임물등급위원회는 웹보드 게임의 월 이용 한도를 내부 심의규정으로 명문화하는 것을 검토했다. 도박을 소재로 하고 있는 이들 게임이 사실상 현금을 ‘판돈’으로 사용하고 있어 사행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웹보드 게임의 경우에는 30만원을 상한액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월 이용액 규제는 유명무실해졌다. 게임물등급위 심의지원팀 박종일 팀장은 “대외적으로는 공표하지 않고 업계 자율적인 가이드라인에 맡겼다”라고 말했다. 업계의 반발이 심해지자 한 발짝 물러선 것이다.
지난 3분기 실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최휘영 NHN 사장은 “한게임 신규 요금제를 지난 6월 말부터 시작했는데 다양한 맞춤형 요금제를 내놓아 신규회원 유입에 좋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최사장은 “그동안 웹보드 게임 사행성 관련 규제 논란이 있었지만 이 부분은 게임머니 규제 이슈와 별도이며 현재 직면하고 있는 이슈는 없다”라고 강조했다. NHN측에서도 사행성 논란에 신경을 쓴다는 의미이겠지만 듣기에 따라서는 사행성 논란의 여부와 상관없이 한게임의 지금 컨셉트를 계속 고수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될 수 있다.
그동안 NHN은 사행성 논란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보다는 한 발짝 물러선 태도를 취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NHN의 사회적 역할이 미흡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이다. 한 지방경찰청 관계자는 “한게임에서 한 아이디에 시간 쿼터를 두는 방법, 게임 횟수 제한을 두는 방법, 여흥거리로 만들기 위해 판돈을 전체적으로 낮추는 방법 등을 강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좀더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한게임측에서도 자체적인 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연간 35억원의 예산을 들여 100여 명이 모니터링을 하며 게임 내에서 벌어지는 불법적인 환전을 적발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게임 밖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대략 3백여 만원을 잃었다는 한 회원은 “환전상들의 게임머니는 한게임에서만 소비되는 돈이다. 도박의 장을 제공한 게임 업체가 적극적이지 않으니까 매출을 위해 불법 환전을 방조한다고 의심받는다”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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