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 불자 떠나가는 교사들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7.11.26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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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 전직 잇따라…학원 영입 경쟁이 한몫

 
일선 교사들의 학원행이 잇따르고 있다. ‘스타 교사’로 명성을 얻은 교사들은 대부분 학원행을 택하고 있다. 수능이 끝난 11월부터 봄 신학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학원가는 ‘스타 교사’를 영입하느라 분주하다. 어떤 강사를 영입하느냐에 따라 학원의 사활이 갈린다.
이런 현상은 온-오프 라인 학원들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온라인 교육 업체들에서 심하다. 온라인 교육의 특성상 강사가 매출에 미치는 영향력이 거의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학원들의 성장 배경에는 ‘스타 강사’가 있다.
국내 재수생 입시 학원의 명가로 군림해온 대성학원은 해마다 교사 출신 강사들을 영입하는 데 많은 공을 들인다. 대성학원의 강사들 중에는 현직 교사 출신들이 유난히 많다.
<시사저널>은 대성학원의 노량진 본원과 강남·송파 분원의 강사 프로필을 분석해보았다. 본원과 분원 2곳의 강사 수는 총 1백89명. 이 중 전직 교사 출신들이 74명(39.1%)이다. 10명 중 4명은 교사 출신인 셈이다. 외국어고나 과학고 등 특목고 출신 교사들도 23명(31%)이나 되었다. 명덕외고에서는 7명의 교사들이 대성학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울과학고 4명, 한성과학고·민족사관고 각 3명, 대원·한영·안양외고 각 2명씩이다.
수학 과목을 가르치고 있는 민경도 전 숙명여고 교사, 사회탐구의 김동일 전 경기고 교사, 권한상 전 명덕외고 교사, 영어탐구의 박흥근 전 대광고 교사 등은 스타 강사의 관문이라고 불리는 EBS 강사 출신이다. 김동일 강사는 사회탐구 분야에서 명성을 떨친 스타 교사였다. 대성학원은 학원 홈페이지 강사 소개란에 ‘최고의 현직 교사 영입’을 강조하며 과학고나 외국어고 등 특목고 교사들을 영입했다고 홍보하고 있다.
이한덕 대성학원 교무부장은 “교사 출신 강사들의 장점은 교직 경험이다. 각자 교육관을 가지고 원생들을 가르치기 때문에 책임감이 있고, 인성 지도가 병행된다. 대성학원에 교사 출신 강사들이 많은 것은 정년을 보장해주는 데다 능력에 따라 많은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강의 외에 잡무가 없고, 특강 등으로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교무부장은 또 “최근에는 스타 강사를 꿈꾸는 젊은 교사들이 학원 강사로 잇따라 전직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온라인 교육 사이트에서 EBS 강사 출신 ‘싹쓸이’도

국내 최대의 온라인 교육 업체인 메가스터디는 2000년 7월 설립 이후 스타 교사들을 대거 영입했다. 현재 온라인 수능 강사 81명 중 14명(17.2%)이 교사 출신이다. EBS에서 명성을 떨친 강사들 중 대다수가 메가스터디로 향했다. 강사들의 명성으로 보면 ‘호화 스타 군단’이다.
메가스터디는 국내 최고의 성과 보수를 제시하면서 전국의 이름 있는 강사들을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공교육 스타 강사의 대명사이던 이석록씨(전 화곡교 교사)는 현직에 근무하면서 7차 교육과정 국어 교과서와 50여 권이 넘는 언어 영역 참고서를 썼다. 또 다른 EBS 스타 박승동씨(전 서울과학고 교사)와 서의동씨(전 배명고 교사)도 메가스터디에 합류했다. 박씨는 문제 풀이보다는 수학의 원리를 중심으로 한 명강의로 이름을 떨쳤다.
메가스터디는 또 오찬세 전 한성과학고 교사를 영입했다. 오씨는 EBS 수능 언어 영역 강의 등을 맡아 전국적으로 수만명의 수험생 팬을 확보하고 있다. 언어 영역에서 이석록씨와 쌍벽을 이루었던 이만기 전 인천 문일여고 교사는 메가스터디로 이직했다가, 유웨이중앙교육으로 재스카우트되기도 했다. 이씨는 메가스터디의 간판 강사로 활동하며 수십억원대의 매출을 올렸다.
이밖에 EBS 강사로 명성을 날리던 교사 중 학원행을 선택한 사람들은 언어 영역의 김주혁 강사, 과학탐구의 공창식 강사, 사회탐구의 김동일 강사 등이다. 김주혁씨는 온라인 인터넷 교육 사이트 1교시닷컴과 디치미 강사로, 유재원씨는 청솔아우름 통합논술 강사로, 김동일씨는 대성학원 강사로 근무하고 있다.
손은진 메가스터디 전무는 “특별히 교사 출신을 채용하지는 않는다. 능력이 있는 사람을 공정하게 평가한다. 우리 학원에 소속된 강사들은 개인 사업자나 마찬가지이다. 연구실을 제공하는 것 외에 강사들에게 특별히 해주는 것도 없다”라고 말했다.
EBS 출신 스타 교사를 대거 영입한 메가스터디는 설립 4년 만인 2004년 12월 코스닥에 상장했다. 지난해에는 매출 1천억원을 돌파하며 학원가를 놀라게 했다. 현재 중·고등 온라인 교육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렇다면 교사들은 왜 정년이 보장된 교직을 박차고 학원행을 선택하고 있는 것일까. 크게 두 가지이다. 교직에 대한 환멸이거나 돈의 유혹 때문이다.
이석록 메가스터디 평가연구소장이 교직을 떠날 때 교육계는 물론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많았다. 돈을 좇아 교육의 본분을 저버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이씨는 학원행을 결심하면서 “아이들이 내 수업을 듣고 고개를 끄덕일 때 존재 가치를 느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빌다시피 하면서 수업을 해도 태반이 잠을 잤다. 야단이라도 치면 대드는 학생들이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교단에서 서서히 지쳐갔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교직을 떠나기 전에도 EBS에 출연하면서 부와 명성을 함께 얻었다. 교사 연봉(4천5백만원), 참고서 인세(6천만원), EBS 출연료(3천만원) 등 1억3천5백만원이 넘는 수입을 올렸다. 결국 돈보다는 공교육에 대한 환멸 때문에 20년간 몸담았던 교단을 떠났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EBS에 출연해 스타 교사가 된 것을 시기한 교육계의 풍토를 질타했다. EBS에 출연하는 것을 ‘입시 교육의 원흉’으로 몰아갔다는 것이다.

젊고 유능한 교사 학원행은 공교육 약화 요인

 

다른 교사 출신 강사들의 경우에도 교단을 떠난 이유가 비슷하다. 동료 교사들의 시기와 의도적인 비난, 교사 간의 차별, 학생들에 대한 통제력 상실 등을 들었다. 교사들 간 경쟁 심화, 만족스럽지 못한 보상 체계, 관료적 교직 사회, 과도한 행정 업무 등도 교사들을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고 있는 원인 중의 하나이다.
교사들의 학원행 뒤에는 돈이 있다. 만약 막대한 수입이 보장되지 않았다면 교직을 떠났을 리 만무하다. 교사 출신 학원 강사들의 수입은 천차만별이다. 같은 교사 출신이라고 해도 명성에 따라 수입이 다르다.
메가스터디는 강사들에게 수강료 수입의 23%를 성과급으로 지급하고 있다. 인기 있는 강좌의 경우 수강생이 수만명에 이른다. 1개 강좌당 수강료 4만원에 수강생 2만명으로 잡으면 수강료 수입만 8억원에 이른다. 여기에서 성과급 23%를 받으면 1억8천4백만원을 가져갈 수 있다. 교재료까지 합치면 수입은 더욱 늘어난다.
이석록씨의 경우 현재 메가스터디 언어 영역에 17개 강좌를 개설하고 있다. 성과급만 30억원이 넘는다. 메가스터디에는 연간 수십억원의 수입을 올리는 강사들이 여러 명 있다. 최고 수입을 올리는 영어 부문 김기훈 강사는 개설된 강좌만 30여 개에 이른다.
EBS 강사 출신 교사들이 돈 방석에 오르자 EBS 강사가 되기 위해 애쓰는 교사들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교육계와 학원가에서는 EBS에서 지명도를 높인 뒤 메가스터디로 이적하는 것이 몸값을 올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인식되고 있다.
현재 EBS 수능 강사 2백27명 중 1백69명(74.4%)이 현직 교사들이다. EBS의 수능 강의는 EBS플러스1 TV와 EBSi 인터넷 사이트로 제공되고 있는데, TV 강의는 전부 현직 교사들이 맡고 있다.
메가스터디가 대박을 터뜨리자 온라인 입시 학원들이 속속 생겨났다. 후발 업체들도 스타 교사 영입에 경쟁적으로 나서면서 덩달아 교사들의 몸값도 올라갔다. 업계는 파격적인 연봉과 지분, 학원 내 자리 등을 제시하고 있다.
학원에서는 이들의 상품성을 감안해 현직 교사 월급의 몇 배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위권 온라인 교육 업체인 이투스, 유웨이에듀, 비타에듀 등에는 교사 출신들이 속속 영입되고 있다.
경기도 시흥 지역의 고교에서 근무하는 진 아무개 교사(39·남)는 “교사들의 학원행을 무턱대고 비판하는 것은 잘못이다. 교사들의 급여가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 최소한 물가상승률을 따라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학교 교육을 우습게 생각한다. 공부는 학원에서 하고 학교에서는 쉰다는 생각이다.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자고, 때리면 반항하는 모습에 지쳐가기 마련이다”라고 말했다.
학원들의 스타 교사 영입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일부 강사들의 몸값이 급등하는 등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다.
경쟁이 치열해지며 몸값이 상승함에 따라 소비자인 수험생들에게 그 부담이 전가되기 때문이다.
현직 교사들의 이탈 현상은 전체 교사 수에 비하면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젊고 유능한 교사들이 학원으로 몰려가는 현상은 공교육을 약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정애순 전국교직원노조 대변인은 “교사들끼리의 경쟁을 부추기고 평가 위주로 이루어지는 교원 정책이 문제이다. 이런 제도하에서는 사교육 시장으로 이직하는 교사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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