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안주인은 바로 나” 뜨거운 ‘내조 전쟁’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07.12.03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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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 부인들도 ‘표심 잡기’에 나섰다. 방송에 출연하고 불우 이웃들에게 밥을 퍼주며 유권자들을 만나고 있다.

"늘 건강하세요.” 흐리던 날씨가 개어 모처럼 햇빛이 밝았던 지난 11월28일,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대선 후보의 부인 민혜경씨(51)가 성남시 수진역 부근 ‘인보의 집’을 방문했다. 천주교 인보성체수도회에서 운영하는 노인 요양원에서 민씨는 할머니 한 분 한 분의 주름진 손을 잡으며 건강을 기원했다. 앞서 그녀는 한 방송사의 아침 프로그램 녹화를 위해 오전 시간을 할애했다.
같은 날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의 부인 김윤옥씨(60)는 청량리 쌍굴다리 옆 ‘밥퍼’ 식당을 찾았다. 기독교 봉사단체 다일공동체의 무료 급식소인 이곳에서 김씨는 기다랗게 줄을 선 수백 명에게 차례차례 밥과 반찬을 나누어주느라 분주했다. ‘급식 봉사’를 마친 그녀는 곧바로 인천으로 이동해 재래시장 세 군데를 들러 상인들을 만났다.
본격적인 선거전과 함께 청와대 안주인을 꿈꾸는 후보 부인들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그동안 선거 운동보다는 내조에 비중을 두었다면 이제부터는 일반 유권자들과 직접 대면하는 외부 활동을 늘려나가고 있다.
물론 갑작스럽게 진행된 보여주기식 이벤트는 아니다. 그럴 경우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올 수 있다. 정후보의 부인 민혜경씨는 결혼 전부터 수도회와 인연을 맺어 오랫동안 봉사 활동을 펼쳐왔다. 소망교회 권사인 김윤옥씨도 봉사팀 일원으로 매달 ‘밥퍼’ 행사에 참여했다.
영부인 후보들은 공식 일정에 묶여 있는 대선 후보가 직접 챙기지 못하는 ‘틈새 지역’을 찾는다. 정치인 남편이 보여주지 못한 인간적인 면을 내세워 유권자들에게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선다. 연일 강행군을 해야 하는 남편의 건강 관리와 곁에서 조언을 마다않는 것도 이들이 맡은 역할 중 하나이다.

민혜경씨, 행복배달부 2호로 바쁜 걸음

 
정동영 후보의 부인 민혜경씨는 정치인 아내로서 틈틈이 대외 활동을 이어왔다. 전통적인 미인형의 현모양처 스타일인 데다 활달한 성격으로 대중적 친화력을 갖추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대선 후보 부인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가장 높은 지지도를 얻기도 했다.
남편이 대선 후보로 확정된 후에는 ‘후원자’를 넘어 ‘동반자’로서 힘을 보태고 있다. 민씨는 “보통의 주부로 지내다가 남편이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지역구를 관리하는 등 정치인의 아내로서 역할을 해왔다. 이제 대통령 후보가 되니까 규모가 지역에서 전국으로 넓어졌고 역할도 더 커져 책임감을 느낀다”라고 밝혔다.
현재 정후보가 핵심 슬로건으로 내건 ‘가족행복 시대’에 맞추어 행복을 전파하는 전도사로서 선거운동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정후보에 이은 ‘행복배달부’ 2호이기도 한 그녀는 “주부가 행복해야 가족이 행복하고 가족이 행복해야 나라가 행복해진다. 여성이 더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남편의 약속을 함께 지켜나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가족행복의 시작은 ‘돌봄’과 ‘섬김’에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아이들’을 돌보고 ‘어른들’을 섬기는 것이 가족행복 시대를 열어나가는 첫걸음이라는 설명이다. 평소 고아원과 양로원을 찾아 봉사 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녀는 “앞으로 많은 분들을 만나 애로 사항을 듣고 또 이를 해결함으로써 행복 배달부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갈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최근에는 ‘민혜경의 행복우체통’이라는 블로그에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은 ‘행복 일기’를 올리고 있다. 그녀는 자신을 ‘욱진·현중이 엄마, 그리고 정동영 후보의 아내, 더불어 행복하고 가족이 행복한 시대를 살고 싶어하는 대한민국 여성이다’라고 소개했다. 민씨는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생활한다”라고 말한다. ‘긍정의 힘’이 ‘전략의 힘’보다 클 것이라는 설명도 뒤따랐다.
정후보의 건강을 위해서 아침식사를 꼭 챙겨주고 매일 보온병 4~5개에 버섯물과 오미자차를 넣어 보낸다. 그녀는 “남편은 큰 귀를 가진 사람이다. 나도 많이 듣겠지만 남편이 더 많이 듣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김윤옥씨, ‘건강 관리’에서 ‘쓴소리’까지 마다하지 않아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부인 김윤옥씨는 재래시장과 같이 주로 서민들이 생활하는 삶의 터전을 찾아 이들의 어려움을 경청하는 한편 ‘경제 대통령’을 강조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김씨는 “장사가 안 되고 경제가 너무 어렵다고 이구동성으로 말씀하신다. ‘제발 경제 좀 살려 달라’는 당부를 들을 때마다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올해 대선에서 정말 경제를 살릴 지도자를 뽑아서 내년부터는 모두가 지금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후보 내외는 일찍부터 ‘사장님’과 ‘사모님’으로 지낸 탓에 서민적 정서와 거리가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자녀 위장 전입이나 명품 핸드백 사건 등이 이러한 비판을 키웠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오해에서 비롯된 선입견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후보 비서실 관계자는 “재래시장에 가보면 반응이 좋아서 오히려 기운을 얻고 돌아온다”라고 전했다.
이후보가 대선 출마를 결심했을 때부터 최선을 다해 돕기로 마음먹었다는 김씨는 “정책이나 이런 것들은 잘 모르지만 남편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앞으로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남편의 좋은 점을 알리고 지지를 호소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이후보의 건강을 책임지는 것도 그녀의 몫이다. 김씨는 이화여대 보건교육과를 졸업했다. 그녀는 결혼 후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이후보가 회사에서 일하면서 간염에 걸렸을 때로 기억했다. 절대적인 휴식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이후보가 좀처럼 일손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병원으로 출퇴근하며 치료를 받았는데 신기하게도 일하면서 병이 다 나았다고 한다. 당시 27세의 젊은 주부였던 김씨도 남편의 완쾌를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은 물론이다.
최근에는 목이 안 좋은 이후보를 위해 아침마다 생강, 대추, 배 등을 손수 달여 수시로 마실 수 있도록 준비해놓고 있다. 김씨는 “남편은 즐겁게 일하면서 스트레스도 병도 이기는 사람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건강하게 또 자신감을 가지고 일 할 수 있도록 내조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이후보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주변에서 쉽게 하지 못하는 ‘쓴소리’가 담겨 있다. 정치적 조언자 역할인 셈이다. 이후보가 경제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동안 김씨도 모교인 이화여대를 비롯해 연세대, 숙명여대에서 여성지도자 과정을 수료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의 부인 강지연씨(65)에게는 ‘강지연 여사’보다 ‘강지연 당원’이 더 익숙하다. 강씨는 권후보의 최측근 당원이자 오랜 동지이다. 서로 부르는 호칭도 집 바깥에서는 ‘우리 후보’와 ‘강지연씨’이다. 권후보에 대해 강씨는 “같은 당원으로서 말하자면 ‘함께 세상을 바꿔나갈 동지’이고 개인으로서 이야기한다면 ‘한결같은 옆지기’이다”라고 설명했다.
동방생명 창업주의 무남독녀로 태어나 이화여대 교육학과를 졸업한 부잣집 규수였던 강씨는 권후보와의 만남이 “또 다른 세상이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라고 말했다. “힘들던 시기에 전쟁고아들을 모아서 가르치는 모습에서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무엇인지 보게 되었다”라는 설명이다.
강씨는 최근 100만 민중대회에 참석했다 구속된 한 당원의 세탁소 일을 도와주는 한편,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와 영세 사업자들과의 간담회를 자주 갖는다. 주로 창원에서 지역 활동을 해온 그녀는 기존에 여성단체와 사회단체를 맡아 하던 역할이 있기 때문에 권후보와 함께 하는 일정은 많지 않다고 한다.
권후보는 이번이 세 번째 대선 출마이다. 강씨는 하지만 “이인제·이회창 후보와 같은 선상에 두고 말하는 것은 곤란하다”라고 말했다. “권후보는 불법 정치자금 문제로 감옥 대신 정계를 은퇴했던 후보도 아니고, 경선에 불복하고 당을 나오는 정치인도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녀는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권후보에게 “당원이자 당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으로서 ‘당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 있고 그것이 당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이라면 하라’고 했다. 반대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평소에도 이와 같은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강씨는 “권후보도 사람이니까 고민도 많이 하고 자신감이 떨어질 때도 없지 않다. 그러면 내가 ‘마음을 비우고 평소처럼 하면 된다’라고 말해준다. 아침 저녁으로 얼굴을 마주하는 유일한 당원으로서 후보에게 실질적인 조언을 해드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특히 권후보가 일단 결정을 하고 난 후에는 과감히 밀어붙일 수 있도록 정서적인 지원 또한 아낌없이 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민주당 이인제 후보의 부인 김은숙씨(58)는 ‘정치인 이인제’의 참모 역할을 해왔다. 경기도지사 시절에는 ‘경기도의 힐러리’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로 대외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시기에 곁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은 ‘정치적 동지’였던 셈이다.
김씨는 중학교 3학년 때 학생모임에서 이후보를 처음 만났다. 이후보가 경복고, 김씨가 대전여고로 각각 진학한 후에도 편지로 만남을 이어갔으며, 이후보가 징집영장이 나오자 입대 3일 전 결혼식을 올렸다. 공주교대 졸업 후 7년간 교사 생활을 한 뒤 줄곧 이후보를 뒷바라지해온 그녀는 “남편의 건강이 최우선이고 또 가정이 화목해야 바깥일도 잘 할 수 있다”라며 정치인 아내로서의 ‘내조’를 강조했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는 “정치 탄압으로 남편이 감옥에 갔을 때”를 꼽았다. 이후보는 2002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으로부터 2억5천만원을 받은 협의로 구속된 적이 있다. 당시 부인에게 “당신 없는 삶이란 상상도 할 수 없다”라는 옥중 편지를 보내기도 했던 이후보는 이후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고 이번에 세 번째 대권 도전에 나섰다.
이후보의 대선 출마에 대해 김씨는 “남편은 항상 국민을 먼저 생각하고 또 공부해왔다. 내가 가타부타 이야기할 입장은 아니고, 뒤에서 적극적으로 후원만 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남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을 찾아다니면서 조용히 어려운 사람들의 고충을 함께 나누고 있다”라며 여성·교육 문제 등에 관심이 많다고 밝혔다.

한인옥씨, 그림자 내조 펼치며 ‘불심 잡기’ 공들여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의 부인 박수애씨(53)는 당초 문후보의 출마를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고경영자로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온 경제인의 아내로 살아온 박씨가 안정된 삶을 마다하고 새로운 도전에 나서겠다는 남편을 지켜보면서 여러 가지 걱정이 앞선 것은 당연해 보인다. 이후 깊은 대화 끝에 결국 “남편을 국민 여러분께 양보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라고 한다.
평소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인 그녀는 대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문후보와 함께 현장을 찾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선거운동 첫날에는 다일공동체 무료 급식 배식 봉사를 한 후 다일천사병원을 방문해 청량리 노숙자와 이주 노동자 환자들을 위로했다. 마침 이날 생일을 맞은 박씨는 주변의 축하에 “태어나서 가장 의미 있고 행복한 생일이다”라며 감격해 했다.

 

무소속 이회창 후보의 부인 한인옥씨(69)는 공식적인 유세 활동을 최대한 삼가면서 ‘그림자 내조’를 선보일 예정이다. 드러내기보다는 이후보가 직접 가지 못하는 곳을 찾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캠프에서도 한씨의 구체적인 활동 계획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법관의 딸로 경기여고·서울대를 나온 한씨는 ‘대쪽’ 공직자의 아내 역할을 묵묵히 지켜왔다. 지난 두 차례 대선을 치르면서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1997년 대선에서 ‘남편보다 경쟁력 있는 부인’이라는 평을 받았다. 반면 2002년 대선 당시 각종 의혹에 시달리면서 남다른 고통을 겪기도 했다.
이번 대선에서는 ‘불심 잡기’에 공을 들이는 분위기이다. 11월27일 서울 수유동 화계사에서 열린 숭산 스님 3주기 추모 다례제에 참석한 후 다음날에는 경남 남해와 전남 구례·여수, 전북 순창 지역의 주요 사찰을 찾았다. 한나라당 텃밭인 영남권에 불교 신자가 많은 데다가 ‘보수 대표’를 놓고 맞선 이명박 후보가 상대적으로 불교계 지지가 약하다는 측면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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