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발디에서 바흐까지 ‘클래식 여행’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 승인 2007.12.24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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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부터 이무지치 <사계> 등 줄줄이 공연…비올라 다감바 등 원전 악기도 인기 이어갈 듯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클래식 곡 가운데 하나는 비발디의 <사계>이다.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도 TV 화면조정 시간이나 백화점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사계>에 익숙해져 있을 것이다. 클래식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도 가수 이현우의 <헤어진 다음날>을 알고 있다면 이미 <사계>에 익숙해져 있다. 그만큼 <사계>는 대중적인 레퍼토리로 국내에서도 폭넓게 인기를 끌고 있다.
때문에 해마다 지명도 있는 단체나 개인의
<사계> 연주는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만 해도 2006년 4월에는 이무지치가, 2007년 6월에는 비발디의 <사계>에 피아졸라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사계>를 더해 <팔계(eight seasons)> 음반을 내면서 클래식의 범위를 한 뼘 더 넓힌 기돈 크레머가 찾아와 큰 호응을 얻었다. 2008년 음악계 주요 공연 레퍼토리에도 어김없이 <사계>가 들어 있다. 아니 <사계> 카테고리를 따로 분류해도 될 정도로 지난해보다 더욱 다양한
<사계> 메뉴가 올라와 있다. <사계>로 유명해진 스타급 연주자들이나 유명 연주인이 <사계>를 들고 줄줄이 방한하는 것.
먼저 포문을 여는 사람은 원조 <사계> 스타 이무지치이다. 이들은 잊혀졌던 비발디의 사계를 전세계에 다시 알린 실내 악단이다. 클래식 올드팬과 일반인들에게 <사계> 연주의 기준으로 받아들여지는 이무지치는 오는 3월14일 고양 아람누리 음악당에서, 3월28일에는 예술의전당에서 <사계>를 연주한다. 서울 무대에서는 기돈 크레머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피아졸라의 탱고 작품을 올려 눈길을 끈다. 곡목은 <오블리비온>.
이어 원전 악기의 선구자로 유명한 지기스발트 쿠이켄과 그의 악단인 라 프티트 방드의 내한 공연이 열린다. 최근의 원전 악기 연주 붐을 타고 고음악 단체들이 각광받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은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5월21일 열리는 이날 공연에는 비발디의 <사계>를 비롯해 모두 비발디의 작품으로 연주 목록이 채워져 있다.
이번 공연에서 첼로의 원형으로 불리는 고악기가 등장할지 여부도 관심거리이다. 그 다음 달에는 카라얀이 발탁한 천재 소녀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가 연주하는 <사계>가 이어진다. 이미 중년(46)의 나이지만 그녀는 젊은 시절 카라얀(빈필)과 함께 <사계>(EMI)를 발매한 적이 있다. 6월4일 예술의전당 무대에서 무터와 함께 연주하는 카메라타 잘츠부르크는 원전 음악 연주로 이름이 높다. 이들은 지난 2006년 10월 LG아트센터에서 열린 내한 공연에서는 모차르트의 곡만으로 연주회를 꾸려 호평을 받기도 했다. 별도의 지휘자를 두고 있지 않은 카메라타 잘츠부르크는 이번에는 무터의 선도 아래 비발디의 <사계>를 연주한다. 재미있는 점은 무터의 무대가 열리기 사흘 전 같은 장소에서 사라 장과 오르페우스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열린다는 것이다. 사라 장과 오르페우스 조합은 지난해 <사계> 음반을 발매하고 월드투어를 가졌다. 이들이 지난해 5월 국내에서 <사계> 라이브 공연을 가졌을 때는 비교적 호평을 받았지만 이후 하반기에 열린 해외 공연에서 혹평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원전 악기 연주 붐 타고 고음악 단체 각광

 
2008년 6월1일 무대에서 사라 장이 <사계>를 연주한다면 무터의 <사계>와 비교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겠지만, 사라 장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비켜갔다. 이어 늦가을에는 <사계> 레퍼토리의 강자들이 찾아온다. 이탈리아의 실내 악단인 이무지치가 <사계>를 재발굴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음반으로 만들었다면 줄리아노 카르미뇰라나 파비오 비온디는 1990년대 들어 새로운 세대의 <사계>로 자리매김하며 큰 인기를 모았다.
줄리아노 카르미뇰라는 오는 10월2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함께 무대에 선다. 이날 공연의 구체적인 연주 곡목은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개량되기 이전의 시대 악기를 연주하는 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카르미뇰라가 함께 연주할 곡에 비발디의 곡, 그중에서도 <사계>가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지휘자로 나선 안드레아 마르콘이 그의 지휘 아래 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카르미뇰라가 함께 참여한 소니 레이블에서
<사계> 음반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어 11월2일에는 파비오 비온디와 에우로파 갈란테의 내한 공연이 뒤를 잇는다. 버진 레이블에서 발매된 파비오 비온디의 <사계> 음반은 요즘 국내에서 가장 대중적인 <사계> 음반으로 평가받고 있다. 두 번째 내한 공연인 이번 LG아트센터 공연에서는 비발디의 비올라 다모레와 류트를 위한 협주곡과 헨리 퍼셀의 곡이 올려진다. 하지만 지방 공연에서는 <사계>를 연주할 것으로 알려졌다.
비발디로 대표되는 바로크 음악에 대한 국내 팬들의 사랑은 최근에는 쿠프랭이나 마랭 마래 등 남유럽 정서를 담고 있는 고음악 열풍으로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지난해 내한했던 원전 악기 비올라 다감바의 연주자이자 르 콩세르 데 나시옹의 지휘자인 조르디 사발과 트레버 피노크가 2008년에도 찾아온다.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의 영화 음악을 담당했던 조르디 사발은 영화 OST가 히트하며 대중적인 인지도를 넓혔다. 덕분에 바이올린보다 두텁고 안온한 음색을 지닌 비올라 다감바가 박물관 유리장에서 걸어나왔다.
18세기 전반 이전, 유럽 음악의 주도권이 아직 이탈리아와 프랑스에 있던 바로크 시대에 널리 쓰였던 비올라 다감바는 이후 대중에게서 멀어져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는 신세가 되었다. 이를 되살려낸 이가 사발이다.
그는 마랭 마레나 쿠프랭의 고음악을 라이브 무대에 올려 인기 레퍼토리로 만들고 끊임없는 레코딩을 통해 비올라 다감바의 인기를 끌어올리고 있다.
사발은 2007년 내한 공연에서는 르 콩세르 데 나시옹과의 무대 외에 비올라 다감바 개인 리사이틀 무대를 가질 정도로 국내에서도 탄탄한 지명도를 갖고 있다. 사발은 2008년 12월2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다시 선다. 이번에도 헨델의 <왕궁의 불꽃놀이>나 퍼셀, 바흐 등 바로크 시대의 우아한 감미로움을 연주한다.
비올라 다감바와 비슷한 운명을 겪은 악기로는 하프시코드를 들 수 있다. 하프시코드는 바흐나 스카를라티, 모차르트 등 18세기 후반 이전에는 음악가들이 즐겨 연주하고 노래를 만들었던 건반 악기였지만 19세기 이후에는 피아노에 자리를 내주고 서양 음악사에서 ‘윗방 큰애기’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들어 다시 하프시코드에 대한 대중적인 인기가 되살아났다. 지난 4월 내한 공연을 가진 트레버 피노크와 10월에 열린 바흐페스티벌에 참가한 피에르 앙따이의 하프시코드 독주회는 모두 좋은 반응을 얻었다. 앙따이는 사발과 함께 <세상의 모든 아침> 연주에 참여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바흐 팬들에게는 2~3월이 하이라이트

 
2008년에는 하프시코디스트 트레버 피노크와 리처드 이가가 찾아온다. 피노크는 이번 방한에 듀오 리사이틀을, 이가는 2008년에만 무대를 두 번 갖는다. 먼저 오는 6월14일에는 리처드 이가가 앤드류 맨지와 함께 LG아트센터 무대에 선다. 맨지는 트레버 피노크의 후임으로 잉글리시 콘서트의 예술감독을 지낸 바로크 바이올린 연주자. 이번 무대에서는 바흐의 소나타와 코렐리의 작품을 연주한다.이가는 지난 가을 2007년 그라모폰상 바로크 기악곡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고음악 아카데미와 함께 작업한 헨델의 콘체르토 그로소 작품 3번이 수상한 것. 물론 이가와 맨즈는 듀오로 함께 연주한 레코딩도 발매하고 있다. 지금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고음악 연주자들의 라이브를 들을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이가는 오는 10월에 다시 한 번 내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라모폰상을 받은 이가는 아카데미오브에인션트뮤직과 함께 무대에 서서 텔레만과 헨델의 음악을 들려줄 예정이다.
2007년 4월 유러피안브란덴브루크앙상블과 내한해 퍼셀의 <요정의 여왕> 모음곡과 바흐의 브란덴브루크 협주곡 1번을 들려주었던 트레버 피노크는 2008년 12월에는 플루트 연주자인 엠마누엘 파후드와 짝을 맞춰 예술의전당 무대에 선다. 역시나 바흐의 플루트 소나타 등 바로크 작품. 파후드는 이에 앞서 10월에도 연주 일정이 잡혀 있다.
 LG아트센터 기획 공연 프로그램 중 하나로 파트너는 호주 체임버 오케스트라. 플루트 협주곡 사상 가장 초기의 곡으로 꼽히는 비발디의 협주곡이 연주곡 목록에 올라 있다.
바로크 음악, 그중에서도 바흐 팬들에게는 오는 2~3월이 하이라이트이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성토마스 합창단이 바흐의 종교 음악을 서울과 일산에서 연주한다. 2월27일에는 예술의전당에서 <B단조 미사곡> 전곡을, 28일에는 고양 아람누리 음악당에서 <마태 수난곡>을 연주한다.
재미있는 점은 28일 당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는 영국 계몽시대 오케스트라가 내한해 클레어 칼리지 합창단과 함께 바흐의 <요한 수난곡> 전곡을 올린다는 것이다. 바로크 음악이나 원전 악기 연주에 관심 많은 팬들에게는 괴로운(?) 선택을 강요하는 스케줄인 셈이다.
3월21일 호암아트홀에서 열리는 존 홀러웨이의 무반주 바로크 바이올린 독주회도 주목할 만하다.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 중에서도 손꼽히는 연주자로 통하는 그가 이번 연주에서 바흐의 <파르티타 2번>을 연주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2008년 클래식 공연계는 비발디-바흐-바로크-원전 악기라는 키워드로 통하는 이슈가 가장 강력하다고 볼 수 있다. 초심자는 초심자대로, 애호가는 애호가대로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메뉴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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