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웅 특검 ‘진검’일까, ‘목검’일까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 승인 2007.12.24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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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통 이미지에 삼성 관리 대상 의혹으로 ‘잡음’ “변협의 반노·반민변 정서 산물” 지적도 나와

세 명의 특별검사 후보 가운데 조준웅 변호사가 12월20일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삼성 특검 임명장을 받았다. 대선 다음날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동안 삼성 특검에 대한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에 비한다면 이날 특검 선임에 대한 반응은 다소 맥이 빠질 정도로 조용한 편이었다. 이미 12월17일 대한변협이 검찰 출신만으로 세 명의 특검 후보를 발표하면서 특검 선정에 대한 긴장감을 완전히 떨어뜨려놓았기 때문이다.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정의사제단), 그리고 민변측은 “수사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검찰 출신의 특검은 받아들일 수 없다”라며 재추천을 요구했다. 민변 소속의 한 변호사는 “세 명의 후보라면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검찰 출신 외에 판사, 재야변호사 출신들로 다양하게 추천했어야 옳다. 모두 검찰 출신만으로 채운 것은 변협의 노골적 횡포나 다름없다”라고 비난했다.
이날 특별검사로 결정된 직후 조특검은 “두려운 것은 전혀 없다. 철저히 수사하겠다”라며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일각의 반대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그는 “특검은 수사 위주가 되고 수사 경험과 능력이 더 중요하다. 특검이 판사 출신이냐 재야 출신이냐를 따지는 것은 적절치 않다”라고 강조했다.

 

“검찰 출신 후보만 추천한 것은 변협의 횡포”

이런 자신감에도 불구하고 ‘조준웅 특검’의 향후 행로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수사의 한 축인 김변호사측이 조특검에 대한 불신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 축인 삼성 역시 어떻게 하든 특검 수사에 비협조적인 자세로 일관할 것은 뻔한 일이고 보면 조특검은 만만찮은 ‘거물’과 고분고분하지 않은 ‘인물’들을 상대로 힘겨운 일전을 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의사제단과 민변측에서 조특검의 경력 가운데 가장 크게 문제 삼는 부분은 오랜 공안 검찰 생활로 인한 경직성과 부장검사 및 차장 시절 서울지검 근무 경력이다. 특히 조특검이 공안 검사로 활약하던 지난 1970년대에 그에게 수사를 받았던 한명숙 전 총리, 장상환 경상대 교수 등은 그에 대한 ‘불유쾌한’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오마이뉴스(12월17일)에서 ‘1979년 크리스찬아카데미 사건’ 당시 조변호사에게 수사를 받은 바 있던 한 전 총리는 그를 “냉전적 사고방식이 투철한 반공 투사”라고 표현하고 있다. 장교수도 그를 가리켜 “박정희 정권 유지에 맹렬한 사람이었다. 심지어 피의자들을 협박한 적도 있다”라는 내용의 인터뷰를 실었다. 장교수는 그가 삼성 특검에 임명된 것에 대해서도 “군사 독재적 사고방식에 젖어 기득권 옹호에 앞장섰던 공안 검사가 ‘삼성 이건희 왕국’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비판적 시각을 표출했다.
조특검은 평검사 시절인 유신 시대에 긴급조치 사건에도 관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 초 진실화해위원회에서 긴급조치 사건을 대표적 인권 침해 사건으로 규정한 바 있는데 그때 조특검의 이름도 거론된 것이다. 그는 1987년 대검 공안2과장을 시작으로 부산지검 공안부장, 대검 공안기획관, 서울지검 공안2부장, 1부장 등을 두루 거쳤다. 당시 각 언론에서 ‘공안통’ 검사들을 거론할 때마다 그는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서울지검에서 근무해 적절치 못한 인물?

민변 사무차장인 송호창 변호사는 “조특검의 경력상의 문제는 단지 그가 공안 검사 출신이라는 것보다는 서울지검에서 오랜 간부 생활을 했다는 점이 더 크다. 서울지검 간부들은 삼성의 관리 대상이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조특검은 1992년과 1993년 각각 서울지검 공안2부장과 공안1부장을 거쳐, 1994년에는 서울지검 1차장을 지냈다. 1995년 서울지검 동부지청장을 맡아 2년의 임기를 끝내고 1997년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조특검은 진종채 전 2군사령관의 사위이기도 하다. 육사 8기 출신의 진 전 사령관은 하나회 후배들의 비호 세력이었다. 조특검이 1993~1994년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대상으로 한 ‘12·12 쿠데타’ 사건을 수사했을 때 자신의 장인이 수사 대상으로 부각되자 도중에 수사팀에서 빠지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이외에도 조특검의 특이한 이력은 눈에 띈다. 그는 1959년 부산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 생활을 하던 중 다시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서 서른이 훌쩍 넘은 1970년 사시(12회)에 합격해 검찰에 입문했다. 최연장자인 그는 동기들보다 나이가 많게는 7~8세가 더 많았다. 주변 동기들에게 ‘폭탄주의 거성’으로 불릴 정도로 그는 말술의 술 실력을 자랑하는 호방한 성격으로 기억되고 있다. 전형적인 검찰 기질의 소유자라는 평이 그것이다. 
그는 DJ 정권 때인 2001년 5월 인천지검장을 끝으로 옷을 벗었다. 당시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겠다”라며 스스로 사표를 제출했으나 실제로는 신승남 검찰총장 등 윗선에서 호남 출신만 챙기는 내부 분위기에 반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경남 함안 출신이다.
또 다른 특검 후보였던 고영주 변호사 역시 ‘공안통’ 검사로 DJ 정권과 현 정부에 대립각을 세우며 옷을 벗었다. 이런 분위기 탓에 당초 노대통령이 세 명의 후보 중 껄끄러운 이들 두 공안 출신보다는 비교적 ‘무난한’ 정홍원 변호사를 선택하리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는 현 정부에서 장관급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냈다. 하지만 정변호사는 현재 삼성측 사건을 상당 부분 맡고 있는 로펌인 로고스 소속이라는 결정적 하자를 안고 있었다.
애당초 변협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쪽으로 특검 후보를 몰고 갔다는 법조계 일각의 비난은 그래서 나온다. 보수 성향의 인사들이 장악하고 있는 현재의 변협과 서울지방변호사회의 ‘반노, 반민변’ 성향이 그대로 표출된 결과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상자 기사 참조)

김용철 변호사 “수사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

민변 주변에서 “처음부터 특검 후보 추천권을 대법원장에게 부여했어야 옳았다”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용훈 대법원장은 변호사 시절 삼성 사건을 상당 부분 수임한 전력이 있었기에 이 또한 적절치 않다는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민주노동당측은 “당초의 안은 국회의장이 특검 후보 추천위원회를 설치하고 거기서 추천하는 것이었는데, 한나라당과 합의하는 과정에서 그만 특검 후보 추천권을 변협에게 양보한 것이 큰 실수였다”라고 아쉬워하고 있다.
그나마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삼성 비자금 수사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낸 것으로 밝혀지면서 이 분위기가 향후 특검 수사에도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낳고 있다. 박한철 본부장은 “차명 계좌를 상당부분 확인했고, 비자금 규모를 밝혀냈다. 김변호사의 폭로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되었다”라고 밝혔다. 
12월20일을 기점으로 검찰 특본은 해체되고, ‘조준웅 특검’이 떴다. 민변의 송호창 변호사는 “(특검 인선에) 불만은 있지만 그래도 향후 특검 수사를 지켜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라고 밝혔다.
김용철 변호사 역시 특검 임명 전인 12월18일의 한 인터뷰에서 “검찰이 지금처럼 수사를 진행한다면 굳이 특검을 선정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검찰 수사가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 특검은 검찰 수뇌부를 향한 로비에 대해 수사해야 하는데, 검찰 고위직 출신이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며 불만을 드러냈으나, 이후 조특검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는 애써 자제하고 있다. 향후 특검 수사에 미칠 부작용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조특검과 김변호사측의 신경전이 시작되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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