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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유출 사고, 대기업 책임 왜 안 묻나?”

현지 주민들 “‘태안 사고’라니? ‘삼성·현대 사고’지” 반발…경찰, 당초 “쌍방 과실”에서 “삼성 책임 큰 측면 있다” 입장 바꿔

충남 서산·태안/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 ㅣ 승인 2008.01.02(Wed) 12:3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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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황문성
 
검찰의 BBK 사건 수사 결과 발표에 따른 파장으로 정치판이 한바탕 요동치던 지난해 12월6일. 모든 관심이 대선 정국에 쏠린 가운데 우리의 서쪽 바다 한 편에서는 대재앙의 서곡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었다.
이날 오후 2시50분께 1만1천8백28t짜리 대형 크레인 부선 ‘삼성1호’가 인천항을 출발해 남쪽으로 향했다. 인천대교 공사 작업을 마치고 경남 거제로 향하는 운항이었다. 크레인 부선은 자체 동력이 없기 때문에 주예인선 ‘삼성T-5호’와 보조 예인선 ‘삼호T-3호’ 두 척에 의해 와이어로프로 연결된 채 이동되고 있었다. 그 앞에는 연락선 ‘삼성A-1호’가 있었다. 문제의 예인선단은 이렇게 모두 삼성중공업 소속의 선적 네 척으로 구성되어 남쪽으로 항해하고 있었다.
이날 기상청은 ‘서해상에 차차 날씨가 흐려져 비와 눈이 오고 강풍이 예상된다’라고 기상예보를 발표했다. 출발할 때만 해도 그다지 심하지 않았던 파도는 기상청 예보처럼 날이 어두워질수록 점차 높아졌고, 해상 기후는 점점 악화되기 시작했다. 시간이 자정을 넘어 12월7일 새벽으로 넘어갈 즈음 예인선단은 충남 서산시 대산항을 지나고 있었다. 이때 바다는 이미 초속 35노트의 강풍 속에 최대 3m 높이의 파도가 솟구치고 있었다. 기상청에서는 새벽 3시 풍랑주의보를 발효시켰다.

사고 경위 재구성해보면 삼성 예인선단에 과실 많아

예인선을 이끌던 삼성T-5호의 조 아무개 선장(51)은 고심했다. 악천후를 뚫고 항해를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뱃머리를 되돌려 인천항으로 돌아갈 것인지, 인근에서 임시 정박할 것인지 여부를 선택해야 했다. 결국 예인선단은 남쪽으로의 계속 항해하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상황은 갈수록 나빴다. 급기야 오전 5시께 충남 태안군의 신도 인근을 지나면서는 크레인 부선이 강풍과 파도에 밀리면서 예인을 어렵게 만들었다. 조선장은 삼성T-5호(2백92t)의 25배에 달하는 거대한 크레인 부선이 이리저리 파도에 휩쓸리고 흔들리는 것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었다.
예인선단은 서서히 항로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연안 먼 길로 돌아가야 했던 예인선단은 연안 쪽으로 떠밀려오기 시작했다. 때마침 바람도 강한 북서풍이 불어대고 있었다. 예인선단의 항해 방향과는 정반대로 몰아치고 있었다. 모든 상황이 최악이었다. 예인선단은 점점 태안반도 쪽으로 떠밀려갔다.
대산지방해양수산청 관제센터가 상황의 심각성을 직감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무렵인 12월7일 오전 5시께였다. 그 시간 태안군 만리포 북서방 5마일 해상에 14만6천8백48t짜리 거대 유조선 한 척이 정박 중이었다. 홍콩 선적 ‘허베이 스피리트호’였다. 이 배는 지난해 11월 중순 아랍에미리트에서 원유 26만㎘를 싣고 한국을 향했다. 목적지인 대산항 현대오일뱅크 해상유류 하역 시설에 접안이 예정된 시각은 7일 오후 2시였다. 유조선은 대산항 접안을 앞두고 전날 저녁 7시 반께 신도 남서방 5마일 해상에 닻을 내리고 잠시 정박 중이었다.     
대산해양청 관제센터는 긴장했다. 자칫 예인선단과 유조선 간의 대형 충돌이 빚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관제센터는 5시23분 예인선단의 삼성T-5호와 삼호T-3호, 삼성A-1호에 일제히 무선 호출을 시도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세 배는 모두 약속이나 한 것처럼 전혀 응답하지 않았다. 다급해진 관제센터는 수소문 끝에 겨우 6시20분께야 삼성T-5호의 조선장과 휴대전화 통화에 성공했다. 첫 교신을 시도한 지 약 1시간 만이었다. 관제센터측은 휴대전화 통화에서 “서쪽 방향으로 대형 유조선이 정박 중에 있으니 조심하라”라는 경고 안내를 했다. 그리고 그 직후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에도 “예인선단이 파도에 휩쓸려오고 있어 충돌 위험이 있으니 배를 이동시켜라”라고 전했다.
하지만 관제센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인선단은 계속 서쪽으로 떠밀려왔고 정박 중이던 허베이 스피리트호는 이동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관제실은 6시 반부터 7시 사이에 재차 “이동하라”라고 지시했으나 허베이 스피리트호는 “이동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예인선단이 통과하면 이동하겠다”라고 답변했다. 허베이 스피리트호는 예인선단이 유조선을 향해 그대로 돌격하리라는 것은 상상도 못한 것이다. 또한 기상 악천후로 섣불리 이동하기보다는 예인선단의 운항 경로를 보아가며 이후 안전지대로 선박을 옮기려는 속셈이었다. 관제센터 역시 해상 현지의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선장들의 노련한 판단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관제센터와 허베이 스피리트호측의 ‘설마’하는 안일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재앙을 부르고 말았다. 삼성T-5호와 크레인 부선 삼성1호를 연결해주던 와이어로프가 그만 끊어지고 만 것이다. 6시52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토록 통신두절이던 예인선단측의 삼호T-3호는 그때서야 관제센터에 “통제 불능 상태이니 유조선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달라”라는 다급한 신호를 보내왔다. 6시56분께였다. 
그러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형 유조선이 몇 분 만에 움직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와이어로프가 끊긴 채 통제 불능이 된 크레인 부선은 파도에 떠밀려 그대로 그 육중한 선체가 유조선의 한 쪽을 강타했다. 정확히 오전 7시6분에 일어난 일이었다.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양 선박의 충돌이 계속되었고 태안 앞바다에 검은 기름 1만2천여 ㎘가 속절없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상은 이번 대재앙의 사고 당시 경위를 태안해양경찰서 관계자의 설명과 수사 내용, 대산해양청 관계자의 설명과 관제센터의 교신 기록 및 레이더 항적도, 그리고 기상청의 기상 상황 등을 종합해 재연한 것이다. 비단 서해 일부 해상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를 암흑으로 몰고 간 ‘삼성 크레인의 충돌로 인한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 유출 사고’는 이렇게 발생했다.

악천후 속 선박 운항을 선장 혼자 결정했을까

   
 
ⓒ연합뉴스
 
이번 사고를 접한 전문가들은 “귀신에 홀리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라며 놀라워하고 있다. 마치 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전제로 잘 구성된 한 편의 영화 시나리오를 보는 것 같다는 설명이다. 류청로 부경대 해양공학과 교수는 “예인선단의 배 세 척은 왜 하나같이 관제센터의 교신에 동시에 응하지 않았을까. 또 유조선은 왜 미리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고 계속 정박을 고집했을까. 또 끊어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와이어로프가 그 시점에서 어떻게 끊어질 수 있을까. 어느 하나만 어긋났어도 이같은 대형 참사는 피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었는데도 이 모든 삼박자가 동시에 정확히 맞아떨어졌다”라며 어이없어 했다.
태안해경의 최상환 서장은 대선 다음날인 12월20일 “크레인선단은 관제실의 비상 호출에 응답하지 않아 안전 조치 의무를 위반했고, 유조선 또한 사고 위험성을 인지하고도 이를 사전에 피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라며 쌍방 과실의 책임이 있다는 요지의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예인선단 삼성T-5호의 조선장과 삼호T-3호의 김 아무개 선장(45), 크레인 부선의 김 아무개 선장(39), 그리고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 선장인 인도인 숄 싱 등 네 명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모두 해양오염방지법 위반 혐의였고, 삼성 예인선단 선장 3명에게는 업무상 과실 선박 파괴 혐의가 추가되었다.
하지만 태안해경의 수사 발표는 환경 관련 시민단체와 해양 전문가들의 많은 반발과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가장 많은 비난이 집중된 것은 이번 사고를 예인선단과 유조선 양측의 쌍방 과실로 두루뭉술하게 처리했다는 점과 예인선단의 선주인 삼성중공업과 유조선의 화주인 현대오일뱅크 등 대기업의 책임을 전혀 묻지 않았다는 점 등이었다. 결국 검찰은 수사 발표 다음날인 12월21일 곧바로 태안해경측에 재수사를 지시했다. 
류교수는 “엄밀히 따지면 1차적인 책임은 유조선보다는 크레인을 이끈 예인선단에 있다고 봐야 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운항을 한 책임이 우선 크고, 무엇보다도 관제센터의 지시에 효율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항해 선박의 기본 의무마저도 이행하지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지적은 경찰 관계자들도 인정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교통사고와 단순 비교해봐도, 가만히 주차 중인 차량을 운행 중인 다른 차량이 차선까지 이탈해가며 들이받았다고 한다면 그 과실이 누구한테 있을 것인지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설사 주차 차량이 불법 주차 위치에 있었다고 해서 그것을 문제 삼아 왜 빨리 피하지 않았느냐고 잘못을 물을 수는 없다”라고 지적했다. 
환경운동연합의 안병옥 사무총장은 “7일 새벽 서해 중부 해상에 풍랑주의보가 내려진 상황에서 선박 운항을 단순히 선장 한 사람이 모두 결정할 수 있는 문제인가 하는 점에 의문이 있다. 예인선 소유 회사의 지시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 아닌가.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무리해서 인천에서 거제까지 운항을 감행한 경위를 밝혀내야 함에도 수사 당국이 당초에는 삼성중공업측을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태안 현지 주민들도 “이번 기름 유출 사고의 주범은 사실상 삼성중공업인데 신문과 방송에서는 마치 자연 재해인 것인 양  ‘태안 기름 유출’ 사고라며 태안의 이미지만 깎아내리고 있다”라고 분개했다. 다소 어정쩡한 수사 결과를 내놓았다가 여론의 호된 뭇매를 맞은 태안해경측도 뒤늦게 삼성중공업 관계자를 소환해 조사하고 있다. 수사가 진행되면 될수록 의혹은 사고 당시 삼성중공업 소속 예인선단의 이해하기 힘든 행적에 그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첫 번째 의문점은 예인선단의 배 세 척이 왜 하나같이 모두 대산해양청 관제센터의 무선 호출에 응답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대산해양청의 한 관계자는 “지금껏 오랫동안 이 분야에서 근무해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 간혹 항해 중인 배가 자체 무선통신 채널 주파수로 교신한 이후 미처 사고 재난용 공용 교신 채널인 VHF 16번으로 돌려놓는 것을 깜빡 잊은 채로 있어 교신이 안 되는 경우는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세 척의 배가 동시에 모두 다른 채널에 교신 주파수를 맞춰놓는 실수를 범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기상 상태가 그날처럼 악천후 상황이었다면 당연히 관제센터와 주파수를 맞춰놓아야 하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다”라고 밝혔다.
   
 
ⓒ시사저널 황문성
 

태안해경, 여론 뭇매에 삼성중공업 관계자 소환해 조사

이에 대해 삼성중공업측은 “당연히 무선통신 채널이 16으로 맞춰져 있었지만, 7일 오전 4시께 회항을 결정하고 이를 시도하는 과정에서의 상황이 더 다급했기 때문에 받지 못한 것일 뿐이다”라고 해명했으나 어쩐지 궁색해 보인다.
대산해양청 관제센터측이나 해양 전문가들은 “관제센터가 최초 교신을 시도했던 5시 반께에 교신이 이루어져서 적절히 대처했더라면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라고 아쉬워했다. 과연 예인선단측은 1시간 반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관제센터의 호출에 응답하지 않았던 것일까. 관제센터의 한 관계자는 “선장과 선원들이 모두 조타실을 비웠거나 아니면 교신이 온 것을 알고도 응하지 않은 것 아니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무슨 다급한 사정이 있었는지 몰라도, 그것 말고는 달리 설명하기가 어렵다”라고 말했다.
둘째는 삼성중공업 소속 예인선단은 기상 악천후에 왜 무리한 운항을 계속 했는가 하는 점이다. 해경측에 따르면 예인선단은 12월6일 인천항을 떠나 9일까지는 경남 거제항에 입항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런 일정에 맞추기 위해 무리한 운항을 감행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런 운항의 지시를 선장 한 명의 책임으로 몰아가기보다는 선주인 삼성중공업 관계자의 조사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삼성중공업측은 “이미 운항이 한창 진행 중이던 7일 새벽 2시께부터 기상이 악화돼 신속한 대응이 불가능했다. 삼성T-5호 조선장이 새벽 4시께 인천으로의 회항을 결심하고 유턴을 시도하는 등 최선을 다했으나 대형 크레인의 방향을 악천후 속에서 되돌리는 데 한계가 있어 결국 실패한 것으로 안다”라고 해명했다. 모든 것이 선장의 책임 아래 이루어졌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해양 전문가들은 통상적으로 이런 경우 육지와의 통신 수단이 단절되지 않았다면 선장과 선주(회사) 간의 협의에 의해서 주요 결정이 이루어진다고 보고 있다.  
셋째 예인선과 크레인 부선을 연결하는 4.75cm 굵기의 강력한 와이어로프가 어떻게 끊어졌느냐 하는 점이다. 해양 전문가들은 “자체 동력이 없는 부선의 경우 와이어로프가 끊어질 경우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통제력을 상실하는 큰 위험이 초래되기 때문에 예인 전에 항상 검사 기관의 ‘예인검사서’를 받게 되어 있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 와이어로프의 단절에 대해서는 두 가지 가설이 나오고 있다. 삼성T-5호가 악천후 속에서 무리하게 회항을 시도했고, 또 이후 유조선을 발견하고는 급하게 항로를 바꾸려고 무리하는 과정이 이어지면서 와이어로프가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끊어졌을 가능성이 하나이다. 또 하나는 삼성T-5호 자체에 심각한 결함이 있었을 가능성이다. 해경 주변에서는 ‘삼성T-5호가 크레인보다 앞서 유조선과 충돌했다’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어느 쪽의 결론이 나오더라도 삼성중공업의 책임은 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삼성중공업 등 대기업의 책임론이 점차 무게를 더하면서 다시 재수사를 펼치고 있는 태안해경측도 무척 예민해져 있다. 지난해 12월26일 태안해경의 한 관계자는 삼성을 봐주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우리가 삼성중공업을 봐줄 이유가 뭐가 있겠느냐”라며 불만을 표출했다. 재해예방 담당인 한 관계자는 “솔직히 이번 사고는 인재가 분명하다. 삼성중공업의 책임도 크다고 본다. 하지만 언론에서 너무 책임 공방으로만 몰아가는 것 같다. 실제 삼성중공업측이 사고 현장에 나와서 정말 열심히 도와준 측면도 많다”라고 말했다. 수사 담당인 또 다른 관계자는 “제발 좀 봐달라. 중간에서 우리도 죽을 지경이다”라고 하소연을 했다. 그가 말한 ‘중간에서’라는 말이 상당히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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