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폭탄’ 피하다 ‘부동산 폭탄’ 맞을라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 승인 2008.01.02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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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종부세 완화 기본 방침만 밝히며 ‘눈치’…총선 지나서야 밑그림 나올 듯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선거운동기간 내내 현행 세제의 개편 필요성을 역설했다. 특히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세의 중과로 이른바 ‘세금 폭탄’ 논란까지 제기되었던 부동산 세제는 어떤 식으로든 손을 보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었다. 여기에다 기업 활동을 부추겨 경제를 살리기 위한 방편으로 법인세 인하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어렵사리 눌러놓은 부동산 가격이 일부 세제의 완화 조짐만 보여도 들썩일 수 있다. 이미 서울 강남 지역의 재건축 물량은 매물이 사라지며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법인세 인하도 형평성의 문제가 나올 경우 쉽게 밀어붙이기는 어려운 사안이다.
우선 종부세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2005년 도입 첫해 4천4백13억원이던 종부세 수입은 3년 만인 2007년 2조2천9백47억원으로 다섯 배나 늘어났다. 이런 식으로 세금을 거두어들이다 보니 시장에서는 가혹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조세 저항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인실 서강대 교수는 “종부세가 과세 기준을 9억원 이상에서 6억원 이상으로 하향 조정하고 부과 대상도 개인 단위에서 세대별 합산 기준으로 바뀌면서 납세 대상자가 단기간에 너무 크게 늘고 세 부담이 급증했다”라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결국 종부세가 투기꾼을 잡겠다는 ‘징벌적 세금’으로 인식되면서 ‘세금 폭탄’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을 낳았다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현행 부동산 세제에 대한 반감이 투표 결과에 적잖이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세간의 관심은 종부세가 언제 어떤 식으로 완화될 것인지에 쏠려 있다.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은 지난해 12월27일 한국경제학회가 주최한 ‘대통령 당선자 경제공약의 현실성 검증과 제안’ 포럼에서 “새 정부가 절대로 집값 상승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종합부동산세는 1가구 1주택 장기 보유자에게만 완화해 준다는 기본 방침을 갖고 있다”라고 밝혔다.

“새 정부, 집값 상승 용인 안 해”

한나라당은 그동안 6억원의 고가 주택을 하한선으로 한 종부세 부과 기준을 올리는 방안을 꾸준히 모색해왔다. 이당선자의 경제 정책에 관여하고 있는 한나라당 윤건영 의원은 공시지가 6억원 초과 주택(종합합산토지는 3억원 초과)에 적용되는 종부세 과세 기준을 9억원(종합합산토지 6억원) 초과로 상향 조정하는 내용의 ‘종합부동산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놓고 있다. 그는 지방의 미분양 아파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지방에 한해서 1가구 2주택에 대해서도 양도세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당선자의 경제브레인인 곽승준 고려대 교수도 부동산 세제 개편과 관련해 “기존 주택 공급을 확대하고 거래를 좀더 활성화함으로써 집값을 안정시키는 차원에서 부동산 취득세, 등록세, 양도세를 내년 중 낮추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라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종부세 완화 등 새 정부가 펼칠 것으로 예상되는 부동산 정책이 불러올 후폭풍이다. 부동산 부자들에게 ‘갈아탈 막차’를 제공함에 따라 전국이 부동산 광풍에 휩싸인다면 수많은 국민들이 피해자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허재완 중앙대 교수도 이런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새 정부 초기부터 부동산 가격 상승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재건축 규제 완화, 양도세 종부세 감면, 용적율 완화, 도심 재개발 활성화, 분양가 규제 완화 등에 대한 기대감으로 인해 부동산 시장이 벌써부터 예민해져 있다. 특히 각종 지역 개발 공약들이 구체화되고 대운하 계획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경우 노무현 정부에서와 마찬가지로 부동산 가격이 치솟게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이당선자가 공약한 연간 50만호의 주택 공급은 지방에 미분양 아파트가 넘쳐나는 현실을 감안할 때 무리한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어쨌든 이명박 당선자가 친시장적 성향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이당선자 주변에서는 “수도권 규제 완화로 비수도권이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아니다” “땅값 비싼 곳의 용적률을 높여줘야 한다”라는 등 시장이 환영할 만한 발언들이 나오기도 한다. 시장에서 건설·부동산 황금기가 다시 도래하리라는 기대 심리가 살아나는 것도 이당선자의 성향에 비추어볼 때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당선자 쪽도 이런 상황을 상당히 우려하는 듯하다.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은  “국지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뛸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고가 주택 기준의 조정 시기는 2008년 하반기에 부동산 시장을 봐가면서 결정할 것이다”라며 집값 상승 요인이 생길 경우 선제 조치를 취해 잡아나갈 뜻을 분명히 했다.
이에서 보듯 부동산 투기 문제는 정치적인 이슈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다. 재개발 지역을 중심으로 집값이 뛰고 다시 투기 랠리가 시작될 경우 당장 오는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따라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활동이 가시화된 뒤에도 종부세 완화 등 시장이 기대하는 가시적인 부동산 정책이 나오기는 힘들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실제 최근 들어 집값이 오를 기미를 보이자 인수위 관련 인사들이 ‘장기 주택 보유자의 경우 종부세 부담을 조금 덜어줄 수는 있지만 가격 안정을 해치는 조치는 결코 없을 것’이라고 쐐기를 박는 발언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기업들도 법인세·업무용 토지 종부세 내려달라 한목소리

기업들도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업무용 토지에 한해 종부세를 완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와 관련, 대한상의는 “기업의 업무용 토지는 생산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필수자본으로 고액의 부동산 소유자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종합부동산세 도입 취지와는 맞지 않다. ‘과세 기준 금액의 상향 조정’ ‘세율 완화’ 등으로 종부세 부담을 덜어주어야 한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종부세 완화는 단지 1가구 1주택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업의 부동산이나 정부의 세수 확보 등과 맞물려 있는 복잡한 문제이다. 게다가 이미 종부세로 2조원이 넘는 돈을 세수로 확보한 정부가 섣불리 세율을 낮추어주기도 어렵다.
이당선자는 법인세율도 현행 13∼25%에서 10∼20% 수준으로 낮추고 과세 표준을 기존 1억원에서 2억원으로 높여 기업 활동을 장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인실 서강대 교수는 “이당선자가 7조원의 감세 효과가 있는 법인세 최고 세율 인하는 2단계로 추진하고, 예산 20조원을 절감하는 성과를 거둘 경우 시행하겠다고 한 만큼 2008년도에는 법인세율 인하 조치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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