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대표로 뽑아놓고 ‘정체’가 뭐냐니…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 승인 2008.01.14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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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통합신당 신임 대표, 한나라당 꼬리표 때문에 곤욕…얼굴 마담에 그칠 가능성도

 
'통합신당호’의 새로운 선장으로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선출되었다. 지난해 대선 후보 경선에서 정동영 후보에게 뒤져 대권 도전에 실패한 손 전 지사가 난파 위기에 내몰린 대통합민주신당의 구원 투수로 돌아왔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당 대표 자리를 놓고 ‘손학규 합의 추대’가 대세를 형성하는 듯이 보였지만 당내 반발이 예상 밖으로 거셌다. 정대철·김한길·천정배·추미애 등 중진 그룹이 경선을 요구하고 나섰고, 문병호·최재천 등 쇄신파 초선 의원들도 ‘손학규 대세론’에 반기를 들었다. 여기에 재야파와 친노 그룹, 시민사회 세력도 ‘손학규 대표 체제’에 반감을 드러냈다. 지난 1월10일 예정대로 진행된 중앙위원회의에서 교황 선출 방식을 통해 손 전 지사가 당 대표로 최종 선출되었지만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당내 반발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아 한동안 극심한 내홍에 시달릴 것으로 전망되는 등 ‘손학규호(號)’의 항해가 출발부터 난항을 예고하고 있다.

‘반 손학규’ 확산…출발부터 ‘기우뚱’

당 대표 선출을 앞두고 통합신당 내에서는 한때 의결정족수가 모자라 중앙위원회의가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이른바 ‘반손(反孫) 그룹’이 집단적으로 회의 불참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실제 대표 선출 방식에 불만을 제기했던 중진 그룹은 회의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고, 쇄신파 초선 그룹도 ‘대표 선출 연기’를 주장하며 집단 보이콧을 선언했다. 김한길 그룹도 상당수가 회의에 불참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이해찬 의원을 중심으로 한 친노 그룹은 참석 여부를 개인 판단에 맡겼다.
재적 위원 과반의 참석을 확보해야 하는 당 지도부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전체 중앙위원 5백16명을 대상으로 회의 참석 여부를 미리 확인하고,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의결정족수 미달로 대표 선출이 무산될 경우 당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결국 과반을 가까스로 넘긴 2백59명의 중앙위원이 출석해 회의는 속개되었고 이후 3백6명이 참여한 1차 투표에서 1백64표를 획득한 손 전 지사가 예상대로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4월 총선까지 통합신당을 이끌어나가야 할 손 전 지사가 인적 쇄신과 과감한 당 혁신을 이루어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이 많다. 대표 선출 과정에서 집중 견제에 나섰던 당내 각 정파들이 손 전 지사가 휘두르는 칼을 가만히 맞고 있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당장 ‘대표성’을 놓고 이런저런 말들이 오가고 있다. 손 전 지사의 득표 수는 전체 중앙위원 수의 3분의 1에 못 미친다. 대표 선출을 앞두고 토론도 없었다. 갈등이 격화될 것을 우려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손학규 대세론’이 흔들릴까 봐 그랬다는 주장도 있다. ‘벙어리 선출’ ‘묻지마 선출’이라는 조소 섞인 평가도 흘러나왔다. 결국 손 전 지사가 ‘반쪽 대표’로서 그 역할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통합신당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 인물”

손학규 전 지사가 통합신당의 ‘간판’으로 부적절하다고 주장해온 ‘반손 그룹’ 대부분은 그의 정체성을 우선 문제 삼는다. 한나라당 출신인 손 전 지사가 과연 민주개혁 세력의 가치를 추구해왔느냐에 대한 정체성 논란은 그가 범여권 후보로 대권 도전에 나서면서부터 줄곧 제기되어온 사안이다.
그런 만큼 손 전 지사가 대표 취임 초기 당 정체성을 어떻게 확립해 나가느냐가 향후 ‘손학규호’의 순항 여부를 판가름할 가능성이 크다.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는 “한나라당에서 온 손 전 지사가 그동안 자신이 지켜온 정체성과 전통적 민주 야당이라 할 수 있는 통합신당의 정체성을 어떻게 잘 조화시켜 나가느냐가 중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정교수는 “민주 야당으로서의 위상을 분명히 세우고 손 전 지사 역시 그에 맞게 자신을 지켜나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제1야당으로서 한나라당을 견제하는 역할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현재 대통령 인수위에서 출총제 폐지, 금산 분리 완화, 대운하 추진 등 새로운 정책 어젠다를 계속해서 제시하고 있는데 이를 견제하는 세력이 없다. 통합신당이 그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한나라당과의 여야 관계 형성 과정에서 손 전 지사가 당 안팎으로부터 시련을 겪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정대화 상지대 교수는 “한나라당에서 10년을 넘게 있었던 만큼 정통 민주개혁 세력이 추구해온 가치와 어긋난 부분들이 있다”라며 그 예로 교육 부문의 ‘3불 정책’과 한·미 FTA, 이라크 파병 등을 들었다. “이명박 당선인의 생각과 비슷하다”라는 지적도 뒤따랐다. 정교수는 “손 전 지사 스스로 노선과 관련해 상당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때에 따라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반면 김호기 교수는 “손 전 지사가 중도 보수에 가까운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통합신당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당 대표가 되어서 어떤 정체성을 내세울 것인가에 있다”라고 지적했다.
김교수는 “통합신당 지지자들이 원하는 것은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중도 진보 노선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개방을 사려 깊게 수용하면서 성장과 분배를 함께 가져갈 수 있는 개방형 복지국가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탈당 규모를 어떻게 최소화하느냐도 ‘손학규호’가 해결해나가야 할 과제 중 하나이다. 손 전 지사가 대표로 선출되자마자 이에 반발한 이해찬 전 총리가 탈당을 전격 선언했다. 이 전 총리는 탈당 배경에 대해 “손 전 지사가 오랫동안 정당 생활을 했던 신한국당과 한나라당의 정치적 지향이 결코 내가 추구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이끄는 신당은 어떤 정체성도 없이 좌표를 잃은 정당으로 변질되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친노 연쇄 탈당 가능성…충청권도 대규모 탈당 예고

친노 그룹의 대표 격인 이 전 총리의 탈당은 비슷한 노선에 있는 의원들의 연쇄 탈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 전 총리를 도왔던 유시민·이화영 의원 등이 탈당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 친노 그룹이 통합신당을 떠나 새로운 정치세력화에 나설 경우 총선을 앞두고 정계 개편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
탈당 움직임은 친노 그룹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충청권 의원들 다수가 벌써부터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중심이 되어 창당을 준비하고 있는 자유신당에 참여할지 여부를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제세 의원은 지난 1월9일 “충북 지역의 민심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추진 중인 자유신당에 많이 가 있다. 자유신당으로 옮기는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라고 밝혔다.
시민사회 그룹도 손 전 지사가 대표로 선출되자 술렁이는 분위기이다. 통합신당 한 인사는 “탈당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당장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어떤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손 전 지사가 대표로서 지도력을 잘 발휘해 당내 통합을 이루면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현재로서는 개연성이 잠재되어 있다”라고 전했다.
손 전 지사가 당대표로 선출된 데에는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 실패의 책임에서 자유롭고 경기도지사를 지낸 수도권 정치인이라는 점이 총선을 치를 당의 수장으로 적합하다는 판단이 고려되었다.
결국 ‘손학규호’의 성패 여부는 총선에서 어떤 성적을 내느냐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대대적인 ‘공천 혁명’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많다. 손 전 지사는 대표 수락 연설에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국민의 목소리는 반성과 쇄신과 변화이다.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고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국민의 뜻에 따를 때 국민은 우리에게 따뜻한 손을 내어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손 전 지사의 바람대로 ‘쇄신과 변화’를 이룰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당권을 쥔 그에게 공천권도 부여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당권과 공천권이 분리될 경우 손 전 지사는 그야말로 얼굴 마담 역할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반면 공천권이 주어질 경우 당내 반발을 어떻게 무마할 것이냐는 또 다른 문제가 남는다.
민주당과 창조한국당 등 당 외곽 세력과 어떤 관계를 맺어갈지도 주목된다. 범민주개혁 진영에서는 대선에 이어 총선마저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연합공천론’ ‘제3지대 창당론’ 등 협력 방안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손학규호’의 출범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예단할 수는 없지만 일단 다른 당의 반응이 호의적이지는 않다. 민주당은 ‘한나라당 2중대’ ‘짝퉁 한나라당’이라는 용어를 써가며 “참으로 수치스런 일이다”라고 비난했고, 창조한국당도 “웬지 찜찜하고 어색하다. 사실 좀 부끄럽기도 하다”라고 혹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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