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짓누르는 ‘변방의 곡소리’
  • 김용규 (가톨릭대 예방의학교실 및 산업의학센터 조교 ()
  • 승인 2008.01.14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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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제·보건학적 취약 계층…인신 피해 막을 제도적 장치 마련해야

 
이천 화재 참사 현장을 취재한 한 일간지 기사의 첫 문장은 “어떻게 하늘 아래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로 시작한다. 40명의 노동자가 일순간에 시신이 되었다. 이런 사고를 두고 “어찌 하늘 아래 이런 일이…”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있는가? 아니 차마 아무 말도 할 수 없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합할 듯하다.
그런데 이천 화재 참사의 현장에는 또다시 우리의 눈과 귀에 낯설지만은 않은 단어가 언급되고 있다. 이주노동자, 외국인 근로자, 중국 동포, 우즈베키스탄 등등…. 그리고 우즈베키스탄 이주노동자가 한국인 여성을 업고 탈출한 훈훈한 이야기가 들린다. 그러나 그 뒤에는 귀국을 얼마 앞둔 우즈베키스탄 사촌형은 탈출하지 못하고 사망해 버린 가슴 아픈 이야기도 있다.
이천 화재 참사는 이주노동자가 중심에 있는 사고는 아니다. 아니 중심에 있는 사고이다. 이제, 왜 이주노동자가 중심에 있는 사고가 아닌지, 그리고 왜 중심에 있는 사고인지를 말하고자 한다.

이천 화재 사망자 중 35%가 외국인

우선 왜 중심에 있는 사고가 아닌지 생각해보자. 40명의 인명을 앗아간 경기도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고의 원인이 무엇으로 밝혀질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무리한 작업 공정과 원칙이 없는 관리·감독, 그리고 무엇보다 힘없는 노동자들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공사 비용을 줄이려고만 한 사업주가 그 뒤에 자리 잡고 있다.
사건이 터지자 이번 사건을 전형적인 인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지적하는 원인은 소방 안전 규정 부재, 작업자 안전 수칙 미준수, 현장 감독 소홀 등이다. 좀더 근본적인 사고 원인은 건설업이 어떤 산업보다도 재해가 발생하기 쉽기 때문에 더욱 철저한 관리와 감독, 원칙의 준수가 필요한데도 대부분의 공사 현장이 하청에 재하청을 거듭하는 구조와 그 속에 수많은 일용직 노동자들이 사고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이주노동자가 일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사고였다는 점이고 끔직한 이야기이지만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는 사건이다.
그러면, 왜 이주노동자가 사고의 중심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40명의 사망자 중 이주노동자의 사망자 수가 14명이다. 중국 동포 13명과 우즈베키스탄인 1명. 전체 사망자 40명 중 35%인 14명이 이주노동자였다. 숫자가 많아서 중심에 있다는 것이 아니다. 최근 들어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리고 보건학적으로 취약 계층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사전적으로 정의를 하자면, ‘위해 또는 방임에 민감한 것, 즉 타인의 작위 또는 부작위의 행위로 인해 피해를 받을 수 있는 상태에 노출되어 있는 계층’을 일컫는다. 즉, 타인의 행위에 대항해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고 쉽게 부서지는, 손상을 당하는 사람이 취약 계층인 것이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은 취약 계층의 수많은 유해요인에 노출되기 쉬우며, 50인 미만 특히 5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들이어서 안전 보건 규제에서 벗어나 행정적인 관리·감독이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외국인이라는 말에서도 내재되어 있는 것처럼 언어적·문화적 장벽이 높을 뿐만 아니라, 특히 불법이라고 부르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체류 자격에 따른 신분의 불안정으로 노동권을 비롯한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받기 쉽다.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이주노동자의 산업 재해 발생 건수가 증가하고 있다.
최근 5년 동안 외국 인력의 변화와 산업 재해 발생 건수를 비교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1987년 이후 계속 증가하던 외국 인력이 고용허가제를 시행한 2004년 8월에 42만3천명에 이르렀다가 이후 감소하기 시작해 2005년 12월에는 34만5천명 수준까지 줄어들었다. 이는 고용허가제에 의해 입국한 비전문 취업자(E-9)가 큰 폭으로 감소했기 때문이다. 이후 다시 외국 인력이 완만하게 증가하기 시작해 2006년 이래 41만~42만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 중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약 18만명 정도이다.

 

근로복지공단이 낸 최근 5년간의 이주노동자 산업 재해 통계를 보면 재해 건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불법 취업자라고 불리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재해 건수는 줄어드는 반면, 합법 즉, 등록 이주노동자의 재해 건수가 증가하고 있다(표 2). 외국 인력 체류 현황 자료(표 1)와 비교해보면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재해율은 2003년 1.95%(2,703/138,056)에서 2006년 0.81%(1,531/186,894)로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주노동자의 산업 재해가 은폐되거나 몰라서 신청하지 못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훨씬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에 합법 취업자는 2003년 0.28%(573/200,039)에서 2006년  1.48%(2,891/194,195)로 증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산업 재해가 미등록 이주노동자에서 더 많이 발생하리라는 예상을 깨고 합법적으로 취업한 이주노동자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 이것은 고용허가제 이후에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이 짧은 경험 속에서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제대로 된 노동 안전에 대한 교육을 받지 않은 채 위험하고 유해한 작업장에서 일하며 사고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주노동자의 산업 재해, 은폐·축소 일쑤

이주노동자가 일하는 곳이 국내 노동자가 일하는 곳과 따로 있는가? 한편으로는 옳은 듯하다. 그러면서 어떤 이들은 다른 자료(표 3)를 제시하면서 이주노동자가 결코 산업 재해에 취약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노동부가 국회에 제출한 2004년 ‘외국인 근로자 산업 재해 발생 현황’ 자료(2004년 현황)를 보면 산업재해율과 사망만인율 모두 이주노동자가 국내 노동자보다 낮은 것으로 확인된다.
이처럼 근무 환경이 열악한 이주노동자의 산업재해율이 낮은 이유는 공공연히 벌어지는 산재 은폐와 불법 취업 노동자의 경우 산재 요양을 받을 수 있음에도 산재 요양이 끝나면 출국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한계로 신청하지 않기 때문으로 예상되지만, 숨길 수 없는 사망재해율은 믿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여기에도 함정은 있다. 산업 재해로 인한 사망에는 단순한 사고뿐만 아니라 진폐증, 뇌출혈 등의 직업병이 포함되어 계산되는데 이주노동자들에서는 이러한 직업병으로 인한 사망이 거의 인정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질병에 의한 것을 제외한 업무상 사고만으로 사망만인율을 계산하면, 국내 노동자의 경우 2.74에서 1.47로 감소한다(노동부, 2005년). 숨기기가 어려운 사망 재해에서도 이주노동자의 발생 건수가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유해 작업장 투입, 직업병 걸려 쫓겨나기도

앞에서 말한 사고성 재해 외에 최근에는 직업병도 다수 발생하고 있다. 2002년 경기도 안산시 시화공단의 반도체 부품 생산 업체에서 일하던 중국 여성 노동자 3명이 일을 시작한지 3~4개월 만에 손끝과 팔다리가 마비되는 증상이 발현되어 ‘노말헥산’이라는 물질의 중독에 의한 ‘다발성 신경장애’(‘앉은뱅이병’이라고 불림) 판정을 받아 병든 몸으로 중국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치료를 받았다. 2005년 초에는 태국 출신 여성 노동자 여덟 명이 또 노말헥산에 의해 집단적으로 말초신경염을 앓아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 외에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중에도 이주노동자들은 독성 간염, 직업성 천식 등 많은 질병과 직업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지난해 2월 여수 출입국관리사무소 화재로 인한 미등록 이주노동자 사망 사건 등은 단순한 산업 재해만의 문제가 아닌 이주노동자의 인권 문제까지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주노동자는 이번 이천 화재 참사의 중심에 있다. 그들은 취약 계층 중에서도 가장 취약 계층이다. 특히 입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하루하루 일용직으로 일하는, 언어가 미숙하고 정보를 얻기가 어려운, 주어진 정보를 활용할 수 없는 이주노동자들은 더욱 재해에 취약하다. ‘취약’은 타인의 어떠한 행위에 의해서도 쉽게 망가질 수 있기 때문에 사회가 제도적으로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단순히 말초적이고 감성적인 것만을 자극하는 이주노동자를 위한 일회적인 사업이 아니라 그들의 입장에서 수용 가능하고 접근 가능한 정책을 수립하는 것만이 또 다른 이천 참사를 막을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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