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무십일홍’ ‘코드’여, 굿바이!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 승인 2008.01.14 14:1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화 권력, 민예총에서 예총으로 “문화예술인들이 먼저 변하자” 자성 목소리

최근 몇 년간 문화예술 단체들은 정치적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정부와 코드를 함께 했던 인사들이 새로운 문화 권력으로 떠올라 요직을 독차지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주변부로 밀려나 한숨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특히 지난 5년간의 노무현 정부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져 문화계는 친정부와 반정부의 전선이 형성되기도 했다. 하지만 새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문화예술계가 다시 들썩이고 있다. 성향이 크게 다른 정권이 들어서는 만큼 문화 권력의 이동 폭도 훨씬 커지리라는 전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미 새 정부와 궁합이 맞는 문화예술계 인물들의 이름이 하나 둘씩 거론되기도 한다. 이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줄서기의 흐름도 감지된다.

 
정치 장단에 춤추는 문화예술 단체들

문화예술계의 이런 모습을 두고 상어와 빨판상어 관계처럼 정부에 기생하는 집단이라는 따가운 지적이 나오고 있다. 새 정부에서는 코드 인사·편파 지원 문제 등으로 잔뜩 구겨져 있는 문화예술인들이 먼저 변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거의 40년간 예총이 장악했던 문화 권력은 민예총으로 넘어갔다. 특히 노무현 정부에서는 민예총과 문화연대 출신 인사들이 문화예술계의 핵심을 차지했다. 예총 관계자는 “민예총 회원들의 면면을 보면 깐깐한 회원들이 많은 편이다. 진정한 문화예술가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대부분 정치권으로 옮겨가는 것을 보고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을 지지하는 문화예술인 모임(노문모)’은 대부분 민예총과 문화연대 출신이었다. 2003년 2월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노문모 출신 이창동 영화감독(54)이 문화관광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이를 두고 파격적인 인사라는 평가가 나왔다. 행정 경험이 없는 현역 영화감독을 행정부 요직에 배치한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노대통령이 문화예술계를 정부 친화적으로 만들기 위한 포석 인사였다는 분석도 나왔다. 당시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정책위원장이었던 이씨는 장관이 되기 전까지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움직임에 대해 반대했었다. 그러나 장관직에 오르자 입장을 180° 바꾸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이씨에 이어 현역 예술인으로 문화부장관직에 오른 사람은 당시 국립극장 극장장이었던 김명곤씨(57)이다. 영화 <서편제>의 주인공으로 유명세를 탔던 김씨 역시 행정 경험이 없는 인물이었다. 김씨의 장관 내정을 두고 국회 문화관광위 인사청문회에서 논란이 생겼다. 김씨는 인사청문회에서 “스크린쿼터는 (정부가) 10년 이상 논의하고 고민해온 문제로, 여러 가지 국가 정책상 신중하게 검토해서 내린 결론이라 생각한다”라며 스크린 쿼터 축소에 대해 강하게 반대해왔던 기존 입장을 번복했다. 이에 대해 문화예술 관련 교수들은 “이창동·김명곤 전 문화부장관들이 자유무역협정(FTA)의 원활한 협상을 위해 스크린 쿼터 축소를 지시한 청와대의 입장에 소신 있는 발언을 하지 못하고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한 것은 문화 권력이 정치 권력에 어떻게 종속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경우이다”라고 지적했다.
문화예술계의 굵직한 요직에도 민예총 인사들이 포진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현기영 이사장이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임명되었다. 이어 국립현대미술관장, 국립국악원장에도 민예총 출신인 김윤수·김철호 씨가 각각 임명되자 문화예술계가 거세게 반발했다. ‘전국 대학 국악과 교수 포럼’은 국립국악원장 임용 철회와 장관 사퇴를 요구했다. 연극계 인사들도 ‘연극인 100인 성명’을 내고 “문화부는 민예총 중심의 인사 정책을 중지하라”라고 항의했다. 그럼에도 문화예술위원회의 11명 위원 중 예총 소속 인사는 두 명뿐일 정도로 편중 현상을 보였다. 장관 정책보좌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 문화관광정책연구원장, 국립민속박물관장, 국립연극원장, 문화재청장, 한국영상자료원장 등에도 민예총 인사들이 대거 진출했다.

 
노무현 정부, 예총 지원 줄이며 민예총은 대폭 늘려

문화예술계의 가장 큰 돈줄은 문화예술위원회이다. 이 돈은 정부 예산 지원, 로또 수익금, 문화예술진흥기금, 문화예술위원회가 소유한 뉴서울골프장 수익금 등으로 조성된다. 문화예술위원회는 노무현 정부 시절 예총에 대한 지원을 동결했지만 민예총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렸다. 10년 전인 1997년 예총은 당시 문화예술진흥원으로부터 연간 5억8천만원의 지원을 받았다. 당시 회원 수는 1백20만명. 1988년 창립해 회원 10만명에 불과한 민예총은 5천만원을 받았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뒤 예총에 대한 지원은 동결된 반면 민예총에 대한 지원액은 크게 늘었다. 1999년부터 꾸준히 증가해 2002년 3억5천만원에 달했다. 노무현 정부 시대인 2004년에는 예총에 대한 지원액과 같은 5억8천만원으로 늘었다. 회원 수 등 규모 면에서 예총의 10분의 1도 안 되는 민예총이 과거 10년 동안 온갖 특혜를 받으며 문화 권력의 핵심으로 성장한 것이다. ‘예술과 시민사회’의 오상길 대표는 “국민의 세금을 문화예술 발전에 사용해야 할 문화예술위원회는 순수 학술단체에 대한 지원을 중단한 채 좌파 성향의 산하 단체만 지원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수혜 단체가 민예총, 문화연대 등이다. 과거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2006년 지금의 문화예술위원회로 변경된 후 이같은 편파 지원은 더욱 심각해졌다”라고 주장했다. 또 “단순한 지원 자금 배분 문제가 아니라 문화예술계의 편 가르기였다. 친노 성향의 문화예술 단체들은 기득권을 유지하고, 노무현 정부는 문화예술계의 통제 기관을 둔 셈이었다”라고 덧붙였다.
민예총과 예총의 갈등이 갈수록 깊어지자 결국 1973년 설립된 후 32년만인 2005년 8월 문화예술진흥원은 문화예술위원회로 명칭을 바꾸었다. 관료가 아닌 문화예술인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한다는 명분 아래 체질을 바꾼 것이다. 그러나 문화예술위원회는 문화예술계를 위한 정책 기능은 상실한 채 지원 자금 배분권을 쥔 거대 문화 권력으로 변질되었다. 문화예술위원회 관계자는 “의식이 없는 조직이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코드 인사 때문에 위원이 11명으로 늘어났다. 5~7명이면 충분하다. 문화예술위원회로 바꾼 것은 시행착오이다. 다시 문화예술진흥원으로 복귀하는 것도 고려해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문화예술위원회는 2005년과 2006년 정부 산하 기관 경영 평가에서 연거푸 최하위를 기록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각 단체장들의 임기가 보장될 것인지에도 초점이 모이고 있다. 특히 문화예술위원회의 경우 우리나라 문화예술계에 자금을 지원하는 기능이 있는 조직인 만큼 위원장이 누구냐에 따라 지원 규모와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문화예술위원회 이한신 노조위원장은 “공모제를 통해 선출된 만큼 임기가 보장되어야 한다. 중도 하차시키고 새 정부가 새로운 인물을 내정하면 노무현 정부의 코드 인사와 다를 바 없다. 이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립현대미술관 정준모 전 학예실장은 “문화예술은 자금 의존도가 높아져 권력에 종속되었다. 지원 자금을 받기 위해 문화예술인은 앵벌이를 한 셈이다. 문화예술을 정치에서 분리하는 탈정치화가 필요하다. 탈정치화를 위해 문화예술위원회의 환골탈태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