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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떼려다 ‘의혹’ 붙인 김만복의 ‘오버’

“기념 식수에 표지석 설치하러 방북” 수긍 어려워 드러나지 않은 경위와 내용 있을 가능성 커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ㅣ 승인 2008.01.21(Mon) 10:5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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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복 국가정보원(국정원) 원장은 대통령 선거 전날인 지난해 12월18일 평소처럼 새벽 4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면을 하고 간단히 요기를 한 김원장은 국정원장 공관에 있는 100년 된 벼락 맞은 모과나무 앞에서 잠시 기도를 한 뒤 차에 올랐다. 그가 판문점을 통과한 시간은 새벽 6시30분. 산림청 직원 한 명이 동행했다. 수행원을 빼고 동행한 국정원 직원은 없었다. 이에 앞서 국정원은 지난해 12월11일 북측에 김원장이 비공개로 방북했으면 한다는 통지문을 보냈다. 명목은 지난해 10월 평양에서 열린 제2차 남북정상회담 때 평양중앙식물원에 노무현 대통령이 기념 식수한 소나무에 표지석을 설치하기 위해서였다. 북측은 다음날인 12월12일 이에 동의한다는 답신을 보내왔다.
김원장의 차에는 가로 40cm, 세로 30cm, 폭 10cm인 기념 식수 표지석 몸돌과 가로 50cm, 세로 20cm, 높이 10cm인 받침석이 실려 있었다. 평양 모란봉초대소에서 북한 김양건 통일전선부 부장을 만나 오전 8시30분부터 9시40분까지 환담한 김원장은 평양식물원으로 이동해 김명보 북한 통일전선부 실장 및 평양식물원장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산림청 직원의 도움을 받아 남북정상회담 기념 수목 앞에 표지석을 설치했다.
김양건 부장은 김원장에게 “기념 식수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나를 비롯해 통전부 관계자들이 수시로 방문해 관계자들에게 나무를 정성들여 키우라고 독려하고 있다. 위치가 관광객들의 눈에 잘 띄는 곳이라 중앙식물원의 최고 명물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평양식물원장도 “원예사들이 소나무를 옮겨 심은 뒤 뿌리를 내리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며 맞장구쳤다.
표지석을 설치한 일행은 다시 모란봉초대소로 이동했다. 김양건 부장이 주최한 오찬은 오전 11시30분에서 오후 2시까지 열렸다. 맛있고 푸짐한 음식을 먹으며 남북 정보기관의 최고 수뇌부는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졌다. 개성-평양 간 고속도로 개·보수 사업 등이 오찬 화제로 올랐다. 김부장은 아직도 보수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취지로 말했고, 김원장은 지난 10·4 정상 선언 도로 분야 이행 사항에 대해 언급했다. 남한의 대선 상황에 대해서도 대화를 주고 받았다. 김원장은 이명박 후보가 당선될 것으로 보이며 남북 관계가 더 좋아질 수도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 김원장이 북한 일정을 마치고 판문점을 통과해 남한으로 내려온 시간은 이날 오후 5시30분이었다. 11시간에 걸친 김원장의 비밀 방북은 이렇게 진행되었다.
다음날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었다. 국정원 내부에서도 김원장의 방북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권력의 축이 바뀌면서 김원장이 비밀리에 북한을 방문한 사실은 보안이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대선이 끝난 불과 며칠 뒤 이명박 당선인측에 이런 사실이 보고된 것으로 안다. 당선인이 김원장의 거듭된 요청을 거절하며 국정원의 기관 보고를 받지 않은 막후에는 이런 사연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김원장의 방북 사실이 공개된 것은 지난 1월3일이다. KBS가 특종 보도했다.

   
 
ⓒ연합뉴스
 

“정권 차원에서 매듭 지을 일 있었을 것” 관측도

이때부터 정가에는 온갖 추측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대선 판세를 뒤집으려고 북풍을 일으키기 위해 방북했다” “이명박 당선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방북했다” “남북정상회담 뒤처리를 하기 위해 방북했다”… .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히 사안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국정원 관계자에 따르면 김원장은 방북을 앞두고 직속 부하인 국정원 차장들과 논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차장들은 대부분 반대하는 의견을 냈지만, 김원장은 방북을 결행했다.
김원장이 방북 이유로 든 ‘기념 표지석 설치’에 대해서는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드물다. 그런 일로 정보 기관 수뇌가 방북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볼 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면 왜?’라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여러 가지 측면으로 따져보았을 때 ‘북풍을 일으키기 위해 방북했다’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대선 불과 하루 전에 무언가를 기획하고 시도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처럼 북풍이 먹히는 분위기도 아니고 대선의 향방은 이미 한쪽으로 굳어져 있는 상태였다. ‘이명박 당선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방북했다’라는 주장도 앞뒤가 안 맞는다. 김원장의 방북은 노무현 대통령의 허락을 받아 이루어졌고 어쨌든 현 정권 정보 기관장의 행동을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너무 오버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정권 차원에서 무언가 매듭을 지어야 하는 일이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는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김원장의 방북은 정상회담과 연결 지어 해석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근거 없이 정상회담 대가 제공설을 제기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국가 기강을 문란케 하는 일이다”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김원장의 퇴임 이후 본격화할 국정원의 자체 내사와 검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지금 김원장이 스스로 공개한 방북 경위 내용과는 다른 것들이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김원장의 방북은 김양건 부장의 방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부장은 지난해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 차례 비밀리에 방한했던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
그런 뒤 지난해 11월29일 다시 남한을 공식 방문했다. 그 당시에도 그가 왜 방한했는지 의문이 일었다. 방한 목적이 명쾌하게 해명되지 않았다. 당시 그가 비밀리에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만났다는 소문이 정가에 나돌기도 했다.
김부장이 방한한 지 불과 20일 뒤에 이루어진 김원장의 방북, 이 둘 사이에는 무언가 상관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것은 남북 정상회담이나 남북 관계의 변화와 깊이 맞물려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당선인과 가까운 한나라당의 한 핵심 인사는 김원장의 방북에 대해 묻자 “말할 수 없다”라고 답했다. “공개되지 않은 내용이 더 있는 것 아니냐”라는 추가 질문에도 “그 문제와 관련해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라며 입을 닫았다.

국정원 직원들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분개

국정원 직원들은 김원장의 방북 자체보다도 방북 내용을 언론에 스스로 흘린 김원장에 대해 분개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지난 1월16일 한 국정원 관계자는 “다들 분개하면서도 황당해 하고 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관계자는 “평소 김원장의 행태를 보면 이번 일을 해석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태 때 스스로 보도 자료를 만들어 기자들에게 나눠주며 자화자찬하던 모습을 보라는 것이다. ‘가볍고, 정치 공작을 할 만한 배포가 없다’는 얘기였다.
그를 몇 번 만난 한 언론인은 김원장이 공명심과 과시욕이 강한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현 정권에서 대북 채널을 사실상 독점해왔던 만큼 이번 방북도 정권이 교체되기 전 한 번 갔다 오겠다는 과시욕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 인사도 “공개된 대화 외에 다른 내용이 더 있을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표지석’만으로는 도무지 설명이 안 된다는 것이다.
김원장은 사의를 표명했지만 청와대는 수리를 미루고 있다. 그러나 시기가 문제일 뿐 조만간 김원장은 사퇴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 ‘국정원이 배출한 최초의 원장’이라는 갈채를 받으며 국정원장이 되었던 김원장은 지금 직원들로부터 ‘국정원 직원의 수준을 우습게 만든 원장’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참여정부에서 고속 승진한 그는 그만큼 빠르게 추락했다. ‘김만복-김양건 대화록 유출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본격 수사에 나설 것으로 보여 그의 시련은 지금부터가 시작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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