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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 슈퍼컴퓨터는 ‘돈값’ 모르는 ‘괴물’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ㅣ 승인 2008.01.21(Mon) 11: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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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월25일은 제17대 대통령이 취임하는 날이다. 장소는 국회의사당 앞 광장. 새 정부를 이끌어갈 대통령과 각료, 각국의 국가 수반과 대사, 행사에 초청받은 국민이 한 자리에 모인다. 국내는 물론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날이기도 하다. 이날을 취임식으로 잡은 것은 날짜와 날씨가 고려되었다. 즉 좋은 날과 맑은 날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오후부터 비나 눈 내린다더니 아침에 눈

그런데 기상청이 쾌청하다고 예보한 이날 비나 눈이 내리면 어떻게 될까. 국가적인 행사는 엉망이 된다. 더욱이 새 정부가 출범하는 날이 아닌가. 날씨에 따라 국가의 앞날이 점쳐질 수 있다. 기상청으로서는 상상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다. 오보가 잦은 우리나라 기상청으로 볼 때 아무래도 불안하다. 미국에서는 대통령 취임식 날 일기예보를 오보 낸 기상국장이 물러나는 일도 있었다.
지난 1월11일 아침 서울과 경기 지역에는 때아닌 눈이 내렸다. 전날 일기예보는 오후부터 비가 내리다가 눈으로 바뀐다는 것이었다. 아침 출근 시간은 도로마다 교통 지옥을 이루었고 직장인들의 지각 사태가 이어졌다. 더욱이 이날은 대입 논술시험을 치른 날이다. 수험생들이 차질을 빚으면서 기상청에 대한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했다. 기상청 홈페이지는 기상청을 비난하는 글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언론 매체들은 ‘기상청 무용론’을 쏟아냈다.
그중에서도 ‘슈퍼컴퓨터’를 문제 삼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았다. “국민 세금 수백억원을 주고 들여온 슈퍼컴퓨터가 있는데 왜 오보가 자주 나오느냐”라고 따져묻는 것이다. ‘김동완 통보관’을 다시 불러와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첨단 예보를 지향하는 기상청의 자존심이 한껏 구겨졌다.

   
   

<시사저널>은 기상청의 슈퍼컴퓨터를 정조준해서 살펴보았다. 슈퍼컴퓨터가 하는 일은 전세계의 기상청으로부터 받은 기상관측 자료 등을 분석한다. 그 다음 우리나라의 가로와 세로 30㎞ 격자 예보 시스템을 구동한 후 오후에 예보를 내놓는다. 최종 예보는 슈퍼컴퓨터의 분석에 예보관의 경험과 통계적 판단을 더한다. 그런 후 전국 예보관 영상회의를 거쳐 오후 5시쯤 최종 예보를 발표하고 있다. 기상청이 슈퍼컴퓨터 1호기를 들여온 것은 지난 1999년 9월이다. 일본 NEC가 제작한 SX-5/28M2를 2백억원을 주고 가져왔다. 2호기는 2004년 11월 미국 GRAY의 SX-4/2A 제품을 5백억원에 사들여왔다. 이로써 한국은 기상용 슈퍼컴퓨터를 보유한 세계 11개국 가운데 처리 능력과 성능 면에서 4위에 올라 있다. 보통 슈퍼컴퓨터의 수명은 5년이다. 1호기는 2호기 도입과 함께 1년간 병행 가동되다 전시용으로 물러났다. 기상청은 2009년 9월에는 약 5백50억원을 들여 3호기를 들여올 예정이다.
슈퍼컴퓨터는 크기와 가격, 엄청난 속도와 처리 용량 때문에 ‘괴물 컴퓨터’라고 불린다. 기상청에 슈퍼컴퓨터가 들어오면서 기상예보 환경은 훨씬 좋아졌다. 그렇다면 기상예보의 정확도는 얼마나 향상되었을까. <시사저널>이 입수한 기상청 내부 자료를 보면 슈퍼컴퓨터의 능력과 운용에 큰 의문이 든다. 2004년 이후 호우·대설·황사·태풍 등 ‘4대 악(惡) 기상’의 특보 정확도가 오히려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에 3호기 또 들여올 예정

   
  시사저널 김동영  
호우의 경우 1호기가 들어온 후 2002~ 2003년의 정확도가 74.7%였다가 2004~ 2006년은 66.2%로 8.4%가 떨어졌다. 지난해에는 62.1%로 더 낮아졌다. 대설(79.9→79.0→83.1%)과 태풍(93.7%→88.9%→78.6%)도 해가 갈수록 정확도가 떨어지고 있었다. 황사는 2004~2006년 77.9%로 떨어졌다가 지난해에는 100%로 이전의 정확도를 되찾았다.
공식 예보도 정확도가 떨어지기는 마찬가지이다. 기상청의 일기예보를 듣고 우산을 들고 나왔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우산 한 번 펴지 못하고 도로 가져갔던 적이 많았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비가 내릴 확률을 알아보는 강수량의 정확도가 2006년(85.21%)보다 2007년(84.81%)에 더 낮아졌기 때문이다.
슈퍼컴퓨터의 CPU(중앙연산처리장치) 사용률도 50%를 간신히 넘었다. 2005년 19.7%에서 2006년 40.5% 그리고 지난해 55.5%였다. 사용률이 점차 높아가고 있지만 적정 사용률 70%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를테면 1천원짜리 물건을 사서 5백원어치만 쓰고 나머지는 먼지만 쌓이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쓰고 있는 비슷한 슈퍼컴퓨터의 경우 지난해 사용률이 평균 85%에 달했다.

   
  시사저널 김동영  

여기에서 사용률이란 슈퍼컴퓨터 CPU의 정상적인 작동률을 말한다. 슈퍼컴 2호기는 CPU가 1천24개 칩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상청이 이 가운데 절반 정도는 사실상 활용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상청의 장동언 수치모델개발팀장은 “보편적인 모델들에서는 가동률이 의미가 있다. 그러나 기상예보는 좀 다르다. 하루에 두 번 풍선을 띄워서 대기 상태를 측정하고 그걸 가지고 분석을 한다. 또 전세계가 거의 동일한 시간대에 관측을 수행한다. 어떤 시간대에는 100% 가동률을 보일 때도 있다. 선진국도 마찬가지이다. 슈퍼컴퓨터는 예측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연산처리 수단이지 전체는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슈퍼컴퓨터의 활용도가 떨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잦은 고장이다. 슈퍼컴퓨터 2호기는 월평균 10회 이상의 기계 결함과 오류가 발생해 기기를 월평균 8시간 중지(전체정지 4시간, 일부정지 4시간)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기상청은 유지·보수팀 인원을 8명에서 13명으로 늘렸다고 한다. 2009년까지 유지·보수 비용 1백23억원(연간 24억5천만원) 이외에 성능 개선 비용으로 2백50억원을 추가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기상청은 2009년쯤 적정 사용률 70%를 달성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그해는 5년간의 기기 수명이 끝나는 해로 슈퍼컴퓨터 2호기를 폐기해야 한다.

   
   
“수치 예보 모델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국회 과학기술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김태환 의원은 “2호기 유지·보수 계약서를 검토해보니 일방적으로 유지·보수 회사에 유리한 굴욕적인 계약을 체결했다. 슈퍼컴퓨터 1호기 구입 때도 제품 구매와 유지·보수 계약을 분리해 제조사에게 유리한 계약이었으며, 2009년 구매 예정인 3호기도 분리 계약을 준비하고 있었다”라고 밝혔다. 김의원은 “기상청의 이런 안이한 물품 구매 자세가 결국 국고 낭비를 초래하고, 기기를 효율적으로 운용하지 못해 예측 정확도가 떨어지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현재 기상청 홈페이지에서는 디지털 예보를 시험 운영 중이다. 디지털 예보는 기존 광역 단위로 기상을 예보하던 공식 예보 시스템을 읍·면·동까지 정밀하게 예보하는 것이다. 국민 개개인이나 산업계가 기상 정보를 활용하려는 취지이다. 기상청은 원래 지난해부터 정식으로 실시할 참이었다.
전국적으로 예보 구역을 3만7천6백97개로 늘려 현재의 1백66개보다 2백27배나 많게 정밀한 기상예보를 계획했다. 그러나 디지털 예보의 정확도가 크게 낮아 기상 정보로 쓰기에는 부족하다. 이런 이유로 디지털 예보 실시를 2010년 이후로 연기했다. 이미 22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상태이다.
이처럼 정확도가 떨어지자 과학기술부에서는 ‘기상청 예보 역량 진단평가’ 용역을 실시했다. 보고서에서는 예보 정확도가 낮은 원인을 수치 예보 모델(100점 만점 72점)이 부족하고, 예보 관역량(78점)이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컴퓨터를 활용해 날씨를 예측하는 프로그램이 크게 낙후된 것도 정확도가 낮은 원인 중의 하나이다.
허창회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일기예보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수치 예보 모델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질 높은 관측 자료를 생산하기 위해 관측 장비의 선진화를 앞당겨야 한다. 숙련된 예보관을 육성하는 것도 시급하다. 기상 연구 분야의 우수한 연구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도 뒤따라야 한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내년 중에 자체 기상위성을 쏘아 올릴 계획이다. 인공위성을 활용하면 집중적인 감시를 통해 기상 변화를 측정할 수 있다. 태풍의 이동이나 호우대의 이동을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어서 일기예보의 정확도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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