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 승인 2008.01.28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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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대제 전 정통부장관 / “정통부 폐지해도 통신 규제, IT산업 육성 계속 돼야”

 
‘삼성전자 대표이사→정보통신부장관→경기도지사 후보→스카이레이크 인큐베스트 대표이사’.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2002년 12월부터 현재까지 진대제 전 정통부장관의 명함에 박힌 직함들이다. 짧다면 짧을 수도 있는 그 5년 동안 진 전 장관의 인생은 변화의 연속이었다. 잘 나가던 삼성전자 대표이사에서 갑자기 정통부장관으로 ‘차출’되더니, 3년 동안 일하면서 1천여 명의 팬클럽까지 생겼다. 그야말로 ‘스타 장관’이었다. 그러나 2006년 열린우리당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전공인 경영인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투자펀드 운용 회사의 대표이사이다. “지금은 자유로워졌다. 손자들과 노는 것도 즐겁다”라고 말하는 진대표. 그를 지난 1월22일 오전 서울 도곡동 사무실에서 1시간 반 동안 만났다. 진대표는 CEO 출신인 이명박 당선인에 대한 기대감을 보이면서도, 정통부가 폐지되는 것과 관련해 “개인적으로 서운하다”라는 감정도 피력했다. 그리고 “정권 인수위가 통신비 20%를 인하하겠다고 했는데, 그런 것이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다”라며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어떻게 지내는가?
사모 펀드 회사인 스카이레이크 인큐베스트를 운영하고 있고, 한국정보통신대학 석좌교수로 ‘IT 최고경영자 과정’ 강의를 하고 있다. 그 밖에도 국가 간 협력을 위해 정부에서 요청하면 외국에도 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권오규 부총리 등과 함께 남아공에서 열린 한국-아프리카 2차 협력회의에 다녀왔다. 거기서 우리나라 IT산업이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 설명하면서 ‘당신들도 발전 가능성이 있다’라는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었다. 내가 기업과 정부에서 겪은 생생한 경험을 들려주었더니, 3월에 또 한 번 와달라고 초청하더라.
해외에서도 펀딩을 받았나?
해외에서는 아직 펀딩을 못 받았다. 2006년 10월에 설립된 신생 회사여서 지금은 투자만 하고 있다. 아직 투자 회수 기록이 없어서 3년 정도는 걸려야 할 것 같다. 그렇지만 국내에도 돈은 얼마든지 있다. 연기금이나 공제회 등에 유동성이 풍부하다. 문제는 적당한 투자거리를 찾아 투자해서 그것을 잘 회수할 수 있느냐이다. 투자를 잘 해서 경영하고 보육해서 회사의 가치를 얼마나 올려놓느냐가 중요하다. 그래도 올해 상반기 중에는 다른 나라에서 특정 기금을 받아올 수 있을 것 같다.
올해 경제 전반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는가?
경제 전반적으로 낙관적이지 않다. (신정부에서는) 6% 성장시키겠다고 하는데 그것도 나쁘지는 않다. 경제는 심리이기 때문에 그런 낙관적인 목표가 소비와 투자를 늘릴 수 있다.
다만 그렇게 낙관적으로 목표를 높게 설정하는 건 좋지만 6% 성장을 위해 경기 부양책을 쓰면 후유증이 생길 것이다. 새로운 정부에서도 무리수를 쓰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전반적으로 5% 성장을 넘지 못할 것이라는 경제 전망이 많은데, 그게 맞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IT산업은 어떨 것으로 보는가?
작년과 비슷하거나 밑돌 것 같다. 작년에 6.1% 정도 성장했는데, 올해는 6%를 밑돌 것으로 생각한다. 반도체와 휴대전화 가격이 많이 떨어지는 등 작년 하반기에 큰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 후유증이 있을 것 같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으로 소비가 위축되고, 유럽의 주가가 떨어지는 등 시장이 경직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 경기가 안 좋을 것이라는 예측이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IT 업계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이럴 때일수록 ‘백 투 더 베이직(Back to the basic)’,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체질 강화와 원가 절감, 미래를 위한 투자를 생각해봐야 한다. 모든 부문에서 공격적으로 물건을 파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내실을 다지는 한 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조직 개편에 따라 정통부가 폐지될 것 같다.
거기에 대해 할 얘기가 많다. 1994년 말 정통부가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것 자체가 획기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이동통신과 인터넷 발달 등으로 정보통신 보급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정보통신 1등 국가가 되었다. 결과가 좋았고, 앞으로도 역할이 있다. 정통부는 크게 통신 규제 정책과 IT산업 육성 정책 등 두 가지 축으로 일을 해왔다. 두 가지 축을 균형 있게 운영해서 오늘날처럼 IT산업이 발전해온 것이다. 그런 패러다임을 끝내고, 지식경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입해서 산업 전반을 키워보자고 하는 신정부의 아이디어도 틀리지는 않다고 본다. 잘 하고 있는 IT 인프라나 각종 노하우를 다른 산업과 접목시켜 격상시키자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이다. 그런데 잘 되어왔던 두 개의 축이 앞으로도 살아 있을 것이냐가 문제이다. 신정부가 지식경제라는 형태로 넓은 분야에서 (IT 인프라를) 활용하겠다는 것은 좋은 생각인데, 정통부의 두 가지 메커니즘이 중단되지 않고, 살아 있는 엔진으로 가동되도록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전임 정통부장관으로서의 소회는.
개인적으로는 서운하다. 어찌 보면 친정집이 사라지는데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렇지만 대통령 당선인이 자신의 철학으로 운영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엄청난 실험일 수 있는데, 방송통신위원회와 지식경제부 등에서 두 가지 메커니즘이 살아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할 것이다.
인수위가 발표하고 있는 정보통신 관련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신정부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첫 단추를 잘못 꿰고 몇 개 실수라도 하면 불신당할 소지가 크다. 예를 들자면, 시장 개입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신정부의 철학이다. 하지만 통신비를 20% 내리겠다고 발표했다. 그것은 정부가 내릴 수 없는 부분이다. 그걸 보면서 ‘이 사람들이 뭘 잘 모르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이 한 달에 통신요금으로 평균 4만5천원 정도를 쓴다. (장관 재임 시절) 발신자 표시 사용료를 1천원 내리는 것도 아주 힘들었다. 그런데 통신비를 20%나 내린다면 국민들은 9천원 정도를 내린다고 예상할 텐데, 너무 과도한 것이다.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얘기이다. 그런 것들이 잘못하면 포퓰리즘이다.
대선 당시 우회적으로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는데.
이명박 후보 이름을 지칭해서 지지한 형태는 아니다. 여성벤처협회 행사에 가서 ‘기업 하던 사람이 정부에 가서 해보니까 모든 게 혁신이 되더라’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명박 당선인이 CEO도 하고, 서울시장도 해봤으니까 잘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지방 정부와 중앙 정부는 운영하는 스케일부터가 다르다. 언론의 감시도 더 많고, 의사 충돌도 다른 양태로 벌어지기 때문에 서울시장을 할 때처럼 밀어붙이듯이 중앙 정부에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청계천 복원 공사와 대운하 공사는 다르다. CEO는 70%만 확실하면 ‘내가 책임질 테니까 나를 믿고 따르시오’라고 말할 수 있는데, 중앙 정부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중앙 정부에서는 5%의 반대가 있고, 그 안에 무시할 수 없는 가치가 숨어 있다면 그것이 100%가 된다. 대통령이라도 밀어붙일 수만은 없을 것이다.

 

2006년 지방선거에 출마했고, 올해 총선 출마설도 나온다.
선거는 다시 하고 싶지 않다. 기업과 정부에서 일하면서 소외된 분들과 만나볼 일이 많지 않았다. 지방선거에 나서면서 그분들한테 다가가서 얘기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10%만 맞아도 100% 맞다고 부풀려서 말해야 하는데, 내 체질에 안 맞았다. 정치에는 별로 생각이 없고, 총선에 출마할 생각도 없다.
현재 방송통신위원장으로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만약 정보통신 업무와 관련해 입각을 제의받는다면?
아이고. 3년이나 군대에 다녀온 느낌인데 또 할 생각은 별로 없다. 민간에서 정부로 가면 아무런 혜택이 없다. 민간에서 했던 일과 굉장히 단절된다. 1년쯤 (장관을) 하고 돌아오면 몰라도 3년을 하다 보니 단절이 발생했다. 장관으로 입각하려면 많이 생각해보고, 자기 희생을 각오하고 가야 한다. 그냥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면 정책자문은 할 수 있다.
참여정부에 대해 평가하면.
참여정부가 잘한 일이 많다. 좋다, 나쁘다 평가를 떠나서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행정수도를 이전하려 한 것이나, 언론 개혁을 한 것, 돈 안 드는 정치를 한 것은 굉장히 잘한 일이다. 권위주의를 청산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피부로 와 닿는 경제가 세계 평균을 밑돌았던 것이 국민들의 불만이었고, 그래서 외면당했다고 본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삼성 특검에 진대표를 비롯해 김인주·신응환 씨 등 계열사 사장들의 소환을 요구하고 있다.
특검에서 나를 오라고 할 이유가 없다. 내가 e삼성의 등기이사였기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나는 (삼성) 구조본과 관련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삼성전자 바깥 일을 해본 적이 없다. 무엇보다 내가 장관이 되면서 재산 등록을 할 때 다 공개되었다. 내 명의로 된 차명 계좌가 있었다면 그때 다 나왔을 것이다.
향후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을 잘 키워서 우리나라 최고의 투자 회사를 만들고 싶다. 올해 베이징올림픽이 끝나면 중국으로 진출해서 그곳 회사를 인수할 계획도 있다. 지금 1천4백억원 정도의 펀드가 조성되어 있고, 국내 업체 10곳에 투자하고 있다. 그것을 올해 20개 회사로 늘릴 계획이다. 펀드도 몇 배 더 키우고, 해외로도 더 진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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