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풍 탄 ‘행운의 사나이’ 새 정부와 ‘코드’ 잘 맞출까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 승인 2008.01.28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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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청수 경찰청장 내정자, 참여 정부에서 잘 나가다 새 정부가 다시 ‘낙점’ 검경 수사권 조정·기자실 복원·경찰대 폐지 등 난제 산적해 ‘소신’ 펼칠지 관심

지난해 12월 대선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어청수 경찰청장 내정자가 직원들과 가진 사석에서 “얼마 안 있으면 난 ‘불백’이 된다”라고 아리송하게 말했다. ‘불백’은 원래 불고기백반의 줄임말이지만, 요즘에는 ‘불쌍한 백수’라는 은어로도 쓰인다.
어내정자는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치안비서관(2004년)과 부산경찰청장(2005년), 경찰대학장(2006년), 서울지방경찰청장(2007년)을 거치면서 승승장구했다. 특히 ‘취재지원선진화 방안’에 따라 지난해 기자실 폐쇄에 앞장서 언론으로부터 맹공격을 받기도 했다.
어내정자가 ‘불백’을 운운했던 시점은 이명박 후보의 당선이 유력시되던 때였다. 이후보가 당선되면 진짜 옷을 벗어야 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던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농담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당시 그 자리에 참석했던 경찰은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면 정말로 옷을 벗게 되는 줄 알았다”라고 전했다.
그런데 그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차기 경찰청장 하마평에 올랐던 동기들을 제치고 경찰청장으로 내정되었다. 지난 1월10일 노무현 대통령은 2월9일 임기가 종료되는 이택순 경찰청장의 후임에 어청장을 내정했다. 그것도 대통령직인수위와 합의된 인사였다. 
그리고 지난 1월24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해 경찰 총수로 등극하게 되었다. 1980년 2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 4월 경위 계급장을 달고 서울동부경찰서 정보1계장으로 경찰에 몸담은 지 28년 만이다.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면 옷 벗을 각오였다?

이명박 차기 정부의 첫 인사청문회였지만, 이미 정치권이 합의했던 터라 예상대로 싱겁게 끝났다. 오히려 청문회 당일 다소 긴장한 듯한 표정으로 청문회장으로 입장하는 어내정자에게 최인기 위원이 다가가 악수하며 “어내정자, 무사 통과지 뭐”라고 격려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이날 청문회에서 어내정자가 소유한 세차장 탈루 의혹이 제기되었지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이처럼 ‘어청수 호(號)’의 출발은 매우 순조로웠다. 그런데 어내정자 앞에 산적한 과제 하나 하나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들이 아니다.
우선 몇 년째 검찰과 갈등을 빚고 있는 수사권 조정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가장 큰 관심사이다. 그럼에도 지난 1월4일 경찰청의 인수위 업무보고 당시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에 대해서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이에 이당선인이 이 문제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국회 행자위 소속 정성호 위원은 “신임 청장으로서 그 어느 때보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결연한 의지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검찰의 기소독점주의 체제를 깨야 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당연히 일선 경찰들도 수사권 독립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어내정자도 “전체 형사 사건의 98%를 처리하고 있는 경찰이 수사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검찰이 경찰의 수사를 포괄적으로 지휘하는 수사 구조를 바꾸자는 것이다. 경찰의 내부 여론 수렴 절차를 재정비하는 한편 관련 부처와도 협의하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경찰의 수사권 독립에 대해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현재까지 이명박 당선인은 수사권 문제로 빚어지고 있는 검찰과 경찰 간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당선인이 지난 1996년 총선에서 당선된 후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 판결을 받아 검찰과 ‘악연’이 있었으나, 지난해 12월 검찰이 BBK 주가조작 의혹 사건 수사와 관련해 ‘무혐의’ 결론을 내리면서 검찰에 대한 신뢰가 싹튼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에 어내정자가 수사권 조정 문제를 이명박 정부에서 강하게 추진해나갈 수 있을지에 검·경 양측은 모두 민감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는 당장 어내정자가 기자실 폐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에 관심이 쏠린다. 그는 앞서 언급했듯이, 참여정부의 ‘취재지원선진화 방안’에 따라 서울지방경찰청장 재임 당시 경찰청과 경찰서 기자실 폐쇄를 진두지휘한 당사자이다.
하지만 이명박 당선인이 공약했듯이 국정홍보처가 폐지되고, ‘취재지원선진화 방안’도 철폐되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다시 말해 내정자는 자신이 폐쇄했던 기자실을 불과 몇 달 만에 다시 복원해야 하는 매우 난감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는 “기자들이 불편해 하고 있고, 경찰에 대한 언론의 감시 기능이 위축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따라서 제도의 시행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에 대해서는 합리적으로 개선해나가도록 하겠다”라고 밝혀 신정부의 기자실 복원 방침에 따를 것임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개방형 브리핑제’ 도입에 찬성하고 따랐던 그가 이당선인의 기자실 복원 공약을 ‘순순히’ 따를 것인지 아니면 ‘소신껏’ 거부하거나, 개방형 브리핑제를 대체할 만한 수정안을 들고 나올 것인지도 두고 볼 대목이다.

기자실 복원 여부가 소신 엿볼 기회 될 듯

더불어 그에게는 경찰 내부에 쌓여 있는 ‘집안 문제’도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경찰대와 간부 후보 등 출신별로 갈려 빚어지고 있는 알력과 갈등은 비단 어제오늘만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인사 때마다 출신별로 승진에 차별이 있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경찰은 공식적으로 “출신별 차별이 없다”라고 누누이 강조하지만, 일선 경찰들의 불만어린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고 있다. 서울의 한 경찰서 소속 형사는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경찰대 출신과 나이 많은 형사가 갈등을 빚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경찰 안팎에서는 경찰대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내정자의 의지는 단호해 보인다. 그는 “국민 80% 정도가 경찰대학 폐지를 반대하고 있다. 우수한 자원의 유입이 필요하기 때문에 경찰대학을 그대로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밝혔다. 일부 경찰대와 비(非)경찰대 출신 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이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이 밖에도 전·의경 폐지 논란과 폴리스라인 규정 위반자 전원 연행 방침에 대한 시민단체의 반발 등을 어떻게 풀어나갈지도 내정자의 역량에 달려 있다.
어내정자는 지난 1992년부터 1994년까지 서울 강남경찰서 정보과장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당시 이명박 당선인은 14대 국회의원으로 강남 지역에 살고 있었는데, 지역 행사장에서 두 차례 만났던 것으로 어내정자는 기억한다. 그렇지만 “특별한 인연은 없다”라고 말한다.
노무현 정부에서 탄탄대로를 달려왔던 어내정자가 이명박 당선인과도 ‘코드’가 맞을까. 반대로 허준영 전 경찰청장처럼 대통령과 껄끄러운 관계로 등지게 될까. 머지 않아 기자실 복원 문제를 놓고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향후 친소 여부도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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