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정책, 첫발부터 삐거덕?
  • 정준모 (문화행정·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 ()
  • 승인 2008.02.01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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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위, 국립중앙박물관을 문화재청 산하에 두기로…“있을 수 없는 일”

우리에게 박물관이라는 곳은 언제나 정체되고 보수적인 집단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박물관의 속성상 어쩔 수 없다. 문화란 민초들의 삶과 철학이 켜켜이 쌓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한 나라의 문화적 총체이자 집합체인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경박하게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민족과 국가의 정체성을 지키고 또 이어가는 기관의 속성상 학술적인 연구와 논리적 전개 그리고 미래 지향적 가치를 전제로 연구하고 이를 근거로 민족 문화의 오늘과 내일을 지어내야 하는 것이다.

박물관의 원칙을 무시한 결정

진중한 자세와 심도 있는 연구 결과는 국립박물관의 존립 근거이다. 즉 박물관은 단순하게 문화재를 다루는 곳이 아니라 우리나라 문화 유산과 함께 오늘과 미래의 문화를 다루는 동시에 한국학이라는 학문의 근간을 이루어나가는 기관이라는 점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유네스코 산하 ICOM의 원칙을 예로 들지 않아도 너무도 당연한 일에 속한다. 그런데 인수위가 박물관을 단순하게 행정 기관으로 보아 문화재청에 편입시킨다는 것은 박물관의 원칙을 무시한 처사이자 국제기구인 유네스코가 정한 원칙을 저버린다는 의미에서 유엔 가입 국가이자 현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국가로서 국제규약을 어기는 일이다. 참여정부에서도 국립미술관을 행정 기관으로 보아 행정형 책임 운영 기관으로 지정하더니 정부가 바뀌자마자 여기에 한 술 더 떠 박물관을 문화재를 다루는 일개 행정 기관으로 치부한대서야 이치에 닿는 일인가 말이다. 
게다가 문화재청은 일제 강점기 이왕직의 후신으로 조선황실 재산을 관리하고 황족을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해 만든 기관이다. 물론 여기에 일부 문교부가 가졌던 문화재 보존 기능을 흡수해서 문화부의 외국에서 다시 청으로 승격해 오늘에 이르고 있지만 지금까지 서울 인근의 궁과 능을 관리하고 있는 것도 이왕직의 임무를 그대로 승계한 탓이다. 이런 기관이 슬그머니 대한민국의 문화적 혼과 자산의 보고인 국립중앙박물관을 접수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조금 과장하면 집안 대대로 써오던 제기를 원수 집 제사에 쓰라고 빌려주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 할 것인가.
문화재청의 행정 중심 인력 구조는 전문성이 부족해 한국의 문화와 문화유산을 유용하게 연구하고 조사할 수 없는 체제이며, 인적 구성도 따라주지 않는다. 문화재청의 주요 업무는 단지 예산을 분배해주는 기관에 불과한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그들의 부족한 전문성을 보충하기 위해 문화재 위원과 문화재 전문위원을 두고, 산하에 각종 연구소와 학교를 두고 있다. 이는 행정 전문직 중심의 문화재청이 문화와 문화재를 다루는 전문적인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이런 외부 위원과 부설 연구기관을 두지 않으면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기관임을 그대로 증명하는 일이다. 사실 문화재 위원과 전문위원은 외국 어느 곳에도 없는 제도이다. 여기에 문화재청이 중앙박물관을 접수하게 되면 그 산하 박물관과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의해 설립된 대학 박물관·미술관과 사립 박물관·미술관은 어떻게 될 것인가.
중앙박물관이 문화재청의 산하 기관이 되어야 한다면 국립현대미술관, 국립국악원, 국립극장, 국립민속박물관과 여타의 관련 법인인 한국문화재보호재단과 유사한 기능의 한국공예문화진흥원, 무형문화재 전수회관 등은 국립민속박물관과 함께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 것일까. 또 한국학중앙연구원도 문화재청 산하로 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분명하게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오늘과 미래의 문화를 이끌어 가는 기관들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조정한다면 어떤 재앙을 초래할지 곰곰 생각해서 결정해야 할 것이다.

 

비전문가가 인수위에 잘못된 정보 준 듯

그러나 이는 그간 문화부가 자초한 일이기도 하다. 실·국 이기주의로 문화 전문기관을 체계적으로 일원화하지 않고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국어원 그리고 국립민속박물관은 문화정책국이 관장하고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극장, 국립국악원은 예술국이 관장해오면서 비롯된 일이다. 사실 문화부가 이번 개편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는 있지만 이렇듯 잘못된 구조 속에서 문화 보존과 활용을 편의적으로 운용해온 탓이 더 크다. 특히 박물관과 미술박물관을 분리해서 관장했다는 것은 문화 생산과 문화 재창조 기능을 간과한 것이자 행정 편의적으로 다루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일이다. 그리고 이는 그간의 문화 행정이 박물관의 생산 기능보다는 보존 기능에 더 중점을 두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문화와 문화재라는 것이 매장 문화재만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 문화재 발굴과 보존 그리고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모셔두는’ 보존보다는 ‘닦고 조이고 기름 치는’ 활용이 더욱 중요할 뿐만 아니라, 보존은 물론 문화 콘텐츠의 간단 없는 생산과 보급 그리고 세계화라는 큰 물결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도 박물관의 문화 생산 또는 재창조 기능은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문화의 일부분인 문화재를 다루는 기관이 상위개념인 문화를 다루는 기관을 먹는 데서야 될 말인가.
박물관이나 미술박물관의 약칭인 미술관은 문화의 보고이자 이를 바탕으로 미래의 문화를 창조해 나가는 창조적 기관이며 한 국가를 상징하는 상징체이다. 또 문화 국가로서 국민 자존심의 원천이다. 그리고 문화적 콘텐츠이자 이야기 공장으로 굴뚝 없는 관광 산업의 근간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많은 다양한 얼굴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장소이자 기관이다. 사실 선진국들이 국제화를 외치면서도 미술관·박물관 건립에 열정을 쏟는 것은 박물관·미술관이 갖는 대내외적인 의미에 근거한 것이다. 또 그렇기 때문에 1945년 광복 후 변변한 집 한 채 장만하지 못한 중앙박물관을 아시아 최대 규모로 짓는 호기를 부릴 때 국민들이 순순히 동의한 것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추구한다는 이명박 정부가 상징적이자 그들의 문화적 지향점을 보여줄 첫 번째 작품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와는 전혀 반대로 방향을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아마도 인수위에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 측이나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전문가 역할을 자처한 때문으로 보인다. 문화 선진국이라는 영국이나 미국은 서로 다른 문화 기구 체제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문화재 원형 보존을 책임진 기관이 박물관을 거느린 나라는 없다.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보존에 그칠 것인가 아니면 보존하고 이를 활용할 것인가라는 문제에서 후자의 생산성을 중시한 때문일 것이다. 만약 발굴하고 이를 신주단지 모시듯 관리만 할 목적이라면 문화재청의 박물관 흡수를 통한 일원화는 옳다. 하지만 이는 몰락한 양반집에서 족보만 껴안고 좋았던 한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 할 것인가. 미래로 갈 것인가 아니면 과거에 매달려 그곳에 안주할 것인가. 단지 일개 문화 기관의 소속 문제가 아니라 이 나라 미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문제가 바로 박물관과 미술박물관을 어떻게 볼 것인가와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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