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무너뜨린 ‘영혼 없는 동물’들
  • 전남식 niceshot@sisapress.com ()
  • 승인 2008.02.18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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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의 정치’는 참으로 좋은 말이다.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오로지 국민을 받들고 섬긴다는 자세로 직분을 다한다면 만사가 순조롭게 돌아갈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에 이어 손학규 대통합민주신당 대표도 국민을 섬기는 정치를 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정치 지도자라면 당연히 해야 할 소리임에도 아주 신선하게 들린다. 그동안 입만 열면 ‘국민과 국가를 위해’라고 외쳤던 정치인이나 관료들의 식언에 속고 울며 살아온 탓일 것이다.

우리는 또 허망한 꼴을 당했다. 한국 사회는 지금 집단 아노미에 싸여 있다. 숭례문 600년 역사가 어이없이 무너지는 현장을 목격한 수많은 국민이 허탈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부터 지자체 말단 공무원까지 숨을 죽인 채 침묵에 빠져 있다. ‘국보 1호’ 하나 제대로 못 지키는 무능한 이들에게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이들에게서 국민을 섬길 의지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명박 당선인도 대책 없이 숭례문을 개방한 장본인이라고 해서 눈총을 받고 있다. 그런 그가 느닷없이 “십시일반으로 국민 성금을 모아 숭례문을 복원하자”라고 제안해 분란을 일으켰다. 자칫하면 물러나는 대통령과 새 대통령 모두 머리를 조아리고 국민에게 사과하는 촌극이 벌어질 판이다.

나라 기강이 풀려도 너무 풀려 있다. 여야가 사생결단의 대선을 치르고, 총선을 목전에 두고 있어 더욱 그런 것인가. 문화재청장은 숭례문이 허물어지던 날 기업 돈을 받고 ‘외유성 출장’을 다녀온 의혹이 제기되자 “그만큼 (국고를) 아낀 것 아니냐”라는 기막힌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 사람이 책임을 통감하고 사의를 표명했는지 의문이다. 윗사람이 이럴진대 아래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문화재청과 소방청, 서울 중구청 공무원들은 서로 네 탓을 해가며 면피하느라 급급했다. 이들은 정말 ‘영혼 없는 동물’인가 보다.

세상이 어수선하다 보니 곧 새 정부가 출범해도 분위기는 영 딴판이다. 예전 같으면 희망의 메시지가 흘러넘쳐야 정상이다. 하지만 정부조직 개편안을 놓고 여야가 힘겨루기를 하고, 새 정부가 지연·학연의 코드인사를 한다해서 시끄럽기만 하다. 도대체 새 정부의 조직 개편안이 왜 정치적 흥정거리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명박 당선인은 국민으로부터 5년 통치를 위임받았다. 그가 내세운 ‘작은 정부론’은 당장 4·9 총선에서 국민 평가를 받을 것이고, 다음 대선에서 최종 심판을 받을 것이다. 찬성이든 반대든 국민의 뜻에 따라야지 여야가 힘의 논리로 주무를 일이 아니다.

숭례문은 이렇게 무책임하고 민의를 우습게 아는 정치인과 관료들이 무너뜨렸다. 곧 출범하는 이명박 정부는 이번 참사가 남긴 교훈을 깊이 되새겨야 한다. 까맣게 타버린 국민들의 가슴은 진정한 ‘섬김의 정치’로만 풀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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