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국보’ 관리도 없고 안전도 없었다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 승인 2008.02.18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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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보물 많은 불교 문화재 대부분 방치 전문가 대다수 “볼 때마다 위태롭다” 문화재 전반에 대한 관리·보존 실태 총점검해야

 
국보 1호 숭례문이 불에 타 본래 형체를 잃었다. 늠름한 위용은 간데없고 처참한 잔해만 남아 국민들의 가슴에 커다란 멍이 생겼다. 요즘 숭례문 주변에는 다양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국화꽃을 들고와 놓고 가는 사람, 제삿상을 차려놓고 절하며 우는 사람, 추모한다며 살풀이춤을 추는 사람, 태극기를 온몸에 휘감고 다니는 사람, 역사의 현장을 담기 위해 사진을 찍는 사람…. 이런저런 이유로 매일 수백명이 숭례문을 찾아 ‘죽음’을 애도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분노’이다. 2월12일 찾은 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정치인들을, 문화재 관리 당국을, 소방 당국을 원망했다. 남대문시장에서 일한다는 한 50대 여성은 “우리 집이 불탄 것 같다. 소방차가 수십대 왔는데 어떻게 불에 탈 수 있는가”라며 눈물을 보였다. 한국 역사의 랜드마크였던 숭례문이 불에 탄 사건은 한 건축물이나 문화재가 사라졌다는 차원을 넘어 정신적인 상징이 무너진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보 1호라는 상징성에다 총체적인 관리 부실,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화재 진압 과정과 사회 불만자들에 대한 관심 소홀 등이 겹쳐지면서 국민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숭례문 화재’ 이후 관심은 목조 문화재에 집중되었다. 불에 취약한 목조 문화재가 많은 우리나라의 특성 때문에 언제든 제2, 제3의 화재 사건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3년 사이 강원도 양양 낙산사와 전북 김제 흥복사, 전북 고창 문수사가 화재로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이런 걱정이 단순한 기우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찰에서 일어나는 화재도 한 해 평균 50건에 이른다.
 

2006년 4월과 5월 발생했던 창경궁 명정전과 수원 화성 서장대 화재 사건처럼 사찰이 아닌 목조 문화재를 대상으로 한 방화도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상대적으로 경비가 소홀하고 불에 타기 쉬운 목조 문화재가 이른바 ‘묻지마 범죄’의 표적이 되는 현상은 분명 새롭게 주목해야 할 사회적인 병리 현상이다.
2005년 강원도 양양 낙산사가 산불 피해를 입어 거의 모든 건물이 불에 탄 뒤 조계종은 전국 30개 주요 사찰을 대상으로 방재 현황을 조사했다. 화재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일본도 방문했다. 현재 불교 건축물 가운데 국보로 지정된 것은 16동, 보물은 68동, 시·도지정문화재는 2백71동이다. 불교계의 조사 결과는 놀랍다.
경북 안동에 있는 봉정사 극락전을 보자. 국보 15호인 이 건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다. 1972년 보수했기 때문에 겉에서 보면 새 건물처럼 보이지만 법당 안으로 들어가면 위엄과 역사가 살아있음을 금방 느낄 수 있다. 극락전 옆에는 보물 55호인 대웅전이 있고, 다른 쪽에는 보물 448호인 화엄강당이 있다. 극락전 주위 건물 여섯 동 가운데 다섯 동이 국보, 보물, 지방문화재이다.
조계종 조사단은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건축물 간 간격이 극히 짧으며, 밀집되어 있기 때문에 사찰 영역 전체를 대상으로 한 특별한 소방 설비 제안이 필요함.’ ‘화재 감지 장치 및 방범 장치 설치가 절실함.’ ‘대웅전과 극락전 뒤편에 있는 스프링클러는 화재 방지용이 아니라 농업용 스프링클러이기 때문에 실효성에 대해 재고 여지가 있음.’ 봉정사는 100점 만점에 47.5점을 받았다.
전남 구례에 있는 화엄사는 그래도 사정이 조금 나은 편이었다. 2002년 종무소에 불이 난 이후 정기적으로 소방 점검을 받고 소방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국보 67호인 각황전 안에는 열 감지기도 설치되어 있고 경내 곳곳에는 화재경보기가 있다. 67.5점을 받아 봉정사보다는 상황이 나았다. 그러나 이곳 또한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누전이 자주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3년 원주 구룡사가 전기 누전으로 불탄 것에서 보듯 사찰의 전기 누전 문제는 문화재 전문가들이 “볼 때마다 위태롭다”라고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부분이다.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 이분희 행정관은 “전기선 설치 기준이 없어 마음대로 선을 늘린 곳이 많다”라고 말했다.
 

낙산사 화재 직후인 2005년 방재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국회에 80억원의 예산을 요청했던 조계종은 ‘현황 조사용’으로 1억원을 배정받는 데 그쳤다. 방재 시스템 구축 예산은 이듬해인 2006년 15억원이 확정되어 2007년 들어서야 집행되기 시작했다. 국비와 지방비가 반반씩이다. 조계종은 이 돈으로 해인사·무위사·봉정사·낙산사 등 네 개 사찰에 대한 기본적인 방재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2008년에는 2억원이 늘어나 17억원이 배정되었다. 이분희 행정관은 “조사해보니 해인사 같은 중요한 사찰들의 경우 방재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하려면 30억원이 소요된다. 기본적인 체계를 갖추는 정도라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위기에 처해 있는 국보’는 목조 건축물만이 아니다. “숭례문 화재 사건을 계기로 국보를 비롯한 문화재 전반에 대해 관리·보존 실태를 재점검해야 한다”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다.

낙산사 화재 직후 80억원 예산 요청했던 조계종, 1억원 받아

경북 안동에 있는 국보 16호 ‘안동 신세동 7층 전탑’이 대표적이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전탑(벽돌탑)인 이 문화재는 탑 전체가 동쪽으로 10° 정도 기울어져 있다. 불과 3m 떨어진 곳에 철도가 지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기울어지고 금이 가는 훼손이 진행된 지가 벌써 여러 해 되었다. 이대로라면 어느 날 갑자기 무너져내리지 말라는 법이 없다. 진작부터 이런 위험성이 제기되었지만 고쳐지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한마디로 ‘돈’ 때문이다. 철길을 옮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예산이 없다.
경기도 여주에 있는 국보 4호 고달사지 부도는 1934년과 1962년에 이어 지난 2002년 7월에 수난을 겪었다. 도굴꾼들이 침입해 상륜부가 무너지고 옥개석이 깨졌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부도인 이 문화재는 아름다우면서도 힘찬 조각으로 각별한 사랑을 받아왔다. 국보 4호의 수난은 폐사지(사찰이 있다가 없어진 곳)에 있는 문화재들이 겪는 고통을 상징한다.
누구 하나 지키는 사람이 없다. 폐사지라는 특성상 인근에 민가 하나 없이 텅 빈 벌판이나 산기슭에 문화재가 있는 경우가 많다. CCTV도 없고 방범 체계도 전무하다. 누군가 망치를 들고 가 부순다고 해도 누가 그랬는지, 언제 그랬는지 알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고달사지 부도처럼 낮은 철제 울타리에 의지해 낯선 산 속에 홀로 있어야 하는 문화재는 밤이면 두려움에 떨 것 같다. 현재 법규대로라면 폐사지는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게 되어 있다. 여주군청 문화재 담당자인 한상진씨는 “한 달에 3~4차례 직원이 현장을 방문해 점검하고 있다. 올해 탐방로를 만들 계획은 있으나 CCTV 등을 설치할 계획은 없다”라고 말했다.

 

국보 238호 ‘소원화개첩’ 행방 묘연한데도 당국은 무관심

국보 300호인 충남 청양 장곡사 미륵불괘불탱은 식당 한 구석에 보관되어 있다. 만약 식당에 화재라도 나면 피할 길이 없다. 길이가 8m가 넘기 때문에 불이 나면 금방 옮기기도 쉽지 않다. 보물 1265호인 충남 부여 무량사 미륵불괘불탱도 법당 한쪽에 보관되어 있다. 이처럼 사찰에서 보관하기에 규모가 큰 문화재는 이번 기회에 지역 박물관 등과 연계해 위탁 보관을 하는 방법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최근에는 국보 2호 원각사지십층석탑의 이전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지난 2월10일 기자들과 만나 “원각사지십층석탑처럼 유리벽으로 싸놓으면 제대로 보호하는 것이냐. 앞으로 원각사탑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기고 탑골공원에는 복제품을 세우는 것으로 정리했다”라고 밝힌 뒤부터이다. 1999년 산성비와 산성화 된 비둘기 똥으로부터 탑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유리 보호각을 뒤집어썼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탑을 제대로 볼 수 없다. 햇빛이 반사되기도 하고 먼지 같은 것이 끼어 모습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국보 2호는 숨이나 제대로 쉬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네티즌과 일부 문화재 전문가들은 탑을 옮기기보다는 그대로 둔 채로 다른 보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는 것이 제일이다’라는 원칙 때문이다.
이런 ‘위기에 처한 국보들’은 그래도 실체가 있으니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국보 238호 ‘소원화개첩’은 사라진 지가 벌써 7년이 지났다. 2001년 서울 종로에서 화랑을 운영하던 서 아무개씨가 자신의 집에서 도난당했는데 지금까지 행방을 아는 이가 없다. ‘소원화개첩’은 조선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쓴 56자 시가 실려 있는 서첩이다. 한국에 남아 있는 안평대군의 글씨는 이것이 유일하다. 개인 소유라고는 해도 국보가 사라진 지 7년이 지났는데 찾으려는 당국의 노력은 눈에 띄지 않고 있다. 이런 무관심이 이어져 오늘의 ‘숭례문 화재 사건’을 낳은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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