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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손’들 사랑에 울고 웃는 ‘미술’

작품 가치에 컬렉터 신분이 큰 변수로 작용해 한국에서는 대기업 관련 인사들이 ‘좌지우지’

정일주 <아트레이드> 기자) ㅣ 승인 2008.02.18(Mon) 15:2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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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시사저널 박은숙
 
“삼성이 샀습니다.” 김용철 변호사가 공개한 ‘삼성 미술품 목록’이 지금 미술 시장의 최고 키워드이다. 진짜 삼성이 샀는지 혹은 아닌지 사실 여부를 떠나 일단 화랑계와 컬렉터들은 리스트 목록 하나하나에 큰 관심을 기울인다.
김변호사가 “삼성그룹(혹은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이 산 그림”이라고 밝힌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이 언론에 공개된 후, 지난 1월31일 서울옥션 첫 경매에 등장한 리히텐슈타인의 판화 〈우는 여인(Crying Girl)〉은 경합 끝에 추정가(4천만~5천만원)를 웃도는 6천100만원에 낙찰되었고, 청담동 엠포리아 갤러리 또한 지난해 11월 말 김변호사가 리스트를 공개한 후 자기네가 소장하고 있던 리히텐슈타인의 판화 두 점이 팔렸다고 전한다. 리히텐슈타인이야 미술사적으로도 인정받는 팝아트의 대가이지만 거기에 ‘삼성’이라는 후광이 더해져 국내에서 가치가 치솟고 있는 것이다. 

미술 작품 값은 작가의 역량이나 작품의 질만으로 책정되지 않는다. 미학적 가치, 작가의 이름을 기본으로 어떤 갤러리 소속인지 또는 어느 화상과 관계가 긴밀한지 등이 작용한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지는 기준 하나가 ‘어느 컬렉터가 사는가’이다. 어느 분야이든 그 분야의 큰 흐름을 좌지우지 하는 ‘큰손’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는 한국 미술 시장에서도 마찬가지. 몇몇 컬렉터들에 의해 미술 시장은 확실히 ‘좌로 갔다 우로 갔다’를 반복한다.

홍라희·정희자 씨, 현대미술 수집에 ‘쌍벽’

이들이 구입한 미술품, 그리고 그 작품의 작가는 이내 시장의 큰 관심을 확보하고 경매에서 높은 몸값을 공인받는다. 또한, 설령 미술계의 큰손이 사지 않았다 하더라도 눈여겨본 기색이 있거나 화상에게 작품에 대해 자세히 묻는 제스처만 취했더라도 금세 뜨끈뜨끈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게르하르트 리히터, 마크 로스코 등 불과 몇 해 전까지 국내에서는 거래가 소극적이었던 해외 작가들이, 내로라 하는 화상들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데도 ‘큰손’들의 영향이 컸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 미술 시장을 움직이는 ‘큰손’ 중 첫 순위는 역시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이다. 홍관장은 미대(서울대 응용미술과)를 졸업한 미술 전공자이다. 아버지인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미술을 가까이 하며 성장했고, 시아버지인 이병철 전 회장을 통해 미술품을 보는 안목을 키운 홍관장은 국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미술 컬렉터이다.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로버트 라우센버그, 재스퍼 존스, 클래스 올덴버그, 마크 로스코, 프랭크 스텔라, 루이스 부르조아 등등 하나하나 열거하기도 힘들 만큼 많은 해외 작가들과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이우환 등 한국 거장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덕분에 삼성미술관은 이병철 전 회장이 모은 고미술과 홍관장이 수집한 현대미술로 국내 미술계의 보물창고 노릇을 하고 있다.

정희자 (주)필코리아리미티드 회장(아트선재센터 관장)도 미술계의 레이더가 집중되는 인물이다.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의 아내인 정씨는 현대미술 컬렉션에서는 홍라희 관장과 쌍벽을 이룬다. 1980년대 초부터 도상봉, 김환기 등 근대 한국 화가의 작품을 모으기 시작한 그녀는 1998년 서울 소격동에 아트선재센터를 세운 후 본격적으로 현대미술을 컬렉팅했다.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컬렉팅 취향은 ‘홍라희씨와 많이 닮았다’는 것이 미술계 전언이다. 삼성에 미술품을 소개하고 구입하는 통로였던 홍송원 서미앤투스 갤러리 대표가 먼저 연을 맺은 사람 또한 이명희 회장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트리니티가든 주변에 포진한 루이스 부르조아를 비롯해 알렉산더 칼더, 클래스 올덴버그, 호안 미로 등의 작품이 리움 미술관 소장품과 비슷한 분위기를 내뿜는다. 

국내 신진 작가들에 호의적인 컬렉터도 많아

기업인으로 유명한 미술계 큰손으로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대표도 있다. 화장품 회사인 기업 이미지를 ‘미술로 끌어올리겠다’라고 당당하게 야심을 드러내는 서대표는, 국내외 작가를 막론하고 화사하며 밝은 이미지의 작품을 선호한다. 용산의 태평양 사옥에 있는 로버트 인디애나, 빌 비올라를 비롯해 바네사 비크로프트 등 해외 컨템포러리 작가와 노상균, 배병우, 이윤진 등의 작품을 지니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김영호 일신방직 회장 또한 일찌감치 미술품 수집에 관심을 기울인 인물. 지난 1991년 여의도에 사옥을 건립하며 이탈리아 조각가 마우로 스타치올리의 조각 <일신 여의도 91>을 세워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김회장은 집무실을 장 뒤비페, 도널드 저드, 쟝 미쉘 바스키아, 솔 르윗 등 현대미술 전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명 작가들의 작품으로 꾸며놓았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우연히 아라리오 베이징에 들렀다 김회장과 마주쳤다. 그는 미술을 수집하기 위해 먼 길도 마다하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 역시 소문난 큰손 컬렉터이다. 지난해 ‘신정아씨가 월 100만원씩 받고 하나은행 미술 컬렉팅을 자문했다’라는 내용으로 언론에 오르내린 김회장은 알아주는 백남준 마니아이다. 그는 백작가와 고교 동창인데 하나금융지주의 전신인 하나은행이 지난 1971년 창립한 후 구입한 미술품은 3천8백 여 점에 이르러 국내 금융기관 중 최대 규모의 미술품을 자랑한다. 김회장은 해외 미술보다는 국내 작가들에 관심을 기울이며 신진 작가 작품에도 호의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만 10억원 이상을 투자해 신진 작가 30여 명의 작품 70여 점을 구입했다고 하나은행은 밝혔다. 

끝으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한국 미술계 ‘큰손’이 김창일 아라리오그룹 회장이다. 지난해 세계적 예술전문지 <아트리뷰>가 선정한 ‘파워 100인’에,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이름을 올린 그는 우리나라에 데미언 허스트라는 이름을 대중화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2005년 허스트의 〈체러티(Charity)〉를 25억원에 사들인 그는 허스트의 〈찬가(Hymn)〉도 손에 쥐고 있다. 한해 2백억원어치의 미술품을 사는 그는 위에 민준, 왕광이 등 중국 작가에 쏟던 관심을 최근 마틴 코베, 네오 라흐, 마티아스 바이저, 데이비드 슈넬 등 독일 현대미술 작가들에게로 돌리고 있다.

사람들이 그림을 사는 이유 중 하나는 ‘수준을 높이고 싶어서’이다. 그렇기에 명망 있는 사람이 좋아하는 그림, 특히 수준 높은 컬렉터가 관심을 갖는 미술은 단연 시장에서 인기를 얻는다. 마치 워렌 버핏이 산 주식을 사면 마음이 놓이고 그 사람과 같은 주식을 공유하고 있으면 내 경제적 수준과 사회적 지위도 그 사람과 같은 대열에 오른 듯 느껴지는 것이 미술 투자에서도 마찬가지인 까닭이다. 때문에 ‘유명 컬렉터가 산 미술’은 그 무엇보다 미술 시장을 주도하는 기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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