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이냐 ‘사랑’이냐…종교계‘총선 대충돌’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 승인 2008.02.25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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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통일가정당, “전국적으로 후보 내겠다” 총선 ‘올인’…기독교계, “통일교 정치 세력화 막자”사랑실천당 창당 추진·낙선운동 별러

 
평화통일가정당(이하 가정당)이 오는 4월 총선에서 전국적으로 후보자를 내겠다고 밝히며 대대적인 선거 준비에 들어가자 개신교 내에서 이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개신교 단체들은 ‘가정당이 문선명 총재의 통일교를 기반으로 한 정당인 만큼 정치권 진입을 막아야 한다’라며 경계의 끈을 바짝 조르고 있다. 통일교를 ‘이단’으로 규정해온 이들은 ‘이단 정치의 출현을 용납할 수 없다’라는 강경한 입장이다.
‘가정당 후보에 대한 낙선운동을 펼치자’라는 대책이 우선 나왔다. 이와 함께 ‘기독교 정당을 통해 맞대결에나서야 한다’라는 주장도 사랑실천당의 창당으로 현실화하고 있어 통일교와 개신교 간 ‘총선 전쟁’은 어떤 식으로든 불가피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국회 입성을 위한 가정당의 도전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지난 2003년 3월 이듬해에 있을 17대 총선을 염두에 두고 천주평화통일가정당이라는 이름으로 창당했지만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지난해 3월에는 정당법상 ‘최근 4년간 총선인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참여하지 않거나 총선에서 유효 투표 총수의 100분의 2 이상을 득표하지 못한 경우’에 해당되어 정당 등록이 취소되기도 했다.
하지만 가정당은 지난해 8월 평화통일가정당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정당 등록을 마치고 본격적인 정치 활동에 재시동을 걸었다. ‘가정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전국 2백43개 선거구 모든 곳에 후보자를 낸다는 목표로 18대 총선을 준비해왔다. 지난 2월5일에는 주요 일간지에 ‘아빠, 경제가 전부는 아니잖아요’라는 제목의 정치광고를 내보내는 등 대외적으로 활동 폭을 넓혀나가고 있다.

가정당, 예비후보자 1백95명 선관위 등록

대변인 논평을 통해 정치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등 정당으로서의 목소리도 높여나가고 있다. 가정당은 최근 논평에서 이명박 정부의 ‘논공 행상식 인사 행태’를 비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표방한 친기업 정책에서 ‘기업 윤리를 강조하는 내용이 없다’라는 지적도 했다. 앞서 지난 1월에는 이대통령의 주요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 사업에 대해 ‘밀어붙일 사안이 아니다’라며 신중한 자세를 당부했다.
곽정환 총재는 여·야 관계와 관련해 “여당은 남편이고 야당은 아내의 역할을 해야 한다”라고 설명한 후 “가정당은 앞으로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정책 토론회도 열겠지만 비판을 위한 비판은 결코 안 할 것이다. 가정당은 여당은 물론 다른 야당과도 조화와 협력의 관계를 기본으로 삼고 있다”라고 밝혔다.
2월21일 현재 가정당은 총 1백95명의 예비후보자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한 상태이다.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예비후보자를 보유할 만큼 총선에 적극적이다. 중앙당 홈페이지에는 각지역구 예비후보자들이 가진 총선 출마 기자회견 소식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각 지역 예비후보자들은 펼침막 을 통한 홍보와 함께 주민들에게 명함을 돌리는 등 사실상 선거운동에 돌입했다.
곽정환 총재는 “새로운 정당이라서 아직은 인지도가 낮고 현재 국회의원이 없어 여러 가지 제도적 어려움이있지만, 국민들에게 진정성을 갖고 참신함과 새로움으로 다가가면 많은 동조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라고 기대했다.
가정당이 ‘총선 올인’에 나선 데는 지난 4년의 경험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역 국회의원이 없는 원외정당이 가진 한계를 경험하면서 원내 진출의 필요성도 절감했을 것으로 보인다. 곽총재는 “지난 4년 동안 교육 정당으로서 정치 지도자들을 만나 (정책에 대해) 이야기하면 ‘좋아요, 해야지요’ 그래 놓고는 결과가 없다. 그래서 제도권에 들어가 법 제정도 하고 제안도 해야 되겠다”라고 말했다.
가정당은 기존 정당과는 차별화한 철학과 정책으로 총선에 나설 계획이다. 당명에서 나타나듯 ‘가정’을 가장 중요시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통일교 창시자인 문선명 총재의 가정에 대한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는 설명이다.
이를 정책적으로 구체화한 것이 ‘3세대 주거복지 지원법’이다. 3세대가 함께 사는 가정을 지원해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가정당은 ‘3세대 가정이 확산되면 자녀 양육에서부터 교육, 노인 소외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총선을 통해 원내에 진출하면 이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는 방침이다.
총선을 앞두고 가정당이 적극적인 정치 활동에 나서자 개신교 내에서는 ‘통일교의 정치 세력화’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정치권복음화운동은 지난 2월12일 성명 광고를 통해 ‘통일교 가정당에 대한경계령’을 촉구하면서 “가정당이 단 한 석이라도 의정에 나서게 되면 우리 사회에 큰 불행이 닥칠 것이”라는 주장했다.

 

한기총, 대응 방안 찾기 고심

한국기독교총연합회도 가정당의 정치 활동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를 놓고 회의를 갖는 등 대책 마련을 논의 중이다. 이영선 한국기독교통일교 대책협의회 사무총장은 “한기총에서 함께 협력해 대응을 하자고 했다.
이번 주에 열릴 예정인 회의에서 대응 방안이 나올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들 개신교 단체가 가정당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통일교 자체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정당의 정치 활동을 ‘이단인 통일교의 문선명 총재가 자신의 이념과 사상을 친정 체제를 통해 펼치려고 하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가정당과 통일교의 관계를 바라보는 양측의 시각 차이도 크다. 가정당은 통일교와 당을 연관지어 바라보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 ‘문선명 총재의 가정에 대한 철학과 사상에 많이 영향을 받은 정당인 것은 사실이지만, 통일교가 세운 정당도 아니며 통일교인만이 당원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개신교 내에서는 가정당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통일교와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있던 관계가 없어지는 게 아니다’라는 것이다. “정치를 통해서 문선명 총재 자신의 나라를 세우는 꿈을꾸고 있다”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개신교 단체들은 가정당 후보 낙선운동을 비롯한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이총장은 “통일교에서는 벌써 가정당 입당 원서를 받으려는 활동에 나섰다. 우리도 무방비 상태로 있어서는 안 된다. 개신교 성도들이 그들보다 더 뭉쳐서 낙선운동을 벌여야 한다”라고 밝혔다.
가정당이 총선 준비에 적극적으로 나서자 개신교 내에서도 ‘기독교 정당’을 통해 맞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확산되고 있다. 한 개신교계지도자는 “한국 교회도 복음주의에 입각한 기독교 정체성을 가진 기독교 정당을 만들어 국회에 진출시킬 필요성이 있다. 만일 통일교가 국회에 진출한다면 한국 교회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라고 밝혔다.

벌써부터 온라인에서 신경전 후끈

이러한 주장은 그동안 개신교 내에서 창당 여부를 놓고 논쟁이 있어온 사랑실천당의 정치적 행보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난 1월 말 발기인 대회를 가진 사랑실천당은 최근 기독민주복지당과 합당을 통해 정치적 역량을 집중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민당은 2003년 가정당에 맞서 창당한 ‘기독교 정당’이다.
사랑실천당 창당을 주도해온 전광훈 목사는 “강력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통일교가 막대한 자금을 통해서 이번 4월 총선에서 국회를 장악하려 할 것이다. 이를 방치하면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전목사는 사랑실천당의 향후 행보와 관련해 “2월26일쯤 기민당과 합당할 예정이다. 당명은 기독사랑실천당이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총선에서 맞붙을 가능성이 높아진 가정당과 사랑실천당의 ‘신경전’은 벌써부터 전개되고 있다. 가정당의 한 예비후보자는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올린 ‘기독교 사랑실천당이여, 속히 링 위로 올라오라’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개신교계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기독교 자체 내에서도 비판의 대상이었던 사랑실천당을평화통일가정당의 대안처럼 내세우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가정당 후보를 겨냥한 낙선운동 움직임에 대해서도 “과거 시민단체가 비리, 민주 질서 파괴 등 역사적 과오를 갖고 있었던 인사들에게 적용했던 낙선운동을 하겠다고 하니 언제부터 이 나라 국교가 기독교로 바뀌었는지 실로 궁금해지기까지 하다” 라고 비꼬았다.

‘종교의 정치 참여’ 논란 재점화

‘종교의 정치 참여’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종교계 안팎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이는 가정당이 통일교와 연결되어 취급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여겨진다. 곽정환 총재는 “종교 자체가 정치 활동을 할 수 는 없다. 정당은 실정법인 정당법에 의해서 조직이 되고 그 법의 테두리 속에서 정치 활동을 하는 것이며, 종교는 종교 본연의 사명이 있어서 종교 활동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버랩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밝혔다.
개신교 내에서도 정치 참여에 대한 반대 여론이 적지 않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정치를 하려고 하느냐’라는 비판적 시각이 있다. ‘정·교 분리 원칙’이 거론되기도 한다. 대선과 총선 등 선거를 앞두고는 매번 종교 혹은 종교인의 정치 참여에 대한 비판이 있어왔다.
반론도 있다. 전광훈 목사는 “정·교 분리 원칙은 교회가 정치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권력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정치 참여가)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은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영선 사무총장은 정치 참여와 관련해 “찬반 여론이 엇갈리고 있다” 라고 개신교계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이총장은 “좋게 생각하는 분도 계시고 그렇지 않은 분도 계신다. 옳고 그름으로 평가할 단계는 아직 아닌 것 같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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