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풀 넓히고 검증 시스템 확고히 정비하라
  • 윤종빈 (명지대 교수) ()
  • 승인 2008.03.03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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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시스템에 구멍 뚫려 청와대에 고·소·영 기용하더니 장관 내정자도 마찬가지…야당은 인사 청문회 악용 말아야

 
이명박 정부가 2월25일 출범했다. 실용과 경제 살리기를 시대정신으로 하는 ‘작은 정부, 큰 시장’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지난 대선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이명박 후보를 선출한 국민은 새로운 정부가 서민 경제를 회복하고 참여정부에서 증폭된 지역·이념·계층 간 갈등을 치유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시장, 대기업 CEO를 경험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념 통합의 시대 ‘풍요’ ‘배려’ ‘품격’이 넘치는 선진화 시대를 기대한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경제 실행 능력을 인정받아 민주화 이후 최대인 5백만 표가 넘는 표차로 당선되었다. 선거 과정 내내 ‘무능보다 부패가 낫다’는 어이없는 명분이 통했고, BBK 주가 조작 사건의 의혹 속에서도 ‘노무현 정부 심판’이라는 ‘회고적 투표’(retrospective vote)는 그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최근 이명박 정부의 지지도는 역대 정권 출범 초기 지지도와 비교해 상당히 낮다는 결과가 나왔다. 물론 인수위의 과욕과 불법 향응에 둔감한 과거 회귀적 행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둘러싼 정치 협상력 부재 등에서 초래한 바 크다.

이명박 정부 지지도 하락은 국민 기대에 어긋난 인사에서 비롯

그러나 지지도가 하락한 근본적인 원인은 ‘부자 내각’에서 출발한다. 각료 내정에서 효율성과 업무 수행 능력만을 강조하다 보니 국민의 도덕적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많다는 이유로 시기 당하거나 비판받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재산 형성 과정에서 불법이나 탈법적인 행위를 했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더욱이 고위 공직자가 되고자 하는 자에게 이런 부분은 절대 허용될 수 없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보낸 지지는, 그동안 무능한 정부에 시달린 피곤한 국민이 제발 일 잘하는 정부가 탄생했으면 하는 열망이었다. 이명박 후보의 도덕적 결함에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니다. 자녀 위장 취업 및 위장 전입은 물론이고 비록 검찰이 무혐의 결론을 내렸지만 BBK 주가 조작 가담 의혹은 그의 도덕성에 상처를 주기에 충분했다.
대선 직후 한국정치학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지지 후보 결정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친 사안으로 ‘BBK 의혹 사건’을 지적한 응답자가 무려 10명 중 4명에 달했고, ‘참여정부 국정 실패 책임’은 10명 중 두세 명만 선택해 대조를 이룬다. 다시 말해서 대선 결과는 이명박 후보의 압도적 승리였지만 국민의 마음 한 가운데에는 도덕성에 대한 욕구 불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드러난 국무위원 내정자들의 면면은 국민의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던 도덕적 불만감을 표출시키기에 충분했다. 이춘호 여성부장관 내정자가 2월24일, 대통령 취임식을 하루 앞두고 전격 자진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그녀는 본인과 아들 명의로 전국적으로 40건의 부동산을 소유해 부동산 투기 의혹을 샀다.
결국 사퇴했지만 남주홍 통일부장관 내정자는 자녀의 이중 국적 보유 문제와 부부의 자녀 교육비 이중 공제 문제로 물의를 일으켰다. 또한 박은경 환경부장관 내정자는 농사를 지어야만 소유할 수 있는 절대 농지를 보유해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았고 이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할 뿐이다” 라는 엉뚱한 대응으로 국민의 비난을 받아 결국 사퇴했다. 박미석 청와대 사회정책수석 내정자도 논문 표절 의혹에 휩싸여 있다.
이러한 상황은 구멍 뚫린 인사 시스템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대통령은 출발부터 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출신을 중용하는 이른바 ‘고·소·영’ 인사로 비판을 받았다. 참여정부의 코드 인사와 매우 유사하다. 인사 문제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으로 볼 수 있기에 특정 집단에 의존한 인사를 무조건 비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민의 반감을 일으킬 정도의 편중 인사라면 문제가 있다. 현재 논란이 일고 있는 각료 인사 문제도 편중된 인사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이 있다. 특정 집단에 의존하는 인사는 점차 ‘열린’ 인재풀 구성의 한계에 직면할 것이고, 더욱 ‘닫힌’ 인사의 유혹과 궁극적으로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예스’만 외쳐대는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물론 다수의 내정자에게는 문제가 없지만 몇몇 내정자의 도덕적 자질은 이명박 정부의 힘찬 출범을 가로막기에 충분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사 문제에 대한 논란으로 국정의 추진 동력을 상당히 잃어버렸다는 점을 상기하고 적극적인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
통합민주당이 한승수 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예정된 일자에 표결 처리하지 못하고 연기를 시도한 것 또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발목 잡기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총리 인준과 장관 인준을 연계하려는 의도 자체가 총선을 지나치게 의식한 정략적 발상이다. 역풍을 우려해 시간 벌기를 한 것이다. 당 내부에서조차 찬반 당론을 정하지 못하고 표결 연기로 방향을 잡은 것은 국회 제2당으로서 부결보다 어쩌면 더 큰 책임을 져야 하는 행위이다.

 

노무현 정권도 인사 문제로 국정 추진 동력 잃어

인사청문회의 방향성은 크게 네 가지 정도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정부의 인사 검증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어야 한다. 출범 이전에는 인수위 주도의 검증이 미비할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이 통할 수 있었지만 이제 정식으로 출범했기에 검증을 위한 충분한 지원이 가능하다. 참여정부의 미비한 인사 시스템이 답습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인재풀을 보수 이념에 한정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이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코드 인사’라고 비판받은 것과 다를 바 없다.
셋째,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제에서 삼권분립의 견제와 균형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기에 제대로 작동되어야 하고 협상의 대상이 되거나 거부되어서는 안 된다. 여·야 간의 협상은 본질적으로는 국민의 생각을 반영하는 데 치중해야 한다.
넷째, 인사청문회 개최 자체가 협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인사청문회는 후보자의 자질과 도덕성을 검증하는 공간이다. 청문회가 각료 내정자의 정책 비전과 이념 노선을 확인하고 우려를 제기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어떤 이유로도 청문회를 거부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다섯째,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미국의 경우 유력 대선 후보나 인사청문회 대상자가 언론의 검증을 통해 낙마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도 인사청문회 이전에 큰 도덕적 결함이 발견된 경우는 자진 사퇴할 수 있도록 언론이 사실에 근거해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보도해야 한다.
인사청문회를 둘러싼 논란으로 새 정부의 국정 운영이 차질을 빚게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적 효율성의 잣대로 해결하기 힘든 새로운 정치적 난제를 경험해 설득과 통합의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것을 학습했을 것이다. 민주당은 새로운 정부의 독주를 견제할 세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국민에게 심었다. 하지만 야당 또한 국정 운영의 동반자로서 무한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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