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기도 돌고 단속반도 돌고 ‘네버엔딩 스토리’
  • 김회권 기자 judge003@sisapress.com ()
  • 승인 2008.03.03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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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지에서 아직도 꿋꿋하게 살아남은 ‘바다이야기’ 단속 심한 곳에서 약한 곳으로 옮겨가며 ‘단골 장사’

 
경남 김해 시내 외곽의 주택가에 위치한 4층짜리 상가 건물. 지하에 만화방 간판만 불이 들어와 있을 뿐 나머지 층은 비어 있지만 중·장년 남자들의 왕래가 빈번하다. 셔터가 내려진 1층은 ‘바다이야기’가 설치되어 있는 불법 오락실이다. 지난해까지 바다이야기 오락실을 운영했던 양 아무개씨(가명)는 “이제는 단골 장사가 되어버려서 목이 좋다 나쁘다는 신경 쓰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양씨를 따라서 오락실에 들어가보았다. 1층의 입구에는 번호키가 달린 육중한 철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양씨는 이 번호키의 번호를 알고 있다. 지난해 9월 바다이야기의 재등장(시사저널 제934호 참조)을 취재했을 때 도움을 주었던 양씨는 여전히 오락실과 관련한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오락실 기계에 바다이야기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관리해주고 있다. 한때는 설치비로 대당 20만원까지 받았지만 요즘은 시세가 15만원이라고 한다. 이곳도 양씨가 관리하는 곳 중 하나이다.
그는 “요즘은 조선소에서 쓰는 철판으로 문을 만들어서 단속이 뜨더라도 경찰이 문을 못 딴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제작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가게를 옮길 때 업주들이 출입문을 챙겨가는 경우도 있다. 많은 비용을 들여 두꺼운 문을 만드는 이유는 단속 때문이다. 경찰이 단속을 나올 경우 문을 따기 위해 보통 유압기를 사용하는데 그것으로는 어림없다고 한다. 경찰이 문을 열지 못해 고민하는 동안 업주들은 안에서 내부 정리를 한다. 손님을 내보내고 상품권을 숨기는 등 단속으로 생길 피해를 줄이기 위한 시간을 번다.

조선소에서 쓰는 철판으로 문 만들어 경찰 ‘골탕’

“그러면 용접기로 뚫고 들어오는 것 아니냐”라고 물으니 “안산에 있는 오락실에서 불이 나 사람이 죽었지 않느냐. 그 뒤로는 그렇게 못한다”라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는 지난해 12월26일 안산의 한 오락실에서 빗장을 설치하기 위해 용접 작업을 하던 중 불똥이 튀어 5명이 숨진 사건을 언급했다.
오락실 안은 예상했던 것보다 한적했다. 손님은 4명에 불과했지만 50대의 기계 중 20대 정도가 돌아가고 있었다. 단속 때문에 이제는 단골장사가 되어버려서 손님의 수는 줄었지만 매출이 손님 수만큼 감소한 것은 아니다. 단속이 워낙 심해진 탓에 손님도 선수급만 남았고 그들은 보통 한 사람이 서너 대 이상의 기계를 가지고 게임을 한다.
양씨와 함께 일하는 이 아무개씨는 “오히려 요즘이 더 바쁘다. 내일도 새로 오픈하는 곳이 있어 프로그램을 설치하러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해의 경우에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바다이야기의 단속이 강화되었다. 그래도 오락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야금야금 늘어나는 추세이다.
가장 큰 이유는 풍선 효과이다. 부산시의 단속이 워낙 강한 탓에 그곳 영업주들이 인접한 김해로 넘어오고 있다. 어차피 단골 손님 위주로 장사하기 때문에 조금 멀더라도 매상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이씨는 “얼마 전 진주에 프로그램을 설치하러 간 적이 있는데 바다이야기가 많이 늘었더라. 가만히 보면 경남에서 동쪽은 김해로, 서쪽은 진주로 업주들이 모이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바다이야기에 대한 단속이 심해지면서 새로운 유행이 생겨났다. 언론에도 등장한 적이 있는 ‘온라인 바다이야기’가 그것이다. 게임 방식과 수수료를 떼는 환전 방식도 오프라인과 똑같다. 해외에 서버를 두고 대포폰으로 연락하며 대포통장을 이용해 돈을 주고받기 때문에 단속이 쉽지 않다. 게임을 즐기는 손님의 입장에서도 집이나 직장에서 손쉽게 접속할 수 있고 실명 인증 등의 절차가 없어서 단속을 염려하며 조마조마하지 않아도 된다.
이씨는 “우리나라가 온라인 게임 강국 아니냐. 그 정도 온라인 사이트는 한 달이면 뚝딱하고 만들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전직 프로그래머인 이씨는 PC판 바다이야기를 만들어본 적이 있다. PC판 바다이야기 프로그램을 게임 엔진과 연결하고 확률 프로그램만 장착하면 온라인 사이트 하나가 만들어진다. 이전 오프라인 게임기에 사용하는 확률 프로그램도 나온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힘든 작업이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오락실 업주 입장에서 온라인 바다이야기는 새로운 경쟁자인 셈이지만 업주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이다. 바다이야기 오락실 업주 윤 아무개씨는 “거짓말 안 하고 딱 한 달이면 손님들이 가게로 다 돌아온다”라고 말했다. 우선은 게임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재미가 덜하다는 것과 온라인은 확률로 장난을 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손님들이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유로 꼽았다. 장씨는 “지금 남은 손님들은 나름 고수들이다. 고래나 상어 잡는 것 가지고 장난을 치면 금방 느낌이 온다”라고 설명했다.

온라인 바다이야기도 나와 대포통장으로 거래

바다이야기를 제작하는 회사인 ‘에이원비즈’도 없고, 게임기 총판이었던 ‘지코프라임’도 없지만 바다이야기는 여전히 공급과 수요의 시장 논리를 따르며 운영되고 있다. 나름의 공급자와 수요자가 있기 때문이다. 시기에 따라 변하고 있지만 최근의 경향을 살펴보면 바다이야기 관련 사업자는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오락실 업주와 오락기 공급자, 그리고 바다이야기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관리하는 컴퓨터 관련 업자들이다. 공급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오락기를 확보한다. 경찰의 단속으로 하드디스크를 뺏긴 공기계를 수집하거나 공장을 차려 직접 기계를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확보한 오락기는 오락실 업주에게 보급된다. 오락실 업주는 컴퓨터 업자에게 연락해 바다이야기 프로그램을 기계에 설치한다. 이 중 적발이 될 경우 가장 큰 처벌을 받는 사람은 오락실 업주이다.
그래서 업주들은 자신들의 이름으로 오락실을 운영하지 않는다. ‘바지 사장’을 이용해 단속의 손길을 피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실형을 살지 않을 때 이야기이다. 요즘은 실형을 받을 가능성이 커지면서 바지 사장이 실제 업주를 불어버리는 경우가 늘고 있다. 오락실 관련 사건이 워낙 많다 보니 오락실 전문 변호사가 생겼다고 하지만 변호사를 써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윤씨는 “요즘 바지는 불면 나오고 실제 업주가 구속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바지 위에 또 다른 사람을 내세워 이중삼중으로 보호막을 친다”라고 말했다. 자신이 믿을 만한 사람을 바지 사장 위에 세워 설령 단속이 되더라도 실제 업주는 누구인지 바지 사장이 알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오락실의 구조도 교묘해지고 있다. 셔터를 내리고 운영하는 곳은 그나마 알아내기 쉬운 편이다. 고층인 대형 아파트 상가에서 영업을 하는 곳은 입구를 미로처럼 만들기도 한다. 윤씨는 “어떤 곳은 건설사 사무실 간판을 달아놓고 내부 화장실 벽을 밀면 오락실로 들어가게 만든 곳도 있다. 윤락 업소 구조와 비슷한 셈이다”라고 설명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오락실 안에서 작은 소란이 있었다. 방금 들어온 어떤 남자가 휴대전화를 꺼내들더니 신고를 하겠다고 소동을 피운 것. 윤씨는 “예전에는 돈 잃은 손님들이 저렇게 했는데 요즘은 오락실을 돌아다니며 신고하겠다고 전문적으로 돈을 요구하는 건달들이 더러 있다”라고 말했다. 그 남자는 윤씨가 20만원을 건네자 “수고하라”는 말과 함께 자리를 떴다. 단속하는 경찰과 그것을 피하려는 업주들의 숨바꼭질이 계속되면서 생긴 씁쓸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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