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맘’들의 힘겨운 걸음마
  • 노진섭·김지혜 기자 ()
  • 승인 2008.03.03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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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며느리’ 꼬리표 없는 엄마의 길 선택…미혼 여성 10명 중 6명 “긍정적” “이기적인 사고 방식이어서 못마땅”…사회 시선은 여전히 냉랭

 
영화 <양들의 침묵>의 주연 여배우 조디 포스터는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지난 1998년과 2001년에 아이를 낳아 현재까지 홀로 키우고 있다. 섹시 아이콘인 팝가수 마돈나도 과거 미혼 상태에서 엄마가 되었고,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 역시 미혼 상태에서 각국의 아이 두 명을 입양해 키우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결혼하지 않은 채 아이를 낳거나 입양해 기르는 미스맘(Miss mom)이라는 사실이다. 이혼이나 사별 후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Single mom)과 구분된다. 원하지 않은 임신으로 아이를 낳아 기르는 미혼모와 구분해 ‘비혼모(非婚母)’라고 불리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미스맘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얼마 전 방송인 허수경씨(42·여)가 인공수정으로 아기를 낳아 관심을 촉발시켰지만 알게 모르게 미스맘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미스맘’은 과연 아이만 원하는 미혼 여성의 이기적인 행동인가, 아니면 새로운 가족 형태인가.
외국계 회사 ASE(구 모토롤라 반도체 사업부) 인사팀에서 근무하는 이미애씨(45·여)는 최근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신생아를 입양했다. 이씨는 30대 중반 이후 결혼으로 얽히는 복잡한 관계들이 부담스럽고 결혼 생활 자체가 자신과는 맞지 않는 것 같아 싱글로 살겠다고 결심한 독신 여성이다. 이씨는 “평생을 같이 할 사람이 필요했고 남편 대신 아이를 선택한 것이다. 허수경씨와 같이 인공수정도 할까 했지만 나는 핏줄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보다 아이를 어떻게 키우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 입장에서도 아동보호시설에서 자라는 것보다 편모 슬하이지만 따뜻한 가정에서 자라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자발적 비혼모의 아이 양육’을 보는 두 가지 시선

 
허씨와 이씨처럼 당당하게 자신을 미스맘이라고 밝히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아직은 미스맘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 가족지원팀 김기창 한부모가정지원총괄담당은 “사회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미스맘들 스스로 노출을 꺼린다. 이 때문에 정확한 통계를 잡을 수도 없다. 그렇지만 입양을 통해 미스맘이 되는 미혼 여성이 늘어나는 추세인 것을 보면 앞으로 미스맘 가정이 우리나라 가족 형태의 하나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홀트아동복지회·동방사회복지회·대한사회복지회·한국사회복지회 등 서울 시내 4대 입양기관을 통해 지난 한 해 동안 미스맘에게 입양된 아이는 6명이다. 대한사회복지회 관계자는 “한 달에 2~3통의 문의 전화가 온다. 미혼 여성이 입양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미스맘이 되기는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실제 미혼 여성들은 미스맘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정보회사 가연이 지난 2월20일부터 25일까지 30~40대 미혼남녀 2백여 명에게 ‘결혼은 하지 않고 아이만 낳아 기르는 자발적 비혼모에 대한 생각’을 물어본 결과 응답 여성 10명 중 6명 이상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 이유로는 ‘혼자라도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고려해볼 만하다’ ‘비혼모 가정도 하나의 가족 형태이다’ ‘출산은 여성 고유의 권리이고 결혼은 선택의 문제이다’ ‘현재의 가부장적 가족 제도는 여성에게 불리한 면이 있다’ 등을 꼽았다.
반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여성은 10명 중 3명이었다. 그 이유로는 ‘현재의 결혼 제도에 반하는 이기적인 모성애이다’ ‘아버지라는 존재의 부재가 아이의 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양부모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보다 부족한 면이 있을 수 있다’ 등을 꼽았다. 이 회사 김영주 대표는 “고학력이나 사회적 지위를 갖춘 골드미스들은 미스맘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경제력을 갖춘 30대 중반인 이들은 가부장적 결혼 제도에도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라고 말했다.
미혼 여성이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키우려는 이유는 결혼을 인생의 필수 조건으로 보지 않는 인생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유학이나 석·박사과정 등 고등교육을 받으면서 결혼 시기를 놓친 경우도 있지만 결혼 자체를 자신의 삶에 꼭 필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특히 전문직에서 일하는 미혼 여성의 경우는 자신의 사회 경력에서 결혼을 걸림돌로 보고 있다. 일단 결혼을 하면 출산과 육아 문제에 얽매여 사회 생활을 장기간 중단하거나 아예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혼 여성 최진주씨(38·여)는 “유학 등으로 제2의 세계관을 가진 미혼 여성의 경우 자신의 시각이나 수준에 맞는 우리나라 남성을 찾아 결혼하기가 쉽지 않다. 남성에 대한 선택의 폭이 매우 줄어드는 것이다. 또 나이가 들면서 출산에 대한 어려움이 커지는 만큼 여성으로서는 아이를 입양해서라도 키우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남성만큼 여성도 후세를 잇고 싶은 충동이 있다. 이 경우 인공수정이나 입양을 통해 얻은 아이를 기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최씨는 또 “결혼을 하면 핵가족이라고 해도 고부 관계나 시댁과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여성들이 갖는 부담감도 크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스맘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냉랭한 편이다. 결혼정보회사 가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스맘을 긍정적으로 보는 남성은 10명 중 1명 정도이다. 나머지 9명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무엇보다 아버지 없는 가정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미스맘들의 이기적인 사고방식에 의한 것이라며 못마땅해 하고 있다. 직장인 강윤석씨(45)는 “노후의 외로움을달래기 위해 아이를 키우겠다면 아예 애완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이가 성장해서 받을 정체성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이런 고민 없이 미스맘이 자신의 판단만으로 아이를 낳거나 입양해 키우는 것은 매우 이기적인 행동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미스맘들은 애정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고 반박한다. 친부모에게 버림을 받고 아동보호시설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애정을 쏟아 기른다면 오히려 권장할 일이라는 것이다. 물론 미스맘이 입양을 통해 아이를 키우려면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홀트아동복지회의 명은주 사회복지사는 “미혼 여성이 입양을 원한다고 다 아이를 데려다 키울 수는 없다. 아이의 보육 환경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입양을 하려는 미혼 여성은 일반 가정보다 훨씬 까다로운 심사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경제적인 안정은 물론 정신적으로 충분히 성숙한 사람인지가 주요한 심사 기준이다. 재산 증명서·주변인 추천서·양육 계획서·최종 학력·사망시 대리 후견인까지 확보해야 비로소 입양 면담 기회를 가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사회의 따가운 시선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당사자의 가족들을 설득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가족 반대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홀트아동복지회의 명은주 사회복지사는 “미스맘이 되기로 결정한 딸을 지지하는 부모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많다. 가족의 동의보다는 스스로 미스맘의 길을 가려는 미혼 여성들의 자세가 더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지난 2007년 관련법이 개정되어 앞으로 미스맘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입양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을 살펴보면, 입양할 수 있는 자격을 규정한 부분에서 ‘혼인 중일 것’이라는 부분이 삭제되었다. 조건만 맞는다면 미혼 여성이라도 아이를 입양해 키울 수 있게 된 것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장복심 의원은 “경제적·정신적 심사를 엄격하게 하면 아이가 시설로 보내지는 것보다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이미 태어나 있는 상태이므로 인공수정을 통한 미스맘보다는 바람직한 방법이다”라고 주장했다.

입양은 쉬워져도 ‘인공수정 미스맘’은 힘들어질 듯

현행 관련법에 따르면 미혼 여성이 인공수정을 통해 아이를 낳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허수경씨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또 소프라노 가수 조수미씨와 배우 김청씨도 결혼보다 아이를 더 원한다고 말해 인공수정에 대한 미혼 여성들의 관심을 증폭시켰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5년 정자은행을 통해 ‘비(非)배우자의 정자를 이용한 임신 시술은 전체의 1.5%에 해당하는 7백58건이다. 이 중 일부가 미스맘으로 추정된다. 대한의사협회 김성진 홍보담당자는 “관련 법률의 금지 조항을 살펴보면 남편 없는 여성이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을 명확하게 금지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미혼 여성에 대한 인공수정 시술이 불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앞으로 미혼 여성이 인공수정으로 아이를 갖는 것은 불가능해질 것 같다. 국회 보건복지위는 지난해 4월 ‘생식세포 관리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입법 예고하고 법제처에 심사를 신청한 상태이다. 이 법률이 앞으로 국회에서 원안대로 통과되면 정자를 기증받아 임신하고자 할 때는 의무적으로 배우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결국 배우자가 없는 미혼 여성은 인공수정으로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되는 셈이다.
결국 미혼 여성이 입양을 통해 아이를 얻어 키울 수는 있지만 인공수정을 통해 아이를 낳을 수는 없게 된다. 앞으로 논란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국회 보건복지위 김충환 의원은 “어머니 성을 따를 수 있도록 가족법까지 개정된 상태에서 인공수정을 통한 미스맘을 통제하는 것은 지나친 기본권 침해이다”라고 말했다. 국회 보건복지위 장복심 의원은 “정자은행을 통한 미혼 여성의 인공수정을 합법화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충분한 여론 수렴이 우선이겠지만 설령 합법화하더라도 극히 제한되어야 한다. 미스맘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아이도 부모와 함께 살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1970년대 후반에 발간된 일본 패션 잡지 <크로와상>은 당당하게 미스맘을 선언한 여배우와 작가들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많이 실어 화제를 뿌렸다. 그러나 10년 후 이들은 현실적으로 살기 힘들다는 고충을 토로하며 후회했다. 이 때문에 ‘크로아상 증후군’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아내와 며느리라는 꼬리표 없이 엄마로 살고 싶은 미스맘들이 우리나라에서도 크로와상 증후군을 남기는 데 그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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