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가게’ 울리며 돈 챙기는 오픈마켓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 승인 2008.03.03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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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아도 남는 것 없는 이상한 온라인 장터…최저가 유도해 영세 상인들은 ‘울며 겨자 먹기’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의미의 오픈마켓(open market)은 물건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모이는 온라인 장터이다. 인터넷쇼핑몰이 백화점이라면 오픈마켓은 재래시장과 같다. 인터넷쇼핑몰의 경우 물건 선정·판매·배송까지 책임을 지는 반면, 오픈마켓 회사는 개별 판매자에게 온라인 장터만 제공한다. 제품을 판매하고 배송하는 일은 모두 판매자가 알아서 해야 한다. 물론 G마켓과 옥션 등 오픈마켓 회사는 판매자로부터 판매 금액의 일정 비율을 거래 수수료로 받는다.
오픈마켓 시장의 파이는 커지고 있는데 판매자들은 오픈마켓이 더 이상 기회의 장터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오픈마켓을 통해 수년간 물건을 판매해온 사람들이 최근 하나 둘 시장을 떠나고 있다고도 한다. 이들은 오픈마켓을 “물건을 많이 팔아도 남는 것이 없는 이상한 장터로 변질되었다”라고 말한다. 과연 이곳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시장 규모, 올해 8조원 넘어설 전망

소자본으로 창업하려는 사람들에게 오픈마켓은 진입 문턱이 낮아 한때 ‘기회의 장터’로 여겨졌다. 온라인 쇼핑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지난 5년 사이 오픈마켓 시장 규모는 9배 이상 커졌다. 한국온라인쇼핑협회에 따르면 2003년 7천억원이던 오픈마켓 시장 규모는 2007년 6조5천억원을 넘었고, 2008년에는 8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카탈로그쇼핑·TV홈쇼핑·온라인쇼핑몰 등 전체 온라인쇼핑 시장에서 오픈마켓은 가장 많은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선두 업체인 G마켓에서 지난 한 해 동안 거래된 금액만 3조2천5백억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오픈마켓에서 물건을 산 사람은 약 2천100만명에 이른다.

지난 5년 동안 오픈마켓에서 물건을 팔아온 김수진씨(40·가명)는 지난해 4월 오픈마켓을 떠나 개인 쇼핑몰을 열었다. 김씨는 “수십만명의 영세 판매자들이 오픈마켓을 통해 물건을 팔고 있지만 실제로 돈을 버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나도 오픈마켓에서 물건을 많이 파는 이른바 베스트셀러로 통했지만 정작 수중에 들어온 돈은 거의 없었다”라고 말했다.
국내 오픈마켓 시장의 80%를 점유하며 1, 2위를 달리고 있는 G마켓과 옥션에서 김씨는 건강보조식품·가방·신발·잡화류를 판매해 억대의 연매출을 올렸다. 그는 “5년 동안 월 평균 매출 3천만~4천만원을 올렸다. 그런데 물건을 팔아도 실제 남는 마진은 해가 갈수록 줄어들었다. 오픈마켓 회사측에서 매출을 늘리기 위해 최저 가격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즉 같은 상품의 경우 한 푼이라도 더 싼 상품을 전면에 내세워 판매 업자 간 출혈 경쟁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마진이 줄고 부대 비용은 늘어나 실제 수익은 거의 없다”라고 털어놓았다.
예를 들어 원가 6천원짜리 홍삼 제품을 오픈마켓에서 1만원에 팔면 7백원(7%) 정도를 거래수수료로 오픈마켓 회사에 지급해야 한다. 또 신용카드 수수료로 약 3백원(3%), 박스 포장비로 약 5백원, 택배비로 약 2천원 정도가 부대 비용으로 빠지고 6천5백원이 남는다. 원가 6천원을 제외한 5백원에서 세금과 통신비 등을 빼면 실제 손에 쥘 수 있는 금액은 3백원 남짓이다. 하루에 100개씩 30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판매할 경우 월매출은 3천만원이지만 실제 수입은 90만원에 불과한 셈이다.
게다가 반품이라도 생기면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 제품 불량으로 인한 반품은 판매자 부담이다. 하지만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반품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고의로 제품에 흠집이나 고장을 내는 경우가 있다. 판매자는 이중으로 택배비를 무는 것은 물론 제품을 다시 팔 수도 없어 피해가 배가된다.
이를 구제할 방법은 요원해 보인다. 소비자와 시비를 벌이면 십중팔구는 판매자가 더 큰 손해를 본다. 소비자가 오픈마켓 사이트에 악의적인 댓글(악플)이라도 올리면 장사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판매자와 소비자 사이에 발생한 분쟁에 대해 오픈마켓 회사는 뒷짐을 지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오픈마켓 회사는 소비자와 분쟁을 일으키는 판매자에게 불이익을 준다.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에서이다. 인터파크 이종호 기획조정실장은 “판매자와 소비자 사이에 발생한 문제는 서로 해결하는 것이 기본이다. 오픈마켓은 장터만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픈마켓 회사를 믿고 거래하는 소비자가 있는 만큼 중재에 나서기도 한다. 다만 분쟁이 잦으면 판매자에게 영업정지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초기에 오픈마켓의 가능성을 보고 몰려들었던 개인 판매자들은 이제 오픈마켓을 외면하고 있다. 고품질의 제품보다 낮은 가격을 더욱 선호하는 오픈마켓 회사의 정책 때문이다. 판매자 김씨는 “좋은 품질의 제품을 제값 받고 팔고 싶어도 오픈마켓에서는 어림없는 일이다. 가격경쟁을 버티지 못해 오픈마켓을 떠나는 판매자들이 적지 않다”라고 말했다.

 

반품 생기면 적자…소비자 분쟁 생겨도 회사는 ‘나 몰라라’

개인 판매자들이 떠난 자리에는 대규모 도매상이나 제조업체들이 들어서고 있다. <G마켓에서 10억 벌기>라는 책을 쓴 황윤정 쇼핑몰창업컨설턴트는 “가격 경쟁이 심해지면서 경쟁력을 갖춘 제조 업체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소규모 도·소매 판매자들은 제조 업체들이 내놓은 가격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시간이 문제이지만 오픈마켓에서 10억원을 버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극소수이다. 오픈마켓은 좋은 유통 시스템이지만 다수 소자본 창업자들을 위한 시장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오픈마켓에서 억대 매출을 올리는 판매자들이 이따금 언론에 소개되기도 한다. 이들은 대부분 오픈마켓의 검색 화면 상단에 노출되는 사람들이다. 오픈마켓 사이트에서 소비자가 ‘비누’라는 단어로 검색했을 때 나오는 검색 화면에서 가장 상단에 노출되어야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 수 있다. 비누를 파는 판매자들은 수없이 많기 때문에 가장 앞에 노출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오픈마켓에서는 가장 많이 팔리고 최저 가격인 제품이 검색 화면 상단에 자동으로 노출된다. 많이 팔렸다는 의미는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 때문에 다른 소비자들도 검색 화면 상단에 노출된 제품을 선호한다.

그러나 여기에 허점이 있다. 이를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이 판매자들의 주장이다. 일부 판매자와 오픈마켓 회사가 유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판매자 김씨는 “일부 판매자들은 검색 화면 상단에 자신들의 상품을 노출시키기 위해 오픈마켓 회사의 MD(상품구매담당자)에게 뒷돈(100만~3백만원)을 주는 등 로비를 한다. 또 술과 유흥 등을 제공해서 MD가 자신들의 제품을 검색 화면 상단에 위치시키도록 유도한다. 이런 경우 실제로 검색 화면 상단에 노출되기도 한다. 나도 명절 때 MD들에게 선물을 돌리기도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가 오픈마켓에 있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오픈마켓 회사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부정하고 있다. G마켓 최재준 홍보과장은 “그런 얘기는 들은 바도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판매자 이유미씨(35·가명)는 “실제로 많이 팔린 제품이 적게 팔린 제품보다 검색 화면 아래에 노출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로비를 받은 사실이 불거지자 한 오픈마켓 회사는 MD를 물갈이하기도 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옥션 서민석 홍보부장은 “검색 화면 상단에 노출되는 것은 판매량에 따라 자동 정렬되는 것이므로 옥션 관계자가 임의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검색 화면 상단에 노출시키려 향응 제공도

그렇다 하더라도 편법으로 이를 조작할 수 있는 틈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오픈마켓 회사는 이를 알면서도 매출을 유지하기 위해 암묵적으로 눈감아준다고 한다. 일부 판매자들은 검색 화면 상단에 자신들의 상품을 노출시키기 위해 편법을 쓰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한 판매자가 여러 개의 ID를 만들어 가격을 조작할 수도 있다. 사업자등록번호로 판매자 ID를 만들고, 주민등록번호로 또 다른 ID를 만든다. 가족이나 지인, 직원들을 동원하면 더 많은 ID를 만들 수 있다. 일단 한 ID로 다른 판매자들보다 싼 가격에 물건을 판매한다. 물건이 많이 팔리면 자동으로 검색 화면 상단에 노출된다. 이후 다른 ID를 이용해 이 상품의 가격을 슬그머니 올려 판매해 마진을 보충한다.
이런 편법을 오픈마켓 회사들도 잘 알고 있다. 인터파크 이종호 기획조정팀장은 “한 개인 판매자가 여러 개의 ID를 만들 수 있다. 이를 여러 용도로 악용할 소지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대응 장치를 만들지 않는 것은 매출을 늘리려는 오픈마켓의 이해 때문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판매자 김씨는 “오픈마켓 회사가 이 외에도 다양한 편법을 알고 있으면서도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는 것은 매출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묵인하는 것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개인 판매자들이 검색 화면 상단에 노출되려는 심리를 돈벌이에 이용하고 있다. 여러 가지 사례가 있지만 광고 섹션이 대표적이다”라고 말했다.
광고 섹션은 판매자가 오픈마켓 회사에 일정액을 주고 1주일 정도 검색 화면 상단에 노출되도록 하는 마케팅 수단이다. G마켓의 경우, 제품 판매로 발생하는 거래수수료 수익보다 광고 등으로 올리는 매출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거래수수료 매출은 전년의 같은 기간에 비해 15% 상승한 3백억원을 기록했지만 광고 등으로 올린 매출은 46% 상승한 2백21억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광고 섹션에 노출된 물건이 가장 많이 팔리거나 품평이 가장 좋은 제품으로 오인할 수도 있다. 오픈마켓 회사들은 “광고 섹션을 수천원에서 최대 수백만원으로 이용할 수 있다. 정당하게 광고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편법을 줄이는 방법이다. 오픈마켓을 자주 이용하는 소비자들은 광고 섹션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일부 소비자들은 광고 섹션이라는 것을 모를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종합해보면 검색 화면 상단에 노출된 상품이 베스트셀러 제품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소자본 창업, 24시간 3백65일 영업 등 다양한 이점 때문에 영세 판매자들에게 오픈마켓은 매력적인 온라인 장터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최저 가격 지상주의는 오픈마켓 시장을 악화시키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업계에서는 ‘1등 판매자만 살아남고 나머지 99명은 죽는 시장’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이다.

 

오픈마켓 창업, 이래서 좋다

❶ 제품 원가를 제외하면 창업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❷ 장사 경험이 없는 개인 판매자들도 쉽게 창업할 수 있다.
❸ 차별화된 제품과 가격 경쟁력을 갖추면 대박을 꿈꿀 수 있다.
❹ 재택 근무가 가능하고 시간을 쪼개서 할 수 있기 때문에 소규모 창업이나 직장에 다니며 투잡으로도 가능하다.
❺ 판매할 수 있는 제품에 제한이 없다.


오픈마켓 창업, 이래서 나쁘다

❶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물건만 등록한다고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❷ 개인 판매자일 경우 상품 구입·제품 사진 준비·고객 문의 응대·포장·배송 등 여러 업무를 혼자 처리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❸ 제품에 대해 소비자의 악평이 이어지면 신용을 회복하기 어렵다.
❹ 단골을 확보해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기까지 소득이 불규칙하다.
❺ 대박을 내는 개인 판매자는 극소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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