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체자 만들기, 은행 맘대로?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 승인 2008.03.10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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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카드 대금 처리 시간 제각각…몇 십분 차이로 이자 물고 심할 경우 거래정지 당하기도

자신의 신용카드 대금 결제일이 25일인 경우 몇 시까지 은행 통장에 돈을 입금해야 할까. 정답은 ‘은행마다 다르다’이다. 예를 들어 결제일 당일 오후 5시에 입금한 경우와 오후 6시에 입금한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상식적으로는 오후 6시에 입금한 경우가 연체로 처리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실제로는 오후 5시에 입금한 경우만 연체되는 이상한 상황도 벌어진다. 정확한 결제 시한은 은행 영업 마감 시간인 오후 4시30분이지만 실제 카드 대금을 처리하는 시간이 은행마다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많은 카드 사용자들이 카드 대금 결제일은 알고 있지만 결제 시간은 모른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신용카드 연체자가 되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직장인 이성문씨(39·가명)는 자신의 통장에서 신용카드 대금이 결제일 당일 빠져나가지 않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결제일인 지난 2월25일 이씨는 오후 6시께 자신의 통장에 신용카드 대금을 입금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이 대금은 다음날 빠져나갔다. 자신도 모르게 하루 연체료까지 빠져나갔다. 이를 카드사 콜센터에 문의하자 당일 결제 시간을 넘겨 카드 대금을 입금했기 때문에 하루 연체자로 처리되었다는 답변을 들어야 했다. 그는 “국민카드를 사용하고 국민은행을 결제은행으로 이용하고 있다. 지난달 결제대금 총액은 1백20만원이었고, 이 중 통장에 있는 잔고 30만원을 제외한 90만원을 결제일 오후 6시쯤 입금했다. 그러나 카드 대금은 다음날 하루 연체료 5백원과 함께 빠져나갔다. 타 은행의 카드 대금 결제 시간이 오후 4시30분이지만 국민은행이니까 5시30분까지로 한 시간 더 혜택을 받고 있는 줄이나 알라는 어이없는 답변을 카드사로부터 들었다”라고 말했다. 결국 30분 늦게 카드 대금을 입금했다는 이유로 연체자로 몰린 것이다. 카드사는 연체 사실을 이씨에게 먼저 알리지도 않고 연체료를 빼갔다. 이씨는 “내 통장의 돈을 도둑맞은 기분이다. 카드 대금 결제일을 넘기지 않았는데 연체자가 된다는 것은 카드 사용자로서 화가 나는 일이다. 연체료도 연체료이지만 이런 기록이 남아 신용 거래에서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기까지 하다”라고 말했다.

 

휴일·명절 끼면 그만큼 연체일 늘어나

은행 잔고가 항상 넉넉한 사람도 있지만 이씨처럼 결제일 당일 은행 통장에 입금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대부분 결제일 이내에만 카드 대금을 은행 통장에 입금하면 되는 줄 알고 있다. 결제일이 매달 25일이라면 통념상 당일 자정까지 카드 대금을 입금하면 되기 때문이다. 또 보통 ATM(현금 자동 입출금기)이나 인터넷 뱅킹 등을 24시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은행 영업 마감 시간인 오후 4시30분까지 입금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라도 이 시간을 조금 넘겼다고 연체료를 지급하거나 신용등급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신한카드 이용자 서일호씨(38)는 “카드사가 내 은행 통장에서 마음대로 연체료까지 빼내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제 시한이 있다는 사실을 카드사로부터 설명받은 적도 없다. 결제일 자정까지 카드 대금을 입금할 수도 있는데 이날을 넘겼다고 연체자를 만드는 것은 카드사가 연체료 수익을 올리려는 횡포이다”라고 말했다.
신용카드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카드 대금 결제일을 지정해야 한다. 보통 1~27일 중에서 택일할 수 있다. 그러나 결제 시간을 지정할 수는 없다. 다만 카드사 약관에 ‘은행 영업 시간 이내’라고 표기되어 있다.
문제는 카드 대금 결제 은행이 어디냐에 따라 결제 시간이 다르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김 아무개씨가 ㄱ은행에 오후 6시에 입금했고, 이 아무개씨가 ㄴ은행에 오후 5시에 입금할 수 있다. 만일 ㄱ은행이 오후 7시에 카드 대금을 빼내갔고 ㄴ은행이 오후 4시40분에 돈을 빼갔다면, 김 아무개씨는 연체자가 아니지만 그보다 일찍 입금한 이 아무개씨는 연체자가 된다. 한마디로 은행이 돈을 빼가는 시간 이전에 입금하지 않으면 연체가 된다. 그러나 은행이 돈을 빼가는 시간은 정해진 바 없다.
이 시간은 은행마다 또 지점마다 다르다. 심지어 같은 은행, 같은 지점이라도 결제 시간은 매월 달라질 수 있다. 은행 전산담당자가 몇 시에 카드 대금을 빼가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카드사는 물론 관련 기관은 이 문제를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이를 굳이 들추어낼 필요가 있느냐는 분위기이다. 신용카드 약관에 결제 시간이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민카드 유기영 차장은 “카드 대금 결제 시간은 약관에 은행 영업 시간인 오후 4시30분까지로 정하고 있다. 국민카드의 경우 이 시각부터 6시10분까지 카드 대금을 인출해간다”라고 말했다.
오히려 약관을 숙지하지 않은 카드 사용자에게 잘못이 있다고까지 했다. 신한카드 이재영 홍보과장은 “보통 결제일 당일 오후 6~8시께에 카드 대금 결제 정보를 만들고 각 지점에 통보해 카드 대금을 거둔다. 그러나 매월 일정하지는 않다. 늦어도 오후 5시 이전에 입금하는 것이 안전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아는 문제 아닌가”라고 말했다.
만일 결제일이 금요일이고 다음날부터 휴일 또는 연휴가 이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금요일에 카드 대금을 입금했다고 하더라도 은행이 돈을 빼가는 시간을 넘겼다면 그 돈은 그대로 은행 통장에 남아 있게 된다. 대신 돌아오는 은행 영업일에 카드 대금은 물론 휴일 또는 명절 기간 동안의 연체료까지 빼간다. 연체료는 연 25~28% 수준이다. 100만원을 하루 연체하면 약 7백원을 연체료로 지급해야 한다. 만일 결제일 다음날부터 연휴가 3일 정도 이어진다면 3일에 대한 연체료가 붙는다. 하나카드 이성곤 홍보차장은 “우리 카드사의 경우 결제일 당일 오후 6시까지 카드 대금을 입금해야 한다. 만일 결제일 다음날이 공휴일이면 역시 연체일로 계산된다. 그 이유는 대답하기 곤란하다”라고 말했다.
이런 황당한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결제 시간에 대한 공통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전국은행연합회 홍강호 자본시장부장은 “같은 카드사의 신용카드라도 고객의 거래 은행마다 카드 대금 결제 시간은 각기 다르다. 결제 시간에 대한 규정은 없다”라고 말했다.
카드 사용자들은 연체보다도 자신의 신용평가에서 불이익을 받게 되지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하루 정도 연체가 되더라도 카드사가 이틀 간격으로 계속 출금을 시도하기 때문에 결제일이 최장 2일을 넘지 않으면 큰 문제는 없고, 연체 기간이 5일 이내면 은행 간 신용정보 공유가 되지 않아 신용에 큰 불이익은 없다. 그러나 연체 금액에 따라 하루를 연체하더라도 곧바로 사용정지를 당할 수 있고, 사소한 연체가 누적되면 카드사 자체의 신용등급 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한국소비자원 박현서 서비스1팀장은 “연체료도 연체료이지만 대출 등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 심각하다. 하루 연체 때문에 심각한 신용상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더라도 기록에 남을 수 있어 개인 신용 판단 기준이 된다”라고 말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금융결제원과 여신금융협회는 “각 은행 전산실 사정에 따라 카드 대금 결제 시간은 각각 다르지만, 이를 강제로 해결할 방법은 없다”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뒤늦게 신용카드 연체 관리 실태 파악 나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김건호 경제정책팀장은 “각 은행의 카드 대금 결제 시간을 획일적으로 정할 필요가 있다. 또 이것이 불공정 약관이라면 바로 잡아서 소비자 피해를 줄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김영기 여전감독1팀장은 “카드사 우수 고객인 경우 3일 영업일에서 최장 15일까지 예우 기간을 둔다. 그러나 신용이 불량한 고객이라면 다음날 거래정지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일이 과거에도 있었다. 이를 강제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렵지만 은행별로 관행을 개선할 필요는 있다”라고 말했다.
한편 최근 신용카드사들이 연체 통보도 제대로 하지 않고 카드 사용을 중단시키거나, 개인의 전반적 신용도는 무시한 채 자사 카드 사용 실적만 따져서 불이익을 주는 등 무성의한 연체 관리를 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금융감독원이 실태 파악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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