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리조나·플로리다로 몸 풀러 간 MLB
  • 민훈기 (민기자닷컴) ()
  • 승인 2008.03.10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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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 트레이닝장마다 벌써부터 야구 열기 ‘활활’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의 정규 시즌이 시작되려면 아직 3주 이상이 남았지만 이미 야구 열기가 한창 뜨거운 곳들이 있다. 바로 미국 플로리다주와 애리조나 주의 스프링 트레이닝장이다.
스프링 트레이닝은 말 그대로 정규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각 팀들이 모여 시즌을 준비하며 훈련을 하는 것이다. 미국의 많은 곳이 여전히 겨울인 2월 중순부터 따뜻한 플로리다와 애리조나에 모여 훈련을 시작한다. 우리는 흔히 ‘스프링 캠프’라는 표현을 쓰지만 미국에서는 ‘스프링 트레이닝’이 일반적으로 쓰이는 용어이다. 플로리다에서 트레이닝과 시범 경기를 벌이는 리그는 그 지역의 특산 과일인 ‘자몽’의 이름을 따서 ‘그레이프프루트 리그(Grapefruit League)’ 라고 불린다. 그리고 애리조나에서 열리는 리그는 역시 지역 명물인 선인장의 이름을 따서 ‘캑터스 리그(Cactus League)’라고 한다.
필자는 2월 말부터 한 달 예정으로 스프링 트레이닝을 현장에서 취재하고 있는데, 먼저찾은 플로리다 주는 가히 스프링 트레이닝의 메카라고 할 수 있다. 1913년 2월 시카고 커브스가 탬파에서 스프링 트레이닝을 벌인 것이 시초였으니 거의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한다. 당시 탬파 시장이던 D.B. 맥케이는 선수당 100달러까지 훈련 경비를 부담하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고 커브스의 스프링 캠프를 유치했다.
올해도 30개 팀 중에 18개 팀이 플로리다에 캠프를 차렸다. 국내 팬들에게도 친숙한 LA 다저스, 뉴욕 양키스와 메츠, 보스턴 레드삭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등이 모두 플로리다에 캠프를 차리고 정규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반면 캑터스 리그(Cactus League)에는 총 12개 팀이 모여 있다. LA 에인절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텍사스 레인저스, 시카고 커브스, 샌디에고 파드리스 등이 애리조나의 뜨거운 햇살 아래서 스프링 트레이닝을 벌인다.
스프링 캠프의 시범 경기는 밤 경기가 압도적으로 많은 정규 시즌과 달리 대부분 현지 시간으로 오후 1시께에 시작된다. 그래서 훈련도 오전 9시~10시면 이미 시작된다. 팀 훈련은 2시간에서 많아야 3시간 정도면 끝나지만 선수들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혹독한 개인 훈련을 한다. 대부분 팀에서 만들어주거나 혹은 개인 트레이너가 만든 프로그램으로 몸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스프링 캠프와 정규 시즌 사이에 가장 큰 차이점은 ‘자유로움’이다. 팬들이 선수들과 접할수 있는 기회가 아주 많다. 거의 대다수 훈련장에서 선수들과 팬들을 갈라놓는 것은 철망이나 심지어는 줄 하나일 때도 많다. 훈련은 연습장을 이동하면서 벌어진다. 예를 들어 1번 구장에서 수비 훈련을 하고 나면 2번 훈련장으로 옮겨 번트와 타격 연습을 하고, 또 다른 연습장에서는 프리 배팅을 하는 식이다. 그러니 팬들에게는 좋아하는 선수들에게 사인을 받을 기회도 아주 많고, 운이 좋으면 함께 기념 사진도 찍을 수 있다. 물론 사인은 훈련 시작 전이나 후에만 받을 수 있는데, 모든 훈련은 무료로 팬들에게 공개된다. 그래서 스프링 캠프장에는 아주 일찍부터 수많은 팬들이 모여든다. 단체 훈련이 시작되기 전까지 별로 할 일이 없는 선수들에게 사인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플로리다의 겨울은 낮 기온이 평균 20~25℃여서 운동하기에 딱 좋은 날씨이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 많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방 그쳐 오히려 시원한 청량제 같은 역할을 한다. 물론 30℃가 넘는 날도 있고, 20℃ 밑으로 떨어지는 변덕을 부리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선수나 팬들에게 아주 상쾌한 여건이다.
단, 플로리다의 겨울은 바람이 꽤 심하다.
한 가지 단점이라면 18개 팀의 캠프장이 플로리다 전 지역에 널리 퍼져 있다는 점이다. 팬들로서는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많은 팀들을 보기가 쉽지 않다. 필자도 출장을 와서 첫 5일 동안에 1천6백km를 운전했으니 캠프장들이 얼마나 퍼져 있는지 알 수 있다. 지난 3월5일에는 김병현의 피츠버그 캠프를 취재하러 갔다가 6일에는 박찬호의 경기를 취재하려고 뉴욕 메츠 캠프로 이동했는데 4백km 넘게 운전을 했다.
이번 출장의 후반부에 취재를 할 캑터스 리그에는 미국 서부 지역이나, 중부 지역에 위치한 팀들이 캠프를 차린다. 내년부터는 LA 다저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도 애리조나로 이동해 14개 팀이 그곳에서 스프링 트레이닝을 벌이게 된다.
1900년대 초부터 마이너리그 팀들이 종종 애리조나에서 시범 경기를 벌이기는 했지만 메이저리그의 스프링 캠프가 이곳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은 1946년부터이다. 1946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빌 벡 구단주는 스프링 훈련장을 애리조나로 옮길 구상을 한다. 그러나 홀로 애리조나로 옮겨서는 제대로 훈련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뉴욕 자이언츠의 호래스 스톤햄 구단주를 적극적으로 설득해, 결국 인디언스는 투산에, 자이언츠는 피닉스에 캠프를 차렸다. 1946년 3월8일 캑터스 리그 첫 시범 경기가 열려 인디언스가 자이언츠에 3 대 1로 승리를 거두었다.
 

팬들의 사랑과 열정, 피부로 느낄 수 있어

벡 구단주가 캠프장 이전을 결심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래리 도비라는 선수였다. 그 전해에 인디언스의 멤버가 된 도비는 AL 최초의 흑인 선수였다. 그런데 플로리다로 훈련을 갔을때 도비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다른 선수들과 한 호텔에 묵을 수가 없었다. 그런 처사에 분노한 벡 구단주는 인종 차별이 훨씬 덜하다고 판단한 애리조나에 스프링 캠프를 차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1954년에 커브스가 가세하고 1954년에는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합류하는 등 규모가 서서히 커지다가 1980년대부터 캑터스 리그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캑터스 리그는 사막 기후인 애리조나 지역의 따뜻하고 건조한 겨울 날씨 등 플로리다에 버금가는 훈련 여건을 제공한다. 오히려 강수량이나 바람은 플로리다보다 적은 편이다.
또 한 가지 결정적으로 유리한 조건은 각 팀의 훈련장들이 플로리다에 비해 훨씬 가까이 있다. 대다수 캠프가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피닉스에서 가장 멀다는 투산도 2시간 정도 운전하면 갈 수 있기 때문에 여러 팀들을 보고 싶어하는 팬들에게는 아주 좋은 조건이다. 선수들도 이동 거리가 짧기 때문에 시범 경기를 치르는 데 어려움이 훨씬 덜하다고 말한다.
스프링 트레이닝을 취재할 때마다 개인적으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팬들의 야구 사랑과 열정이다. 대부분 가족 단위로 훈련장을 찾는데 아예 가족 휴가를 스프링 캠프 방문으로 보내는 팬들도 많다. 멀리 시애틀이나 뉴욕, 클리블랜드, 시카고 등지에서 가족·친지·친구들과 함께 애리조나와 플로리다로 날아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선수들과 접하고 색다른 분위기에서 야구를 만끽한다. 평소 TV에서나 보던 선수들의 훈련을 바로 코앞에서 지켜보고 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꼬마들에게는 아빠·엄마·할아버지·할머니와 함께 보낸 스프링 캠프장에서의 추억이 평생 남을 것이다.
한편 이번 스프링 트레이닝에서는 우리 한국 선수들도 정규 시즌의 주전 자리를 차지하기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박찬호는 베로비치의 LA 다저스 캠프에서 선발진 진입을 노리고, 김병현은 브래든턴의 피츠버그 캠프로 옮겨 훈련을 하고 있다. 팔꿈치 수술에서 회복 중인 추신수는 5월 복귀를 위해 윈터헤이븐에서 땀을 흘리고 있으며 류제국도 세인트피터스버그의 탬파베이 훈련장에서 기량을 닦고 있다. 모두 플로리다 쪽이다.
반면에 백차승은 피닉스 인근의 시애틀 캠프에서 선발 한 자리를 노리며 훈련을 하고 있다. 그 외에 정성기, 강병덕, 정영일, 최윤 같은 유망주들이 마이너리그 캠프에서 땀을 흘리며 꿈을 키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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