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의 전성 시대인가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 승인 2008.03.17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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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 정치’ ‘형님 인사’ ‘상왕’이라는 말이 여의도 정가에 나돌고 있다.

 
‘형님 공천’ ‘형님 인사’ ‘가계 정치’ ‘정치 대통령’ ‘상왕(上王) ‘정실 인사.’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단어들이 여의도 정치권에 나돌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등장한 뒤부터 회자되기 시작한 이 말들은 이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을 지칭한다. 종류도 다양하다. 공천에, 인사에, 정치적 영향력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만큼 그의 힘이 세다는 반증이다. 실제로 ‘이상득 사람’들은 청와대와 당, 정부 등에 고루 포진해 있다. 그야말로 ‘이명박 정권의 2인자’라고 볼 수 있다.
영남 지역 현역 의원 27명을 공천에서 탈락시킨 ‘영남 대학살’ 이후 이부의장의 거취가 주목되고 있다. 다선·중진 의원들 대부분이 가을 낙엽처럼 낙천되었음에도 그는 진작에 공천을 받아 선거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니 형평성 문제를 거론하며 “왜 이상득은 살아남았느냐”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을 리가 없다. 본인의 강력한 부인에도 ‘공천을 반납하고 주일 대사로 갈 것이다’라는 얘기가 식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3월14일 현재 이부의장의 움직임에는 변화가 없다. 한나라당의 영남 지역 공천이 발표되던 3월13일 이부의장은 경북 포항에 있었다. 지역구를 돌아다니기 바빴다. 그는 3월1일부터 3일까지 울릉도를 방문하는 등 3월부터는 지역구를 돌보느라 정신이 없다. 3월9일 프로축구 포항 스틸러스 홈 개막전에서 시축했고, 3월11일에는 ‘2008 천주교·불교 신년 교례회’에 참석했다. 한 측근은 “대선 후보 경선과 대선에 전념하기 위해 1년 정도 지역을 비웠다. 아침 7시부터 저녁 11시까지 움직이고 있다. 영남 지역 공천이 발표된 이후에도 마찬가지다”라고 전했다.


6선 도전 나선 한나라당 내 최다선·최고령 의원

얼마 전 이부의장은 측근들을 모아놓고 “처음 선거에 출마하는 자세로 이번 선거를 치르겠다”라고 선언했다. 측근들은 그의 선언을 ‘높은 득표율을 기록해야 한다’라는 다그침으로 들었다. 이부의장은 한나라당 내 최다선(5선)·최고령(73)인 자신이 지난 2월29일 일찌감치 공천 받은 데 대해 당 안팎에서 이런저런 말이 많은 만큼 압도적으로 당선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경북 지역의 한 언론인에 따르면 그가 있는 포항에도 사람들이 몰리는데 이들 가운데는 서울이나 대구에서 온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그가 지역을 누비고 있을 때 서울에서는 ‘이상득 주일 대사설’이 돌았다. 막판에 공천을 반납하고 주일 대사로 갈 것이라는 소문이 여의도 정가에 파다했다. 공천 후유증이 심할수록 ‘이상득의 선택’이 주목될 수밖에 없다. ‘이상득 주일 대사설’은 한편으로는 실현 여부를 떠나 권력 내부의 파워게임 성격도 있다. 이부의장은 여권의 소장 그룹과 박근혜 세력 간 완충 지대에 서 있다. 그는 줄곧 ‘완만한 개혁’을 주장해왔다. 당을 ‘이명박 당’으로 만들려는 소장파 및 이재오 의원과 그가 서 있는 줄은 다르다. 바로 이 때문에 7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그가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는 여권의 권력 구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언론에서는 이재오 의원을 2인자라고 부르지만 진짜 2인자는 이상득 부의장이다”라고 말했다. 이의원이 겉으로 알려진 것보다 힘이 약한 반면 이부의장은 겉으로 알려진 것보다 힘이 더 세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은 두 사람의 스타일 때문인 듯하다. 이의원은 강성이다. 적이 많다. 반면 이부의장은 부드럽다. 적이 없다. 공통점은 두 사람 주변에 사람이 끓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어디에 있든 어떻게 알았는지 이런저런 청탁을 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소문이 무성하지만 ‘이상득의 힘’이 직접 드러난 것은 없다. 이런저런 정황으로 보아 그런가 보다 하고 짐작할 뿐이다. 드러난 것은 인사이다. 그와 관계 있는 인사 다수가 정부 요직에 진출했다. 우선 방송과 통신을 아우르는 막강한 자리인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에 내정된 최시중씨는 이부의장과 고향도 같고 서울대 동문이며 친구 사이다. 대학 때부터 알고 지냈으니 이들의 관계는 50년이 넘었다. 최내정자와 이대통령을 연결시켜준 사람이 이부의장이다. 최내정자가 지난 대선 때 이대통령에게 전략을 조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이상득’이라는 막강한 배경 또한 큰 힘이 되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얼마 전 조현오 부산경찰청장이 “승진하려면 이상득 부의장이나 이재오 의원을 통해야 가능하다”라고 말했다고 보도된 것도 한 사례이다. 전부터 경찰 인사는 바람을 많이 탔다. 경무관으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장관의 힘으로도 부족하다는 것은 경찰 내부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 정도로 권력 실세가 경찰 인사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이런 맥락에서 조청장의 말은 현실을 정확하게 지적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관가에서는 이부의장이 국방위 활동을 해 이 분야에 정통한 점을 들어 군 인사에도 ‘이상득 색깔’이 배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가정보원의 예산과 조직을 다루는 핵심 요직인 기조실장에 임명된 김주성 전 세종문화회관 사장도 ‘이상득 사람’이다. 김실장은 세종문화회관으로 오기 전 코오롱그룹에서 35년간 근무하며 2004년 그룹 부회장을 끝으로 퇴직했다. 이부의장 또한 코오롱그룹에서 사장을 지낸 뒤 1988년 정치권에 입문했다. 이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있을 때 김실장을 세종문화회관 사장으로 영입한 막후에는 이부의장이 있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정부 부처 차관 인사가 발표되었을 때는 박종구 교육과학기술부 제2차관의 이름이 이부의장과 함께 오르내렸다. 지난 1월30일 인사와 관련해 아무런 공식 직함이 없는 이부의장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박차관의 이력서를 살펴보는 모습이 언론의 카메라에 잡혔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차관이 임명되자 ‘형님 인사가 드러났다’라는 말이 나왔다. 자유선진당 이혜연 대변인은 3월3일 “대통령의 친족에 의해 좌우되는 내각을 이대로 용인할 수 없다”라는 논평을 냈다.

 
관련 있는 인사 다수가 정부 요직 진출…당청 핵심에도 측근들 포진
인사에 미치는 ‘이상득의 힘’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내각과 청와대 비서진의 인사 작업을 진두 지휘한 박영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은 11년간 이부의장의 보좌관을 지냈다. 박비서관은 엄밀히 말하면 ‘이명박 사람’이 아니라 ‘이상득 사람’이다. 현재 청와대에 포진한 핵심 인물들은 박비서관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부의장이 그를 통해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구조가 정립되어 있다.
뿐만 아니다. 여당을 담당하는 정무1비서관을 맡은 장다사로 비서관은 최근까지 그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구조로 보면 한나라당과 청와대의 관계에서 이부의장의 목소리가 먹혀들 여지가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이부의장은 틈날 때마다 “여야 관계, 당청 관계에서 조정자 역할이 필요하다”라는 것을 출마 이유로 내세웠다. 여의도에서는 ‘정치 대통령은 이상득이다’라는 말이 나돈다. 합리적이고 화합형인 그의 원만한 성격과 대통령과의 관계, 다선 고령 의원이라는 조건 등이 어우러져 정치 현실을 잘 모르는 이대통령을 대신해 그가 현실 정치에서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에서 나온 말이다.
추부길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도 이부의장이 총선에 출마할 때마다 전략기획팀장으로 가까이서 그를 도왔다. 배용수 청와대 춘추관장은 이부의장이 한나라당 사무총장으로 있을 때 함께 일하며 각별한 인연을 쌓았다. 이부의장이 청와대에 그를 강력히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지난 대선 선거대책위 때부터 ‘인사’에 미치는 이부의장의 힘은 상당했다는 것이 한나라당 주변에서 나오는 얘기다. 선대위에서 일한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외부에서 선대위에 들어오는 사람들에 대한 기본적인검증 작업을 이부의장측 사람들이 맡았다”라고 말했다. 일부 문서에는 ‘위 내용은 이상득 부의장의 결재를 득한 사항입니다’라는 메모가 첨부되기도 했다. ‘이상득’이라는 이름 자체가 힘이었다.
 
공천 과정에서도 그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전여옥 의원에게 밀려 공천에서 탈락한 고진화 의원은 방송 인터뷰에서 “전의원이 일본 특사단에 포함되어 이부의장과 함께 일본에 다녀온 다음날부터 영등포 지역 행사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이부의장이 모종의 언질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 대통령의 친형이 공천을 전횡하는 일이 21세기에 가능한 일이냐. 봉건 영주 가계 정치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공개적으로 거론한 이는 고의원뿐이지만 물밑에서는 그가 이방호 사무총장 등을 통해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이부의장은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의 모임이었던 ‘수요모임’ 고문을 맡으며 한나라당 내 젊은 의원들과도 교감을 가져왔다. 원만한 성격과 조정력을 지녀 누구에게도 원망을 듣지 않게 일을 처리해 정치권에서 그를 욕하는 이를 찾기 어렵다. 그가 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서울 노원 을의 권영진 후보와 강원도 홍천·횡성의 황영철 후보도 40대 소장파들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이런 개인적인 평가와는 별개로 그는 이미 비중 있는 정치적 위치에 섰다. 실제적인 그의 영향력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가 6선 의원이 된다면 본인의 희망과 관계없이 영향력이 확대되며 정치적인 논란의 한가운데에 설 가능성이 크다. ‘가족 정치’ 공방이 일 수 있다. 한 측근은 “이부의장이 지역구에 출마한다는 것은 확고하다”라고 말했다. 머지않아 ‘형제 정권’이라는 소리가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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