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었나 살았나 사라진 광주 조씨 3년 만에 재수사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 승인 2008.03.17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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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씨 부인 한씨 “잠적할 이유가 없다” 주장 경찰 “조씨가 사라지면 이씨가 손해, 잠적 맞다

 
2005년 8월3일 저녁. 광주에 사는 조 아무개씨(당시 36세)는 친구와 저녁 식사 약속이 있다며 집을 나섰다.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다. 집에서 남편을 기다리던 부인 한 아무개씨는 사흘 후인 8월6일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경찰은 수사에 나섰다. 3일 저녁에 만났다는 조씨의 친구를 불렀다. 그는 “조씨는 나와 만난 뒤 밤 9시께에 이호성씨를 만나러 간다고 했다”라고 진술했다. 경찰은 이씨를 불러 조사했다.
이씨는 “밤 9~10시께 광주 서구 상무지구의 한 호텔 앞에서 조씨를만났다. 차 안에서 20분 정도 사업 얘기를 한 뒤에 그가 어디론가 누구를 만나러 가야 한다고 해서 헤어졌다”라고 밝혔다. 이씨는 경찰측에 “조씨를 빨리 찾아야 한다”라고 재촉했다. 동업자인 조씨가 잠적하면서 자신의 사업이 막대한 손실을 입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경찰은 조씨의 통화 내역을 모조리 확인하는 등 주변인물 26명을 불러들여 조사했다. 하지만 조씨의 행방은 그야말로 오리무중이었다.
부인 한씨에 의하면, 조씨가 집을 나간 3일 밤 12시께 전화를 했으나 이미 그때부터 휴대전화가 꺼져 있었다고 했다. 경찰은 “조씨가 사업을 하면서 많은 빚을 져서 잠적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결론짓고 사실상 수사를 마무리했다. 가족에게는 기다려 보라는 말만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지금까지 2년7개월간 조씨는 아직도 소식이 없다. 이 사건은 여전히 실종이 아닌 잠적 사건으로 남아 있다.
이번 이호성씨의 네 모녀 살해 사건을 계기로 3년 전 조씨 실종 사건이 다시 의문의 똬리를 틀고 있다. 한씨는 본격적으로 남편의 실종에 대해서 재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광주서부경찰서 역시 이씨 사건으로 인해 세간의 관심이 모아지자 지난 3월12일 본격적인 재수사에 돌입했다. 하지만 이미 3년이나 지난 사건이어서 지금에 와 제대로 된 수사를 펼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이 사실상 이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으면서도 물증이 없다는 이유로 수사를 흐지부지하게 만들었다는 주장을 제기해 파문이 예상되고 있다. 결국, 경찰의 무책임한 수사로 인해 일가족 4명 살해 사건까지 키웠다는 또 다른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광주 현지의 언론인인 이 아무개씨는 “3년 전 조씨 실종 사건에 이씨가 관여한 의혹이 있다고 해서 현지에서는 제법 관심을 끌었다. 상대가 프로야구 스타 이씨인 데다가 조씨 또한 지역에서는 꽤 알려진 조폭인 ‘무등산파’의 조직원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이씨 또한 주먹을 쓰는 지인과 친구들을 많이 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씨가 유력한데 물증이 없다’고 했다. 결국 수사는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라고 밝혔다.


 
부인 한씨도 이씨 의심했지만 경찰이 질책해

한씨 역시 “경찰이 처음에는 굉장히 열심히 수사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연락도 없고 수사도 안 하는 것 같았다. 수사 경찰에게 물었더니 ‘주변 관계자 증언이 조씨가 빚이 많아 잠적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그 정도 빚에 남편이 가족들까지 버리고 잠적했을 리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그녀도 이씨를 많이 의심했다. 남편과 사업 관계로 다툰 적도 있었고 또 무엇보다 이씨와 헤어지고 난 뒤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찰은 오히려 “죄 없는 사람을 자꾸 의심하면 오히려 무고죄로 고소당할 수도 있다”라고 그녀를 질책했다고 한다.
이번 이씨 사건을 수사 중인 마포경찰서의 한 관계자 역시 “당시 사건에서 이씨가 유력한 용의자라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 유명한 프로야구 스타가 설마’ 하는 분위기였던 것 같다”라고 전했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만약 조씨 실종 사건에도 이씨가 어떤 식으로든 관여가 되었다면, 그 사건이 이번 네 모녀 살해 암매장 사건에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된다. 실종된 지 3년이 다 되도록 당시 사건이 영원히 미스터리로 묻히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 사건도 또다시 단순 실종으로 묻힐 것이라는, 성공에 대한 일말의 자신감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한편 당시 이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광주서부경찰서 형사 이 아무개씨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같은 주장에 대해 강력히 반박했다. 그는 “당시 조씨가 사라지기 직전 동업 관계였던 이씨와 만난 것은 맞다. 당연히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이씨니까 그를 주목했다. 하지만 휴대전화 추적 내용을 보면 이후 조씨와 이씨의 방향은 전혀 달랐다. 이씨를 의심하기에는 불충분했다. 또 이씨가 조씨를 살해하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당시 이씨의 상황에서는 오히려 조씨가 사라지면서 상당한 손해를 감수해야 할 판이었다. 특히 조씨는 당시 빚이 5억원이나 되었다. 빚 때문에 스스로 자취를 감춘 것으로 밖에 볼 수 없었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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