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은 야채 장사 그날그날 잘 팔아야”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 승인 2008.03.24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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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상 받은 <사춘기> 판권 따낸 뮤지컬해븐 박용호 대표 / “수익성보다 진정성 살펴야 시장에서 살아남을 것”

 
지난해 7월 미국의 연극과 뮤지컬 부문 시상식인 토니상에서 뮤지컬 <사춘기>가 8개상을 수상하자 국내 뮤지컬계가 <사춘기> 잡기에 나섰다. 미국 현지에서도 이례적으로 20대들까지 극장으로 불러들이는 파격적인 내용이 화제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이 판권을 따내기 위해 국내 공연기획사끼리 경쟁을 벌였지만 2006년 이 작품이 오프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될 때부터 관심을 보였던 뮤지컬해븐이 국내 공연권을 따냈다.
애초 오프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될 때 뮤지컬해븐의 박용호 대표가 제시한 로열티 선지급금 수준은 10만 달러 수준. 하지만 브로드웨이로 진출하고 토니상까지 휩쓸면서 국내 뮤지컬 업체끼리 경쟁을 벌이면서 1백25만 달러 선까지 폭등했다. 박대표는 라이센스료에 대해 “100만 달러가 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뮤지컬해븐은 지난 2004년 설립해 2005년 뮤지컬 <메노포즈>를 창립 작품으로 올리고 지난 4년 동안 뮤지컬 <알타보이즈> <쓰릴미> <김종욱 찾기>, 연극 <쉬어 매드니스> 등 해마다 몇 개월씩 재공연되는 히트 작품을 벌써 5개 나 갖고 있다.
이 작품들은 재공연 때마다 흑자를 내는 효자 상품이다. 또 지난해 9월 무대에 올린 <스위니 토드>는 연말에 뮤지컬 전문가로부터 2007년 최고의 작품이라는 평가를 이끌어낼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올해도 <김종욱 찾기> 4차 공연(4월까지 6개월 공연)으로 시즌을 시작한 뮤지컬해븐은 연극 <쉬어 매드니스>와 관객 한 명이 수십 번씩 보기도 한다는 뮤지컬 <쓰릴미>, 연극 <필로우맨>을 재공연하고 11월에 창작 뮤지컬 <달콤, 살벌한 연인>을 올릴 예정이다. 화제작 <사춘기>는 공연 일정이 내년 5월로 예정되어 있다.
극단 설립 4년 만에 뮤지컬 흥행계 미다스의 손으로 떠오른 뮤지컬해븐의 박용호 대표를 만나보았다.

요즘 국내 뮤지컬 시장이 급팽창하고 있는데.
요즘 국내 뮤지컬 시장은 수요가 늘면서 커가는 시장이 아니라 공급자가 키우고 있는 시장이다. 된다고 하니까 여기저기서 뛰어드는 것 같다. 요즘은 손님보다 작품이 더 많다. 관객보다 공급자가 세 배는 많은 것 같다. 뮤지컬은 야채 장사다. 그날 상품은 그날그날 팔아야 한다. 재고가 무의미하다. 현장 공연은 되돌릴 수도 없고 되팔 수도 없다. 관객 성장 속도보다 작품 제작 편수가 훨씬 더 빠르게 늘어나는 이 상황은 곧 한계를 맞을 것이다.
그래도 영화에 투자하던 자본도 뮤지컬 시장으로 몰리고 있는데.
영화보다 덜 깨지니까 이쪽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영화 쪽의 지난해 수익률이 -47%라는 얘기가 있다. 뮤지컬은 그 정도는 아니니까. 상대적으로 수익 올리는 작품 비율도 높고.
국내 뮤지컬 시장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가?
국내 뮤지컬 시장의 중심은 서울 흥행 시장이다. 그런데 서울 흥행 시장은 한 해에 1천억원도 안 된다고 본다. 한 해에 주목받는 작품은 20여 개에 불과하다. 또 서울 흥행 수익의 대부분은 외국의 유명 공연 투어팀이 가져가고 있다. <라이온 킹>이 전용극장에서 장기 공연하며 화제를 모았지만 결국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다.
언제쯤 이런 상황이 정리될 것 같은가?
2~3년 정도 있으면 거품이 빠질 것으로 본다. 수익만 바라보고 들어온 사람들은 결국 손 털고 나갈 게 뻔하다. 이 과정에서 버텨내지 못했던 기존 뮤지컬계 종사자만 손해를 보게 된다. 뮤지컬 시장에 필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제작자도 창투사의 진정성을 살펴야 한다.

 
성악을 전공(서울대 성악과)했는데 직접 무대에 설 계획은 없나?
노래 공부는 고3 때 제일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대학 때 어느 순간 음악 공부에 흥미를 잃었다. 오히려 음악 비즈니스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 공부를 하려고 미국의 경영대학원 입학 준비까지 끝냈는데 당시 중앙일보에 삼성영상사업단이 제작하는 뮤지컬 <42번가>에 대한 기사가 난 것을 봤다. 그걸 보고 1996년 삼성영상사업단에 입사하면서 뮤지컬 일을 시작했다.
언제 독립했나?
삼성이 영상사업단을 접으면서 몇 군데 회사를 거쳐 2003년에 극단 신시에 들어갔다가 2004년 여름에 뮤지컬해븐을 차리면서 그만뒀다. 독립하면서 첫 작품 <메노포즈>를 올릴 때 투자자를 모으는 일이 정말 힘들었다. ‘삼성 간판 밑에서 일하던 박용호와 개인 박용호는 아주 다르다’는 것을 절감했다.
독립하기까지 짧은 기간에 전직(5번)이 잦은 편이었다.
삼성이 영상사업단을 접었지만 나는 뮤지컬 제작 일을 계속 하고 싶었다. 문은 열어봐야 안다. 문 여는 걸 두려워하면 안 된다. 망설일 수 없었다. 뮤지컬 업계 분들은 모두 저돌적으로 일한다. 성격이 급한 편이지만 출발점에서는 세세하게 공을 들여서 준비한다.
CJ엔터테인먼트측은 지난해 올린 공연 중 <쓰 릴미>가 <캣츠>에 이어 수익률 2위 작품이라고 하던데 돈도 많이 버나?
한 해 매출액은 50억원 정도이다. 작품마다 투자자와 나누는 수익 비율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수익률은 15~20% 정도이다. 뮤지컬 제작자는 3년을 앞서 살아야 한다. 3년 뒤 올릴 작품을 오늘 계약하고 기획에 들어가야 제대로 된 공연이 나온다. 라이센스 선지급금 등 투자비를 빼면 늘 적자다.
지금 몇 편이나 품고 있는 것인가?
미공개된 해외 작품 라이센스가 5~6편 더 있고, 2년 안에 <번지 점프를 하다> <여행 스케치> 등 창작 뮤지컬 2편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경력에 비해 흥행작이 많다.
운이 좋았다(웃음).
유명해지니까 뭐가 좋은가?
유명해지니까 딱 한 가지 좋다. 예전보다 제작비 자금 조달이 쉬워졌다.
지난해 무대에 올린 <쓰릴미>나 <스위니 토드> <필로우 맨> 등을 보면 유괴나 살인 등 어두운 정열을 소재로 하고 있다.
내 성향이 대중 지향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내가 특정한 작품만 고집하지는 않는다. <달콤, 살벌한 연인>도 원작에 ‘칼질’이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스토리 라인 등 전체적인 것을 보다가 선택한 것이지 일부런 그런 소재만 고른 것이 아니다. 음악과 작품이 좋으면 어떤 작품이든 한다. 작품에 대한 편식은 없다. 내가 직접 맛을 본다. 내가 맛본 작품들의 그 맛을 관객들에게도 그대로 전달해주고 싶고 그렇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이건 진정성의 문제다.
뮤지컬해븐의 작품에는 늘 CJ엔터테인먼트가 투자자로 나서고 있는데 어떤 관계인가?
협력 관계일 뿐이다. 뮤지컬해븐도 내 회사이지 CJ와 지분관계가 없다. CJ는 대학로의 ‘예술마당’ 공연장도 함께 운영하고 뮤지컬해븐의 흥행이 검증된 작품에도 계속 투자해 수익성을 보장받고 새 작품에도 계속 투자해주는 안정적인 제작 파트너일 뿐이다.
10년 뒤 어떤 모습을 그리나?
산업은 예측 가능해야 한다. 1년 전 한 해 공연 일정을 확정짓고 전용 상설극장을 포함해 1년 내내 창작 작품과 재공연 작품, 라이센스 작품을 올리는 그런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다.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구축해 회원제 운영도 가능한 ‘씨어터 컴퍼니’를 만드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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