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 판박이 경제도 따라붙을까
  • 소준섭 (국제관계학 박사) ()
  • 승인 2008.03.31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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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8년 만에 국민당 마잉주 총통 뽑아 정권 교체 / 한국에 GDP 추월당하자 국민이 ‘보수’ 세력 선택

 
타이완에서 마잉주(馬英九)가 총통에 당선됨에 따라 타이완의 보수 세력 국민당이 두 번 연속 패배를 딛고 마침내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타이완 정국은 우리와 너무도 닮아 있다. 타이완은 수십년 동안 보수 세력인 국민당이 집권하다가 8년 전 처음으로 진보 세력인 민진당이 격전 끝에 총통 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권력을 장악했다.
이는 군부 세력이 오랜 기간에 걸쳐 집권하다가 10년 전 처음으로 야당이 대통령 선거에 승리함으로써 집권에 성공한 우리 한국의 경우와 완전히 일치한다.
그리고 4년 전 민진당은 그야말로 간발의 차이로 다시 집권에 성공했지만 이후 집권당에 대한 지지율은 형편없이 추락하고 경제가 쇠퇴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러한 상황 역시 우리와 너무도 유사하다. 타이완의 수도인 타이베이 시의 야당 출신 시장이 총통으로 당선되었다는 점도 우리의 경우와 같다. 역대 대통령 선거 사상 최대 표차로 이겼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한국의 노무현 전 대통령과 타이완의 천수이볜 총통이 똑같이 변호사 출신이라는 점도 동일하다. 변호사 출신으로서 그들은 모두 장점과 약점을 포착하는 데 능하고 어젠다(화제)를 만들어가는 능력이 탁월했으며 그 어젠다를 무한대로 확산시킬 줄을 알았다.
미국이 두 곳의 새 지도자를 환영하는 것도 일맥상통한다. 미국은 ‘유엔 가입 국민투표 실시’ 등 각종의 ‘상상력이 풍부한 방안’을 내놓고 중국과의 긴장 국면을 만들어내 골치를 아프게 했던 민진당의 천수이볜 정권이 퇴진하고 중국과의 평화적 공존을 내세우는 마잉주가 등장한 것을 매우 반기고 있다. 한국에서도 그 실체적 내용이야 어찌 되었든 최소한 외면적으로는 ‘자주적 외교’를 기치로 내걸고 ‘파격적인 외교 행위’도 간간히 선보인 노무현 정부에 항상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던 미국으로서는, 적극적으로 한·미 동맹의 회복을 주창하는 등 친미 노선을 거의 공개적으로 표방하는 이명박 정부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번 타이완 총통 선거에서 타이완 독립을 내세우는 민진당이 패배하고 국민당의 마잉주가 당선됨으로써 타이완과 중국 대륙의 관계에 파란불이 켜졌다고 예측하고 있다. 물론 이전 시기보다 양안 관계는 상대적으로 양호해질 것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급진적인 대변화는 오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왜냐하면 마잉주가 대표하는 국민당의 통일 정책과 중국 공산당의 통일 정책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커다란 차이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민간 전문가들 “마잉주는 반공주의자” 우려

무엇보다도 국민당의 양안 관계 기본 정책은 현상 유지다. 이러한 현상 유지 정책은 정확히 미국의 양안 정책과 동일하다. 이와 달리 중국 정부의 통일 정책은 타이완의 조속한 흡수 통합이다. 비록 타이완의 국민당이 이른바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고는 있지만, 각론으로 들어가 보면 정작 이 공동 인식에 관한 양자의 해석은 서로 완벽한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즉, 1992년 11월 중국측의 ‘양안관계협회’와 타이완측의 ‘해협교류기금회’는 “해협(海峽) 양안은 모두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한다”라는 공동 인식에 구두로 합의했다. 다만 당시 양측은 ‘하나의 중국’이 갖는 정치적 함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중국과 타이완이 합의한 ‘하나의 중국’ 조항에는 ‘각자표술(各自表述)’이라는 단서 조항이 있다. 문자 그대로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그 의미에 대해서는 각자 진술한다’라는 뜻이다. 중국측으로서는 당연히 중국으로의 통일을 의미하는 것이며, 반대로 타이완측에서는 ‘중화민국의 주체성’으로 해석된다. 마잉주는 이러한 타이완의 관점을 분명하게 견지해나갈 것이다.

 

더구나 마잉주는 양안 협상이 실현되기 위한 전제 조건을 언급하면서 중국 대륙측이 먼저 연해지구에 배치되어 있는 미사일을 철수시켜야 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나아가 그는 홍콩 반환 방식의 일국양제를 반대하고 있으며, 이번 총통 선거 과정 중에서도 “타이완의 미래는 어떠한 길을 선택하든 마땅히 타이완 민중이 공동으로 결정하는 것으로서 중국과는 관계없으며 또한 중국의 간섭을 절대 허용할 수 없다”라고 명백하게 천명한 바 있다. 더구나 마잉주는 1998년 타이베이 시장 선거에서 훗날 타이완 독립 노선의 선구자가 된 리덩후이의 강력한 지원을 받아 승리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비록 중국의 공식적인 주장으로 제기된 것은 아니지만 중국의 민간 전문가들은 “마잉주는 전형적인 반공주의자이며, 미국에서 유학한 전형적 미국식 사고방식의 소유자다”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양안 관계의 향후 정세 변화에 대해 오히려 우려 섞인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타이완 전 총통 천수이볜의 타이완 독립이라는 단선적인 노선은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그 대응책이 매우 간단 명료했다. 그러나 타이완 독립을 주장하지는 않지만 내용적으로 자주 발전을 지향하고 경제적 실용주의를 표방하면서 국제적 감각과 대중적 정치력을 지닌 새 정권을 맞아 중국은 이제 그야말로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티베트 문제가 폭발하면서 중국의 민족문제가 국제적으로 부각된 민감한 시점에서 마잉주라는 타이완의 ‘만만치 않은’ 새로운 지도자를 상대로 타이완 문제를 여하히 처리해나가는가의 문제는 중국으로서는 ‘뜨거운 감자’가 아닐 수 없다.
이번 타이완 총통 선거에서는 우리 한국의 대통령 선거와 마찬가지로 경제 문제가 가장 큰 이슈로 떠올랐다. 특히 ‘타이완은 왜 한국에게 추월당한 것인가?’라는 문제가 커다란 논쟁거리로 부각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2000년만 해도 타이완의 1인당 GDP는 1만4천4백26달러로서 1만8백91달러에 불과했던 한국보다 32%나 많았지만 2007년에는 타이완이 오히려 1만6천7백68달러에 그쳐 2만 달러를 넘긴 한국보다 거꾸로 19.9% 떨어졌던 것이다. 이는 타이완 민중들의 자존심을 크게 해치는 것이었으며, 따라서 타이완 민중들로 하여금 기존의 체제를 거부하게 하는 중요한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므로 마잉주는 타이완 경제의 소생을 위해 우선적으로 중국 대륙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이로부터 타이완 경제의 활성화를 꾀할 것임에 분명하다.
결국 이러한 정치·경제의 객관적 정세에 비추어볼 때, 향후 양안 관계는 ‘경제 협력 중심의 제한적 진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지난 시기처럼 양안 간에 일촉즉발의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적을 것이지만, 통일의 방법론 논쟁과 함께 접촉 교류의 폭과 깊이를 둘러싸고 중국 대륙과 타이완의 밀고 당기는 날카로운 신경전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타이완의 정세 변화를 관전하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흥미로운 관심거리가 있다면 과연 한국과 타이완의 닮은꼴 정치가 언제까지 계속 이어질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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