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해진 북한, 왜 위기 조성하나
  •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08.04.07 15:5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명박 정부 대북 정책에 영향…총선 쟁점으로 남북 관계 악화 부각시키려는 의도
 

‘실용주의 대북 정책’을 표방한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북한의 반응이 말하는 단계를 지나 행동으로 나오고 있다. 말도 점차 거칠어지고 있다. 최근 북한은 개성공단 남북교류협력협의회 사무소 남측 당국자 철수 요구(3월27일), 서해상에서는 단거리 미사일 발사(3월28일), 김태영 합참의장의 핵공격 대책 발언에 대한 반발과 남북 대화 중단 공언(3월29), 이명박 정권에 대한 원색적 비난(4월1일) 등 대남 강경 대응의 수위를 연달아 높여가고 있다.

한편 북한은 3월28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부시 행정부의 협상태도에 실망’한다면서 “6자회담 10·3 합의 이행이 미국의 처사로 교착상태에 빠져들고 있다”라고 밝혔다. 북한은 ‘우라늄 농축 의혹’과 ‘시리아와의 핵 협조 의혹’을 부인하면서 미국이 “핵문제의 해결을 지연시킨다면 지금까지 겨우 추진되어 온 핵시설 무력화(불능화)에도 심각한 영향이 미치게 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은 한·미 합동 군사훈련과 유엔에서의 북한 인권 문제 제기 등 사안별 현안에 대해서는 말로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그동안 이명박 정부 대북 정책의 큰 방향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던 북한이 최근에는 행동으로 나서고 있다. 핵문제와 경협 확대를 연계한 김하중 통일부장관의 발언을 문제 삼아 남북 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 내에 있는 경협사무소에서 남측 당국자들을 사실상 ‘추방’ 하는 것을 신호탄으로 대남 비난의 수위를 높임으로써 남북 관계에 냉기류가 형성되었다.

특히 그동안 자제해왔던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비난과 함께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 공약인 ‘비핵·개방·3000’에 대해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함으로써 당분간 남북 관계가 교착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4월1일자 로동신문 논평원의 글 ‘남조선 당국이 반북 대결로 얻을 것은 파멸뿐이다’에서 “이명박의 ‘북핵 포기 우선론’은 핵문제의 해결은 고사하고그에 장애만 조성하며 북남 관계도, 평화도 다 부정하는 대결 선언, 전쟁선언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로동신문은 “이명박의 ‘개방’ 넋두리는 결국 반북 대결을 고취하기 위한 반민족적인 궤변이고 북남 관계를 전면 부정하는 반통일적 망동이다”라고 비난하고 “이명박은 또한 그 누구의 ‘국민소득 3000’이라는 것을 들고 나와 우리를 우롱함으로써 간특한 간상배, 협잡군의 정체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라고 하는등 이대통령에 대해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강경 일변도 대북 정책, 북한 강경파 입지만 강화시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이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에 대해 입장 표시를 유보해오다가 ‘이명박 역도’라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비난하고 나선 것은 통일부 업무보고를 지켜보면서 남북 관계 진전이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3월26일에 실시된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김하중 통일부장관은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남북한 정신은 1991년에 체결한 기본합의서로 그 정신이 지켜져야 한다. 기본합의서에는 한반도의 핵에 관한 것이 들어 있는데, 북한도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이미 비핵화 정신에 합의한 바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대통령은 남북 기본합의서 체제로 복귀할 것을 강조하면서 “국민 뜻에 반하는 협상은 앞으로 없을 것이다. 남북 간 문제는 매우 투명하고 국제 사회에서 인정하는 룰 위에서 적극적으로 대화할 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통일부 업무보고 과정에서 남북 관계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고, 국제 규범을 벗어난 북한의 예외 주의적인 행동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통일부 업무보고 이후 북한의 대남 강경대응의 수위가 높아진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3월31일 합참의장 등의 발언을 문제 삼으면서 이명박 정부가 북한을 ‘자극하는 언동’을 잇달아 함으로써 남북 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며 이럴 경우 6자회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조선신보는 “남측 군부의 불온한 언동은 개별적인 현상이 아니라 이명박 정권의 성격과 체질, 정책적 지향의 표현으로 봐야 할 것이다”라고 비난했다. 이 신문은 “6자회담 합의가 이행 국면에 들어서고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의 전환 문제가 상정되는 마당에 이르렀는데 이명박 정권은 선행 정권을 부정한다면서 북남의 반목과 대립을 격화시킬 수 있는 언동을 일삼고 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6자회담이 재개된 이래의 긍정적인 정세 발전에 제동을 거는 걸림돌로 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북한이 강경하게 행동하고 발언하는 배경은 몇가지로 추론해볼 수 있다. 첫째, 총선 이후 구체화할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정부 여당이 총선을 앞두고 대선 공약 등에서 제시했던 선 핵폐기·상호주의 등 대북강경 노선을 견지하고 있는데, 총선 이후에도 이런 노선이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 대북 정책에 맞서 북측도 개성공단 사업 중단 등의 지렛대가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남측이 실용주의 대북 정책을 내세우고 이익이 되는 경협 사업만 지속하고, 대북 지원 등을 납북자·국군 포로 등 인도적 문제와 연계하는 데 대한 불만의 표시로 경협 사무소 남측 당국자들의 철수를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남북 경협은 호혜적인 것이지만, 사업을 중단하면 남측 투자 기업들의 손실이 크게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의도에서 철수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셋째, 선거를 앞둔 시점이라는 점에서 남한 총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철수 이후 우리 정치권의 반응이 엇갈리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새 정부의 대북 정책이 총선 쟁점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북측은 잘되어가던 남북 관계마저 악화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켜 남측 집권 세력을 어렵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명박 정부가 선 핵폐기와 개방 요구를 지속하면서 일방주의 대북 정책을 통해 ‘선의의 무시 (benign glect)’ 정책으로 일관할 경우 북한은 관심을 끌기 위해서 ‘위기 조성 전술’을 구사할 가능성이 크다. 서해 미사일 발사도 위기 조성 차원의 일환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서해 등에서의 위기 조성은 이명박 정부의 ‘경제 살리기’ 정책에 영향을 줄 것이다. 남북 갈등은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의 대외 신인도에 곧바로 영향을준다. 일방주의 대북 정책의 한계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강경 일변도의 대북 정책은 북한 대남 강경파의 입지를 강화시킬 수 있다.

대남 의존성 높아 총선 후 수위 조절할 것

북핵 해결의 ‘중대 기로’에서 남북 갈등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 정부가 ‘북한 길들이기’를 하는 동안에도 북·미 핵협상은 지속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해 상당량의 식량을 지원하는 협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인도적 지원을 재개하고 북핵 해결을 촉진하자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인도적 지원마저 중단하고 당국자들의 대북 강경 발언만 쏟아내고 있다. 조율되지 않은 대북 강경 발언은 남북갈등을 심화시키고 북한 강경 군부의 입장을 강화할 뿐이다. 경제난 등으로 위기에 처한 북한이 수세적으로 적응할 수밖에 없다는 자신감을 경계해야 한다. 1990년대 중반 굶어죽으면서도 외부 세계에 지원 요청을 하지 않고 버텨온 북한이다.

 


북한은 봄철이면 어김없이 요청했던 못자리용 비닐, 비료, 쌀 등의 지원 요청을 올해는 지금까지 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수해와 국제 곡물 가격 폭등, 중국의 대북 곡물 수출 제한 등으로 북한의 올해 식량 사정은 1990년대 중반의 대규모 아사자가 발생했을 때에 못지않은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럼에도 북측이 지원 요청을 하지 않는 것은 총선에서 또다시 ‘퍼주기 논란’이 일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총선 국면에서는 북측이 지원을 요청해도 이명박 정부와 여권은 들어줄 수 없을 것이다. 북측은 이런 사실을 뻔히 알기 때문에 무리한 지원요청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총선이 끝나면 이명박 정부는 미루어두었던 숙제를 서둘러 해결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체 국면에 빠진 북핵 해결을 위해 좀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할 것이다. 최근 북한과 미국은 제네바에서 양자 접촉을 갖고 교착된 북핵 해결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한 의견을 교환하고 내부 검토에 들어가 있다. 비핵화가 진전되면 대북 지원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이명박 정부로서는 북한이 모든 핵 프로그램을 신고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 경우에는 전향적인 대북 정책을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비핵화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대북 강경파의 목소리가 힘을 얻을 것이고 대북 정책의 방향도 실용주의보다는 일방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총선 결과도 대북 정책 방향에 영향을 줄 것이다. 하지만 총선 결과와 대북 정책의 방향을 일정한 영향 관계로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집권 여당이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확보할 경우에는 상대적 자율성을 가지고 실용주의 대북 정책을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다.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고 자유선진당을 국정 운영의 파트너로 삼을 경우는 대북 강경 노선을 유지할지도 모른다. 햇볕정책과 평화번영 정책을 계승한 통합 민주당이 다수당이 될 경우에는 화해협력 정책의 일관성이 강조될 수도 있다.

최근 북한의 대남 강경 발언이 특정 정치 세력에 유리한지 불리한지를장담하기는 어렵다. 전통적으로는 북풍이 보수 세력을 결집하는 효과를 불러왔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간 화해 협력이 진전되어왔기 때문에 남북 관계가 교착된 데 대한 불만이 나올 수도 있다. 북한이 총선 전에 대남 비방을 시작한 것은 잘 되던 남북 관계도 위기에 봉착했다는 여론을 불러일으켜 집권 세력에 타격을 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총선 전에 북한이 큰소리를 쳤지만, 대남 의존성이 높아진 북한으로서는 총선 결과를 지켜보고 이명박 정부에 대한 대응 수위를 다시 조절하게 될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