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의 마법사에게 희·로·애·락의 숨을 불어넣었다”
  • 반도헌 기자 bani001@sisapress.com ()
  • 승인 2008.04.07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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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숨 쉬는 공기> 개봉 앞둔 이지호 감독 / “인간의 정체성과 보편성 보여주고 싶었다”

 

호 화 캐스팅을 자랑하는 한 편의 할리우드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내가 숨쉬는 공기(The air I breathe)>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브렌든 프레이저, 케빈 베이컨, 앤디 가르시아, 포레스트 휘태커, 사라 미셀 겔러, 줄리 델피, 에밀 허쉬 등 할리우드에서 각각 주연을 맡아도 손색 없는 배우들이 함께 출연한다. 하지만 이 작품이 국내에서 주목을 받는 이유는 한국계 미국인이자 탤런트 김민씨의 남편인 이지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기 때문이다.

<내가 숨쉬는 공기>는 행복(포레스트 휘태커), 기쁨(브랜든 프레이저), 슬픔(사라 미셀 겔러), 사랑(케빈 베이컨)이라는 네 가지 감정을 대표하는 인물 네 명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교육 제도에 모범적으로 따라갔던 펀드 매니저,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있는 조폭, 인기몰이를 시작한 신인 여가수, 제때 고백을 하지 못해 사랑을 놓친 의사, 이 네 명의 인물이 펼쳐가는 각각의 이야기가 인물 간의 만남이라는 고리로 연결되고 중첩되어 짜임새 있는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된다.

영화는 감독이 한국(동양)과 미국(서양)의 공기(감성)로 숨을 들이키고 뱉어낸 듯 동양과 서양의 정서를 모두 담아내고 있다. 이감독은 “영화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고전 뮤지컬 영화인 <오즈의 마법사>와 ‘희로애락’이 대변하는 동·서양의 감성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오즈의 마법사>는 자기 자신을 찾으려는 네 명의 모험을 그렸다. 이들은 모험을 겪으면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을 찾아간다. <내가 숨쉬는 공기>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있다. 반면에 동양적 정서인 ‘희로애락’은 모든 인간이 느끼는 보편적 정서를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영화를 통해 인간의 보편성과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말이다.

네 명의 인물이 펼치는 하나의 이야기

이런 점에서 가장 극단에 서 있는 인물이 슬픔을 맡은 여가수 트리스타와 폭력 조직의 보스인 핑거스(앤디 가르시아)일 것이다. 네 명의 주인공 중 유일하게 내레이션이 없는 트리스타는 자신의 본명을 밝히는 것을 꺼려 할 정도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없는 인물이다. 반면에 핑거스는 정체성이 분명하고 자아가 너무 확고한 나머지 다른 인물들에게 자신의 방식을 강요한다. 이감독은 “개인적으로 핑거스라는 캐릭터를 가장 좋아한다. 악인이지만 단순히 악하다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자신의 방식으로만 사랑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불행한 인물이다”라고 말했다.

이지호 감독은 뉴욕에서 태어나 웨슬리안 대학에서 인문학과 영화를 전공하고 하버드 대학에서 MBA 과정을 수료하는 등 미국에서 교육 과정을 밟은 미국인이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은 내 심장이 속해 있는 곳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한국인이기도 하다. 이감독은 대학 졸업 후 한국에 들어와서 일을 하기도 했다. 삼성영상사업단에서 클래식 음반 프로듀서로 일하면서 조수미·신영옥 등의 음반 제작에 참여했다. 광고와 뮤직비디오를 감독하기도 했다. <내가 숨쉬는 공기>에 나오는 네 명의 인물들은 그가 한국에 있는 동안 만났던 사람들에게서 영향을 받아 발전시킨 것이다. 그는 “인물을 기록하는 습관이 있는데 이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이감독을 영화의 길로 들어서게 한 것은 대학 재학 중 1년간 지냈던 이스라엘에서의 경험 때문이었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 고아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는 유태인 감독을 만났다. 그는 10년 전 팔레스타인 폭탄 테러로 아내를 잃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영화에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었다. 영화 바깥에서 보이는 그의 이야기가 또 한 편의 영화로 느껴졌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가장 영향을 준 감독은 마틴 스콜세지이다. 대학 재학 시절에 재학생을 대상으로 한 영화제에서 1등상을 수상한 이감독은 심사에 참가한 스콜세지 감독과 저녁 식사를 함께할 기회를 가졌다. 그때 쓰고 있던 단편 시나리오를 보여주었는데 스콜세지가 한국에서 만들어보라는 말을 했다. 이감독은 실제로 한국에서 단편영화 <동화>를 찍었고 선댄스 영화제 경쟁 부문에 출품되기도 했다.

촬영 기간 29일에 50여 곳 로케이션 강행군

<내가 숨쉬는 공기>의 화려한 캐스팅은 2년간에 걸친 노력 끝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는 배우 캐스팅을 위해 모든 장면의 콘티를 작성하고 배우의 강아지 이름을 외울 정도로 세세한 것까지 철저하게 준비해서 임했다. 캐스팅이 가장 어려웠던 배우는 앤디 가르시아였다. 이감독은 “그는 4시간에 걸친 인터뷰 중에 자신이 기존에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에서 보여줬던 모습과 다른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 인물들과 핑거스 간의 미묘한 차이에 대해 설명해서 결국 성공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인물들에 대한 뚜렷하고 확고한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이감독이 밝히는 것처럼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가 중첩되는 <내가 숨쉬는 공기>는 전형적인 장르 영화가 아니다. 최근에 <크래시> <바벨> 등에서 선보였던 이야기의 중첩 방식은 여전히 대중적이지는 못한 형식이다. 그러다 보니 투자를 받는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감독은 “프로듀서인 크리스토퍼와 철저히 전략적으로 접근했다. 그래서 이전에 비슷한 영화를 제작했던 제작자 10명을 선택해서 대본을 보여주었다. 다행히 그들 모두에게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다. 그중에서 5명만이 내게 감독을 맡기겠다고 했다. 이 중에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를 제작하는 로렌스 벤더와 오우삼 영화를 제작하는 프로덕션이 포함되어 있었다”라고 말했다.

감독이 물고문과 같다고 표현할 만큼 더디게 진행되는 영화 제작 과정이지만 막상 촬영에 들어가서는 29일 촬영 기간 동안 50여 개의 로케이션이라는 빠듯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3분의 2 분량을 촬영하고는 대상포진에 걸려 이틀 동안 촬영이 중단되고 감독 교체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이감독은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휠체어를 끌며 촬영장과 병원을 오갔던 아내의 도움이 컸고, 배우들과 제작 스태프들의 지원이 힘이 되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유난히 “운이 좋았다”라는 말을 많이 했다. 할리우드에서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 노력도 중요하지만 운적인 요소를 무시할 수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야기의 힘, 대본의 중요성,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강조했다. 그는 좋은 대본이 있었기에 좋은 배우를 캐스팅할 수 있었고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창의성을 발휘하는 일을 하는 사람의 가장 큰 적은 자기 자신을 의심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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