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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 그 불안한 뒤끝

이번 총선의 최대 승자가 박근혜 전 대표라는 평가와는 달리 ‘박 전 대표가 오히려 한계를 노출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왜일까.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ㅣ 승인 2008.04.14(Mon) 11: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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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4월10일 지역 주민들에게 당선 인사를 하기 위해 차에 오른 그녀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이날 박 전 대표는 비가 오는 지역구를 6시간 가까이 돌며 당선 사례를 했다. 전에 볼 수 없던 모습이다. 자신감과 의지가 얼굴에 가득 배어났다.


4·9 총선은 ‘박근혜의 승리’인가. 대다수 언론과 정치권은 그렇다고 분석한다. 실제 그런 측면이 있다. ‘힘’을 보여주었다. 선거 결과 ‘범 박근혜계’ 숫자가 선거 전보다 늘어났다. 당 내에서만 35명 정도고, ‘친박연대’와 ‘친박 무소속 연대’까지 합치면 60명을 넘는다. 한나라당이 과반을 간신히 넘기는 1백53석을 얻었으니, 박근혜계의 협조가 없이는 일을 원활히 해나가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

‘박근혜 바람’은 특히 영남에서 거세게 불었다. 자신은 달성 지역구에 머물렀지만 영향력이 영남 전역에 퍼졌다.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라는 그녀의 폭탄 선언은 한나라당에 대한 민심 이반을 부채질했다. 32.74%(대구)와 23.56%(경북)에 달하는 친박연대의 정당 지지율은 ‘박근혜’가 아니고서는 설명이 안 된다. 정치적으로 ‘영남 대통령’이라는 소리가 나올 만하다.


서울에 출마한 일부 후보들은 그녀에게 지원 유세를 해달라고 기자회견을 했고, 지지자들은 ‘반 박근혜’ 선봉인 이재오·이방호 의원을 낙선시키기 위해 밤을 샜다. 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이 “이번 선거는 박근혜 선거였다”라고 평했을 정도다. 야당 주변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최대 견제 세력이 야당이 아니라 박근혜 전 대표가 되었다”라며 정국 주도력을 상실할까 봐 고민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표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치권과 언론의 관심이 온통 박 전 대표의 일거수일투족에 쏠리고 있다.


선거 이후 박 전 대표와 가까운 이들은 속속 대구를 찾고 있다. 4월10일에는 친박연대의 이해봉·박종근 의원과 서울 강서 갑에 출마해 당선한 구상찬 당선인이 모습을 보였다. 박 전 대표는 이날 “한나라당이 국민 뜻을 따라야 한다”라고 말했다. 당을 나갔으나 당선한 친 박근혜계 인사들을 복당시켜야 한다는 말이었다. 다음 날에는 ‘친박연대’ 사람들이 모여들어 향후 진로를 구체적으로 모색했다. 갈수록 박 전 대표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기세를 올려가는 흐름이다. 친박연대 공동대표인 서청원 당선인은 “살살 빌면서까지 한나라당에 갈 이유가 없다”라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박 전 대표는 점점 울타리에 갇혀가고 있다. 스스로가 자초했다. ‘박근혜 마케팅’에 힘입어 국회에 진출한 사람들 가운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어야 할 사람들이 여럿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이런 이들이 ‘박근혜 우산’을 쓰고 재기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번 총선을 거치며 정치가 10년은 퇴보했다”라고 평가되는 이면에 박 전 대표의 얼굴이 오버랩되고 있다. 대신 ‘정치 개혁’ ‘원칙’ 이미지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박 전 대표의 한 측근도 이를 의식한 듯 “자신들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 박 전 대표를 자꾸 내세우려는 이들이 있다”라며 고민을 토로했다.


정치컨설팅업체인 폴컴의 윤경주 대표는 “4·9 총선을 통해 박 전 대표는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자신의 힘이 얼마나 센지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이 한계라는 것도 분명하게 노출했다. 원칙을 지키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 또한 상당 부분 깨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힘을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 길게 보면 ‘차기’ 경쟁에서는 오히려 더 멀어진 측면이 있다”라고 분석했다. 지역구에 내려가 지원 유세를 하지 않으며 암묵적으로 한나라당을 탈당한 친박 인사들을 지원하거나 계파 소속 의원 11명에게만 지지 메시지를 보낸 것 등이 일반 유권자들에게는 ‘계파의 수장’ 이미지를 고착화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뉴시스
 

‘복당 문제’ 잡음 길어지면 또 한 번 선택의 기로에 설 듯

이 때문에 이번 총선 결과를 ‘박근혜의 승리’로만 규정하는 것은 민심의 본질을 잘못 짚은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오만한 권력에 대해 경종을 울린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한 대표적 전략가는 “박근혜 전 대표나 친박연대 등을 지지했다기보다는 현 정권의 인사와 정책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표출된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유권자들이 현 정권을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지 박 전 대표를 적극 지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총선 평가도 미묘한 부분이 있다. 이대통령은 4월1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역시 국민이 정치보다 앞서가고 있다. 국민을 낮은 자세로 섬겨야 한다는 점을 새삼 절감했다”라고 말했다. 다음 날인 11일에는 청와대에서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를 만나 “수도권에서 한나라당이 선전한 것은 정치 문화가 진일보했다는 증거다. 수도권에서는 사실상 지역 정서가 없어진 것이 아니냐”라고 말했다. 이대통령의 언급은 ‘수도권’에 방점을 찍고, 상대적으로 ‘박근혜 바람’이 거셌던 영남의 선거 결과를 ‘지역 정서’라고 평가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대통령의 이런 인식은 그가 향후 박 전 대표와 어떤 관계를 설정할 것인가를 예상하게 한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박 전 대표와 손을 맞잡기에는 부담스런 부분이 있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신뢰 관계에 금이 간 만큼 쉽게 회복되기가 어렵다는 진단이다. 박 전 대표측에서도 이대통령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지만, 이대통령측에서도 박 전 대표를 ‘국정 협력의 파트너’로 삼을 생각이 별로 없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두 사람은 지난 총선을 계기로 정치적으로 다른 길로 들어섰다고 보는 것이 옳은 듯하다. 이상득 부의장을 중심으로 한 원로 그룹은 박 전 대표를 정치적 파트너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겠지만, 이대통령이 이 길보다는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그런 관계를 유지하는 쪽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대통령은 실용·중도 보수로 상징되는 ‘수도권 중심의 정치’를 계속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도권 특히 서울은 고비마다 이대통령의 손을 들어주었다. 한나라당 후보 경선 때 그는 다른 지역에서 졌지만 서울에서 이겨 후보가 될 수 있었다. 대선 때도 53.2%를 득표했다. 이번 총선에서도 한나라당은 48개 선거구 가운데 40곳에서 승리해 83.3%라는 경이적인 당선율을 기록했다.


한나라당은 같은 맥락에서 당의 구조 또한 시대 변화에 맞게 바꾸는 작업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대선 이후 이대통령의 측근 인사들은 낙후된 당의 구조를 지적하며 유권자 연령 분포에 맞게 지역 대의원 구조를 바꾸는 문제 등에 깊은 관심을 보였었다. 현재 한나라당 대의원 구조는 평균 유권자 분포보다 고령화되어 있고 상대적으로 영남의 비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대통령이 가고자 하는 ‘뿌리를 흔드는’ 이런 방향은 ‘영남 중심의 정치’ ‘전통 지지층 중심 정치’ 행보를 보이는 박 전 대표와 계속 엇박자가 날 수밖에 없다.


이미 조짐이 보이고 있다. 대구에 지역구가 있는 박 전 대표의 핵심 측 근인 유승민 의원은 11일 KBS 라디오에 출연해 “복당에 조건을 달아서는 안 된다. (친박 당선자들을) 복당시키면 박 전 대표의 세력이 커진다고 하는 것은 소아병적 생각이다”라고 비판했다. 친박연대 홍사덕 대표는 “한나라당으로의 복당은 신청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다”라며 복당을 기정사실화했다. 박 전 대표 또한 이들을 복당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수원 팔달이 지역구인 남경필 의원은 “한나라당이 과거 세력이나 분노의 표심과 손을 잡으면 안 된다. 당장은 손쉬운 길일 수 있으나 길게 볼 때 당이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 친박연대나 무소속 연대만이 동반자적 관계라고 보지 않는다. ‘복당’ 문제나 숫자 불리기가 아니라 정책과 가치를 공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박 전 대표와의 관계에 주목하기보다는 야당과의 관계 속에서 풀어가는 것이 맞다. 야당과 대화, 타협하는 가운데 국정 안정을 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이미 대권에서 멀어졌다” 진단도

남의원의 말은 수도권 소장파 상당수가 공유하고 있는 정서다. 총선 전 ‘이상득 부의장 용퇴’를 고리로 순식간에 55명의 출마자가 모일 수 있었던 것도 이들이 이런 ‘수도권 정서’를 읽었기 때문이다. 시대 흐름에 민감한 이들은 만약 당 지도부가 친박연대 등과 합당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면 이에 집단적으로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당장 수도권에서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이 봇물 터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친박연대와의 합당은 물론이고 친박 무소속 당선인들을 영입하는 문제에 당 지도부가 선뜻 나서기는 쉽지 않은 형국이다.


이처럼 박 전 대표측이 공세를 펴고 있는 ‘당 밖 친박 인사들의 복당’은 여권 내 영남 세력과 수도권 세력의 대결에다가 중도로의 확장이냐, 보수 노선의 강화냐 하는 당의 정체성을 둘러싼 노선 투쟁 성격도 있기 때문에 받아들여지기가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 한나라당 인명진 윤리위원장은 11일 오전 평화방송에 출연해 “탈당한 지 며칠 되었다고 복당하느냐”라고 일갈했다. 그러나 김무성 의원은 “복당을 안 받아주면 더 큰 위기가 온다”라고 강조했다.


이 문제가 매듭지어지지 않고 길어질 경우 박 전 대표는 또 한 번 선택의 기로에 설 가능성이 있다. 이대통령과의 불편한 관계를 감수하고 한나라당에 남을 것인가, 아니면 당 안팎의 친박 인사들을 규합해 새 당을 만들 것인가 하는 고민에 부닥칠 수 있기 때문이다. 복당이 여의치 않게 되면 친박연대와 친박 무소속 연대는 함께 교섭단체를 만들어 한나라당을 견제하면서 박 전 대표를 비롯해 계보원들의 동참을 요구할 수도 있다.


한나라당의 한 대표적인 전략가는 “박 전 대표는 이제 본격적으로 링에 올라갔다. 정치적인 역량을 시험받는 상황이 되었다. 과거 대표 시절과는 처지가 달라졌다. 점점 계보원들에게 매몰되고 있다. 자신의 정체성과 행동이 시대에 맞는지를 고민해보아야 한다. 탄력적인 개념으로 생각해 시대 변화에 맞게 유연하게 가야 한다. 과거보다 넓어진 중도층은 유연한 정책을 선호한다. 이 층을 잡지 못하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 변화하지 않으면 박 전 대표의 정치적인 장래는 더 어두워질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남경필 의원은 “박 전 대표로서는 이제부터가 문제다. 당장 계파 수장의 역할을 벗어던져야 한다. 지금대로라면 짧게는 승리할 수 있겠지만 길게 보면 마이너스다”라고 말했다. 폴컴의 윤대표는 좀더 단호하게 말했다. “대권과 관련해서 보면 박 전 대표는 이미 멀어졌다. 여당 내에서부터 강력한 반대층이 형성되었고, 이미지도 나빠졌다”라고 분석했다.


전당대회가 7월로 다가오면서 한나라당 안팎에서는 박 전 대표의 출마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전망이 엇갈린다. 어떤 이들은 “당을 바로잡겠다”라는 말에 주목해 당연히 출마해야 하고 출마할 것이라고 본다. 친박연대 홍사덕 대표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측근인 유승민 의원은 4월11일 KBS 라디오에 출연해 “이미(대표를) 했다. 타이밍과 명분이 맞느냐”라고 말해 출마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박 전 대표의 공보 업무를 맡고 있는 이정현 당선인도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지 자리가 중요한가”라고 말해 불출마 쪽에 방점을 찍었다.


변수는 있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박 전 대표가 출마하지 않을 것 같다. 우선 출마한다고 해도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전격적으로 서울에 출마해 ‘정동영’이라는 거물을 낚은 정몽준 의원은 이미 출마 의사를 밝혔다. 박희태 의원이 벌써 지지 의사를 밝혔다. 범 이명박계가 정의원을 지원한다면 박 전 대표로서는 승리를 낙관할 수 없다. 또 정권 초부터 대표 자리를 맡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가에 대해서도 따져볼 여지가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박 전 대표는 당분간 관망하면서 내부 결속을 다지며 국민에게 다가가는 비주류 행보를 계속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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