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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설 아니라도 “애들은 가라”

노출 연기 ‘풍성’한 뮤지컬 줄이어…농도 짙은 외국 공연도 ‘대기 중’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ㅣ | 승인 2008.04.14(Mon) 16: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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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 씨어터 제공
 

여배우의 아슬아슬한 노출이 성인 남성 관객들로 하여금 마른침을 삼키게 하고, 손바닥만한 끈팬티 한 장만 걸친 남자 앙상블 댄서들이 여성 관객들의 눈앞에서 몸을 흔든다.

포르노 영화관, 변태적인 성인 극장쇼를 보여주는 트리플 엑스(XXX) 클럽들이 합법화되어 있는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서울 대학로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들의 한 장면을 액면 그대로 서술한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나라 공연계는 뮤지컬을 필두로 매출이 해마다 30% 이상 급성장하면서 흥행 경쟁 또한 치열해졌고 작품의 스타일은 다양해졌으며 작품이 다루는 주제와 소재의 스펙트럼은 넓어졌다. 쇼비즈니스는 고매한 예술로부터 밑바닥의 저속한 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집단의 욕망을 충족시키며 다수의 행복을 추구하는 엔터테인먼트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 핵심에 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바로 성(性)이다.

현재 대학로 S.H 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바디 클럽(Body Club)>은 여성 스트립 댄서들의 삶을 무대 위로 불러낸 작품으로, 은퇴한 스트립 댄서인 티파니 실버가 경영하는 ‘바디클럽’이 배경이다. 클럽에 소속된 여섯 명의 댄서들이 봉(Pole)을 잡고 관능적인 몸짓으로 춤을 추는 메인 홀, 옷을 갈아입고 자기 차례를 준비하는 분장실에서는 6명의 여배우들이 가슴 노출도 불사하는 관능 연기를 펼친다. 스트립 댄서들은 인생 막장에 내몰려 몸을 내놓은 사람들은 아니다. 이 작품은 그저 그런 에로틱한 성인용 극장쇼가 아니라 미국에서 초연된, 이야기 구조가 분명하게 존재하는 뮤지컬을 국내에서 번안한 것으로 비록 지금은 스트립 댄서로 일하고 있지만 저마다 마음속 한편에 소중히 간직한 미래의 꿈을 다룬 휴먼 드라마다. 따라서 극 중의 노출은 자연스러운 작품의 일부로 기능한다. 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비록 배우라고 해도 눈앞에서 일면식도 없었던 타인의 은밀한 부분을 본다는 사실에 100% 초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창작진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노출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진솔한 삶을 다룬 공연에서 관객들을 관음증적 시선에서 완전히 차단한다는 것은 어렵다.

   

2007년 4월에 초연되어 지난 1월까지 7개월여 동안 장기 공연되었던 뮤지컬 <동키쇼>에서도 여주인공의 유두만 가린 의상과 핫팬츠 복장의 고고보이(게이 클럽에서 분위기를 띄우는 댄서)들의 노출이 극 전체를 휘감았다. 이 작품은 뉴욕 오프브로드웨이 작품으로 형태는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는 이른바 클럽형 뮤지컬이다. 극 중 앙상블 역할을 맡은, 좋은 몸매를 가진 남자 댄서들이 추는 춤은 단연 인기를 끌었다. 객석의 90%를 차지하는 여성 관객들 중 일부는 스스럼없이 이들의 몸을 만졌고 이러한 생생한 체험기(?)는 입소문을 타고 장기 흥행에 크게 기여했다.

빈약한 내용으로는 외설 시비만 불러

물론 국내에서 노출 연기의 대선배격으로 1994년 외설 시비로 법정 공방까지 일으킨 연극 <미란다>를 빼놓을 수 없다. 초연 당시 주연 여배우가 10여 분간 전라로 성행위를 연기해 큰 논란을 빚었고, 결국 연출자는 공연음란죄로 불구속 기소되어 1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공연 연출가가 법의 잣대로 처벌을 받은 첫 사례였다. 하지만 덕분에 이 공연은 유명세를 탔고 한때 대학로에 ‘벗는 연극’의 붐을 일으켜 중년 남성들이 대거 대학로를 찾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미란다>는 사회 비판적인 블랙코미디의 요소가 강한 존 파울즈의 소설 <콜렉터>가 원작이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남자 주인공의 스토커적인 행동에만 초점을 맞춰 성인 연극으로 변질되었다. 초창기 연극배우가 주인공을 맡다가 점점 노출 비중이 커지면서, 가장 최근에 공연된 2004년 버전에서는 아예 연기 경험이 거의 없는 에로 배우가 여주인공 미란다 역으로 출연해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은 적이 있다.

   

해외에서도 공연의 형태로 만들어져 흥행에 성공한 성인 공연물들이 꾸준히 존재해왔다. 1969년, 브로드웨이에서는 에로틱 레뷔(Revue:전체를 관통하는 드라마가 없고 개별적인 이야기들이 공통적인 주제 하에 나열되어 있는 형식)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개막한 충격적인 공연이 있었으니 바로 <오, 캘커타!>였다. 이 작품은 대본의 완결성이나 내용의 결집력은 떨어졌지만 사무엘 베케트, 샘 쉐퍼드, 존 레논, 조 오튼 등 당시 화제 작가들의 작품 가운데 성적인 환타지를 자극하는 장면만을 발췌해 옴니버스 형태로 만들었고, 몇몇 장면에서는 10여 명의 남녀 배우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로 공연을 해 일약 화제의 중심에 올라섰다.

극 흐름 해치지 않는 자연스러움 지켜야

당시 미국 전역에서는 여권 운동과 페미니즘 활동가들의 등장으로 ‘성의 혁명(sexual revolution)의 물결이 거셌다. 이로 인해 여성은 순결함에 대한 족쇄를 떨치고 혼전 성관계나 복수의 섹스 파트너를 갖는 등의 자유로운 성관계를 ‘남자처럼’ 할 수 있게 되었다. 피임약의 개발과 여성의 경제적 지위 향상은 날개를 달아주었다. <오, 캘커타!>뿐 아니라 당시 현대무용과 소극장 아방가르드 연극 무대에서도 남녀 배우들의 누드와 적나라한 성애 표현을 전면에 내세우는 작품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성의 혁명’의 가장 큰 수혜자는 그 여자들과 섹스를 하는 남자였다. 남녀 배우가 함께 노출 연기를 해도 화제가 되는 것은 항상 여자 배우들의 나신(裸身)이었다. 따라서 포스트-페미니즘 활동가들은 성적 자유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남녀 간에 형성되는 권력의 불균형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어느덧 <오, 캘커타!>가 초연된 지도 한 세대가 지나버렸다. 그동안 대중문화 속에 노출되는 성에 관련한 시대의 패러다임도 숨 가쁘게 바뀌어왔다. 가령 ‘포르노그래피’는 휴대전화의 등장 이후 사라져가는 공중전화와 같은 낡은 단어가 되었다. 그 자리에는 ‘어덜트’(adult)라는 일반 용어가 자리바꿈을 했다.
시대가 바뀐다고 해도 여전히 유효한 사실은 무대 위 배우의 노출은 극의 흐름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질 때 가장 아름답다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서구 극장가에서 불문율이 된 ‘10초의 법칙’은 이를 말해준다. 즉 선정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노출 장면이 10초를 넘느냐, 넘지 않느냐’ 하는 것이고 만약 그 이상의 시간 동안 노출이 지속되면 관객은 극이 아니라 배우의 몸을 보게 된다는 뜻이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공연될 예정작 중에서 극 중에 자연스러운 노출이 포함된 작품으로는 뮤지컬 <컴퍼니>(5월)와 <스프링 어웨이크닝>(내년 상반기)을 꼽을 수 있다. 조지 퍼스 대본, 스티븐 손드하임 작사·작곡의 <컴퍼니>는 서른다섯 살의 노총각 바비가 주변의 커플 다섯 쌍 및 세 명의 여자친구와 나누는 결혼에 대한 솔직한 토크를 다룬 작품이다. 기혼자, 미혼자를 가릴 것 없이 섹스에 대한 대화는 스스럼없고 그중 한 여자친구와는 무대 위에서 잠자리를 갖기까지 한다. 이 작품에서 섹스 장면은 남녀 관계에 대한 새로운 도약과 발전과 속박을 모두 의미하는 장치로 활용된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프랭크 베데킨트의 1891년 동명 희곡을 각색한 뮤지컬로 19세기 독일을 배경으로 10대들이 겪는 ‘성의 억압’과 그로 인한 부작용에 대해 말한다. 20대 초반의 젊은 남녀 배우들이 연기하는 사춘기 아이들의 성에 대해 가지는 모든 고민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보이는 생생한 섹스 장면은 작품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기억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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