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받아도 ‘황태자’는 간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 승인 2008.04.21 13: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이재용 전무 주재로 회의…독자적인 리더십 구축이 숙제

 
삼 성은 에버랜드 전환사채 관련 재판이 진행되는 가운데에도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는 작업을 계속 해왔다. 이전무는 2007년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했고, 최고 고객 책임자(CCO)로 임명되었다. 이는 외풍과는 무관하게 그가 삼성그룹의 정상 자리로 가고 있음을 보여준 징표다. 이전무는 부친인 이건희 회장의 경영 승계 때와는 달리 그룹 경영에 직·간접으로 관여하는 참여형·개방형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이재용 체제가 사실상 출범했다는 점은 그가 속해 있는 삼성전자 CCO 직할 조직 외에도 전략기획실 각 팀장들이 그에게 그룹 현안을 보고하고 있으며,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이전무 주재로 회의가 열리고 있는 데서도 감지할 수 있다. 때맞추어 한 일간지 중견 기자가 삼성경제연구소 임원으로 들어오고 이전무의 대학 선배이기도 한 이인용 전 MBC 앵커가 삼성전자로 영입된 것도 이재용 체제 출범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재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전무는 그룹 차원의 경영권 승계 작업과 관계없이 외부에도 상당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모교인 경복고 동문과 미국 유학 시절의 지인 그룹 등이 그 인맥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연세대 장진호 교수를 들 수 있다. 미국 텍사스 대학에서 회계학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하버드 대학 박사 과정에 있을 때 이전무와 친분을 맺었다고 한다. 베인앤드컴퍼니 코리아의 이성용 대표도 이전무와 친분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종용 부회장은 이전무에게 경영권 넘기는 것 반대했다” 소문도

이렇듯 이재용 전무의 사람이라고 분류할 수 있는 인물들은 거의가 30~40대 초반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정서는 이재용 체제가 출범하기 전 그룹의 경영 미제들을 해결하자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건이나 삼성자동차 부채 건 등이 그런 것이다. 이들은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를 위해 이런 사안들을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해 해결하고 넘어가자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재용 체제 출범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다. 지난 2006년 하반기, 이전무의 경영 교사로 알려진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에게 이재용 전무에게로 그룹 경영권을 넘기는 데 반대하는 소신을 개진했다는 설이 파다했다. 그 근거는 삼성전자와 소니가 50 대 50으로 합작한 S-LCD와의 합작 건이었다. 당시 이 프로젝트는 이전무가 앞장서 성사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소니는 LCD TV 시장에서 삼성에게 밀려 주도권을 놓쳤으나 삼성과의 합작 사업 이후 기사회생한 뒤 최근에는 삼성과의 합작 건을 다시 검토한다는 얘기를 흘리는 등 삼성과의 거래에서 얻은 것이 더 많았다. 하지만 삼성으로서는 얻은 것이 별로 없다. 이와 관련해 경영 전략 분야를 전공한 한 경영학 박사는 “합작 방식의 사업 협력은 삼성의 경우 기술·자본·브랜드 가치 등에서 소니로부터 얻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모든 부문에서 삼성이 확실한 우위에 있어 소니로부터 얻는 것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윤부회장의 합작 사업 반대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일각에서는 삼성이 무난히 3세 경영 체제로 가려면 이전무의 경영 승계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와 더불어 그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 이건희 회장을 뛰어넘는 독자적인 리더십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 비전은 물론 현재 삼성뿐만아니라 한국 경제의 최대 이슈이기도 한 새로운 미래 성장 동력의 창출과 맞물려 있다. 하지만 계열사 최고경영자의 상당수가 옛 구조조정본부 재무팀 출신들로, 이들은 안정을 중시하고 신사업에는 보수적인 이학수 부회장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때문에 특검 이후 펼쳐질 삼성의 인적 쇄신과 비전 제시가 어떤 방향으로 그려질지 주목되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