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기하지 않으면 폐암 3기도 완치된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 승인 2008.04.21 15:1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영목 삼성서울병원 암센터장 “현대 의학으로는 수술이 최선, 사전에 폐암 예방하는 길 머지않아 열려”

명의에게 듣는다.

‘난치병은 없다. 암이든 당뇨병이든 고혈압이든 걸리면 즐겨라. 병과 친해지면 죽음의 공포에서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다.’
전국 각지의 병원에서 활약 중인 명의들이 사지에 몰려 있는 환자들에게 흔히 하는 말들이다. 이들의 말을 빌면 ‘암=죽음’이라는 등식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암은 조기에 발견하면 90% 이상이 살아남는다. 암을 알고 제대로 다스리면 누구든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 암을 비롯한 치명적인 난치병들은 전문의와 상담을 통해 적극적으로 퇴치 방법을 익히고 착실히 실천하면 천수를 누릴 수 있다고 명의들은 주장한다. <시사저널>은 연중 기획으로 ‘명의에게 듣는다’라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폐암·위암·대장암·간암 등 각종 암과 당뇨병, 혈관 및 신장 질환 등의 분야에서 내로라 하는 명의들을 선정해
그들로부터 최신 치료술과 병을 지혜롭게 극복하는 방법 등을 들어본다. 또 실제 난치병을 이겨내고 희망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투병기도 함께 소개한다.

암 에 걸리면 죽거나 오래 살지 못한다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통념이다. 오늘날 인류에게 가장 무서운 질병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망설이지 않고 ‘암’이라고 말할 것이다. 암 가운데 폐암은 사망률 1위로 꼽힐 만큼 치명적으로 알려져 있다.
심영목 삼성서울병원 암센터장은 ‘폐암 사냥꾼’으로 불리는 전문의다. 30년 동안 흉부외과에서 폐암 환자들만 진료했다. 그가 집도한 수술만 1천5백건이 넘는다. 요즘도 집보다 수술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다. 심센터장으로부터 최근 폐암 치료술의 경향과 효과, 효율적인 대처 방법 등을 들어본다.

폐암 환자들은 좀더 완치율이 높은 치료 방법을 찾게 마련이다. 현재 최선의 치료법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현대 의학으로는 수술이 최선이다. 폐암 1~2기는 수술이 최선의 치료법이고, 3~4기는 항암·방사선 치료가 최선이다. 물론 환자의 상태와 합병증 발병 여부에 따라 다를 수는 있다. 예를 들어 비소세포폐암은 수술로 대처해야 한다. 소세포암일 경우에는 항암·방사선 치료를 권한다. 요즘 폐암의 일반적인 증세에 따라 적용하는 치료법을 종합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미국에도 이런 가이드라인이 있다. 미국 전역에 있는 39개 암센터의 모임인 NCCN이 임상 사례를 모아 암 치료법을 집대성하면서 작성해놓은 것이다. 작업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면 우리나라에서도 폐암치료의 가이드라인이 나올 것 같다.

앞으로 다양한 진료 방법이 나올 것으로 보이는데 예방 차원의 폐암 진료법도 가능한가?
현재는 CT(단층촬영)·MRI(자기공명영상)·X레이 등을 통해 폐암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진료는 암이 생긴 이후에나 발견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앞으로는 암 발생을 예견하는 정도로 의학이 발달할 것이다. 현재 활발히 진행 중인 유전자 변이 연구가 상당히 진척되어가고 있다. 유전자에 특정 변이가 생기면 폐암으로 진전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당장 건강한 사람이라도 이 사람의 유전자가 같은 식으로 변이되어 있다면 향후 폐암에 걸릴 가능성이 크므로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아울러 유전자 변이를 신체 조직뿐만 아니라 혈액에서 찾아내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치료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한 연구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나노 기술을 폐암 치료에 접목시키는 연구가 대표적이다. 이 치료술이 개발되면 다른 신체 조직은 해치지 않으면서 암세포만 골라 제거할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폐암을 치료하는 항체도 만들고 있다. 암세포를 막아내는 항체를 만들어 폐에 투입해 암 전이 자체를 원천 봉쇄하는 것이다.

 

수술로 완치할 수 있다지만 역시 조기에 발견해야 가능한 이야기다. 폐암은 특별한 증세가 없어 조기 발견이 어려울 텐데.
폐암의 초기 증상은 장시간 기침하거나 각혈하는 정도다. 감기 또는 호흡기 질환과 비슷해서 가볍게 여기게 마련인데, 40세 이상이라면 CT나 MRI 촬영을 통해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한다. 흡연자나 가족 중에 폐암 환자가 있었던 사람이라면 최소한 1년에 한 번은 검사할 필요가 있다.

폐암 환자의 주 연령층이 50~60대인데, 그렇다면 20~30대 젊은 층은 폐암으로부터 자유롭다고 해야 하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젊은 사람들은 폐암에 걸릴 확률이 낮을 뿐이다. 내가 수술한 환자 중에 19세 여성도 있었다. 흡연을 하지 않은 정상적인 여대생이었는데 폐암에 걸린 것이다. 이 환자처럼 젊은 사람이 폐암에 걸리면 나이가 든 사람들보다 진행 속도가 빠르다. 신진대사가 노인들보다 활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젊은 사람이 폐암에 걸리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기까지 가는 경우가 많다.

폐암에 걸리면 어떤 병원을 찾아가는 것이 바람직한가?
명의를 찾기보다 암 전문 병원을 찾으라고 권하고 싶다. 국립암센터 외에 전국의 각 대학병원들이 암만 전문으로 치료하는 암센터를 설립했거나 설립 중이다.
암센터마다 팀제를 운영하고 있다. 암 전문의뿐만 아니라 영상의학·방사선학 등 각 분야의 전문의들이 모여 치료한다. 팀제로 치료하다 보면 효율적인 대처 방법을 찾아내기 쉬워 환자의 치료 기간이나 고통을 줄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 폐암 치료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3기 초반에만 발견해서 치료받으면 얼마든지 살 수 있고 완치도 가능하다. 특히 1~2기 폐암의 완치율은 71% 이상이다. 미국 암센터의 폐암 생존율 75%와 큰 차이가 없다. 3~4기 생존율도 30~11%로 미국이나 일본과 비슷하다. 폐암은 조기 발견이 그 어느 암보다 중요하다. 조기에 발견해 적극적으로 치료한다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폐암에 걸리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거액을 들여 외국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사실 20년 전만 해도 폐암에 걸리면 사망 선고를 받은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의사들도 수술을 꺼릴 정도였다. 예를 들어 수술하기 위해 가슴을 열어 폐 상태를 살펴보고 암세포가 생각보다 크거나 다른 곳으로 전이가 되어 있으면 손도 쓰지 않고 그대로 봉합해버렸다.
이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전세계에서 폐암을 가장 잘 치료한다는 미국의 MD앤더슨 암센터의 폐암 전문의가 7년 전쯤 우리나라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참가했다. 이 전문의는 우리나라 여러 병원의 시설과 함께 의사들이 수술하는 장면도 관찰했다. 그는 시설의 우수함과 수술을 받은 폐암 환자의 사망률이 미국보다 낮은 것에 매우 놀랐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폐암 진단과 치료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에 와 있다. 특히 폐암 수술은 정상급에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지금은 폐암으로 고인이 된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회장, 최종현 SK그룹 회장 등이 굳이 외국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되도록 기업에 악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조용히 치료를 받으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또 다른 요인을 꼽자면 외국 병원의 ‘안전주의 수술’을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수술 범위나 위험도를 10% 확대할 경우 사망률도 10% 증가한다고 하자. 대신 수술이 성공적일 경우 생존율이 40% 증가한다면 우리나라 전문의들은 수술을 감행한다. 그러나 외국 병원들은 사망률이 높아지는 수술을 하지 않고 안정적인 범위까지만 수술한다. 잘 되면 좋지만 수술이 잘 되지 않아 환자가 사망하면 병원의 이미지에 타격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외국 병원의 폐암 생존율이 우리보다 조금 높게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폐암 3~4기의 생존율은 30~10%로 여전히 낮은 편이다. 이런 환자들은 힘든 항암 치료를 받느니 차라리 공기 좋은 곳에서 요양하는 편이 낫다고 여기기도 한다.
7년 전 폐암 3기로 판정받은 50대 후반의 한 환자가 있었다. 정밀검사 결과 암세포가 임파선으로도 전이되어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 그나마 우측 폐를 다 들어내도 목숨을 건질까 말까 했다. 자칫하면 수술 후 합병증으로 사망하거나 살아나도 일상 생활을 할 수 없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결국 폐 일부를 잘라내고 암세포를 제거한 뒤 다시 봉합하는 소매절제라는 수술을 했다. 그러나 이 환자는 아직도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 폐암 3기라도 포기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치료한다면 완치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폐암은 결코 넘을 수 없는 산이 아니다.

의사들도 환자 못지않게 폐암 치료에 남다른 열의가 있어야 할 것 같다.
폐암 수술은 사자가 토끼를 잡듯이 해야 한다. 동물의 왕인 사자도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죽기 살기로 뛰어야 한다. 수술도 마찬가지다. 수술할 때마다 긴장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또 도둑처럼 수술해야 한다. 들어갈 때 도망갈 곳을 확인하는 것처럼 수술할 때에도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에 대해 준비해야 한다. 의사들이 이런 자세로 폐암 환자를 대하지 않으면 생존율을 높일 수 없다.

폐암의 조기 발견이 쉽지 않다면 예방이 중요할 텐데.
최근에는 여성 폐암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 직·간접 흡연 때문인 것 같다. 폐암이 유전되는 경우도 약간 있지만 대부분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 폐암의 주 원인은 흡연이다. 금연하고 간접 흡연을 피하는 것이 가장 좋은 예방법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