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은 말 없고 시숙–형수는 ‘쩐의 전쟁’ 중?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 승인 2008.04.28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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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놓고 형제간 소송 / “김옥숙 여사가 배후” 소문

 
도대체 연희동에 무슨 말 못할 복잡한 사정이 있는 것일까. 노태우 전 대통령이 최근 동생과 조카를 상대로 “내가 건넨 비자금으로 동생이 설립한 회사의 실질적인 1인 주주는 나”라며 재산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볼썽사나운 전직 대통령 집안의 이번 소송전에는 선뜻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양측의 입장도 그렇고, 주변 관계자들의 증언을 들어봐도 그렇다. 심지어는 검찰 주변에서조차 “원만하게 해결할 수도 있는 일을 왜 이렇게 파국으로 몰아가는지 모르겠다”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다.
소송전의 전말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인 1988년과 1991년 두 차례에 걸쳐 자신의 비자금 1백20억원을 동생 재우씨에게 건넸다. 재우씨는 이 돈을 친한 후배인 박병규씨에게 관리하도록 했다. 이들은 이 돈으로 1989년 12월 경기도 용인에 부동산을 매입해 미락냉장(현 오로라씨에스)이라는 냉장창고 회사를 설립했다. 초기 회사 대표는 박씨였다. 이후 재우씨의 아들 호준씨와 공동 대표가 되었다. 박씨는 2006년 10월 퇴사했다. 현재 회사 소유 지분은 재우씨가 30%, 호준씨가 70%를 각각 분점하고 있다. 호준씨는 2004년 회사 부지의 일부에 시티유통이라는 회사를 하나 더 설립하고 자신이 대표를 맡았다. 이 회사 소유 지분은 호준씨가 100% 소유하고 있다.
미락냉장은 지난 1995년 전직 대통령 비자금 수사 때 ‘노 전 대통령의 불법 비자금’으로 인정되어 대법원에서 추징 대상에 올랐다. 재우씨는 1997년 당시 국가에 1백20억원의 추징금을 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오늘날 소송전의 불씨가 되었다.
노 전 대통령 형제간의 소송전은 지난해 6월 박씨의 문제 제기로부터 촉발되었다. 박씨는 ‘노재우씨측이 공동 대표인 내 동의도 없이 명의를 도용해 회사 소유의 용인 땅 일부를 시티유통에 헐값에 팔아넘겨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입혔다’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그는 이 내용을 연희동에도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연희동측에서는 곧바로 노 전 대통령 명의로 검찰에 탄원서를 냈다. ‘동생이 추징금으로 내야 할 돈을 돌려주지 않고 있으니 비자금 1백20억원을 돌려 달라’는 것이었다. 검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간 것은 이때부터다.

동생 노재우씨, 비자금 받아 회사 설립하고 아들이 공동대표

박씨가 재우씨 부자와 결별하게 된 계기는 확실치 않다. 감정적 차원이라기보다는 순수하게 재우씨 부자의 불법 행위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는 얘기도 있다. 다만 재우씨측은 “박씨가 2006년 10월 회사를 그만두면서 퇴직금 외에 공로주로 약 100억원가량을 더 요구해 이를 거절하자 연희동에 찾아가 사실을 크게 부풀린 것으로 안다”라고 의심하고 있다. 형제간 갈등의 원인이 박씨라는 주장이다. 이번 사태의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박씨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취재진이 서울 서초구 방배동 그의 자택을 직접 방문했지만 취재에 응하지 않고 있다. 아무튼 이후 연희동측은 박씨와 보조를 맞추면서 동생 재우씨 부자와 싸움을 벌이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당초 검찰은 전직 대통령의 집안 문제여서 가급적 원만한 합의를 유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과정에서 재우씨측도 “1백20억원과 그 이자를 포함해 3백억원 정도는 변제할 용의가 있다”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연희동측에서 여기에 강력한 제동을 걸었다. 이제는 단순히 1백20억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연희동측의 소송 대리인인 서석호 변호사는 “3백억원 변제 용의는 말뿐이다. 아직도 실천에 옮기지 않고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호준씨의 명백한 배임 혐의에 있다. 시가 2백20억원(감정가 1백10억원 상당)에 이르는 회사 땅을 자신 명의의 회사에 56억원에 넘겨 배임 액수만 1백60억원대에 이른다. 호준씨가 추징금을 피하기 위해 회사 재산 일부를 빼돌린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2월4일 호준씨를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연희동의 강공 드라이브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최근 법원에 주주 지위 확인 청구 소송을 냈다. 회사를 완전히 되찾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연희동측의 강경 입장을 주도하는 이가 노 전 대통령이 아니라 김옥숙 여사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눈길을 끌고 있다. 연희동 사정에 밝은 한 측근은 “노 전 대통령과 그 동생분이 이렇게까지 할 사이가 절대 아니다. 정말 안타깝고 비탄스럽다.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 측근은 “어른은 어린 시절부터 홀어머니 밑에서 동생과 함께 자랐다. 달랑 세 식구였고, 장남이었던 어른이 실질적인 가장이었다. 따라서 그 형제애가 남다르다. 현재 일반 언론에서 형제간에 무슨 재산 싸움이나 하는 것처럼 마구 보도하고 있는데 사실과 다소 차이가 있다. 병상에 있는 형님을 생각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재우씨 입장에서도 아마 할 말이 많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설마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직접 고소하겠나. 그 어른은 지금 병상에 있으며 제대로 의사소통도 어려운 형편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직접 김여사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발언 이면에는 김여사를 지칭하는 듯한 뉘앙스가 곳곳에 묻어 있었다. 그는 “그러니까 (김여사가 강경하니까) 이렇게 고소도 되고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실제 연희동 사정에 밝은 원로 인사들 사이에서는 이 측근의 증언을 뒷받침하는 목소리가 많다.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난 노 전 대통령은 초등학교 입학도 하기 전인 어린 시절에 교통사고로 부친을 잃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막내 동생마저 어린 시절 사망하고 동생 재우씨와 단 두 형제여서 형제애가 남달랐다고 전한다. 한 측근은 “어른에게 재우씨는 동생이라기보다는 아들 같은 존재였다”라고 말한다. 재우씨 또한 1987년 대선 때에는 ‘태림회’라는 사조직을 조직해 형의 당선을 위해 적극 헌신했지만, 당선 후에는 형을 위해 처신에 상당히 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들 같은 동생을 형이 고소했겠나” 의견도

재우씨측이 1백20억원의 성격에 대해 “형인 노 전 대통령이 노모를 모시고 사는 대가로 건네준 돈이다”라고 해명한 것에 대해서도 주변에서는 그 말이 맞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실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1995년 11월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1백20억원은 동생이 노모를 모시고 있으니 잘 맡아 관리하라고 준 것이니 만큼, 그 돈으로 매입한 부동산에 대한 권리를 동생에게 전적으로 넘겨주고 싶다”라고 조서에 기록된 것으로 밝혀졌다.
연희동측의 강경 입장에 대해 주변에서는 “지긋지긋한 추징금 굴레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려고 하는 강박관념 때문인 것 같다”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현재 약 3백63억원 정도의 추징금이 남아 있는 연희동의 입장에서는 이 돈을 빨리 갚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재우씨 소유의 회사를 되돌려받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단순히 1백20억원만 변제받아서는 여전히 2백40여 억원 미납이라는 ‘꼬리표’가 남게 되는 것이다. 특히 여기에는 김여사의 입장이 강경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연희동측에서도 딱히 부인하지 않는다. 서변호사는 “연희동에 출입하는 측근들의 회의를 통해서 대개 결정이 이루어진다고 보면 된다. 다만 김여사께서 현재 대단히 격앙되어 있는 것은 맞다”라는 우회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이제 이 소송전의 쟁점은 이미 1백20억원 차원을 벗어났다. 연희동측은 3백63억원이라는 총 추징금을 이번 기회에 다 털고 가려는 데에 목적이 있다. 반면 재우씨측은 법원 판결대로 1백20억원과 그 이자에 해당하는 돈까지 포함해서 3백20억원을 변제할 용의가 있다는 데에 양측의 주장이 맞서 있는 형태다. 연희동의 요구대로 남은 추징금까지 모두 떠맡을 경우 약 5백60억원이 넘기 때문에 회사 존립 자체가 흔들린다는 것이다. 재우씨측은 회사를 다 넘겨줄 수는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연희동은 회사를 되찾겠다는 입장이다.

노재우씨측 “추징금까지 560억원 다 떠안으면 회사 문 닫아야” 주장

서변호사는 “우리의 입장은 분명하다. 추징금만 털고 가겠다는 것이다. 상황이 정 극한으로 치달으면 밝힐 것 다 밝혀서라도 국가에 정식으로 요청해서 회사의 모든 재산을 국가로 귀속시키겠다는 작정도 하고 있다. 그 돈으로 추징금 모두 갚고 남는 돈은 국가에 헌금하겠다는 것이다. 그 단계까지 안 가려고 재우씨측을 설득하고 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다”라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은 현재 병상에 누워 있다. 일각에서는 병세가 위독한 노 전 대통령이 일을 서두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른 것 같다. 노 전 대통령의 오랜 지인이자 의학 박사인 김 아무개씨는 “노 전 대통령이 앓고 있는 소뇌축소증은 이미 2년 전에도 한 언론을 통해서 세상에 다 공개된 것인데, 새삼 언론들이 이제 와서 마치 새로운 것인 양 다시 호들갑을 떠는 이유를 모르겠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 병이 희귀병이어서 마치 노 전 대통령이 금방이라도 어떻게 될 것처럼 보도하던데 사실과 전혀 다르다. 원래 신경계통의 질환은 갑자기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나빠지는 것도 아니다. 이번 입원은 감기 폐렴 증세가 있어서 한 것이지, 일부에서 말하는 그런 심각한 상황도 아니다. 다만 심각한 언어 장애가 뒤따르기 때문에 정상적인 대화 소통은 어려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분명한 것은 노 전 대통령은 현재 말이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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