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드는 ‘유전자 변형’ 먹을까 말까
  • 조홍래 편집위원 ()
  • 승인 2008.04.28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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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물가 폭등으로 다시 주목 받아 안전성 검증 안 돼 찬반 갈등

 
세계 곳곳에서 식량난을 겪게 되자 GMO (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유전자 변형) 농작물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GMO는 식물 유전자를 변형시켜 병충해와 농약에 강하고 수확량도 많은 곡물을 생산하는 첨단 유전 공법이다. 이 공법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70년대 초였다. 당시에는 인류의 식량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할 ‘신이 내린 기술’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GMO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안전성을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었고, 그런 와중에 소비자들은 GMO를 외면하게 되었다.
그런 GMO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그동안 GMO 관련 식품을 강력히 거부했던 정부, 기업, 소비자들이 생각을 달리 하고 있다. 식량 위기를 해소하는 유일한 길은 GMO밖에 없다는 공감대가 이들 사이에서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많은 나라에서 유전자 변형을 통해 생산된 옥수수를 이용해 소프트 음료, 스낵, 기타 식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식품 회사들은 그동안 웃돈을 주고 천연 농산물을 구입했으나 지난 2년간 옥수수 가격이 3배나 오르는 바람에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자 GMO 농작물 쪽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미국의 소맥 생산업자와 상인들은 한때 GMO 방식에 의한 작물 생산을 꺼렸다. GMO 식품이 건강에 해롭다는 인식이 널리 펴져 수출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수요에 맞추기 위해서는 유전 공법을 쓰는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유전자 조작을 거친 곡물은 곤충, 제초제, 기타 질병에 강해 생산량도 늘릴 수 있고 재배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그러나 유전 공법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GMO 곡물에 대한 의학적 검증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아 건강에 해를 끼칠 위험이 있고, 환경에도 유해하다고 주장한다.
미국 정부의 지원으로 미국산 소맥의 해외 판매를 담당하고 있는 미국 소맥협회의 스티브 머서 대변인도 이제는 생각을 바꿀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한때 유전자 변형 소맥 생산을 만류했던 이 협회는 종자 회사들에게 GMO 농법을 다시 시작하도록 독려하는 한편 그동안 미국산 소맥을 구매하지 않던 바이어들을 설득하라고 당부했다.
GMO 식품을 ‘프랑켄슈타인 식품’으로까지 매도했던 유럽에서도 유전 공법으로 제조된 식량의 수입을 허가하라는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일부 정부와 기업들도 이 대열에 참가했다. 특히 가축업자들의 성화가 거세다. 이들은 GMO 곡물 수입이 지연될 경우 가축 사료를 댈 길이 막막하다고 야단이다. 영국의 소 사육 농가를 대표하는 영국쇠고기협회는 최근 성명에서 유전자 곡물수입에 따른 ‘모든 장애물’을 즉각 완전히 제거하라고 촉구했다. 점증하는 세계 식량 수요와 공급 부족, 그리고 국내 가축 사육 감소를 타개하는 길은 이 방법밖에 없다는 것이다. 유럽의회의 농업분과위원회 닐 패리시 의장은 곡물 가격이 폭등하는 마당에 유럽인들도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 국가에서 식량 부족으로 인한 폭동과 소요까지 일어나자 GMO 찬성론자들은 물을 만난 고기처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식량이 넉넉하다면 굳이 GMO 식량을 생산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식량 부족 현상이 세계 도처에서 나타나는 판에 수요를 충족하는 길은 현재로서는 GMO밖에 없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뾰족한 대안이 나오지 않는 한 향후 수십 년은 유전 공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생산되는 농산물은 주로 옥수수, 콩, 목화 등이다. 이것들은 박테리아 유전자를 갖고 있어 병충해와 제초제에 강하다. 따라서 이 방식을 사용하면 곡식을 상하게 하지 않고 제초제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 생명공학 회사들은 물과 비료를 덜 줘도 잘 자라는 곡식도 개발 중이다. 이런 농산품은 수확량도 많다. 유전자 식품이 일반화할 경우 가장 신바람날 집단은 미국의 곡물 수출업자들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미국은 전세계 유전자 곡물의 절반을 생산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캐나다에서도 상당량의 유전자 곡물이 생산된다. 중국은 병충해에 강한 쌀을 개발해 정부의 재배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찬성론자들 “식량 부족 해결 위해서는 방법이 없다”

유전자 식품 개발에 다시 불을 붙인 직접적인 요인은 쌀과 소맥 등 주요 식품 가격의 폭등이다. 카메룬, 아이티, 이집트, 태국 등에서는 식품 품귀 현상 때문에 폭력 시위도 발생했다. 곡물 가격이 앙등한 원인은 복잡하다. 에너지 가격 상승, 바이오 연료 개발을 위한 농작물 전용, 인도와 중국의 수요 급증, 주요 곡물 생산지인 호주를 포함한 일부 지역의 가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유전 공법의 상용화에는 아직 장애물이 많다. 유럽에서는 관련 식품을 불신하는 소비자들의 인식이 크게 바뀌지 않았고, 업계에서도 안전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는 유전자 옥수수 재배를 금지했다. 독일은 ‘비 GM’ 상표가 붙은 식품만 판매를 허용하는 법안을 마련한 바 있다. 국제적 여론도 적극적이지는 않다. 빈곤 퇴치 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GMO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최근 세계은행과 유엔의 공동 주최로 열린 GMO 관련 회의에서 공동의장인 한스 헤렌은 유전 공법에 매달리기보다는 아프리카에 더 많은 비료를 공급하는 것이 효율적인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농업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당장 물과 비료를 충분히 공급하고 토질을 개선시키는 일이 급선무라는 것이다.
식량 위기를 이용해 GMO 식품의 판매를 밀어붙이려는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에 비례해 반대론자들의 소리 역시 커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해서인지 스위스의 대표적 GMO 회사도 현재의 식량 위기를 GMO 농작물을 정착시키는 계기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다량의 식량을 구매해야 하는 국가나 기업들의 처지에서는 GMO를 마냥 외면하기 어렵다. 지난해의 경우 전체 생산량의 75%가 GMO로 생산된 미국 옥수수는 가격이 40%나 올랐다. 이렇게 가격이 치솟으면서 공급 물량도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비 GMO 곡물이라 해서 웃돈을 주고 사들였다가는 수지를 맞추기 어려운 데다, 요즘에는 웃돈마저 올라가고 있다.
유럽의 사육업자들은 GMO에 대한 규제 때문에 사료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이들은 GMO를 대폭 허용하는 미국으로부터 사료를 수입하지만 공급은 줄고 값은 뛰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사람이 먹는 수입 곡물에서 GMO 흔적이 조금이라도 발견되면 전량을 반송한다. 이 때문에 지난해에 한 미국 회사의 옥수수 수출이 전면 중단되기도 했다.
사료 생산업자와 가축 사육업자들은 GMO를 조속히 승인해주기를 바란다. 또한 GMO 성분에 대한 엄격한 규정도 완화해주기를 원한다. 소맥의 절반을 수출하는 미국 생산업자들은 최근 GMO 곡물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자 매우 고무되었다. 일부 업자들은 GMO를 괄시했던 사람들이 대가를 치를 차례가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뉴욕 타임스는 GMO를 둘러싼 찬반논란을 떠나 어쩔 수 없이 GMO 식품을 먹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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