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써 말 많으니 국민이 피곤하다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 승인 2008.05.02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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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행정의 대가’ 별명 붙은 대통령의 말 잔치 “국가 시스템으로 보면 우려스러운 일” 지적도

 

시중에 ‘입명박’이라는 신조어가 나돌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을 가리킨다. 너무 말이 많다고 해서, 또 말이 너무 앞선다고 해서 붙여진 별칭이다. 우리 대통령이 종종 풍자의 대상이 된 지는 이미 오래다. 그렇지만 이제 갓 출범한 새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달갑지 않을 별칭임이 분명하다. 그에게는 ‘전시 행정의 대가’라는 또 하나의 불유쾌한 별칭도 따라다닌다. 실제 출범한 지 불과 두 달 남짓 된 이명박 정부의 전시 행정 사례와 그에 따른 해프닝은 일일이 열거하기가 숨이 가쁠 정도다.


이대통령의 전시 행정에 따른 폐단은 이미 취임 전부터 야당의 주공격 대상이 되어왔다. 대표적인 것이 2월11일 화재로 인한 숭례문의 전소였다. 이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숭례문을 개방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는 비판이 그것이었다.


지난해 대선 운동 과정에서 공약으로 제시된 ‘휴대전화 요금 20% 인하’와 ‘재래시장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계획은 결국 제대로 빛도 못 본 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대통령 당선인 시절 언급한 ‘유류세 10% 인하’ 방침도 이후 국제 유류 가격 인상 등으로 인해 오히려 휘발유와 경유 값이 더 오르면서 국민의 원성만 초래하고 말았다.


이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1월18일 인수위 간사 회의석상에서 “대불공단에 가봤는데 전봇대 하나 옮기는 것도 몇 달이 걸린다고 하더라”라며 관료 사회의 무사안일을 질타했다. 그의 발언이 나온 지 불과 이틀 만에 문제의 전봇대는 당장 뽑혔다. 인수위와 한나라당은 실천하는 대통령의 새로운 표상을 보여주었다며 한껏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불공단의 전봇대는 현재 이명박 정부 전시 행정의 표본 사례로 계속 회자되고 있다. 앞뒤 잴 것 없이 우선 뽑고 보자고 한 후유증이 뒤늦게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는 까닭이다. 이후 현장에서는 선박용 블록을 실은 대형 트랜스포터 때문에 도로가 다 망가진다고 아우성쳤다. 전선의 지중화 문제를 대형 업체들이 책임져야 하는데 이를 회피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었다. 실제 전선의 지중화 방식은 설치 비용이 전봇대 방식에 비해 단순 비용만 따져도 10배 이상이나 차이가 나 지자체들이 선뜻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예산 낭비 원흉 된 문평 톨게이트

말만 앞세운 이대통령의 전시 행정은 취임 이후 더욱 심해졌다. 첫 신호탄은 문평 톨게이트 해프닝이었다. 이대통령은 3월10일 기획재정부 업무보고 때 “하루 통행량이 2백20대에 불과한데도 사무실에 직원 10여 명이 근무하는 톨게이트도 있더라”라며 예산 낭비의 대표적인 사례로 한 톨게이트를 지적했다.
국토해양부가 문제의 톨게이트를 찾기 위해 보름동안 이 잡듯이 뒤지다가 겨우 찾아낸 것이 문평 톨게이트였다. 국토해양부는 “이 톨게이트는 무안-광주 간 고속도로로 하루 통행량이 2백82대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져 근무 인원을 감축할 예정이다”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 문평 톨게이트는 지난해 11월 개통된 신설 톨게이트인 것으로 밝혀졌다. 전문가들은 “이제 불과 4개월 남짓 밖에 되지 않아 아직 정상적 통계치의 통행량이 나오기 힘든 신설 톨게이트를 단순히 최근 한 달치만 갖고 평가할 수 있나. 대통령의 말에 억지로 맞추려다 보니 국토해양부가 무리하게 갖다 붙인 것이 아닌가”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졸지에 새로 신설된 문평 톨게이트가 예산 낭비의 원흉으로 떠오른 셈이다.


이대통령은 3월17일 지식경제부 업무보고에서 “물량 수급을 통해 생필품에 해당하는 품목 50개를 집중 관리하라”라고 지시했다. 지식경제부는 물론 기획재정부까지 갑자기 난리가 났다. 대통령이 언급한 50개 품목을 딱 맞추는 ‘퍼즐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장면은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는 등, 그렇다면 짬뽕은 왜 빠지냐는 등 웃지 못할 촌극이 빚어졌다. 결국 50개 퍼즐 맞추기에 실패한 관계 부처는 “대통령 말씀은 대충 50개라는 것이지 딱 집어서 50개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라며 52개 생필품 품목을 내놓았다. 기존 통계청에서 관리해오고 있던 생활물가지수 품목 1백52개 중에서 줄이고 줄였음에도 기어이 2개는 더 줄이지 못한 것이다.

 

24시간 운영하는 동주민센터가 국민 섬기는 자세?

4월에도 이런 해프닝은 그치지 않았다. 4월8일 국무회의에서 이대통령은 안산시의 24시간 동주민센터 운영 방침을 언급하면서 “국민을 섬기는 바른 자세”라고 이례적으로 칭찬했다. 시민들에게 좀더 나은 행정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안산시 관내의 주민센터 두 곳을 24시간 운영하고 있는 것을 두고 한 말이다.


대통령의 칭찬이 나오자 공무원들이 또 즉각 반응하고 나섰다. 전국적으로 이를 확대 시행할 것이라는 방침이 그것이다. 당장에 각계 전문가들로부터 비난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안산시의 경우 실제 심야 시간대 민원이 하루 3~4건에 불과한데, 그 민원을 처리하기 위해 4명의 공무원이 심야에 전력을 낭비하며 철야 근무를 하고 있는 것이 과연 효율적이고 실용적인가라는 비판이 그것이었다.
4월25일 열린 청와대 회의에서 나온 이대통령의 즉흥적인 발언이 또 구설에 올랐다.

최근 치솟은 마늘값에 대해 “수입 마늘 공급을 늘려서 마늘값을 잡을 방법은 없었느냐”라고 질문한 것이다. 통합민주당은 “국내 마늘 농가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다”라고 맹비난했다. 가뜩이나 한·미 FTA로 분위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농민들의 심경을 또 거슬리게 만든 발언이 이틀 만에 다시 나왔다. 이대통령은 4월27일 회의석상에서 “국민소득이 10년 안에 4만 달러가 된다고 보면 웬만한 사람들은 비싸도 좋은 고기를 먹을 것이다. 한우를 전부 고급화해서 고급 육질로 하고 외국 수입산은 싼 걸로 하면 된다”라고 언급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당은 즉각 “현 경제 상황에서 어느 세월에 4만 달러가 될지, 한 마리에 1억원 하는 비싼 소를 먹게 될 ‘웬만한 사람’이 누구인지, 살인적인 사료값을 어떻게 감당하면서 한우를 전부 고급화할지 생각이나 하고 한 발언인지 묻고 싶다”라고 비난했다.


방미 기간 중인 4월17일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대통령이 언급한 남북연락사무소 설치 제안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남북 문제에서 대통령이 관련 부처와의 사전 협의도 없이 즉흥적으로 언급했다”라는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박대순 강원대 행정학과 교수는 “뉴스를 통해 보이는 청와대 회의는 대통령은 말하고 장관 및 공무원은 고개 숙인 채 받아 적기 바쁜 모습으로 계속 국민에게 비치고 있다. 이는 대단히 큰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박교수는 “CEO 출신인 대통령에게 당초 기대했던 것은 자신이 직접 나서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기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조직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립하고 그 속에서 구성원들이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장을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오늘날 세계적인 검색 포털로 자리 잡은 ‘구글’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CEO가 부하 직원들의 능력을 한껏 발휘하도록 그 기회를 권장한다는 점이다. 지난 3월31일 이대통령이 일산초등학생 유괴 사건의 해결을 위해 일선경찰서를 직접 방문한 것도 결과적으로는 곧바로 범인을 잡는 효과를 봤고 대통령의 인기는 올라갔지만, 국가 시스템으로 보면 대단히 우려스러운 일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대통령이 직접 경찰서를 쫓아다녀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직접 쫓아가지 않아도 될 체계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더 절실한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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