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축구사, 이제 프리미어리그가 쓴다
  •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 ()
  • 승인 2008.05.20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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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 3팀 등록시켜 우승 예약…상품성 높고 돈 많은 리그, 경기력과 랭킹 에서도 선두로

ⓒAP연합
유럽의 축구 시즌이 저물어간다. 현지 시각으로 5월21일 유럽 최대의 트로피를 놓고 쟁패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 첼시의 승부는 2007/2008 시즌을 마감하는 경기다. 1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지구촌을 들뜨게 했던 유럽 축구 한 시즌의 끝자락에서 과연 누가 웃고 누가 울고 있을까?

2007/2008 시즌 유럽 축구에서 ‘가장 큰 단위’의 승자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였다. 2년 연속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 세 팀을 등록시킨 잉글랜드는 AC 밀란에게 영광을 넘겨주었던 지난 시즌과는 달리, 사상 최초의 ‘잉글리시 파이널(맨유 대 첼시)’을 성사시킴으로써 우승을 예약한 상태다. 크게 보아 이는 1992/1993 시즌부터 ‘프리미어리그’로 재탄생한 잉글랜드 리그의 체질 개선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본 것으로 평가될 만하다. 헤이셀 참사(1985년 5월)가 야기한 한동안의 유럽 무대 공백, 단조로운 ‘롱볼(long-ball) 축구’로 조롱당하던 시절은 이제 옛 일이 되었다. 가장 상품성 높은 리그, 가장 돈 많은 리그로 우뚝 선 프리미어리그가 경기력과 랭킹에서도 선두로 나선 것이다. 이러한 다방면의 성공은 올여름 이적 시장에서 더 많은 재능들을 잉글랜드로 불러모으는 흡인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반면, ‘1980~1990년대의 엘도라도’ 이탈리아 세리에A와 ‘2000년대 랭킹 1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게는 경쟁력 제고를 위한 치열한 노력이 요망되고 있다. 플라티니, 보니에크, 지코로부터 마라도나, 반 바스텐, 바지오, 바티스투타, 지단, 네드베드, 말디니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고수들의 집결지로 각광받던 세리에A는 어느덧 노쇠한 인상을 풍기는 리그가 되었다. 이 ‘노쇠함’은 특히 밀라노 맞수 인터 밀란과 AC 밀란이 공히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다. 또한, 중하위권 클럽에서조차 스타급 선수들을 만나볼 수 있었던 리그의 두터움도 이제는 과거지사가 되었다. 피오렌티나만이 고군분투했을 뿐 삼프도리아, 팔레르모, 엠폴리가 UEFA컵 조별 리그에도 오르지 못하는 부진을 보임으로써 ‘허리의 취약함’이 노출된 것. 올여름 이적 시장에서 영리한 행보를 취하지 못한다면, 상하위권을 불문하고 세리에A 클럽들의 고단함은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

8년간 지켜온 랭킹 1위 자리를 잉글랜드에 내준 스페인도 상처 입기는 매한가지다.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발렌시아의 시즌이 하나같이 평탄치 않았고, 따라서 이들의 챔피언스리그 좌초는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호나우지뉴, 메시, 에토에다 앙리를 추가해 이른바 ‘판타스틱 4’를 구축했던 바르셀로나의 실패와 리그 우승에 도전할 것이 기대되었던 발렌시아의 추락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전자는 유럽 최강의 위용을 과시했던 바르셀로나의 한 시대가 종료되었음을 알리는 신호며, 후자는 프리메라리가의 약점인 클럽들의 기복과 불안정성이 부각된 것에 다름 아니다. 게다가 올 시즌 스페인리그는 전통적 강세였던 UEFA컵에서조차 실망스런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헤타페 한 팀의 선전만이 돋보였을 뿐이다.

ⓒEPA
맨유의 호날두, 유럽 축구 별 중의 별로 떠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프리미어리그 우승팀 맨유는 올 시즌 유럽을 통틀어 가장 기복 없이 훌륭한 시즌을 보내온 팀이다. 맨유의 올 시즌은 저조했던 한 시절로부터의 탈출을 알린 지난 시즌(챔피언스리그 4강, 프리미어리그 우승)보다 더욱 향상되었다. 물론 이는 테베스, 안데르손, 나니, 하그리브스라는 호화 영입을 이루어낸 지난해 여름부터 예상된 결과이기는 하다. ‘세계 최고의 선수’를 향해 질주하는 호날두는 챔피언스리그 트로피를 올드 트래포드로 가져올 경우, 맨유가 배출한 ‘축구사의 천재’ 조지 베스트의 전설마저도 뛰어넘을 태세다. 호날두뿐만 아니라 테베스, 루니로부터 반 데 사르까지, 모든 선수들이 제 몫을 다하는 맨유는 공수 밸런스, 선수층, 전술 수행 능력의 측면에서 약점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즌을 보내왔다. 다만 마지막 큰 승부의 상대인 첼시가 스타일상 매우 까다로운 적수임에 틀림없는 까닭에, 위대한 시즌의 마무리를 잘하기 위해서는 끝까지 집중해야만 할 것이다. 예상을 상회하는 훌륭한 시즌을 보낸 이들도 있다. 풍족하지 않은 선수단을 가지고서 유럽 최고 무대의 문턱에까지 도전했던 라싱(스페인)이 칭찬받아 마땅한 시즌을 보냈으며, 아스톤 빌라(잉글랜드) 역시 유사한 찬사를 받을 자격이 있다. 또한 2부에서 갓 올라와 기존의 1부 클럽들을 머쓱하게 만든 알메리아(스페인), 제노아, 나폴리(이상 이탈리아)는 생존 그 이상의 것을 획득한 시즌이 되었다. 전통의 명문 유벤투스(이탈리아)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스페인)가 챔피언스리그로 귀환하게 된 것도 뉴스거리다.

물론 실망과 낙담으로 점철된 시즌을 보낸 클럽들도 있다. 잉글랜드에서 첫손에 꼽힐 클럽은 뉴캐슬이다. 시즌 중·후반 13경기 4무9패의 참담한 성적으로 강등까지 걱정할 뻔했던 뉴캐슬은 결국 강등권과는 거리를 두게 되었으나, 멤버 구성에 투입된 금전의 규모 및 당초의 기대치를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내용의 시즌이었다. 뉴캐슬처럼 될 뻔했으나 그래도 소기의 성과 속에 시즌을 마치게 된 잉글랜드 클럽으로는 토트넘이 있다. 12라운드까지 단 1승에 그치며 바닥권에 위치했던 토트넘은 감독 교체의 효과를 신속하게 본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강적 아스널을 대파하고 올라간 칼링컵에서 우승해 UEFA컵 출전권을 손에 넣었으니 최소한의 기본은 했다. 그러나 ‘빅 4’에 도전할 것이라던 야망은 산산조각 났다.

이탈리아에서는 AC밀란이 시즌 내내 고전을 면치 못했다. 호나우두의 부상, 질라르디노의 기대치 미달의 상황이 계속되었고, 카카와 피를로 또한 최고의 모습은 아니었다. 가투소는 근년 들어 가장 나쁜 시즌을 보냈다. 전반적인 선수단의 노쇠화가 임계점을 넘은 밀란으로서는 이적 시장에서의 현명한 선택이 반드시 필요하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스페인에서는 바르셀로나와 발렌시아가 ‘수술대에 오를’ 클럽으로 지목되고 있다. ‘판타스틱 4’를 기대했으나 메시 한 명만이 환상적이었던 데 그친 바르셀로나는 이제 레이카르트와 호나우지뉴를 비롯한 과거의 영웅들과 작별을 준비 중이다. 구단 수뇌부와 선수들 간의 ‘신뢰’가 완전히 실종되면서 끝없는 추락을 경험한 발렌시아는 실로 충격적인 한 시즌을 보냈다. 비야를 비롯해 적잖은 선수들이 팀을 떠날 것으로 보이는 발렌시아가 과연 다음 시즌 부활할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젊거나 어린 선수들이 ‘스타’로 급부상

한편, 올 시즌의 유럽 축구는 젊거나 심지어 어린 스타들이 자신의 커리어에서 큰 걸음을 내딛는 장이 되었다. 이러한 ‘저연령화’는 요즈음의 축구에서는 이미 일반적인 추세다. 지난해 최고의 선수를 가리는 시상식장에서 카카, 메시, 호날두가 지존의 자리를 놓고 다툰 것도 우연이 아니라는 이야기.

올 시즌 가장 주목할 만한 유럽 축구의 별은 누가 뭐래도 호날두였다. 하지만 토레스(리버풀), 파브레가스(아스널), 메시·보얀(바르셀로나), 테베스(맨유), 아구에로(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파투(밀란), 이과인(레알 마드리드), 벤틀리(블랙번), 영(빌라), 로시(비야레알), 함시크·라베씨(나폴리), 벤제마(리옹)와 같은 젊은 선수들 또한 빛나는 시즌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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